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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25화 (1,482/2,000)
  • 1725화. 진령을 참하다

    *

    오조회룡은 뒤로 빠르게 물러나 한립의 금색 영역에 닿지 않게 조심했다. 동시에 잿빛 구름이 신속하게 떨어져 회룡을 둘러쌌다.

    쿠르릉!

    잿빛 구름이 별안간 영역으로 변해 금색 영역보다 배는 멀리 퍼져 반대로 한립을 덮쳐 들었다.

    회색영역에 휩싸이자 전신의 힘이 빠져나가고 선령력 흐름에 이상이 생긴 한립은 금빛을 방출해 보호막을 형성했다.

    그러자 시간법칙이 흐르는 보호막 덕에 외부 영역의 압력이 훨씬 줄어들었다.

    거령이 진정한 실력을 발휘하자 시간법칙의 힘도 회색 영역의 영향력에 완전히 대항할 수 없었다.

    오조회룡은 머리 위로 잿빛 왕좌를 다시 불러냈다.

    왕좌의 문양이 선명하게 빛나면서 거울 허상 3개가 떠올랐는데 첫 번째 거울이 환하게 빛나는 것과 달린 두 번째와 세 번째 거울들은 어두웠다.

    회룡은 손가락을 튕겨 수정빛 한 줄기를 두 번째 거울로 날려 보냈다.

    웅!

    빛을 흡수한 두 번째 거울에서 검은 거검이 빠져나와 한립의 머리로 쏘아져 나갔다. 검은 거검이 발산하는 법칙의 힘은 사람을 광란의 상태로 밀어 넣는 힘이었다.

    다행히 검은 거검은 한립의 금색 영역 범위에 이르자 속도가 크게 줄었고, 한립은 쉽게 그것을 피했다.

    “정말 시간 감속을 하고 있었어…….”

    회룡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 순간 한립의 금색 영역이 그의 몸속으로 돌아갔다. 보호막이 사라진 한립은 고통스러웠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걸 본 회룡이 일순 멈칫했다.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한립은 진언보륜을 불러내 역전시켰다. 흐릿하게 변한 그는 잔영을 남기고 뛰쳐나갔다.

    이에 한립과 오조회룡 간의 거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놀란 회룡이 잿빛을 일렁이며 무언가 대처를 하려는데 한립이 거둬들였던 금빛 영역을 빠르게 방출했다.

    금색 구역은 물러나는 회룡을 빠르게 물들여 속도를 느리게 만들었다. 거리가 더 가까워지자 오조회룡은 표정이 급변하며 입을 벌렸다.

    잿빛 빛기둥이 은은하게 주술문자들을 품고 날아가 왕좌 뒤편의 세 번째 거울 속으로 녹아들었다.

    웅!

    거울이 진동하며 하얀빛이 떠올랐다. 밝고 따뜻한 느낌 대신 백골처럼 섬뜩한 분위기를 풍기는 빛이었다.

    회룡은 이어서 회색 정혈을 뿜었고, 핏물은 아홉 가닥의 수정실을 품은 안개로 흩어져 세 개의 거울을 감쌌다.

    거울들은 안개를 남김없이 집어삼키고 각각 회색, 검은색, 흰색의 삼색 용 허상을 분출했다.

    각각 다른 법칙 기운을 머금은 용 허상들은 오조회룡과 몸집이 비슷했다.

    “염룡주선(魘龍誅仙)!”

    쿠르릉!

    오조회룡이 앞발을 휘두르며 외친 소리에 삼색 용 허상들이 교차해 현묘한 거대 진법을 이루고 그녀를 따라잡은 한립을 공격했다.

    삼색 용 허상들이 뭉쳐 만들어낸 진법의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 금색영역 안에서도 한립에 뒤지지 않았다.

    진법에 막힌 한립은 미간을 좁혔다가 코웃음을 쳤다.

    그의 소매 속에서 푸른 거검 세 자루가 날아올라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청죽봉운검이었다.

    거검 표면에 어린 굵직하기 짝이 없는 금색 뇌전들이 훼멸의 기운을 발산했다. 수행이 크게 늘자 부릴 수 있는 청죽봉운검의 수도 늘어나 이제는 충분히 세 자루를 동시에 불러낼 수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금색 수정실 세 줄기가 빠져나가 한 가닥씩 거검에 흡수되었다.

    그러자 청죽봉운검의 휘황찬란하던 광채가 몇 배로 늘어나 똑바로 보기 어려웠다.

    콰르르…….

    벽사신뢰가 거대한 뇌전 문자로 변해 검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고, 한립이 수결을 맺은 손을 뻗자 뇌전 거검이 크게 진동해 검 그림자들을 만들어냈다.

    퍼퍼퍼퍼펑!

    경천동지할 굉음이 들리고 용 그림자들이 검 그림자들에 의해 터져나가면서 드디어 진법이 깨졌다.

    장애물을 제거한 한립은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진언보륜을 쾌속으로 역전해 흐릿하게 오조회룡 앞에 나타났다.

    “이제 끝을 봐야겠군.”

