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8화.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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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안에는 단겁의 힘을 품은 은빛과 궁전의 금빛이 물러가고 두 번째 단약이 무사히 완성되고 있었다.
총 두 개의 용머리가 태을단을 물고 있어 약향이 대전에 진동했다.
봉천도는 단약들을 보면서 탐욕스러운 눈빛을 드러냈지만 또 어디서 금색 괴뢰가 나타나 태을단을 하나씩 들고 금색 의자로 걸어갔다.
“몸은 괜찮느냐?”
봉천도가 전음으로 제천소의 상황을 물었다.
“불바다를 벗어나느라 본종의 비술을 사용해 기력은 쇠했지만 수행의 근본은 상하지 않았습니다.”
숨을 고른 제천소도 전음으로 답했다.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제 내가 믿을 것은 오직 너뿐이야. 낙청해 저 늙은이가 방금 외부의 금선들을 불러들였음이 확실하니 그들이 오기 전에 태을단을 손에 넣어야 해!”
“하지만 바닥의 금제가 너무 강력하고 괴뢰들도 만만치 않아서 저 혼자서 단약을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 살펴보니 회백색 조각상들이 실력은 강해도 지능이 낮은 것 같았다. 그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단약을 빼앗아 올 수 있을 것이야!”
“……알겠습니다. 한 번 해보지요.”
머뭇거리던 제천소도 어쩔 수 없었기에 전음으로 말했다.
그들이 암암리에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한립은 대전 안의 다른 수살들을 살폈다.
언제든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과 벗어나 있는 것은 달랐다.
게다가 손을 쓰려면 약간의 시간도 필요한데 언제까지 남의 신통에 구속을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한립이 망설이다 격원법련의 구속에서 벗어나려할 때, 봉천도가 돌연 두 팔을 펼쳐 검은 사슬 두 개에 법결을 던져 넣었다.
두 사슬은 호언 도인과 구양규산을 구속한 것들이었다.
검은 기운을 일렁인 사슬에서 주술문자들이 날아올라 뭉치더니 손바닥만 한 흐릿한 검은 그림자로 변해 괴성을 질러댔다.
‘역령!’
한립이 검은 그림자들의 정체를 알아내고 동작을 멈췄다. 역령들은 호언 도인과 구양규산의 체내로 스며들고 있었다.
두 사람의 피부에 검은 문신 같은 게 나타나 빠르게 퍼져나갔다.
“봉천도, 이게 무슨 짓입니까!”
각자의 법칙의 힘으로 저항을 하려해도 소용이 없자 발버둥 치던 호언 도인과 구양규산의 안색이 달라졌다.
촤릉.
그들을 묶은 사슬의 한쪽 끝이 풀려 바닥에 떨어지고 단전에 연결된 쪽만 굳건하게 박혀 있었다.
“가라!”
봉천도의 손짓에 두 사람은 속수무책으로 연단로 방향으로 던져졌다.
제천소가 그걸 보고 히죽 웃은 다음 단약을 입에 털어 넣고 기운을 조정했다.
한립은 봉천도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얼굴이 서늘해졌다.
호언 도인은 촉룡도에서부터 인연이 있었고 자신을 믿고 명한선부에 데려와 진언화륜경 공법까지 미리 넘겨주었는데 죽게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금빛을 일으킨 그가 나서려는데 또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궁전 문 쪽에서 남색 빛이 번득이고 빛의 문이 나타나 백면서생을 포함한 창류궁 금선 네 명이 빠져나온 것이다.
시간차를 두고 노란 치마를 입은 여인도 빛의 문을 빠져나왔다.
바로 운예였다.
“당신…….”
백면서생 등이 그녀를 보고 흠칫 놀라 말을 끝맺기 전에 운예가 대전 중앙으로 몸을 날렸다.
검은 사슬에 묶여 영역에 속박된 검은 수염 노인을 발견하고 구하러 날아간 것이다.
정확한 상황은 몰라도 급박하다는 것을 알아챈 그녀는 즉시 하얀 거대 설련화 허상을 불러내고 손에는 연꽃 가지 모양의 괴검을 들었다.
사뿐사뿐 허공을 박차면서 날아가는 그녀의 눈에는 오직 호언 도인만 보이는 듯했다.
“정다운 원앙 한쌍이 따로 없구나! 그럼 황천길도 같이 가면 좋겠지!”
봉천도의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대청 천장 쪽의 검은 빛의 장막에서 사슬 두 개가 좌우로 교차하면서 운예를 향해 떨어졌다.
“조심하게!”
