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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32화 (1,489/2,000)
  • 1732화. 손을 잡다

    *

    얼음 영역이 미친 듯이 요동치면서 허공의 나머지 세 가지 영역을 압도하고 있었다.

    봉천도 등 네 명은 난색을 표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영역의 힘을 키웠으나 소용없었다.

    “이상합니다. 영역의 위력을 이 정도까지 키우다니 이건 마치…….”

    미간을 좁힌 봉천도가 의심스러운 얼굴을 했다.

    화아앗.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다섯 돌기둥 위쪽에 휘황찬란한 하얀빛이 나타나 집채만 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상반신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하반신은 하얀 안개인 그림자는 강력한 법칙의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역령(域靈)! 영역이 3성의 화령경(化靈境)에 이른 것이었어!”

    표정이 달라진 봉천도의 음성에 다른 이들도 안색이 급변했다.

    하얀 인영은 시선을 내리깔아 수사들을 보았다.

    그 눈빛은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역령의 손짓에 영역이 미친 듯이 요동치면서 눈보라가 뭉쳤다.

    별안간 거대한 하얀 눈보라가 거대한 파도를 이루고 봉천도 등을 뒤덮었다.

    촤륵!

    그 안에서 하얀 얼음송곳들이 떠올라 봉천도 등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역령이 영역 내의 법칙의 힘을 조종하는 게 심상치 않습니다. 다들 숨겨둔 한수를 쓸 때입니다!”

    봉천도가 소리치며 검은 비검을 움직였다.

    그러자 검은 검 그림자들이 셀 수 없이 떠올라 검빛의 물결을 이루고 눈보라에 대적했다.

    다른 금선들의 선기도 다양한 빛을 방출하면서 강력한 신통을 발휘했다.

    * * *

    동굴 속 한립과 금동도 눈보라의 물결에 영향을 받아 하얀 얼음이 껴있었다.

    금선인 그들이 뼈가 시릴 만큼 한빙 법칙의 힘이 파고들어 극통이 느껴지고 체내의 경맥과 단전의 선령력 마저 얼어붙어 움직임이 열 배로 느려졌다.

    “대단하군!”

    한립은 감탄했다.

    이런 류의 법칙은 흑풍 해역에서 마주친 한구와 싸울 때도 보았으나 소진한의 것과 비교하면 등불과 반딧불의 차이였다.

    생각 끝에 그는 금빛으로 보호막을 만들어 전신을 보호했다. 시간법칙의 힘이 흐르는 보호막이 한빙법칙의 힘을 대부분 차단해 주었다.

    그는 몸을 떨어 얼음을 털어냈고, 파삭! 곁의 금동도 금빛을 반짝여 얼음을 부수고 나타났다.

    멀리 다섯 돌기둥을 본 아이의 얼굴에 분노가 차오르더니 신형이 흐릿하게 변했다.

    “금동, 잠깐…….”

    한립이 말리기도 전에 금동은 홀연히 사라졌고,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인 한립도 맹렬히 바닥을 박차고 사라졌다.

    쿠쿠쿠쿵…….

    하늘이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눈보라의 파도와 봉천도 등이 펼친 선기 공격의 홍수가 맞부딪쳐 굉음이 끊이지 않았다.

    눈부신 빛들이 사방으로 번져 수사들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산골짜기가 진동하면서 산벽에 맺힌 얼음에 쩍쩍 금이 갔다.

    다행히 소진한의 영역이 응결한 얼음층이 대단히 두껍고 단단해서 산골짜기를 무너트리지는 않고 있었지만 이대로 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쉭!

    그때 하얀빛이 하늘을 뒤덮은 눈보라 속에서 튀어나갔다.

    바로 하얀 역령이 가장 가까이 있던 복릉종의 통통한 금선 노인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역령의 두 손에서 하얀빛이 반짝이고 손톱이 길게 자라나 날카로운 검처럼 통통한 노인을 갈랐다.

    깜짝 놀란 노인이 급히 살집이 있는 몸을 뒤로 물리면서 입에서 붉은색 비도를 방출했다.

    빙글 돌아 몇 배로 커진 비도는 생생한 봉황 무늬가 새겨진 보물이었다.

    화륵!

    비도에서 적금색 화염이 번져 봉황 허상을 이루고 강렬한 화염법칙의 파동을 발산하면서 하얀 역령을 갈랐다.

    역령은 피할 생각도 않고 오른손을 흐릿하게 움직여 비도를 향해 뻗었다. 비도 위 화염 봉황이 애처롭게 울부짖었다.

    허상이 깨끗하게 사라지고 붉은 비도도 역령의 손에 붙들려 두꺼운 얼음이 꼈다.

    비도가 영성을 잃자 통통한 금선 노인은 기겁했다.

