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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28화 (1,485/2,000)

1728화. 이상

*

붉은 흙으로 가득한 황원 위를 남려족 복색의 사내 둘이 금색 지팡이를 들고 빠르게 비행하고 있었다.

그들 뒤로 귀읍종 복색을 한 십방루 남녀 셋이 뒤따랐다. 무슨 일인지 쌍방은 충돌하지 않고 함께 다니는 듯했다.

가장 앞서 날고 있는 두 사내는 괴뢰처럼 표정이 멍하고 오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 *

명한선부 어딘가 연달아 언덕이 이어진 지대.

굽이굽이 들어간 골짜기는 각각 환경이 달라 숲이 울창하기도 하고, 독 안개가 자욱하기도 하고 계곡이 흐르기도 했다.

그중에 어느 작은 골짜기에 세 사람이 낮게 속삭이면서 뭉쳐있었다.

보라색 장포를 입고 각진 얼굴에 가는 눈썹을 지닌 중년인은 촉룡도 금선 도주 구양규산이었다.

“구양 수사, 우리가 명한선부 입구를 퍼트려서 이미 선궁의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호언 도인에게 미리 언질을 주면 벌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중 한 명이 근심 어린 목소리를 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벌을 받고 말고가 아닙니다. 선궁이 당초 우리에게 약속한 일을 몇 가지나 지켰냔 말입니다. 북한선역에서 우릴 비웃으며 선궁의 노예라 부르는 것을 아시겠지요? 이렇게 북한선궁의 손에 놀아날 줄 알았으면 그때 함께 싸워 장렬히 끝을 보고야 말았을 겁니다.

구양규산이 애통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도 촉룡도의 명맥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백리도주를 배신했지만 어찌 되었든 평생 종문의 발전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꼴이 되었으니 남들의 비웃음을 당할 만하지요.”

또 다른 수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 일로 확실히 알았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면 스스로 실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이번에 선역의 거대 세력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였으니 북한선궁이 이 혼잡한 흙탕물 속에서 얼마간이라도 세가 꺾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들의 세력이 약해져야 우리에 대한 억압도 줄어들 것이 아닙니까.”

구양규산이 눈을 번득이며 다짐했다.

“맞습니다. 어쨌든 말 한마디 전하는 것인데 어떻게 증거를 찾아내 우리에게 따지겠습니까?”

네 사람은 동시에 고동색 팔각형 진법 원반을 꺼내 들었다. 촉룡도 문양이 새겨진 진법 원반이 붉은빛을 방출했다.

* * *

구름이 드리운 하늘 아래 검푸른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었다.

산 정상 인근에 있는 절벽에 소진한이 하얀 장포를 휘날리며 서 있었고 그 옆으로 남색 궁장 차림의 설앵이 있었다.

“궁주님, 노월 등이 전한 소식에 따르면 창류궁은 여전히 도처를 수색하고 있고 복릉종의 움직임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비범한 보물이 세상에 나타날 때는 반드시 조짐이 있기 마련이었네. 천로(天爐)가 열리려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비경 안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할 것이야. 다들 급히 태을전을 찾으려는 것도 어떻게든 그런 천기현상을 숨기기 위해서겠지.”

“노월 등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가 먼저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구양규산의 움직임은?”

소진한이 눈썹을 끌어올리며 물었다.

“그들보다 먼저 언덕 지대를 수색해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태을전이 없을 겁니다.”

“이번 선부 원정에서 얌전하게만 굴면 앞으로 그들에 대한 구속을 좀 풀어주도록 하게. 한 5, 6백 년에 한 번씩 일깨워주는 정도로만.”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도 너무 세게 당기기만 하면 줄을 끊고 달아날 수 있다. 북한선궁의 궁주인 그는 그런 일을 대비하라 암시하고 있었다.

“예!”

“일단 물러가게.”

소진한은 무표정하게 설앵을 물렸다. 그녀가 내려가고 절벽 아래에서 검은 안개에 감싸인 인영이 올라와 소진한 앞에 섰다.

그는 몸을 굽혀 인사를 하고 전음으로 소진한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계획대로 안배를 해두었습니다.”

검은 인영은 이 말을 끝으로 손을 모아 인사를 하고 검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소진한은 검은 연기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흥이 깨졌다는 얼굴을 했다.

그때,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설앵이 급히 돌아왔다.

“찾은 것인가?”

“구양규산이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그쪽에 있다고 합니다.”

“가지.”

* * *

보름 후.

푸른 선박 청연주가 빠르게 날고 있었다.

그 아래는 지형변화도 크지 않은 평원이었는데 온통 붉었다. 유일하게 풍경에 변화를 주는 것은 크고 작은 붉은 구름으로 허공에 떠서는 바람이 불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때 한립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옥간을 이마에 대고 있었다.

옥간에는 육우청의 선부 지도를 보았던 기억을 떠올려 복원한 지도가 들어있었다.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7, 8할은 비슷했다.