호언 도인이 다급히 소리쳤지만 운예는 그를 구하는 것이 마음이 급해 피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이미 봉천도의 영역 속에 들어선 그녀의 움직임이 마음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그녀가 속도를 높이지 못하고 좌우에서 날아든 사슬들이 닿기 직전 한립이 눈을 부릅뜨면서 가슴에서 콩알 크기의 금빛을 일으켰다.
그 작은 불빛이 눈 깜짝할 사이에 휘황찬란한 빛의 장막으로 변해 대전 안을 휩쓸었다.
무수히 많은 금색 물결이 대전을 채우고 성대한 법칙의 기운을 방출하고 있었다.
운예를 향해 날아들던 사슬들도 그 안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속도가 감소했고, 다행이 호언 도인 옆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잘했다, 녀석아!”
호언 도인이 고개를 돌려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대전 안에서 금색 영역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와 한립 뿐이었다.
“시간영역…….”
강시 같은 봉천도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이를 갈았다. 그의 튕겨진 손가락에서 검은 수정빛 같은 사슬이 한립의 단전으로 뻗어나갔다.
“왜 그러십니까? 제 원영이라도 속박하려 하십니까?”
입 꼬리를 비튼 한립은 차갑게 웃음 지었다.
그때 허공에 청죽봉운검이 떠올라 그를 묶고 있던 검은 사슬을 내리쳤다.
파치치칙!
청죽봉운검에서 금색 뇌전들이 튀어나와 검신을 두르고 더 매서운 푸른 검기가 쏘아져 나갔다.
챙강!
한립을 묶고 있던 사슬이 끊겨 검은 안개로 흩어져 검은 영역으로 흘러들었다.
“저건 말도 안 돼!”
봉천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격원법련을 단번에 잘라낸 장검을 노려보았다.
그야 겉으로 한 자루처럼 보이는 검이 사실 청죽봉운검 세 자루가 결합한 것인 줄 알 턱이 없었다.
한립은 순식간에 사슬에서 벗어났고 흐릿하게 변해 거의 복부에 가까워진 또 다른 사슬을 피해 이동했다.
실제로는 체내의 진륜을 역전하고 시간의 유속을 빠르게 해 한 발 앞서 금동의 사슬을 장검으로 끊어낸 후였다.
봉천도의 얼굴이 음산해졌고 다른 이들을 제압할 필요가 없었으면 당장 달려들어 한립을 죽이고 싶었다.
낙청해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공들여 불러들인 조력자들이 한립이 펼친 영역의 영향을 받아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 동작이 왜 이렇게 굼떠요! 이제 뭘 할까요? 움직이고 싶어서 몸이 다 근질근질해요.”
자유를 되찾은 금동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물었다.
“저들을 처리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나를 도와 태을단 하나만 빼앗아 오자꾸나.”
한립은 서둘러 임무를 주었다.
봉천도가 다른 수사들을 붙들어 두느라 움직이지 못할 때가 태을단을 얻을 유일한 기회였다.
한립의 말에 금색 딱정벌레가 봉천도를 보았다가 연단로를 보았다가 하면서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안 그래도 저 비취색 화로에 군침을 흘린 지 오래니까 일단 저것부터 먹어 치우면…….”
그 말에 대전 전체가 깜짝 놀랐다.
수사들은 금색 딱정벌레가 소진한의 법보와 원영을 삼키던 모습을 떠올리고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단약들을 전부 망칠까 걱정되었다.
“서금선! 저, 절대 안 될 말입니다…….”
낙청해가 소리를 높여 만류했다.
말을 하면서도 그는 전신의 남색 물결을 키워 그를 감싸고 있는 사슬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봉천도가 그걸 보고 사슬의 술법을 강화해 더 강하게 그를 옥죄었다.
궁전 안 수사들 중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낙청해였다.
두 사람의 수행이 가장 높고 부릴 수 있는 법칙의 힘도 강력해서 똑같이 한립의 시간영역 안에 있어도 다른 수사들보다 훨씬 빠르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연단로 안의 단약이 아직 남아 있다. 지금은 절대 먹어치워선 안 돼…….”
금동의 말에 한립도 머리가 띵해져서 서둘러 말렸다.
“칫,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금동은 볼을 부풀리며 툴툴거렸지만 그래도 한립의 말은 들어서 날개를 펼쳐 불바다 금제 쪽으로 달려들었다.
