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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24화 (1,481/2,000)

1724화. 다시 붙다

*

하늘과 땅이 뒤집혀서 방향감각을 잃은 한립은 비틀거리다 눈앞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

어안이 벙벙해 질만 한 광경이었다.

그와 십여 장 거리에 금색 궁전 대문 앞에서 그림처럼 아름다운 소녀가 긴장한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게 육우청이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여덟아홉 살 정도로 보이는 금발의 여자아이는 은색 장포를 입은 맨발의 여자와 대치 중이었다.

회색 광채를 두른 여인의 머리 위에서 용머리 허상이 시뻘건 입을 벌려 빛기둥을 날리고 금발 여자아이는 두 줄기 수정실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금동과 거령이었다.

그곳은 한립이 2천여 년 전 금색 궁전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전과 아무것도 달라져 있지 않았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궁전 밖의 금빛 장막이 눈에 띄게 어두워져서 광채를 잃었다는 것뿐이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한립은 자기도 모르게 넋을 놓았다. 궁전 안에서 그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외부 세계는 그가 사라지던 때에 멈춰있었다.

그곳에 있던 이들도 ‘순간 사라졌던’ 한립의 등장에 놀란 기색이 다분했다. 육우청이 정신을 차리고 무어라 말하려 했다.

콰콰쾅!

그때 삼색 빛기둥과 수정실이 충돌해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굉음을 만들어냈다.

요란한 빛들이 빛기둥과 수정실에서 터져 나와 하늘을 둘로 나누었다.

한쪽은 3색 광채가 다른 한쪽은 눈부신 수정빛이 지배하는 하늘 중간에서 각 기운이 충돌해 진동과 왜곡을 일으켰다.

허공이 구불구불하게 일그러져서 언제든 찢겨나갈 것 같았고 지상의 유적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빛조각에 눈 녹듯이 녹아 사라졌다.

안색이 변한 육우청은 곧장 푸른 빛줄기로 변해 멀리 벗어났다. 그러나 한립은 물러서지 않고 낮게 기합을 넣었다.

그러자 전신에서 36개의 별빛이 떠올라 단단한 진극막을 형성했다.

푸푸푸푸푹!

빛 조각들이 그 위로도 떨어져 날카로운 마찰음이 들려왔으나 진극막은 찢어지거나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립은 형형한 눈빛으로 삼색 빛기둥이 점점 진해져 수정실을 압도하는 것을 올려다보았다. 수정 실 뒤에서 금동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야!”

기운을 끌어올린 그녀의 어깨에 금빛이 응결해 잘려나간 두 팔이 다시 자라나기는 했지만 반투명했다.

금동이 새로 생긴 두 손을 펼쳐 금색 수정실을 뿜어 원래 있던 두 가닥과 엮어 삼색 빛기둥을 막았다.

그러나 빛기둥에서 법칙의 힘이 용솟음쳐 그런 수정실마저 압도하고 있었다.

한립은 금동이 버티지 못할 것 같자 흐릿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순간이동을 하듯 금동 옆에 나타나 소매 속에서 금빛 손을 내밀었다.

황금빛 주먹에는 금색 주술문자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훅!

항아리 굵기의 금빛 빛기둥이 주먹에서 날아올라 강렬한 시간법칙 파동을 발산했다.

쿠쿠쿵!

금빛 빛기둥과 삼색 빛기둥이 충돌해서 굉음이 울리고 인근 허공이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파문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구부러졌던 수정실도 기세를 되찾았다. 안색이 밝아진 금동이 고개를 돌려 한립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엇, 수행이!”

공중의 거령도 한립이 금선의 기운을 방출하는 것을 보고 아연한 얼굴을 했다.

한립은 곧바로 주먹을 펴서 손가락을 튕겼다.

웅!

금색 빛기둥에서 반짝 반투명한 수정실이 떠올라 웅장한 시간의 힘을 발산했다. 금동의 수정실과 겉보기에는 비슷해도 위력은 아예 달랐다.

쉭!

금색 수정실이 나타나고 하늘도 한층 어두워져 있었다.

기다랗게 광채를 휘날리며 얇은 검기처럼 날아간 수정실이 거령을 가르려 삼색 빛기둥 속을 파고들었고, 수정실이 지나는 곳에선 소리 없이 삼색 기운이 소멸했다.

“가라!”

그걸 본 금동이 앳된 목소리로 외치고 수결을 맺었다. 두 줄기의 수정실도 곧장 거령을 향해 날아갔다.

세 줄기의 법칙 정사가 삼색 빛기둥을 가르고 절반까지 타고 올라가자, 거령은 안색이 달라지며 허공을 박차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한립은 서늘하게 눈을 번득이며 손가락을 까딱였고, 흐릿한 금색 실이 허공에 스며들어 종적을 감추었다.

