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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33화 (1,490/2,000)

1733화. 의외의 조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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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등등해서 사생결단이라도 내려던 딱정벌레는 갑자기 눈을 굴리더니 어딘가를 보고는 흐릿하게 사라져 버렸다.

흠칫 놀란 소진한이 무언가 하려는데 제천소 등 나머지 금선들이 떨어져 다섯 개의 돌기둥과 그를 둘러쌌다.

그들은 금색 딱정벌레가 있던 곳을 힐끗 살피고 다시 소진한에게 집중했다.

“소 궁주, 하늘도 우리 편인 것 같은데 그만 목숨을 내놓으시지요!”

차갑게 외친 제천소가 수결을 맺었다.

회색 옥여의가 꿀렁꿀렁 안개를 뿜어 이번에는 용의 모양을 하고 소진한을 공격했다.

다른 수사들도 선기로 사방팔방에서 다양한 빛을 뿜고 있었다.

소진한은 더 이상 금색 딱정벌레는 신경 쓰지 못하고 손가락을 민첩하게 튕겨 주변의 돌기둥으로 법결들을 날렸다.

우웅!

하얀 진법이 방출한 빛이 회오리치면서 열댓 개의 굵직한 빛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쾅! 쾅! 쾅! 쾅……!

제천소 등도 금색 딱정벌레처럼 하얀빛을 맞고 날아가 더이상 다가서지 못했다.

딱정벌레를 막느라 진법의 힘을 많이 소모한 줄 알았던 금선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보아하니 하얀빛은 소진한의 힘의 근원이 아니라 진법이 자동으로 외부의 공격에 감응해 대적하는 수단인 듯했다.

이때 깜빡깜빡거리던 진법을 타고 하얀빛이 돌기둥으로 흘러들어가 굵은 빛기둥을 하늘로 쏘아 올랐다.

쿠쿠쿠…….

빙설영역이 진동하면서 일고여덟 개의 빛덩이가 뭉치는 중이었다.

“어서 막아야 합니다. 또 역령을 응결하려 하고 있어요! 어서 돌기둥을 부수세요!”

봉천도가 허공에서 고함을 쳤다.

역령은 영역 안에서 거의 무적이나 다름없어서 일단 형성이 되면 제거하기 어려웠다.

제천소 등도 그걸 알아 각종 선기와 고계 부적을 마구 뿌리면서 돌기둥에 공격을 쏟아부었다.

비웃음을 날린 소진한은 수결을 맺는 데 집중했다.

우웅!

진법에서 다시금 열댓 줄기의 하얀빛이 날아가 선기들을 쳐내려 했다.

눈을 번득인 제천소가 정혈을 토해 회색 옥여의에 흡수시키고 빠르게 수결을 맺었다.

빛을 머금은 옥여의 위쪽에서 뱀 머리가 떨어져 나와 하얀빛을 꿀꺽 삼켰고 막는 것이 사라진 옥여의는 돌기둥 중 하나에 접근했다.

빙글 돌아 회색 칼날로 변한 보물은 주술문자들을 방출하면서 강력한 부식 능력을 보였다. 소진한은 의외라는 눈빛을 보내며 굳이 막으려 들지 않고 진법을 조종했다.

쾅!

굉음이 굴리고 회색 칼날이 돌기둥을 쳤는데 하얀빛이 흩날린 것을 제외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무슨!”

돌기둥 자체도 강력한 보물처럼 단단했던 것이다. 이게 바로 소진한이 걱정하지 않았던 이유였다.

다른 쪽 돌기둥에서도 남려족 노파가 하얀빛을 돌파했는지 금색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쾅!

돌기둥은 약간 흔들리더니 역시 아무렇지 않게 서 있었다.

진법이 빛이 더욱 밝아지고 소진한은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곧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 하얀 돌기둥 아래에서 금빛이 번득이고 딱정벌레가 얼음을 뚫고 나타났다.

슉!

진법이 자동으로 굵은 하얀 빛을 내뿜어 쳐내려 했지만 딱정벌레 입에서 금색 소용돌이가 나타나 그것을 빨아들였다.

딱정벌레는 하얀빛을 삼키고 거리낌 없이 돌기둥을 감싸안았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단단하기 짝이 없던 돌기둥이 금색 딱정벌레의 반짝이는 이빨 아래에서 과자처럼 부서져 나가고 있었다.

“저럴 수가!”

모골이 송연해진 소진한은 수결을 맺어 갉아 먹히고 있는 돌기둥을 향해 하얀 수정빛을 날렸다.

웅!

수정빛을 머금은 돌기둥은 한립의 진극막처럼 표면에 막이 생겨 아주 단단해졌다. 문제는 딱정벌레의 날카로운 이빨에는 수정막도 뚫린다는 것이었다.