제천소가 그걸 보고 비웃으면서 단약을 꺼내 삼키며 옆으로 살짝 비켜섰다. 눈으로는 금색 딱정벌레를 쫓고 있었지만 당장 막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서금선이라면 불바다 금제의 위력을 보고도 무턱대고 뛰어들 것이 뻔했기에 그 순간을 노려 공격해 제압한 다음 천천히 굴복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앞으로 금선 영충을 데리고 다닐 수 있지 않은가!
그가 생각지 못한 것은 한립이 바짝 따라붙어 번뜩 금동을 앞섰다는 것이다.
양손으로 기괴한 수결을 맺은 그의 손바닥에서 은색 화염이 화르륵 일어 불바다를 파고들었다.
한립은 두 손이 불바다 가장자리에 닿았음에도 팍 인상을 찌푸리며 고통스러워했다. 화염의 열기는 그의 예상을 초월했다.
그의 양손이 좌우로 벌어지면서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은색 화염이 둥그렇게 불의 장벽을 형성해 천천히 원형의 구멍을 만들고 있었다.
그가 다른 데 집중하는 동안 시간영역이 느슨해져 수사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 어서 들어가거라…….”
두 손이 새빨갛게 변하고 손목 쪽의 옷자락이 타들어 간 한립은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금동도 그걸 보았기에 날개를 털어 쏜살같이 구멍 속으로 몸을 던지려 했다.
그때 짙은 회색 안개가 불쑥 튀어나와 금동의 앞을 막고 제천소의 모습으로 변했다.
“비켜!”
열 받은 금동의 외침에도 제천소는 곧바로 두 소매를 털어 잿빛 안개로 거대 구렁이 8마리를 만들어냈다.
금동은 사납게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회색 구렁이들을 잡아다 물어뜯기 시작했다.
한립이 애써 버티고는 있었지만 두 손이 너무 가열되어 거의 투명해지고 시간영역의 법칙의 힘도 희박해지고 있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일단 태을단을 손에 넣게!”
낙청해가 급히 창류궁 금선 네 명에게 명을 내렸다.
그가 불러들인 창류궁 금선들은 각각 법칙의 힘 발휘해 희박해진 시간영역의 압박을 뚫고 연단로 쪽으로 이동했다.
낙청해는 눈으로는 그들을 쫓으면서 전음으로 남가몽에게 말을 붙었다.
“어떠하냐? 금제의 파훼법을 알겠느냐?”
“약해 보이는 곳을 몇 군데 발견하기는 했으나 완벽한 파훼법은 찾지 못했습니다.”
“상관없다. 네가 알아낸 것을 저들에게 알려 약점을 노리게 해보거라.”
남가몽의 대답에 낙청해가 분부를 내렸다.
“낙 궁주, 굳이 저 제자를 데리고 들어오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봉천도가 둘 사이의 대화를 눈치챘는지 어느 정도 대화를 유추해 중얼거렸다.
그가 수결을 맺자 소매 속에서 검은 사슬이 하나가 날아가 순식간에 남가몽의 복부를 뚫고 단전을 파고들었다.
원영이 격원법련에 봉쇄되자 남가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가몽아!”
낙청해가 흠칫 놀라 제자를 불렀고 전신의 남색빛이 그를 감은 격원법련을 공격했다.
봉천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선령력을 더 많이 주입해 낙청해를 꼼짝 못 하게 했다.
솔직히 그도 답답히 미칠 것 같았다.
연단로 주변을 지키는 금제가 강해서 애꿎은 복릉종 금선 둘만 목숨을 잃었고 사제인 제천소도 부상을 당했다.
이제 전력으로 창류궁이 우위를 점한데다 갑자기 한립이 튀어나와 일을 벌이고 있으니 봉천도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퍼퍼펑…….
낙청해 쪽 사슬이 안정을 찾기 전 호언 도인을 속박하고 있던 사슬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호언 도인의 배를 뚫고 나온 사슬에 연꽃 줄기처럼 생긴 비검이 꽂혀 있었고 그 위로 분홍색 꽃 허상들이 분분히 피어나 사슬을 감싸고 폭발하는 중이었다.
검은 사슬이 갈라지기 시작하고 허공에 있던 운예가 입가에 피를 흘리며 비틀거렸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검은 수염 사내, 호언 도인이 번득 나타나 그녀의 어깨를 감싸 부축했다. 그는 자기 때문에 운예가 상처를 입자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했다.
“당신만 괜찮으면 난 괜찮아요.”
운예는 몸을 바로 하고는 입가의 묻은 피를 쓱 닦아 냈다. 그 모습에 호언 도인이 무어라 더 말하려다 그녀가 고개를 젓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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