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730화 (1,487/2,000)

1730화. 연극

*

복릉종 금선 넷이 사용하고 있는 금색 사슬은 구양규산 등이 백리염을 상대할 때 선보였던 사슬과 똑같았다.

네 개의 사슬들은 그것보다 짧으면서 훨씬 굵어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제천소, 그리고 너희들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모반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힘껏 몸부림치던 봉천도가 검은빛을 일으켰으나 금색 우리가 구금의 힘으로 제약했다.

“사형,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게 다 자업자득인 것은 아시겠지요? 분명 스승님께서는 임종 전에 장문 직위를 내게 넘겨주셨는데 수행이 높다고 기고만장해서 권력을 잡고 내려오지 않으신 자신을 탓하십시오. ”

제천소가 냉소하며 수결을 맺어 우리를 가리켰다.

콰르릉!

금색 우리에서 굵직한 뇌전들이 줄줄이 떠올라 7개의 못으로 변했고 강력한 뇌전 법칙의 기운을 발산했다.

금색 못들이 미간과 명치 그리고 아랫배 등 중요 부위를 뚫고 들어가 봉천도가 끄윽 신음을 흘리며 입가에 피를 흘렸다.

금색 못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뇌전을 방출해 봉천도 전신에서 파칙파칙 뇌전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피부가 터져서 선혈이 튀고 발산하던 검은 기운도 흩어졌다. 이에 봉천도가 분노가 서린 괴성을 터트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의 몸은 검은 색깔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는데 특히 금색 못이 박혀 있는 곳에서는 주술문자들이 흘러나왔다.

촤르륵!

7개의 금색 못들이 부르르 몸을 떨며 서서히 밀려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제천소의 얼굴이 굳었고, 봉천도의 몸 곳곳에서는 13개의 검은 사슬이 빠져나와 주위의 금색 우리를 휘감았다.

새까만 빛이 사슬에서 퍼져 나와 금색 우리를 오염시켜갔다.

봉천도를 구속한 금색 사슬이 빛을 잃어가는 것을 보고 제천소가 급히 법결을 던져 넣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새까만 빛은 급속도로 퍼져서 벌써 우리 절반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팟.

그때 봉천도 뒤에서 하얀 인영이 불쑥 나타났다.

바로 소진한이었다.

그가 살짝 손을 움직이는 것만 보았는데 봉천도의 목으로 무서운 한기를 뿜어내는 장검이 날아들었다.

제천소는 여전히 술법을 펼치는 데만 주력했고, 소진한의 출현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눈빛이 사나워진 봉천도가 입에서 노란빛을 뿜어 거북이 등딱지 형태의 방패를 불러냈다. 현묘한 문양이 새겨진 강력한 흙 속성 법칙파동을 지닌 선기였다.

거북 방패는 찬란한 노란 빛을 내뿜으며 부풀어 그를 보호했다.

챙!

하얀 장검이 노란 방패와 부딪쳐 날카로운 충돌음이 울렸다. 주술문자들이 출렁이고 흔들렸지만 다행히 장검을 막아냈다.

“제천소, 소진한과 작당한 것이었구나!”

봉천도가 노기등등하게 소리를 질렀다.

* * *

멀리 동굴 안, 침착하게 상황을 주시하던 한립은 소진한을 향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촉룡도 13 금선 도주들의 불화를 이용해서 백리염을 처리하더니 이번에는 사형제 간의 반목을 조장해서 복릉종에 내분을 일으키고 있었다.

오늘 봉천도마저 제거된다면 북한선역의 3대 종문은 창류궁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다른 중소형 문파들이 많다고 하나 북한선궁이 세력을 확장해 종국에는 선역을 손에 넣을 것이 분명했다.

소진한의 야심이 대단했다.

“와, 진짜 싸우기 시작하네요? 아저씨 말이 맞았어요. 이제 우리도 싸우는 거죠?”

금동이 고개를 들고 바깥을 보더니 만면에 웃음이 가득해졌다.

“잠시만 더 기다리자꾸나. 원래 가장 흥미로운 구경거리는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다.”

한립이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전투가 벌어지자 남려족 수사들은 안색이 변해 시선을 주고받았고, 호언 도인과 운예는 차분한 얼굴로 서 있었다.

구양규산 등 촉룡도 금선들이 그들에게 다가가 경고를 했다.

“이 일은 여러분과는 무관하니 나서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의 말에 호언 도인 등이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자 소진한은 내심 안도하고 수결을 맺었다.

장검에서 하얀 안개가 일어나 눈꽃 같은 주술문자들을 품고 노란 거북 방패로 날아들었다.

노란빛을 일으킨 방패가 무슨 신통을 부리려는데 법칙파동이 눈꽃에 닿아 응결되었다.

스스슷!

순식간에 커다란 얼음 결정이 그 안에 노란 방패를 품고 추락했다. 빛을 잃은 방패는 법칙파동 마저 보이지 않았다.

