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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40화 (1,497/2,000)

1740화. 대치

*

두 번째 태을단을 복용한 시체의 몸에서 기운이 왕성해졌다.

먼저 도착한 금색 괴뢰와 다른 두 마리가 시체를 중간에 두고 둥그렇게 서 있었다.

그걸 본 한립이 눈썹을 꿈틀하다 호언 도인 쪽을 보고 흠칫 놀랐다. 호언 도인이 등에 메고 있던 보따리를 풀어 태을단을 집어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립은 의아한 눈빛을 했지만 푸른 둔광을 일으켜 봉천도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어딜 가는 것이냐!”

봉천도가 노호성을 터트리며 쫓으려 할 때 이변이 발생했다.

쿠릉!

남색 빛기둥이 봉천도 뒤에서 솟구쳤다. 방대한 기운을 머금은 빛기둥 중간에는 낙청해가 서 있었다.

물결처럼 남색 기운을 내뿜는 그의 주위로 사슬들이 촤르릉 거리며 꽤 느슨해져 있었다.

얼굴을 굳힌 봉천도는 한립을 쫓지 않고 낙청해 쪽으로 몸을 돌려 검은 법결을 던져넣었다.

“흥! 아직도 날 붙들어 둘 생각이라면 늦었습니다!”

낙청해가 수결을 맺어 거의 실체화된 남색 빛기둥으로 꿈틀거리는 사슬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중얼중얼 주문을 왼 낙청해는 하반신에서 느닷없이 남색 뱀 꼬리가 자라나 반인반사(半人半蛇)의 괴물이 되었고 수행도 급증했다.

그때 한립은 이미 호언 도인에게 도착해 있었다.

“려 수사, 봉천도를 상대하느라 수고했네.”

호언 도인이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숙였다. 잔잔히 미소를 지어 보인 한립의 시선이 다시 노인의 보따리로 향했다.

그러나 곧바로 등에 멨기 때문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립은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캐묻지 않고 낙청해를 돌아보았다.

반인반사의 괴물로 변한 낙청해가 남색 수정막을 일으켜 겹겹이 둘러싼 사슬에서 빠르게 빠져나오고 있었다.

촤르릉…….

동공을 수축한 봉천도가 손을 휘저어 사발 굵기의 검은 사슬 수십 개를 불러냈다.

“가라.”

그 사슬들의 뾰족한 끝이 창처럼 낙청해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걸 본 낙청해는 짙은 남색 구슬을 꺼내 들었다.

강대한 기운이 느껴지는 남색 구슬 안에는 반인반사의 남색 소인이 봉인되어 있었다. 그의 눈빛에 아깝다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입을 벌려 삼기고 남색 빛을 미친 듯이 방출했다.

점점 투명하게 변한 그의 몸을 짙은 남색 기류가 돌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검은 사슬들이 남색 빛기둥을 뚫고 들어와 낙청해의 몸 곳곳을 관통했다. 이에 구멍이 숭숭 뚫렸으나 그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 모습에 봉천도가 오히려 움찔했다.

서늘하게 웃은 낙청해의 몸에서 남색 빛이 강해지고 어디선가 처량한 주술 소리가 울려 퍼졌다.

표정이 달라진 봉천도도 수결을 변화시켜 검은 사슬들로 다시금 남색 파문을 미친 듯이 찔러댔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점점 커지는 주술 소리 속에서 남색 물기둥들이 생겨나 호수처럼 대전 절반을 채웠다.

그 중앙에는 거목 크기의 중년 거한이 품이 넉넉한 남색 장포를 입고 턱에 구불구불한 수염을 늘어트리고 서 있었다.

엄숙한 얼굴을 한 중년 거한의 하반신이 굵은 남색 뱀이었고 방대한 기운이 주위의 검은 영역을 물리치고 금선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

“이 기운은 태을경!”

멀리서 한립 등이 남색 거한의 등장에 놀란 기색을 보였고, 봉천도 역시 무척 놀랐다.

거대한 남색 허상 안에 선 낙청해의 몸도 남색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그가 수결을 맺자 남색 거한이 눈을 번쩍 뜨고 손을 펼쳤다.

웅!

거한의 손에서 남색 지팡이가 나타나 봉천도를 가리켰고 거대한 지팡이 허상이 하늘을 베어낼 기세로 쏘아져 나갔다.

영역 바깥의 수사들도 위압감을 느끼고 멀리 떨어졌을 정도였다.

쿠콰쾅!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지팡이 허상의 공격에 봉천도는 새하얗게 질렸다.

결국 검은 영역이 격렬히 떨리며 쿵! 찢어졌다.