웅웅웅!

다음 순간 거령 앞에 허공이 진동하고 느닷없이 금색 실이 나타나 그녀 주변을 밝은 파동으로 감싸버렸다.

뒤로 물러나던 거령의 신형이 급격히 느려지더니 경악한 듯 눈을 부릅떴다.

금색 실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그녀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기겁한 거령은 서둘러 몸을 틀면서 회색 비늘처럼 온몸에서 반점을 일으켰다.

반점에서 꿀렁꿀렁 흘러나온 법칙 파동은 금색 파문의 영향을 받지 않고 빠르게 그녀를 감싸 둥그런 회색 구름으로 변했다.

회색 구름이 형성된 순간 금색 실이 날아들어 그 속으로 스며들었다.

촤륵!

회색 구름은 절반으로 쪼개졌다가 다시 뭉쳐져서 원래의 둥그런 모양으로 돌아갔는데, 그 안에서 거령의 팔뚝이 떨어져 바닥을 피로 물들였다.

금색 실은 회색 구름을 베고서도 멀리까지 날아가다가 겨우 멈춰 섰고, 회색 구름은 요란한 빛을 내뿜으며 고공으로 치솟아 금색 파문의 영향에서 벗어났다.

막을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한립은 미간을 좁히며 손을 저었다. 그러자 금색 실이 뱀처럼 몸을 틀어 그의 체내로 돌아왔다.

“네 놈이 수행을 숨기고 나까지 속였을 줄이야! 허나 내 앞에서 객기를 부리다 목숨을 잃은 금선이 어디 한둘인 줄 아느냐. 감히 내 팔을 자르다니. 그 대가는 네 목숨으로 받겠다.”

거령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오고 회색 구름이 심하게 출렁이며 거대해졌다. 이전보다 몇 배는 강한 법칙의 힘이 빠져나와 천지원기가 요동쳤다.

법칙의 힘에 둘러싸인 한립은 갑자기 힘이 빠지면서 악몽이라도 꾸는 것처럼 머릿속에 두려운 느낌이 차올랐다.

곁의 금동도 찡그린 얼굴이 약간 창백해 보였다.

파앗!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수결을 맺어 금빛으로 자신과 금동을 감쌌다. 금빛 속에 흐르는 시간법칙의 힘이 잿빛 구름이 방출한 법칙의 힘을 가로막았다.

이에 한립은 평정을 되찾았고 곁의 금동도 안색이 나아졌다.

“이제부터는 내가 상대할 것이니 넌 쉬고 있거라.”

“왜 괜히 나서고 그래요! 거령에게 끌려다닌 게 열 받아서 일부러 지는 척하다가 크게 한 방을 노리려 했다고요. 쟤가 아무리 세도 내 몸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내 계획은 망쳤으니까 알아서 하세요.”

입을 비죽인 금동은 손을 저어 수정실 두 가닥을 몸속으로 돌려놓았다. 그 모습에 담담히 미소를 지은 한립은 고개를 잿빛 구름으로 돌렸다.

잿빛 구름이 방출하는 법칙파동은 거령이 펼치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달랐다. 거령은 몇 가지의 법칙을 장악해 그것들을 적절히 결합해 사용하는 듯했다.

그러나 수행이 금선 중기에 이르러 선령력이 넘쳐 흐르고, 대주천성원공으로 힘이 한층 더 세진 한립은 그녀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때 잿빛 구름이 요동치면서 갈라져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 회색 용, 오조회룡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늘이 빼곡하게 덮힌 잿빛 용의 몸에는 굵은 가시들이 가득했고 특히 등뼈를 타고 솟아오른 커다란 가시들은 마치 창 같았다.

오조회룡의 이마에 떠오른 ‘왕(王)’자 무늬는 부드러운 은빛을 방출해 몸의 다른 부위와는 달라 보였다.

“그러면 그렇지.”

오조회룡을 살핀 한립의 눈동자에서 격동한 기색이 느껴졌다.

“벌써 알아챘나 보네요. 거령의 본체는 진령 몽염(夢魘)이에요. 정순한 혈통을 지녀 실력이 굉장히 강하고 상대하기 쉽지 않죠. 딱 말해두는데, 저는 연달아 두 번이나 지는 사람하고는 같이 못 다녀요.”

금동이 힐끗 한립을 보며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말을 마친 금동은 머리를 휘날리면서 멀리 물러나 자리를 잡았다.

“몽염……. 좋군.”

한립은 전신에서 금빛을 방출해 오조회룡을 향해 쇄도했다.