“얼음법칙을 저 정도 경지까지 익히다니. 법칙의 힘마저 얼려버렸어. 소진한이 괜히 북한선궁의 궁주는 아니로구나!”

멀리서 한립이 탄복하며 중얼거렸다.

봉천도는 자신이 방출한 방패 선기가 얼어붙자 안색이 변하며 맹렬히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그의 전신에 검은빛이 일렁이고 금색 우리를 침식하는 것들을 밀어내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소 궁주, 어서요!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천소가 금색 사슬로 검은 법결을 날리면서 소리쳤다.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히고 두 손을 덜덜 떠는 것을 보니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머지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봉천도의 실력이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 분명했다.

소진한의 눈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으나 봉천도가 우리를 벗어나려는 것을 보고 그는 곧장 달려들었다.

눈꽃이 하늘을 뒤덮고 그의 검에서 네 줄기의 검빛이 뱀처럼 쏘아져 나갔다.

바로 그때 소진한 뒤쪽 허공에 파동이 일고 새까만 손바닥이 기척 없이 떨어져 소진한의 뒤통수를 노렸다.

흠칫 놀란 소진한은 하얀빛을 크게 방출해 더없이 빠른 속도로 피했다.

하지만 손바닥이 너무 은밀하게 나타난 데다 소진한이 봉천도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날리려고 정신이 팔려있던 때라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왼쪽 어깨를 내주고 말았다.

콰직!

뼈와 살이 뜯겨나가는 소리가 울렸다!

소진한은 비틀거리다 몸을 가눴지만 왼쪽 어깨가 덜렁거렸고 등 뒤로 검은 손바닥 인장이 찍혀 썩은 내를 풍겼다.

등쪽의 의복이 빠르게 부식되어 떨어져 나가고 손바닥 인장을 중심으로 쉬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독사처럼 부식의 힘이 그의 몸으로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숨을 고른 소진한은 오른손으로 수결을 맺어 퍼져 있던 하얀 눈꽃들을 상처로 집결시켰다.

소용돌이치면서 몰려든 눈꽃들이 하얀 서리로 변해 검은 손바닥 자국을 덮고 더 퍼지지 못하게 막았다.

소진환은 몸을 틀어 자신을 기습한 사람을 확인하고는 움찔했다. 그를 공격한 것은 다름아니라 제천소였다.

미소를 머금고 있는 제천소는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슈슈슉!

소진한이 멍하니 있는 찰나 8개의 검은 사슬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바로 격원법련이었다.

동공을 수축한 소진한은 급히 입에서 백옥 사발을 분출해 그 안에서 수많은 금색과 은색 주술문자들을 날렸다. 검은 사슬에 맞서 백옥 사발에서 날아든 주술문자들이 얽혀서 금은색 실이 교차하는 그물을 이루고 그를 감쌌다.

그때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검은 사슬은 흐릿하게 변해서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금은색 그물을 통과해 소진한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뻣뻣하게 몸이 굳은 소진한의 몸에서 하얀빛이 사라지고 기운이 쇠해졌다. 이어서 허공에 번득 나타난 인물은 봉천도였다.

그의 몸을 파고들던 금색 못은 보이지 않았고 양손에는 흐릿하게 8개의 검은 사슬들이 감아져 있었다.

소진한을 공격한 격원법련은 그가 날린 것이 확실했다.

“네 놈!”

노호성을 터트린 소진한은 강제로 하얀빛을 방출해 피부에 하얀 수정막을 둘렀다.

이에 검은 사슬들이 파고드는 속도가 느려졌다.

이때 금빛이 번득하고, 네 개의 금색 사슬이 등장해 소진한의 몸을 구속했다. 봉천도를 붙잡아 두려 사용했던 사슬들이었다.

검은 주술문자가 사라진 사슬은 강렬한 구금법칙을 발산했다.

게다가 제천소와 또 다른 복릉종 금선 셋이 주위에 나타나 빠르게 술법을 펼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멀리 동굴 속의 한립은 이채를 띠었다.

“엑, 저건 또 무슨 일이래요? 저 늙은 강시를 다들 공격하더니 이제는 은색 수염을 공격하는 거예요?”

금동이 한립에게 전음을 보냈다.

“앞서 보인 것은 다 연기였구나. 다들 은색 수염을 죽이기 위해 판을 벌인 것이다.”

한립은 봉천도와 제천소 등을 훑으며 답해주었다.

“그럼 은색 수염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금동, 그러니 잘 기억해두거라. 앞으로 세상을 살면서 쉽게 누군가를 믿어서는 안 된다.”

천진한 금동의 말에 한립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아저씨도 믿으면 안 돼요?”

금동이 그런 한립을 향해 눈을 깜빡거렸다.

“……나는 예외인 것으로 하자.”