낫처럼 이빨들이 돌기둥을 콱콱 베어내며 표면의 문양들이 끊겨 진법의 흐름을 방해했다.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냐! 죽어라!”

소진한이 벌떡 일어나 두 팔을 펼쳐 하얀 진법을 급속도로 발동시켰고, 진법 가운데에서 굵은 하얀빛이 응결해 날아갔다.

동시에 그의 양손에서 하얀 창 두 자루가 음산한 빛을 뿜으며 쏘아져나갔다.

태태탱!

금속성의 마찰음이 울리고 불꽃이 튀면서 긴 창 두 자루가 금색 딱정벌레 목 부분을 공격하다 붙들려 영충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딱정벌레는 돌기둥을 갉아대는 데 여념이 없어 목에 희미하게 남은 흔적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금색 기류가 몰려들어 미세한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절망하던 제천소와 다른 수사들의 얼굴에 희색이 떠올랐다.

“금선급 서금선!”

소진한도 제대로 놀라고 말았다.

금색 딱정벌레는 선기급 보물 두 자루를 맨몸에 맞고 멀쩡할 뿐 아니라 자신이 보는 앞에서 그것을 먹어치웠다.

이에 소진한이 다른 수를 쓰려할 때 하얀 돌기둥이 파삭! 무너져 내렸다. 하나가 망가지자 다섯 돌기둥을 의지해 펼쳐진 진법의 빛도 약해졌다.

푸확!

소진한이 울컥 피를 토하자 그가 펼친 빙설영역이 슬금슬금 줄어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제천소를 비롯한 다른 수사들이 희희낙락하며 공격을 재개했다.

이제야 약간 경황이 없어진 소진한은 두 팔을 휘둘러 하얀빛을 발출했고, 빙설영역이 수축하면서 한층 짙어져 그를 주위로 새로운 하얀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쿠콰콰쾅!

선기와 고계 부적 공격이 비처럼 떨어지는 통에 소진한은 창백한 얼굴로 또 한 번 피를 토했다.

그때 소진한 옆 허공에 파문이 일고 열댓 개의 검은 사슬들이 번득 나타났다. 검은 사슬에 칭칭 감긴 소진한은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몸부림쳤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 나타난 키 큰 사내는 봉천도였다.

“봉천도, 날 죽이면 천정이 널 용서치 않을 것이다!”

“소 궁주, 하늘이 당신을 버린 것을 누굴 탓하려 하십니까?”

이미 승부가 난 마당에 패자를 상대로 흥분할 것도 없는 봉천도가 담담히 말했다.

그의 손에서 수정빛이 날아가 소리 없이 소진한의 몸을 가르고 머리가 땅에 떨어지면서 피가 분수를 이루었다.

이때, 모호한 하얀빛이 소진한의 시체에서 빠져나왔다. 은색 눈썹과 수염을 기른 소진한의 원영이었다.

차갑게 웃은 봉천도가 검은 사슬들을 이용해 그물을 치고 원영을 포획하려 는데, 소진한 원영이 긴장한 얼굴로 하얀 구슬을 토해냈다.

펑!

구슬이 폭발하면서 극한의 법칙이 검은 그물과 구금법칙을 얼린 사이 하얀 원영은 몸을 틀어 쏜살같이 달아났다.

“…….”

입가를 꿈틀거린 봉천도가 즉시 그 뒤를 쫓으려다 우뚝 멈춰섰다.

금빛이 하얀 원영 앞을 막아서 딱정벌레의 모습을 드러내더니 소진한의 하얀 원영을 한입에 앙! 물어뜯어서였다.

하얀 원영은 입안에서 벌버둥쳤지만 벗어날 수가 없었다.

“수염 영감, 네가 먼저 날 얼린 거야! 원망 말라고.”

딱정벌레의 입안에서 눈부신 금빛이 흘러나와 하얀 원영을 휘감고 몸속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얼음과 눈의 세상이던 골짜기가 녹아내리고 다섯 개의 돌기둥들이 줄어들었다.

봉천도는 소진한의 원영이 그렇게 사라지자 잠시 놀랐으나 곧 금색 딱정벌레를 향해 탐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선기를 거둔 제천소 등 다른 수사들도 그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남려족 금선들 및 호언 도인 일행 그리고 구양규산 등이 금동을 포위한 꼴이었다.

사각사각…….

그런데도 금동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아까 갉아먹다 만 반절 남은 하얀 돌기둥으로 다가가 태연하게 식사를 계속했다.

“…….”