    그가 항시 가지고 다니다 위급한 상황에 사용하는 비도 보물은 진령 봉황의 뼈로 제련을 해서 만든 것이라 위력이 매우 강력했다.

    하얀 역령은 멈추지 않고 왼손으로 금선 노인의 앞을 노렸다.

    가슴이 서늘해진 노인이 두 손을 교차해 자신의 몸을 때리자 몇 겹의 색깔이 다른 보호막들이 웅웅웅 생겨났고 그 틈에 그는 뒤쪽으로 튀어 나갔다.

    역령의 왼손에서 빠져나온 다섯 줄기의 서늘한 빛이 종잇장처럼 보호막들을 가르고 쾌속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조심하세요!”

    펑!

    겁에 질린 통통한 노인 옆에서 잿빛 거대 손이 날아들어 서늘한 빛들을 쳐냈다.

    네 줄기는 거대 손과 같이 터졌는데 마지막 한 줄기가 통통한 금선의 왼팔을 잘라냈다.

    촤르륵!

    그러나 통통한 노인의 팔에서는 피가 샘솟지 않고 곧장 얼음이 체내로 침투하고 있었다.

    일순 당황한 노인은 곧장 녹색 부적을 꺼내 상체에 붙였고, 부적이 터지면서 신비한 초록빛이 상처를 감싸 하얀 얼음층이 퍼지는 속도를 줄였다.

    노인은 그대로 뒤로 물러나 하얀 역령과 거리를 두었다.

    그 모습에 하얀 역령이 뒤를 쫓으려 했으나 잿빛 거대 손이 눈부신 검은 빛을 뿜으며 몇 배로 커져 공격을 해왔다.

    쿠쾅!

    하얀 인장, 푸른 옥 고리, 회색 옥 여의도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복릉종의 다른 금선 셋이 도움의 손길을 보낸 것이다.

    “안 장로, 괜찮으십니까?”

    제천소가 통통한 노인 옆에 나타나 손가락을 튕겼다.

    붉은 부적이 화염법칙 파동을 발산하면서 날아가 노인의 상처 부위에 녹아들었다.

    파앗!

    붉은 기운이 스며든 상처에서 더이상 하얀 얼음층이 번지지 못했다.

    “종주께서 도움을 주셔서 겨우 중상을 면했습니다. 역령의 위력이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역령은 마음대로 영역 내의 법칙의 힘을 조종할 수 있어 이곳에서 상대의 실력은 소진한 본인과 맞먹습니다. 모두 조심해서 헛되이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통통한 금선의 말에 제천소가 당부했다.

    그 소리에 복릉종 수사들은 표정이 진중해졌다가 하얀 역령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 얼굴을 풀었다.

    그런데 다양한 선기에 맞고 흩어지는 듯 보였던 역령이 빠르게 응집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번에 역령이 손을 저어 만든 눈보라는 이전보다 더 강력해 보였다. 놀란 수사들이 선기로 공격해 위기에서 벗어나려는데 봉천도가 그들 앞을 가로 막았다.

    “역령은 그리 쉽게 소멸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제가 막는 동안 다른 분들은 돌기둥을 제거해 주시지요!”

    봉천도는 이 말을 하면서 검은빛을 방출했다.

    촤르릉!

    그의 손끝에서 검은 사슬들이 빠져나가고 검은 기운들이 거산이 되어 눈보라를 막았다.

    쿠쿠쿠쿠…….

    하얀 역령의 공격이 막히자 수사들은 안도하고 아래쪽 돌기둥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하얀 보호막 안에서 코웃음 소리가 들려오고 수많은 하얀빛들이 교차해 그물을 이루고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영역의 무서움을 맛본 수사들은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그물을 빙 돌아 공격하려 했다.

    파앗.

    하얀 그물이 양쪽으로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다시금 그들을 막으려 들었다.

    “가라!”

    제천소가 입에서 뿜은 회색 법칙 정사 네다섯 가닥이 옥여의 안으로 흡수되었다.

    회색 옥여의가 강렬한 빛을 머금고 커져 위쪽에 뱀 머리가 생기더니 입을 쩍 벌려 안개를 방출했다.

    안개가 다시 네다섯 마리의 구렁이 형상을 하고 하얀 그물로 몸을 날렸다. 특유의 썩은 내가 진동하는 부식법칙을 머금은 공격이었다.

    츠즈즛!

    그 공격에 하얀 그물에는 커다란 구멍이 여럿 생겼고 금선 수사들은 반색하며 서둘러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돌기둥 보호막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제천소가 손가락을 까딱해 잿빛 안개 구렁이들을 하나로 뭉쳐 이번에는 보호막을 공격하게 했다.

    펑!

    하얀 보호막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원래 상태로 돌아가 그를 놀라게 했다. 얼마나 단단한 보호막인지 알 수 있었다.