그걸 본 회룡이 두 눈에서 화륵! 잿빛 화염 덩어리가 치솟았고 입에서 같은 빛깔의 집채만 한 빛구슬이 뿜어져 나갔다.

잿빛 화염이 요동치는 구슬은 작열하는 열기를 머금고 법칙의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허공이 열기에 이글거리고 위력이 대단해 보였지만 한립은 피할 생각이 없이 손을 휘저었다.

웅!

눈부신 푸른빛이 날아올라 거검으로 변했다.

바로 청죽봉운검이었다.

푸른 거검이 발산한 거대한 검기에 주변 허공이 덜덜 떨려왔다. 예전보다 훨씬 굵은 금빛 뇌전이 흐르는 검기는 무엇이든 베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변의 천지영기들이 들끓고 수많은 각양각색의 빛 알갱이들이 출렁여서 혼돈이 따로 없었다.

금선의 경지에 이른 후, 청죽봉운검의 진정한 위력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수결을 맺은 한립의 손짓에 푸른 거검이 거대한 잿빛 구슬로 떨어졌다.

서걱!

빛구슬은 너무 쉽게 반으로 갈렸고 흐릿해진 한립의 신형이 그 사이를 지나치려 했다.

그때 하얀빛과 검은빛이 잿빛 구슬 속에서 번개처럼 튀어나와 한립을 앞뒤로 포위했다.

하얀빛에선 커다란 하얀 구렁이가 나타나 입으로 무시무시한 한기가 서린 안개를 분출했고 검은빛에선 비슷한 크기의 새까만 괴어(怪魚)가 나타나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파치칙!

새까만 괴어의 몸을 뒤덮은 검은 반점들에서 칠흑 같은 뇌전들이 튀어나와 한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두 마리의 영수들은 빛구슬 속에 숨어 있다 한립이 가까워지기를 노려 공격한 것이다.

하얀 얼음 구역과 검은 뇌전 구역이 앞뒤로 한립을 밀어붙이며 방대한 법칙의 힘을 방출했다.

허공의 오조회룡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면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때 가느다란 금빛이 검은빛과 하얀빛 사이에서 떠올라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금빛 파문이 웅장한 법칙의 기운을 발산했고 주위의 하얀 얼음과 검은 뇌전이 금빛에 급격히 밀려났다.

“저건…….”

오조회룡이 중얼거렸다.

금빛은 2, 30리를 채우고 거대한 금색 구역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표정이 달라진 회룡이 전신에서 잿빛을 크게 방출해 수십 리를 회색 구역으로 만들어 금색 구역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하얀 구렁이와 검은 괴어는 금색 구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느릿하게 움직였다.

쉭!

한립이 얼음과 뇌전을 뚫고 몸을 날렸다. 작은 상처 자국도 보이지 않는 그는 손에서 금색 수정실 두 가닥을 날렸다.

하얀 구렁이와 검은 괴어가 겁에 질려 벗어나려 했으나 금색 수정실은 너무 빨랐고 그들의 움직임은 정체되어 있었다.

번득 금빛이 스치고 구렁이와 괴어의 몸이 꼬리부터 머리까지 소리 없이 갈라졌다.

두 동강이 난 것도, 피가 사방으로 튀는 것도 아주 느릿하게 벌어졌지만 금색 수정실들은 곧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져 한립 앞에 나타났다.

수정 실들은 각각 작은 뱀과 작은 물고기를 감고 있었다. 영수의 원영들이었다. 힘을 잃은 하얀 얼음과 검은 뇌전들이 뒤이어 흩어졌다.

한립이 금선급 요수 두 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우는 것을 본 회룡은 동공을 수축했다.

“거령 수사, 이런 장난은 그만두시지요. 이제 막 금선경에 이른 요물들로 저를 어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한립은 회룡을 똑바로 마주 보고 금빛을 날려 두 원영을 거둬들였다.

“영역까지 장악했다고? 말도 안 돼. 그럼 내 영역에 갇힌 척했던 것이냐? 설마…….”

“하하, 이게 다 수사의 덕입니다.”

한립은 애매하게 답하며 웃었다.

“뭐라고?”

“거령, 당신은 영역의 힘으로 날 죽이려 했었지요. 지금 다시 영역으로 실력을 겨루어 봅시다.”

한립은 서늘해진 어투로 수결을 맺고 날아올랐다. 넓어진 금색 영역이 구름처럼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대댕! 댕댕댕!

“한립, 이겨라! 날 대신해 저 늙은 마녀 같은 여자를 죽여 버려요!”

멀리서 금동이 느닷없이 징을 치며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쪽에선 육우청이 허공에 떠서 한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건……. 시간법칙의 힘…….”

작게 중얼거린 그녀는 몸에서 빛을 반짝이며 아래쪽 땅으로 녹아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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