봉천도와 눈빛을 주고받은 제천소가 막 금동의 뒤쪽에서 접근하려는데, 돌연 푸른 빛이 번득 나타나 그와 서금선 사이를 가로막았다.

움직임을 멈춘 제천소가 보니 우람한 체형에 까만 피부를 지닌 평범한 중년인이었다.

한립이 온 것을 본 금동이 금빛을 일으켜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돌기둥을 품에 안고 멀뚱멀뚱 쳐다봤다.

“금동, 누가 널 괴롭히기라도 하더냐?”

평범한 중년인의 모습을 한 한립은 일부러 제천소 쪽을 힐끔 보면서 입을 열었다. 말을 하면서 금선 중기의 수행을 노출한 상태였다.

“아저씨, 날 괴롭힌 영감탱이는 벌써 배속에 있어요.”

금동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답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수사들은 더욱 가까워져 그들을 향해 경계심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금선 중기의 낯선 수사와 금선급 서금충이 본체인 금발의 여자아이를 신경 쓰는 것은 당연했다.

한립의 출현에 호언 도인과 운예도 놀랐다.

몇 달 동안 보이지 않더니 갑자기 금선이 되어서는 서금선까지 대동하고 나타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근데 왜 이제 오고 그래요?”

금동은 점점 가까워지는 금선 무리를 불쾌하다는 듯 둘러보고 푸념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다. 이제 배도 채웠으니 넌 잠시 쉬고 있거라.”

“이거 다 내 거예요! 아무도 건들게 하면 안 돼요. 아직 배도 안 찼는데…….”

금동은 한립의 말뜻을 알아듣고 남은 진법을 가리켰다.

“내가 대신 챙길 테니 시간 날 때 천천히 먹으면 좋지 않겠느냐.”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달랬다.

“……알겠어요.”

고민하던 금동이 마지못해 답하자 고개를 끄덕인 한립은 금선들이 보는 와중에도 하얀 돌기둥들을 챙겨 넣었다.

“좋은 물건 있으면 본 선녀를 잊으면 안 돼요!”

금동은 봉천도 등을 도전적인 눈빛으로 훑고는 손톱 크기의 딱정벌레로 변해 날아올랐고, 곧 한립의 왼손 약지에 금빛이 어리면서 금색 반지가 생겨났다.

그걸 보는 금선들은 다양한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

소진한이 진법을 발동하는 데 성공했으면 성가신 일들이 많았을 테니 서금선이 뛰어들어 도운 것은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 등장해 서금선 주인 노릇을 하는 한립은 또 다른 위험 요소였다.

봉천도가 이채를 띠고 한립을 위아래로 살폈고, 제천소 등 복릉종 수사들도 약간의 적의를 드러냈고, 남려족 노인과 노파도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서 의문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명한선부에 들어오기 전에 진염종 수사들과 교류를 한 탓에 한립에 대해 어느 정도 인상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분명 겨우 진선경 후기였던 수사가 금선 중기의 수행으로 다시 나타났으니 그 배경에 대해 생각이 많아질 만했다.

“천우야, 어딜 갔다가 이제야 온 것이냐? 이 늙은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느냐.”

그런 와중에 흑포 노인의 모습을 한 호언 도인이 불쑥 알은 체를 했다. 한립도 빙긋 웃으며 그에게 다가섰다.

“사숙, 어떤 궁전에 갇혀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 그곳을 빠져나와 이곳에서 일어난 천기현상을 보고 급히 달려오는 길이고요.”

걸어가며 한립은 호언 도인에게 대충 사정 설명을 했다.

호언 도인은 겉으로는 이런 말을 하면서 전음 비술을 사용해 실제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려 수사,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수행이 언제…….”

“사실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궁전에 갇혀 있다가 나와 보니 금선의 수행에 이르러 있었다면 저를 믿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믿지 못하겠네.”

호언 도인은 정색을 하면서 답했다. 그 사이 운예가 호언 도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모종의 윤회 비술을 익혀서 이전에 수행을 숨기고 종문의 무상진륜경을 훔치려 잠입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들이 겉으로 나누는 대화에도 수사들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호언 도인과 운예에게까지 적의를 드러냈다.

구양규산 등 촉룡도 금선들이 갑자기 호언 도인 곁으로 다가섰다. 그들은 호언의 진짜 신분을 아는 것이 확실했다.

벗이었던 그들도 지금은 아군인지 적군인지 명확하지 않았으나 복롱종 세력이 커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다.

조금 전까지 힘을 합쳐 소진한에 대항했던 금선 무리가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봉천도가 그걸 보고 입꼬리를 끌어올리더니 남려족 금선 두 명을 살폈다.

노파와 한참 눈짓을 주고받던 일흔이 넘어 보이는 노인은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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