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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36화 (1,493/2,000)

1736화. 비밀

*

쿠르릉!

고공의 금색 구름은 숨 막히는 광채를 내뿜으면서 요동치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파동에 금선들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구름이 한곳을 중심으로 회오리치면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어 그 바람 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전류가 은백색 물방울처럼 뭉쳐 그 안에서 치지직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아앗!

동시에 무시무시한 영기의 파동이 강림해서 황금 궁전을 감쌌고, 한립은 지붕과 벽에 빼곡하게 새겨진 문양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은은한 빛을 내뿜는 것을 보았다.

빛이 들어온 궁전 안 바닥은 원형 문양들이 얼기설기 엉켜서 비취색 거대 연단로를 지키고 있었다.

건장한 사내만큼 커다란 화로는 두 개의 손잡이에 세 개의 다리를 지니고 있어 전통적인 연단로와 양식이 비슷했다.

하지만 옥석이 아닌 특이한 재질의 비취색 화로가 안에서 이글이글 끓는 열기를 완벽하게 봉쇄하고 있었고, 화로 표면에 9마리 교룡이 새겨져 있고 뚜껑에 3마리 금색 새 조각상이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눈을 가늘게 뜬 한립은 영목 신통으로 금조(金鳥) 조각상 속에 하얀빛이 반짝이고 화로의 세 다리에서는 하얀빛이 실을 이루어 화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똑!

갑자기 물방울 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고공의 금색 소용돌이에서 큼지막한 은색 물방울이 황금 궁전 지붕으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콰르릉 콰콰쾅!

은색 기와가 박살나고 물방울이 안으로 들어와 포악한 뇌전의 힘으로 대전을 가득 채웠다.

안색이 급변한 금선들은 뒤로 물러났다.

건물 전체가 충격을 받아 바닥으로 쿵! 내려앉으려는데 궁전 주변의 주술문자들이 떠올라 고공의 뇌전들을 막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떨어지는 은빛 기둥은 궁전 안의 동글동글한 문양들이 일어나 금색 보호막을 이루고 연단로를 보호했다.

화로의 교룡 문양이 눈에서 하얀 화염을 일으켜 동시에 은색 빛기둥을 가로막았다.

일사천리로 궁전 벽과 바닥 그리고 화로가 힘을 합쳐 단겁을 막는 것을 본 한립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명한선군 늙은이가 태을전을 만들어 괴뢰들이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영수 우리와 약재밭을 가꾸게 한 것만으로도 감탄하고 있었는데, 불가사의하게도 단겁을 막는 궁전까지 만들다니 하늘이 내린 기재가 맞는 것 같았다.

비경을 나올 때 스스로를 명한선군이라 일컬은 늙은 도사의 잔혼을 양혼로 속에 봉인해 외부와의 일체의 연락을 차단했는데 이제라도 그걸 풀고 대화를 나눠봐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단겁이 끝나려 하네, 움직일 준비를 하세…….”

그가 망설이는 와중에 호언 도인의 말소리가 들렸다.

과연 은색 뇌전 기둥이 수십여 초를 못 버티고 흩어져 궁전 위에는 자욱한 연기만이 가득해졌다.

“갑시다!”

누가 먼저 소리를 쳤는지 모든 이들이 대전 중앙으로 몰려들었다.

은색 빛기둥이 사라졌는데도 바닥의 동글동글한 금색 문양은 소실되지 않아 겹겹이 쌓여 화로를 지키는 중이었다.

대전 내부를 빠르게 살핀 한립은 양옆에 보통 사내와 비슷한 체구를 가진 회백색 석상들이 각종 병기를 들고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움직임이 아직 없지만 영력 파동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괴뢰였다.

화로 뒤쪽으로는 나지막한 단이 있고 그 위로 봉황과 용이 새겨진 금색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의자에 기대앉은 암녹색 중년인은 병색이 짙은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다들 그걸 보고 헛바람을 들이키면서 혹시 몰라 기운을 일으켰다가 약간 긴장을 풀었다.

중년인은 이미 생기를 잃은 시체였기 때문이었다.

화아앗.

수사들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오색 광채가 화로 위로 퍼지면서 궁전 문을 향해 있던 화로의 교룡 중 한 마리가 입안에 용눈알 크기의 은색 단약이 나타났다.

단약이 나타난 순간, 대전 안은 그득한 약향이 진동을 했다.

“태을단!”

“다들 잠시만, 금색 고리들이 아직 화로의 진법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함부로 뛰어들어 기관을 발동시키면 화로 안의 단약은 끝이에요!”

다들 눈빛이 뜨거워져있는 데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낙청해가 소리를 높였다.

“단약은 이미 완성되었으니, 화로 따위야 깨지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남려족 노파가 튀어나가려는 데 발 앞에 남색 물빛 장막이 나타나 막아섰다.

“싸워보자는 겁니까. 기다리던 바…….”