퍼퍼펑…….

영역 내의 검은 사슬들이 연달아 끊어져 남려족 노인과 촉룡도의 또 다른 금선 그리고 남가몽들이 자유를 되찾았다.

희색을 드러낸 그들은 즉시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갔다.

영역을 가르느라 대량의 위력을 소모해 절반으로 줄어든 남색 지팡이 허상은 여전히 봉천도를 향하고 있었다.

모든 과정이 몇 호흡 만에 지나갔다.

영역이 찢어져 내상을 입은 듯한 봉천도가 신음을 삼키고 두 손을 휘저었다.

검은 화폭이 날아올라 촤르륵 펼쳐졌는데 그 그림 속에는 험준한 검은 산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아있었다.

검은 광채를 만발한 화폭에서 산봉우리가 날아올라 정말 산만하게 변해 봉천도 앞을 가로막았다.

검은 주술문자를 품은 짙은 안개가 봉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쿠쾅!

남색 지팡이 허상과 산봉우리의 검은 안개가 충돌했다.

남색빛과 검은빛이 교전하면서 폭음이 터져 나왔고, 산봉우리가 갈라지면서 수많은 바윗덩이가 사방으로 튀었다.

놀랍게도 단단해 보이던 검은 산봉우리가 박살난 것이다!

검은 화폭마저 지직! 둘로 찢겨나간 후에야 남색 지팡이 허상은 힘을 다했는지 깜빡거리다 사라졌다.

봉천도는 거대 지팡이 허상에 맞지 않았지만, 그 여파만으로도 수백 장을 날아갔다.

남색 거한 허상도 모호하게 변해 수축하다 사라지고 낙청해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짙은 남색 빛을 발산하는 그의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궁주님!”

네 명의 창류궁 수사들과 남가몽이 다급히 날아들어 그를 에워싸고 주변을 경계했다.

“괜찮네.”

손을 저은 낙청해는 금색 단약을 꺼내 삼켰다. 한립이 멀리서 보니 금혼단과 비슷한 단약이었다.

낙청해의 얼굴에 금빛이 아른거리고 안색이 차차 회복되었다.

한편 금동과 싸우던 제천소가 낮게 기합을 넣고 회색빛을 맹렬히 키워 터트렸다.

금동은 근거리에서 폭발에 휩싸였지만 상처 하나 없었다. 그 모습에 제천소는 인상을 찡그리며 곤란해했다.

머리를 털어 정신을 차린 금동이 노호성을 터트리며 제천소를 쫓으려는데 귓가에 한립의 목소리가 들렸다.

“됐으니 그만하고 일단 돌아오거라.”

그 말에 금동은 이를 갈며 주저하다 한립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그 시각, 촉룡도 백발 금선도 구양규산이 있는 대전 한 구석으로 이동해 있었다.

“사형!”

잿빛이 번득이고 제천소가 봉천도 옆에 도착했다. 창백한 얼굴로 손을 저은 봉천도는 검은 단약을 꺼내 복용했다.

남려족 노인은 핏빛으로 변해 노파의 곁에 떨어졌다.

네 무리의 수사들이 각각 대전 한구석을 차지하고 서로를 주시하며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립과 나란히 선 금동이 구양규산과 백발 금선을 보고 입을 열었다.

“와, 두 명이 늘었네요! 우리 편이에요? 강해요?”

그 말에 구양규산과 백발 금선의 표정이 묘해졌고 눈썹을 꿈틀한 한립은 그들에게 대신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사실 그도 구양규산과 백발 금선을 동맹으로 생각해도 되는지 언제 이렇게 된 것인지 생각하고 있기는 했다.

“려 수사, 상황이 혼잡해 미리 말해주지 못했네만 나와 구양 도주는 진작 연락을 주고받으며 활동하고 있었네.”

호언 도인이 설명해주었고 한립은 그저 눈을 반짝였다.

“려 수사,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벌써 금선의 경지에 이르다니 축하해 마지않을 일이군요.”

구양규산이 한립을 향해 공수를 했다.

“아닙니다. 어찌 되었든 모두 촉룡도 동문 출신이니 힘을 모으는 것이 좋겠지요.”

빠르게 머리를 굴린 한립이 웃으며 답했다. 한립이 호의적으로 나오자 구양규산과 호언 도인은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그들 무리가 대전 안 어느 세력보다 전력이 강했다. 그것은 태을단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만 미리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한립이 돌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말해보게.”

호언 도인이 얼른 답했다.

“손을 잡는 것은 좋지만 각자 얻게 될 태을단은 개인에게 돌아가는 것이겠지요?”