주변 지형을 관찰한 한립은 지도와 비교해 자신이 선부의 어디쯤 있는지 확인했다. 안타깝게도 며칠이 지나도록 지도에 표기된 붉은 황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미간을 좁힌 그가 옥간을 떼어냈다.

“못 찾으면 어때요.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다니면 재미있잖아요!”

금동이 하품을 하면서 말했지만 한립은 금동을 상대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렇게 편하게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금선 중기 수행에 이르렀어도 비경에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팟.

옥간을 아예 넣어 버린 그는 호언 도인이 준 붉은 전신 원반을 꺼냈다.

양손으로 수결을 맺어 법결을 던져 넣자 붉은빛이 떠올라 교차하면서 소형 진법을 형성했다. 그가 입을 달싹여 보아도 붉은 전신 원반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호언 도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이곳의 환경이 특수해서 소식이 전달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립은 오래 고민하진 않았다.

호언 도인과 연락이 닿지 않으니 잠시 홀로 다니면 그만이었다. 선박의 속도를 높여 날아가던 그가 갑자기 어딘가로 고개를 돌렸다.

쿠쿠쿠…….

멀리 하늘 끝에서 요란한 하얀빛이 보이고 말 만 마리가 동시에 뛰기 시작한 것처럼 진동이 들려오고 있었다.

천지원기가 요동쳐서 거대한 파도를 이루거나 돌풍을 이루고 하늘과 땅을 휩쓸었다.

한립은 청연주를 멈춰 세웠다.

이때 멀리서 하얀빛이 다시 번득였다.

이번에는 널리 퍼트리는 게 아니라 빨아들이는 힘이 발생해 한두 호흡 만에 하늘을 뒤덮은 구름들이 사라지고 요동치던 천지영기도 평정을 되찾았다.

한립의 표정이 진지해지자 금동이 벌떡 일어나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단한 천기현상 아니에요? 무슨 보물이 나타나려고 저러지? 우리도 가 봐요!”

“보물이 나타나려는 조짐이라기보다는 공간의 힘이 느껴진 것으로 보아 비경이 나타날 때와 비슷하구나.”

“뭐가 나타났든 빨리 출발하지 않으면 남들이 먼저 도착할 거라고요!”

“그래, 어디 한 번 가보자꾸나.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고 내 이름을 불러서도 안 된다.”

“알겠어요! 아저씨, 어서 가요!”

그 말에 금동이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한립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청연주를 빛이 난 방향으로 출발시켰다.

* * *

붉은 언덕지대 위에 하얀 빛줄기가 나타났다.

북한선궁의 소진한, 설앵 그리고 다른 수사들이었다.

“흠?”

소진한은 어딘가를 바라보며 수결을 맺었다.

“궁주님, 왜 그러십니까?”

설앵이 물었다.

“저쪽에서 심상치 않은 이동이 있었네.”

“이동이요?”

“너무 거리가 멀어 자네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야.”

“설마 태을전일까요?”

설앵은 물론 다른 수사들도 소진한의 대답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소진한도 워낙 멀리서 벌어진 일이라 확신할 수 없었다.

쉭!

그때 그의 몸에서 하얀빛이 빠져나와 전신진반으로 변했다. 소형 진법이 형성되고 나타난 흐릿한 허상은 구양규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궁주님, 저희가 태을전 입구를 찾았습니다.”

구양규산은 한껏 기쁜 얼굴로 말했다.

“어디서 어떻게 말입니까?”

“방금 입구에 이동이 있어 인근에 있던 저희가 운 좋게 발견했지요. 위치는 이곳입니다.”

구양규산 허상이 손을 저어 지로를 만들어냈다. 지도 위로 푸른 점 하나가 반짝였다.

소진한은 그가 이동을 느낀 곳과 같은 방향이란 것에 주의를 기울였다.

“알았습니다. 그곳을 잘 지키고 계시면 곧 가지요.”

“궁주님, 이동이 금방 그치기는 했으나 다른 수사들도 알아차렸을지 모릅니다. 어서 오시지 않으면 저희만으로는 막지 못할 것입니다.”

“수사는 명에 따르기나 하시면 됩니다.”

구양규산의 말에 소진한이 냉랭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허상이 고개를 끄덕이자 전신진반을 꺼버린 소진한은 말없이 서 있었다.

“궁주님, 구양규산이 알려준 위치가 방금 이동이 있었다는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지요? 제가 볼 때는 거짓은 아닌 듯합니다.”

곁에 있던 설앵이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급할 것 없네. 태을전 입구가 맞다면 응당 금제가 있겠지. 누군가 먼저 도착한다고 해도 쉽게 뚫고 들어갈 수 없을 것이야.”

소진한은 고개를 저었다.

“구양규산의 말을 믿지 않으시는군요. 우릴 속일 담력이 있는 자였으면 백리염을 배신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의아해하던 설앵이 멸시하듯 말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의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네.”

소진한은 전신진반을 다시 발동해서 진법을 형성했다. 반짝거린 진법 위로 노월의 허상이 맺혔다.