    양손을 빠르게 돌려 수결을 맺은 그의 등 뒤에서 진언보륜이 역전을 멈추고 정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우웅!

    조밀한 금색 파문이 고리에서 폭발적으로 빠져나와 자욱하게 하늘을 뒤덮고 오조회룡도 그 안에 가두었다.

    금색 파문 속에서는 모든 것들이 거의 멈춘 듯 느려졌다. 놀란 얼굴의 회룡도 입을 살짝 벌리고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쉬쉬쉭.

    서늘하게 눈을 빛낸 한립의 손이 허공을 때리고, 청죽봉운검 세 자루가 회룡 옆에 나타나 번개처럼 칼날을 휘둘렀다.

    푸른빛들이 마구 교차하면서 회룡의 몸이 열댓 조각으로 잘렸으나 분리가 되지도 피가 흐르지도 않고 그저 멈춰있었다.

    팟.

    그때 회룡의 머릿속에는 시간정사 한줄기가 나타나 조그만 회색 용을 속박했다. 미간에 은색 무늬가 있는 작은 용은 거령의 원영이었다.

    한립은 숨을 길게 내쉬고 금색 영역을 이룬 금빛을 다시 회수했고, 금색 파문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진언보륜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서서히 회전을 멈추는 고리를 보고 한립은 탄성을 내뱉었다. 진언보륜의 시간도문 열댓 개가 암담해졌기 때문이다.

    “어째서…….”

    놀란 그가 의식 한 줄기를 양혼로 속으로 불어넣어 상황을 알렸다.

    “당연하지! 영역같이 강력한 신통이 그저 선령력만 소모하면 뚝딱 펼쳐지는 줄 알았느냐? 영역을 펼치는데 주로 소모되는 것은 네 시간법칙의 힘이다. 그러니 시간도문 몇 개가 꺼진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잔혼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고 한립도 수긍을 했다.

    청죽봉운검들을 앞으로 불러들인 한립은 그 안에서 법칙의 실을 먼저 거두었다. 휘황찬란한 빛이 가시고 검들이 원래 모습을 회복했다.

    강대한 영력을 함유한 청죽봉운검에 임시로 시간정사를 융합해 사용해 보았는데 위력이 크게 늘었다.

    만일 이후 검에 적합한 법칙의 실을 융합해 사용하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지 기대가 되었다.

    한립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소매를 털어 작게 줄어든 푸른 검들을 집어넣었다.

    거령을 죽이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으나 영역과 진언보륜 그리고 청죽봉운검은 무엇하나 선령력 소모가 적은 게 없었다.

    영역과 청죽봉운검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금선 중기에 이른 그도 약간 힘에 부치는 일이라 안색이 약간 창백해져 있었다.

    직접 사용해 보니 영역의 장점은 범위가 넓다는 것이었고, 진언보륜은 범위가 협소한 대신 위력이 훨씬 뛰어났다.

    화아앗!

    그때 갑자기 시간정사에 둘둘 말려있던 작은 용의 이마에서 은색 왕(王) 자가 밝은 빛을 터트렸다.

    놀랍게도 격렬하게 몸을 비튼 잿빛 용은 시간법칙의 힘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얼굴을 굳힌 한립이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시간정사는 밝은 빛을 머금고 잿빛 용을 더 세게 조여갔다.

    크항!

    날카롭게 울부짖은 잿빛 용의 몸이 맹렬하게 팽창했다.

    시간정사가 워낙 단단히 붙들고 있어 벗어날 수 없을 거라 여겼지만 따로 손을 쓰지 않아 용 이마의 문양이 펑! 터지면서 거령의 원영이 빛 알갱이로 흩어져 버렸다.

    그 안에서 거령의 혼백이 흐릿하게 나타나 쏜살같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립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거령의 원영이 달아날 줄은 예상치 못해서였다.

    ‘금선 원영의 신통은 만만히 볼 것이 아니구나.’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시간정사를 몸속에 넣어 두었다.

    아무리 진령이지만 겨우 혼백만 남아서 달아났으니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곳이 바깥 세계도 아니었고 긴 추격전을 벌일 시간도 없었다.

    거령이 달아나자 그녀가 펼쳐둔 삼색 영역이 흔들거리다 흩어지고 오조회룡의 시체가 붕괴해 떨어졌다.

    한립은 푸른 발우 형태의 용기를 불러내 키운 다음 오조회룡의 시체를 남김없이 담아두었다. 그리고 여전히 허공에 있는 잿빛 왕좌도 푸른빛을 날려 가져왔다.

    잠시 왕좌를 살피던 그가 저물탁에 챙겨 넣고 있는데 옆에서 금빛이 번쩍이고 금동이 나타났다.

    “겨우 원영도 잡아두지 못하고 자폭하게 만들어요? 아, 아까워!”

    “금선 원영을 원했던 것이냐?”

    한립이 의아하다는 듯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걸 말이라고 해요? 원기가 충만하고 혼백의 힘이 가득 찬 금선 원영을 먹어 치웠으면 크게 몸보신을 할 수 있었을 거라고요!”