한립의 물음에 구양규산의 안색이 미미하게 달라졌다.

“그야 물론일세! 힘을 합쳐 적을 상대하되 태을단을 얻고 말고는 스스로의 능력에 달린 일이지.”

구양규산이 딴말을 하기 전에 먼저 호언 도인이 호응했다. 이에 구양규산은 약간 부자연스런 얼굴로 백발금선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무리에서 수행이 비교적 약한 편인 그들이 태을단을 얻을 확률은 낮았지만 호언 도인과 한립이 벌써 뜻을 모았으니 거부할 수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촉룡도 금선들도 고개를 끄덕이자 한립은 미소를 짓다 비취색 단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호언 도인이 태을단 한 알을 얻도록 돕겠다는 약조를 지켰으니 이제는 아무 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

그때 낙청해가 한립 무리를 보면서 경계심을 드러냈다.

태을단 9개 중 아직 3개밖에 완성되지 않았으니 절반 이상이 남아 있어 조급할 것은 없었다.

복릉종은 두 명뿐이고, 봉천도는 숨겨놓은 수를 다 보여 전투를 치뤘으니 기력이 크게 소모됐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가 가장 약하던 한립 무리가 다수를 차지하고 시간영역에 서금선 등 괴이한 신통을 지녔다는 것이었다.

머리가 비상한 낙청해의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에 한립 무리도 가슴이 서늘해졌다.

낙청해가 봉천도의 영역에서 벗어나려 보인 태을경의 실력은 모두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겨놓기 충분했다.

“모두 낙청해를 조심하시지요. 평범한 수사가 아니라 진령 와사(媧蛇)의 혈맥을 타고난 인물입니다. 제 추측대로라면 태을경 와사의 진령지원(眞靈之源)이 담긴 단약을 복용해서 강제로 태을경의 역량을 펼쳤을 테지만 그래도 방심할 상대가 아닙니다.”

호언 도인의 목소리가 일행의 머릿속에 울렸고 다들 표정이 달라졌다.

한립도 경전에서 진령 체내의 혈맥 원천인 진령지원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일단 죽고 나면 원영이나 혼백의 힘을 재사용하기 어려운 일반 수사와 달리 진령들은 혈맥의 힘을 전승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런 진령지원으로 자신의 역량을 초월하는 힘을 낼 수 있었으나 의식 소모가 커서 그리 안전한 술법은 아니었다.

“호언 수사, 낙청해가 아까 지니고 있던 진령지원을 다 썼을 거라 보십니까?”

“아닐 걸세. 낙청해가 얼마나 음흉한 성격인데, 가진 수를 다 내보였겠나. 혹시 모르니 주의를 기울여야 하네.”

한립이 전음으로 묻자 호언 도인이 신중히 답했다. 한립이 봉천도와 제천소를 지나 남려족 노인과 노파를 보며 눈에 이채를 띠었다.

“려 수사 저 둘을 아는가?”

호언 도인이 한립의 시선을 따라가다 전음으로 물었다.

“모릅니다.”

한립은 다른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혈색 좋은 노파가 꺼낸 단약은 허원단이었다.

그가 직접 제련한 단약을 어찌 못 알아보겠는가?

직접 교삼에게 건넸던 단약이 어떻게 노파의 손에 있는지 의문이었는데, 그 둘이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수행에서 차이가 났다.

“신분이 불분명한 인물들일세. 노파는 손쉽게 궁전의 금제를 뚫고 석상 괴뢰들을 퇴치했어. 태을단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고 저 시체에만 신경을 쓰는 게 괴이하지 않은가.”

호언 도인은 노파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했다. 한립이 의문인 부분도 비슷했다.

노파뿐 아니라 봉천도도 저 시체를 상당히 신경 쓰는 눈치였다.

쿠쿵!

바로 이때, 비취색 연단로의 교룡 머리 세 개가 오색빛을 뿜었다.

또 다른 태을단 세 개가 나올 징조였다.

궁전 위로 금색 구름이 몰려들어 이전보다 더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었다.

눈빛이 밝아진 한립은 쓸데없는 생각을 지워버리고 비취색 연단로에 시선을 집중했다.

은빛 세 방울이 소용돌이 속에서 응결되어 궁전으로 떨어져 뇌전 폭발을 일으켰다.

우우웅!

궁전 곳곳의 문양들이 요란한 금빛을 터트리면서 보호막을 형성해 하늘을 뒤덮은 은빛을 막았고, 은빛과 금빛의 대결에 궁전이 떨려왔다.

그러나 대전 안 수사들은 오직 비취색 연단로에서 태을단이 나오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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