일순 말문이 막힌 한립이 이렇게 답했다.

* * *

“감히 날 배신해? 죽어라!”

소진한이 제천소 일행을 보고 냉소를 흘리고 수결을 맺었다. 눈부신 하얀빛이 퍼져 나와 큼지막한 하얀 주술문자로 변하더니 빠르게 깜박거렸다.

제천소의 몸이 부르르 떨리고 단전에서 하얀빛이 머리로 올라가 허공에 하얀 눈꽃을 터트렸다.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소진한이 술법을 발동하려는 찰나, 제천소 등 복릉종 네 수사의 단전에서 검은빛이 뭉쳐 흐릿하게 사슬 허상으로 변했다.

퍼펑!

네 사람의 단전에서 하얀빛이 깨져 흩어져버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단박에 소진한의 얼굴이 굳었다.

“겨우 원영 금제 따위로 우리 복릉종 수사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줄 아셨습니까? 소 궁주는 모르시겠지만 <법원음마공>은 전문적으로 원영을 다루는 공법입니다.”

봉천도가 차갑게 웃음 지었다.

소진한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무언가를 하려는데 사방에서 호언 도인, 운예 그리고 남려족 금선들이 날아들었다.

적홍색 비검, 남색 수레바퀴, 금색 지팡이 두 개가 튀어나와 소진한의 머리로 떨어지고 있었다.

소진한은 표정이 달라졌지만 당황하는 기색 없이 눈을 번득였다.

그러자 그 앞으로 눈꽃이 소용돌이치는 하얀 빛덩이가 나타나 반투명한 빙벽으로 변했다.

쿠쿠쿠쿵.

호언 도인 등 네 명의 선기가 빙벽을 때렸고, 크게 진동한 빙벽이 쩍쩍 갈라져 얼음 조각으로 흩어졌다.

네 개의 선기들도 동시에 튕겨 나왔다.

파사삿.

중얼중얼 주문을 외는 소진한 주위로 눈꽃들이 뭉쳐져 순식간에 커다란 얼음 구슬을 이루고 스스로를 가두었다.

얼음 구슬 안에서 금색 우리와 검은색 사슬도 얼어붙어 꼼짝하지 못했다. 미간을 좁힌 봉천도가 즉시 손가락을 튕겼다.

칠흑 같은 비검이 검은 무지개처럼 날아가 호되게 얼음 구슬을 때렸다.

얼음 구슬에 기다랗게 흔적이 남았으나 깊지는 않았고, 검은 검기는 튕겨나가 검은 뱀 형태의 비검으로 변해 봉천도 머리 위에서 맴돌았다.

하얀 얼음이 낀 비검 표면에 검은빛이 흩어져서 약간 손상된 듯했다.

웅!

얼굴을 굳힌 봉천도가 검은빛을 비검에 불어넣자, 비검이 살아 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면서 얼음을 털어내고 정상으로 돌아갔다.

봉천도, 제천소 그리고 호언 도인 등 금선급 존재들은 소진한을 가운데 두고 둘러쌌다.

그들은 소진한이 갇힌 것에 놀라는 기색 없이 허공에 떠올라 주위만 경계했다.

“하하하! 당신들 외에 창류궁도 한 패겠지요? 낙청해가 오는 길에 도움을 청할 때부터 음모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어디 낙청해도 불러내시지요?”

얼음 구슬 속에서 금선들을 쭉 둘러본 소진한이 두려워 않고 담담히 말했다. 그 말에 그를 둘러싼 이들은 움찔했다.

“흐흐, 소 궁주 그건 오해십니다? 이번에 우리가 모인 것도 다 우연인데 창류궁 낙 궁주와 상의할 새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허나 이게 바로 하늘의 뜻이 아닐지요. 낙 궁주가 수사의 무리를 떼어 놓은 것은 저희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제천소가 웃으며 말했다.

“소진한, 당신은 북한선궁을 맡은 후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함부로 선궁의 힘을 이용해 다른 세력들에 위해를 가해왔소! 촉룡도를 해치고 우리 복릉종을 와해시키려 하다니, 오늘 내가 그 야욕을 멈추게 만들겠소!”

얼음장 같은 눈빛을 한 봉천도가 대의를 밝혔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의 얼굴에도 살기가 짙어졌다.

“흥! 난 천정에 의해 북한선궁의 궁주로 봉해진 사람입니다. 감히 날 해한다면 천정이 당신들을 가만둘 것 같습니까? 순찰사자라도 파견된다면 이 중 어느 누구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소진한이 눈살을 찌푸리며 경고했다.

“그래서 북한선역에서는 아무도 당신을 건드리지 못했지만 이곳은 다릅니다. 명한선부에서 당신을 죽이고 흔적을 지우면 누가 알겠습니까?”

검은 수염 노인으로 변장한 호언 도인이 냉소를 흘리며 한마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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