곁의 노인이 히죽 웃으며 전투태세에 들어갔고 한립과 호언 도인도 시선을 마주치고 선령력을 끌어올렸다.

“다들 마음을 가라앉히고 제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겨우 태을단 한 알을 얻기 위해 나머지 8개를 망칠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급히 손을 저은 낙청해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오? 그 말은 태을단이 총 9개란 말입니까?”

봉천도가 관심을 보이고 나머지 수사들도 눈빛이 달라졌다.

“제가 알기로 저 연단로의 이름은 구룡함주로(九龍銜珠爐)입니다. 그 자체로 절세의 보물이지만 중요한 것은 각 용머리가 하나씩 단약을 토해낸다는 점이지요. 시간차가 나겠지만 괜찮으시면 다 같이 기다려 보는 것이 어떨지요?”

“저도 생각이 났습니다. 백만 년 전인가 들은 바로 오래전 어떤 고인이 진령의 혼백과 천지의 귀한 재료들을 모아 천지조화와 법칙의 힘을 담은 연단로를 제련했다더군요. 이게 선부에 있었군요!”

남려족 노인도 이제야 알겠다는 듯 말하고 나머지 수사들의 얼굴이 풀어졌다.

화로 속에 무려 9개의 알이 있다는 말에 눈빛이 더 뜨거워졌지만 말이다.

“이곳에는 다섯 세력이 있고 총 10명이 모여 있습니다. 태을단 9개로는 똑같이 나눌 수도 없을 텐데요?”

봉천도가 꺼낸 말에 다들 표정이 신중해졌다.

“허허, 그건 문제될 게 없습니다. 제가 명한선부에 제자를 데려온 것은 그저 견문이나 키워줄까 해서였습니다. 창류궁은 딱 한 알이면 되니 나머지 분들이 하나씩 고루 나눠 가지면 좋지 않겠습니까?”

낙청해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나머지 수사들이 의외였던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웅.

그 순간 화로를 맴돌던 금빛들이 홀연히 흩어졌다.

황금 괴뢰 하나가 비취색 연단로를 빙 돌아 용머리가 입에 물고 있는 은백색 단약을 꺼내 단 위의 금색 의자로 걸어갔다.

다들 눈앞에서 단약이 멀어지는 것에 깜짝 놀라 괴뢰를 쫓으려는데 이변이 발생했다!

검은 기운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그들을 검은 영역 속에 빠트린 것이다.

몸이 묵직해진 금선들은 체내의 선령력 운용에도 차질이 생겨 표정이 어두워졌다.

한립도 선령력의 움직임은 느려졌지만 시간법칙의 힘은 구속을 받지 않았다.

푸른빛을 방출하면서 묵묵히 시간법칙의 힘을 운용한 그는 검은 기운 밖 상황을 보고 얼굴이 굳었다.

봉천도가 양손으로 수결을 맺어 검은 영역을 조종하고 있었다. 태을전 바깥에서 소진한과 싸울 때 보다 훨씬 규모는 작아도 위력이 그 이상이었다.

실력을 고의로 숨기고 있었음이 확실했다.

“봉천도, 이게 무슨 짓입니까! 홀로 태을단을 다 차지할 생각인 겁니까!”

재차 삼차 양보했음에도 이런 일을 벌인 봉천도를 보고 낙청해가 불쾌한 기색을 표하더니 남색 기운을 일으켜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냈다.

수많은 허상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봉천도의 검은 영역과 겨루었다. 호언 도인과 남려족 노파도 기합을 넣으면서 각자 화염 영역을 펼쳤다.

세 개의 영역이 힘을 합쳐 검은 영역의 구금의 힘을 대부분 밀어내자 나머지 금선들이 한결 수월하게 선기들을 방출해 공격을 가했다.

한립도 청죽봉운검을 한 자루 불러내서 다른 선기들에 섞어 날려 보냈다.

냉소를 흘린 봉천도가 손을 저어 몸속에서 촤르릉! 하고 16개의 굵직한 사슬들을 쏘아 보냈다.

하나하나가 사발 굵기인 사슬들은 허공에서 연결되어 퍼퍼펑! 선기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검은 사슬들의 출현에 검은 영역도 기운이 나서 위력이 크게 늘었고 낙청해 등이 펼친 세 영역이 제압되어가고 있었다.

“영역이 이미 화령경의 경지에 이르렀구나!”

놀란 낙청해가 소리치며 남색빛을 일으켜 달아나려 했고 다른 수사들도 분분히 튀어 나갔다.

소진한과의 일전으로 화령경 영역의 위력을 절절히 체감한 금선들은 봉천도가 그 수준의 영역을 펼치자 위기를 느꼈다.

봉천도가 바닥의 금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영역의 범위를 조절하고 있었기에 달아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한립도 청죽봉운검을 불러들이고 둔광을 일으켜 몸을 돌렸다.