    입을 비죽이는 금동에게 한립은 하얀 옥함을 꺼내 열었다. 그 안에는 거령보다 먼저 죽인 영수들의 검은 색과 하얀색 원영이 들어있었다.

    금동은 아직 할 말이 많아 보였으나 그걸 보고서는 입을 다물었다.

    “다른 곳에 쓰려던 것인데, 너도 거령을 죽이는데 한몫했으니 원기를 회복하게 내어주마.”

    “양심은 있네요!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 같으니까 받아줄게요.”

    아이는 원영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 한립이 내어주자 옥함을 냉큼 받아들었다. 금동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금빛을 뿜어 두 개의 원영을 통째로 빨아들여 우물거렸다.

    발을 동동 구르며 원영을 음미하는 모습이 퍽 기분 좋아 보였다.

    어떤 술법이나 보물로도 상처 내기 어려운 금선경 요수의 원영이 그녀의 입에서는 맛좋은 일품요리로 변한 것 같았고, 그걸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는 한립의 눈빛에는 애정이 어려 있었다.

    금동은 원영들을 꿀꺽 삼키고는 입맛을 다시며 트림까지 했다.

    “금선급 원영이 네게 보약이라는 사실이로구나. 그런데 못 본 사이에 이렇게 변해 있을 줄은 몰랐다.”

    “왜요, 제 모습이 이상해요? 그보다 한 마리만 더 있었으면 완전히 회복했을 텐데! 아, 내 원영!”

    고개를 갸웃하던 금동은 아직도 아쉬운지 한립을 쏘아보았다.

    “선부에 구름처럼 몰려있는 것이 금선들인데, 급할 게 무엇이냐. 굳이 우리가 찾아다닐 것도 없이 그들이 덤벼들 것이다.”

    “정말요? 와, 잘 됐다! 본 선녀도 있고 영역도 있으니까 누가 덤벼도 문제없을 거예요!”

    “……그 전에 물을 것이 있다.”

    “뭐요?”

    한립이 돌연 정색을 하고 화제를 돌리자 금동도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난 선계로 비승을 한 후 강적에 당해 다시 하계로 떨어졌었지. 무슨 짓을 당한 것인지 기억의 상당 부분을 잃고 말았다. 하계로 떨어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느냐?”

    도우와 방반을 통해서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했지만 아직도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안심할 수가 없었다.

    “저도 기억하지 못해요. 선계에서의 기억은 그 방반이란 자를 만났을 때부터예요. 꾀를 써서 그자의 영수를 죽이고 홀로 돌아다니다가 거령에게 붙잡혔죠. 영수를 기르는데 능한 여자라 수행이 쑥쑥 늘게 먹을 건 잘 챙겨주더라고요. 그래서 잠깐 말 잘 듣는 영수인 척 붙어있었죠, 뭐.”

    금동의 말에 한립은 얼굴을 풀었다.

    잃어버렸던 해 도인과 금동 등을 연달아 찾았지만 다들 당시의 기억은 떠올리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이 간단하지 않으며 음모 같은 것에 연루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었다.

    자신이 알게 모르게 원수 진 강자들이 명한선부에 가득했는데 천만다행으로 수행이 급증해 금선이 되었다.

    이제 목숨은 부지할 만한 힘을 갖추었으니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 조사를 해볼 작정이었다.

    “우리 가요. 어서 금선 찾으러 가야죠! 아까 그 늙은 마녀랑 싸우다가 경지가 떨어질 뻔했다고요.”

    금동이 한립의 소맷자락을 붙들고 응석을 부렸다.

    “그래, 여긴 오래 있을 곳이 못 되니 가자꾸나. 금동, 앞으로는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달아나고 그런 비술은 쓰지 말거라.”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당부했다.

    “흥,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아이의 투덜거림에 한립은 웃음을 흘렸다. 그가 막 푸른 둔광을 일으켜 떠나려다 주위를 둘러보고 멈춰 섰다.

    육우청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거령과 싸울 때 같이 있던 여인은 어디로 갔는지 보았느냐?”

    “여자요? 아, 그 여자. 멀리서 구경하다가 은신술을 써서 땅속으로 숨더니 가버렸어요.”

    “가버렸다고?”

    “네, 아저씨가 데리고 다니던 여자 같아서 그냥 놔뒀는데? 안 그랬으면 못 가게 잡아 뒀겠죠.”

    금동은 큰 눈을 깜빡거리면서 웃었다.

    한립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묵묵히 서서 침음했다. 그는 훌쩍 날아올라 영목신통으로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그가 사방을 다 둘러보고 미간을 좁힐 때 금동이 날아올랐다.

    “그래서 우리 갈거예요 안 갈거예요? 배고픈 것 같단 말이에요.”

    “육우청에게 지도가 있다. 나도 그걸 보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었고.”

    안 그래도 육우청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다니 묘한 일이었다.

    “지도가 없으면 알아서 돌아다니면 되죠.”

    “알겠다, 그만 가자꾸나.”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푸른 빛줄기로 변해 출발하고 금동도 금빛으로 변해 그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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