    금선들은 소리를 내지르면서 총공격을 했다.

    슈슈슉!

    금색 비검 세 자루가 구양규산 등 촉룡도 금선들에게서 뻗어 나갔다.

    그들의 정혈까지 흡수한 금색 비검은 산만한 거검으로 변해 놀라운 기운을 방출했다.

    다른 쪽에서는 남려족 노인과 노파가 황금 용 지팡이를 날렸다.

    노파의 손목에서 붉은 팔찌 2개가 날아가 각각의 금룡 지팡이 목에 걸리고 화륵! 화염이 치솟아 기운이 대폭 증가했다.

    이어서 맑은 학 울음소리 같은 게 골짜기를 울리고 머리에 화염 왕관을 쓴 새 두 마리가 전설 속의 주작처럼 날아올라 보호막으로 쇄도했다.

    주작 옆으로 번득 산만한 남색 수레바퀴가 나타나 쾌속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수레바퀴에 빼곡하게 박힌 남색 얼음 가시에서 은은하게 법칙의 힘이 느껴졌다.

    수레바퀴에서 폭발적으로 튀어 나간 남색 얼음가시들이 보호막으로 떨어졌다.

    붉은 주작과 남색 수레바퀴 뒤에는 호언 도인 운예가 있었다.

    붉은 주작과 남색 수레바퀴에 뒤이어 하얀 거대 인장, 푸른 옥 고리 그리고 붉은 수정구슬이 날아들었다.

    복릉종의 다른 금선 셋이 펼친 신통이었다.

    다들 소진한을 기필코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힘을 쥐어짜고 있어서 태을전 입구의 금제를 깨트릴 때와는 공격의 위력이 확연히 달랐다.

    쿠콰콰쾅!

    엄청난 폭음이 골짜기를 뒤흔들었다. 하얀 보호막은 격렬하게 흔들리며 빛이 어둑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부서질 조짐은 보이지 않았고 하얀 주술문자들이 날아올라 회복하려 들었다.

    금선들이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데 제천소가 수결을 맺었다.

    “가라!”

    회색 구렁이가 방대한 몸으로 하얀 보호막을 둘둘 말아 조였다.

    츠즈즈…….

    회색 안개가 보호막을 부식시켜 회복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그래도 보호막의 회복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 제천소가 다른 이들과 다시 총공격을 퍼부으려 할 때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질 일이 일어났다!

    쾅!

    바닥을 뒤덮은 얼음이 산산이 부서지며 보통 사람보다 열 배는 큰 금색 딱정벌레가 솟구쳤다.

    “설마 아직도 남겨 놓은 수가…….”

    제천소가 안 좋은 상상을 하고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금색 딱정벌레는 허공의 금선들이 아니라 하얀 보호막을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날리고 있었다.

    회색 구렁이가 딱정벌레의 발톱에 애달피 울며 대량의 안개로 흩어졌다.

    법칙의 실을 함유하고 부식 능력을 지닌 회색 구렁이를 단박에 조각낸 금색 딱정벌레의 모습에 제천소는 눈을 부릅떴고 다른 수사들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들 상대가 적인지 동료인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데 위쪽에서 역령을 상대하던 봉천도의 눈빛이 밝아졌다.

    쉬쉭!

    금색 딱정벌레는 그들이 놀라든 말든 관심도 없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려 낫처럼 살벌한 송곳니 두 개를 드러냈다.

    다른 금색 이빨과 달리 약간 투명한 이빨이 빛을 번쩍이고 있었다.

    콰직.

    딱정벌레의 한입에 날카로운 송곳니가 파고들어 제천소 등이 사력을 다해 공격해도 버티던 하얀 보호막에 기다란 틈이 만들어졌다.

    펑!

    하얀 보호막이 터지면서 그 안의 돌기둥 다섯 개가 드디어 노출되었다.

    돌기둥의 하얀 무늬가 지면을 타고 합쳐져 복잡하기 그지없는 하얀 진법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 소진한이 앉아 영문모를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수염탱이가 감히 본 선녀를 얼려!”

    금색 딱정벌레는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내며 다짜고짜 소진한에게 달려들었다.

    “황금 딱정벌레……. 서금선? 그럴 수가!”

    고개를 저은 소진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피하지 않고 양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우웅!

    하얀 진법이 무지개처럼 빛을 방출해 날카로운 빛의 검으로 금색 딱정벌레를 갈랐다.

    쩡!

    금빛 둔광이 흩어지고 허공을 데구루루 구른 딱정벌레의 껍데기에 희미하게 하얀 흔적이 남았다.

    다음 순간 딱정벌레는 급격히 몸을 줄여 숨 돌릴 틈도 없이 소진한을 향해 뛰어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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