은밀히 청죽봉운검 안에 시간법칙을 흘려보내 검기와 뇌전이 검은 영역을 가르면서 길을 뚫었고 약지에서는 금색 반지가 번득하고 금동이 나타났다.

아이는 허공에서 빙글 돌아 맷돌 크기의 금색 딱정벌레로 변해 앞발을 휘휘 저으면서 검 형태의 수정빛을 날려 검은 영역을 갈랐다.

“어딜 달아나려 하느냐!”

봉천도의 시선이 한립에게 닿았다. 한립의 몸에 검은빛이 반짝하고 사슬 2개가 나타났다.

그를 오래도록 구속했던 격원법련이었다.

‘이런!’

피하려 했지만 한발 늦어 검은 사슬들이 그와 금동을 휘감고 말았다. 방심했다고 느낀 동시에 한립이 쓴웃음을 흘렸다.

법칙의 실을 더 자유롭게 다뤘다면 시간법칙의 실로 봉인해서 상대가 이렇게 멀리까지 손을 쓰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금동도 검은 사슬에 묶여서 뭐라고 떠들고 있었다.

두 격원법련이 더 나타나자 검은 영역은 한층 더 농염해졌고, 봉천도 곁의 16개 사슬도 흐릿하게 사라져 곳곳에서 수사들을 구속했다.

“외부의 힘을 이용해 영역을 화령경의 경지에 이르게 하다니. 허나 봉천도 홀로 법칙의 힘을 허비하며 얼마나 영역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 두려워 말고 저항해야 합니다!”

낙청해가 사슬이 말려서 오히려 차갑게 말했다.

말을 하는 중에도 전신에서 남색빛이 허상을 만들어내 검은 기운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사슬은 선령력은 구속해도 법칙의 힘은 철저히 막지 못하는게 분명했다.

다른 금선들도 각자 다양한 신통을 발휘해 사슬에 대항해서 대전 안에는 사슬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그 말에 코웃음을 친 봉천도는 입에서 정혈을 한 움큼 뱉어 각각의 사슬에 몇 방울씩을 날려 보냈다.

피를 머금은 사슬이 덜덜 떨리면서 검은 기운이 안정을 찾아갔고, 봉천도의 표정도 다시 자신만만해졌다.

낙청해가 은근슬쩍 흘리고 있는 것처럼 봉천도도 다섯 돌기둥을 이용해 영역을 화령경으로 끌어올린 것이 맞았다.

진정한 화령경 영역에 비해 약하기는 해도 비교적 힘의 소모가 덜 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들 북한선역에서 한 자리씩 하는 분들이니 나 복릉종의 봉천도가 태을경에 이르러 선역의 위명을 높이는데 협조하시지요. 그때가 되면 내 술 한잔 씩 올려 당신들의 망혼을 기리겠습니다!”

“봉천도,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내 오늘 수행을 다 잃더라도 당신을 막겠습니다!”

낙청해가 봉천도의 기고만장한 소리에 버럭 화를 내며 정혈을 뱉어 자신의 영역을 조종했다.

진원을 소모하면서까지 사슬의 구속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다른 분들은 태을단이 코앞에 있는데 이렇게 포기하실 겁니까? 이렇게 봉천도가 혼자 날뛰게 가만 둘꺼냔 말입니다! 이 늙은이는 그리 못하겠습니다. 앞으로 우리 남려족과 복릉종은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보시면 됩니다!”

혈색 좋은 노파도 길길이 날뛰었고 다른 수사들도 속에서 열불이 치솟았기에 각자의 방법으로 속박에서 벗어나려 했다.

“내가 저들은 붙들어 두는 동안 태을단을 챙겨라.”

봉천도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옆에 선 제천소에게 말했다.

“사형, 힘을 합쳐 저들을 죽이고 천천히 제련을 마친 단약 9개를 챙겨도 되지 않겠습니까?”

제천소가 서늘한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일단 2개를 챙기고 나머지는 그 후에 생각할 일이다. 내 비록 영역으로 저들을 붙잡아 두고 있어도 중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네!”

제천소가 번개처럼 금색 괴뢰를 향해 날아갔다.

그들이 싸우는 동안 괴뢰는 벌써 한참을 걸어가서 금색 의자가 놓인 단과 가까워져 있었다.

허공에서 제천소가 기이하게 생긴 회색 비검을 휘둘렀다.

휘휘휙!

비검에서 수십 개의 잿빛 광선이 쏘아져 나가 금색 괴뢰의 등을 노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바닥의 금색 문양이 급격히 밝아지더니 지면에서 하얀 불기둥이 치솟아 불의 벽을 이루었다.

지글지글 끓는 불의 벽에 닿은 회색 관선들이 연기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걸 보고 흠칫 놀란 제천소가 더는 쫓지 않았고, 금색 괴뢰는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모른다는 듯 차분하게 금색 의자로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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