“궁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지금 어디에 있지? 무언가 알아낸 것이 있는가?”

“저희가 갈라진 동쪽 구역에 있습니다만 아직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노월은 공손하게 답했다.

“알겠네. 수색을 계속하고 무언가를 발견하면 바로 보고하게.”

“예!”

소진한이 연결을 끊고 수결을 맺어 다시 전신진반을 발동하려는데 그의 몸에서 검은빛이 반짝였다.

표정이 달라진 그가 검은색 진반을 꺼내 들었다. 그 위로 나타난 검은 인영은 일전에 그와 밀담을 나누던 자였다.

“소 궁주, 태을전 입구가 나타났습니다. 봉천도도 그것을 알고 서둘러 가고 있으니 계획대로 움직이면 될 겁니다.”

“어딥니까?”

검은 인영이 손을 저어 응결한 검은 지도 위의 표식은 구양규산이 알려준 위치와 거의 같았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지요.”

소진한은 이렇게 말하고 연락을 끊었다.

“가자!”

소진한의 명에 안심한 설앵이 하얀 둔광을 일으켰다.

선궁 일행들이 속도를 높여 날아가는데 잠시 후 남색 둔광 일행이 우측에서 나타나 다가왔다.

눈살을 찌푸린 설앵이 멈춰 무어라 말하려는데 소진한이 눈짓으로 막았다. 남색 둔광이 가시고 나타난 것은 낙청해를 비롯한 창류궁 수사들이었다.

“소 궁주, 설 부궁주 우리가 인연은 인연인가 봅니다. 어딜 그리 급히 가십니까?”

낙청해는 소진한 등에게 공수를 해보이고는 사람 좋게 웃었다.

“할 말 있으시면 그냥 하시지요.”

소진한은 담담히 말을 받았다.

“허허, 좋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어느 유적을 발견했는데 금제를 깨기가 힘에 부쳐서요. 며칠 동안 시도를 해보다 안 되어서 아주 귀한 보물이라도 들어있나 보다 했는데 이렇게 소 궁주를 다 마주칩니다.”

“유적이라……. 어디를 이르는 것인지요?”

“반나절이면 갈 거립니다. 저쪽으로요.”

낙청해가 가리킨 방향은 소진한이 향하던 태을전 입구 쪽이 아니었다.

“제가 살펴보니까 금제 아래로 오래된 무덤이 있는 것 같은데 누가 묻혀 있을까요? 분명 대단한 내력을 지닌 자일 거예요.”

낙청해는 소진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남색 옥 부적을 꺼내 들었다.

찰랑.

금색 팻말을 그 앞에서 젓자 옥 부적이 밝은 빛을 내뿜어 물의 장막을 이루고 그 위로 황야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타원형의 노란 보호막이 황야 어딘가를 가리고 있었는데 확실히 흐릿하게 거대한 묘가 보였다.

“……이런 곳을 찾아내시고 운도 좋으십니다. 그런데 창류궁이 독점하면 좋은 일을 어째서 저희까지 끼워주시려 하는지 의문입니다?”

“방금 말했듯이 묘지 바깥의 금제가 보통이 아닙니다. 우리 창류궁 수사들이 전력을 다해 며칠을 공격했는데도 뚫리지 않았으니까요. 이대로 시간을 끌다가 더 많은 세력이 발견하게 두는 것보다 낙 궁주와 힘을 합쳐 금제를 깨고 안의 보물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어떠십니까?”

소진한의 물음에 목소리를 낮춘 낙청해가 은근히 물어왔다.

“창류궁 궁주께서도 파훼하지 못하셨다면 저도 그럴 능력은 없어서 말입니다.”

소진한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며칠 동안 연구한 끝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법은 고안했는데 꼭 금선 6명이 필요해서 말이지요. 그래서 소 궁주에게 이리 요청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섯 명이 필요하다면 창류궁에 금선 수사가 이미 다섯이니 한 명만 더 있으면 되겠습니다. ……설앵 수사, 다른 수사들을 데리고 낙 궁주를 따라 잠시 다녀오게.”

소진한은 잠시 생각하다 설앵을 보고 명을 내렸다.

“허나 낙청해가 갑자기 이러는 것이 수상합니다. 궁주께서 홀로 가시다가 혹시라도…….”

설앵이 놀라 전음을 보냈다.

“다 생각이 있으니 걱정할 것 없네.”

소진한이 손을 저으며 하는 말에 설앵도 더는 아무 소리 하지 못했다.

“설앵 부궁주께서 도와주셔도 좋지요. 자, 늦기 전에 출발합시다.”

낙청해는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재촉했다. 그의 손에서 남색빛이 날아가 창류궁 일행을 품고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궁주님, 다녀오겠습니다.”

설앵은 인사를 하고 제비 모양의 배를 불러내 몇 명을 더 태웠다.

“걱정말고 각서 낙 궁주에게 잘 협력하게.”

소진한은 ‘협력’이라는 두 글자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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