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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19화 (1,476/2,000)

1719화. 뜻밖의 경험

*

원영이 뇌전 연못에 잠긴 7일은 마치 7년 같았다.

콰르릉!

그날 밤하늘에서 천둥소리가 터져 나오며 금빛 뇌전의 강이 새까만 밤의 장막을 가로질러 성을 대낮처럼 밝혔다.

천둥소리와 빛이 가라앉은 고공에서 팔뚝 절반만 한 원영 소인이 서서히 내려왔다.

평범한 얼굴을 지닌 금빛 소인의 웃음기 어린 얼굴과 몸이 금색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다.

한립의 두개골 사이로 소인의 몸이 쏙 들어가고, 며칠 동안 움직임이 없던 한립이 눈을 떴다.

새까만 밤에 눈에서 형형한 금빛이 쏘아져 나오는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는 금빛을 거두고 맑은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았다. 금빛 광채가 흐르는 그의 뒤에서 진언보륜이 서서히 회전했다.

360개의 도문을 회복한 금색 고리에는 금빛 수정 실이 세 가닥이나 휘감고 있었다. 바로 시간법칙의 실이었다.

한립이 눈을 크게 뜨고 희색을 드러냈다.

금혼단을 복용한 후 느낀 오감의 확장에서 그가 갇힌 소형 공간이 무척 기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확히 무어라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이곳에 있었기에 시간법칙의 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깨우칠 수 있었다.

체내의 시간법칙의 실이 흥분해 들썩여도 살필 여력이 없었는데 뇌전 연못에서 원영을 단련하는 며칠 동안 이 비경 공간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감각이 다시 나타나 부지불식간에 시간법칙의 실 두 가닥을 더 응결해냈다.

첫 번째 시간법칙의 실은 위험을 감수하고 장천병의 녹액을 삼키다 나중에는 도단까지 먹고서야 응결해 낸 것을 생각하면 이번 성과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때의 감각을 되살리려고 해도 도저히 되지가 않았다. 이런 것을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가 한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수정실 세 가닥이 뱀처럼 스스로 고리를 벗어나 그의 손끝을 휘감았다.

의식을 주입해 보니 각각에서 강렬한 시간법칙 파동이 전해졌다.

우웅!

바로 그때 진언보륜이 갑작스레 눈을 찌르는 빛을 방출했다.

한립의 장포 앞섶에서 녹색 작은 병도 통제를 벗어나 허공으로 떠올라 엄청난 빛을 머금었다.

진언보륜과 장천병이 호응하면서 강대한 파동을 일으켰다.

쉭!

그의 손가락을 감고 있던 시간정사 세 가닥이 화살처럼 장천병 안으로 들어갔고, 둔중한 폭음과 함께 작은 병이 빠르게 불어나 맷돌만 하게 커졌다.

장천병 표면의 주술문자들이 번득 날아올라 병 안에서 녹색 구름을 이루고 소용돌이쳤다.

쿠콰쾅.

특수한 기운 파동을 내뿜는 장천병 안에서 굵은 빛줄기가 튀어나와 허공을 찢고 이전처럼 기이한 수정벽을 만들어냈다.

‘또 다!’

수정벽에 어린 녹색 소용돌이를 보며 한립의 눈이 번득였다.

어느덧 집채만 한 소용돌이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흡입력이 발생해 그를 감쌌고, 혼백의 힘이 육체를 벗어나 끌려 들어갔다.

뇌리에 예리한 통증을 느낀 한립은 눈앞이 깜깜해 지면서 의식을 잃었다.

‘으으…….’

어질어질한 가운데 귓가로 굉음이 들리고 바람 소리가 뒤따랐다.

화들짝 놀라 눈을 뜬 그는 자신이 만장 고공에서 쾌속으로 달아나고 있고 뒤로 연달아 콰쾅콰쾅 폭음이 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지난번에 혼백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경험을 했기에 이번에는 크게 당황하지 않고 둔광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숙여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눈길이 아래로 향한 그는 초인적인 정신력에도 크게 휘청거려 둔광이 흔들렸다.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몸의 팔다리는 앙증맞았고 품에는 청록색 저물탁을 꼭 껴안고 있었다.

이번엔 수사가 아니라 죽어라 달아나는 원영에 혼백이 깃든 것이었다.

‘지난번에는 다 죽어가는 능운자더니 이번에는 달아나는 중인 원영이라.’

한립은 쓴웃음을 삼켰다.

그래도 수행은 능운자보다 훨씬 고강했다. 얼른 원영의 기억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뇌뢰에 벼락을 맞은 듯 머리가 웅웅거렸다.

기억의 파편들과 복잡한 감정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어 한립은 또 휘청하다 겨우 몸을 가누었다.

이런 혼란은 금방 지나갔지만 그는 더 이상 달아나지 않고 멈춰 섰다.

아연한 얼굴로 뒤를 돌아본 그의 눈에 각양각색의 빛구슬이 지면과 하늘을 뒤덮고 그 안에서 간담이 서늘해질 만한 파동을 내뿜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수십 종 아니 거의 백여 종류의 강대한 영역이 강렬한 법칙 파동을 발산하면서 서로 충돌하고 포개져 경천동지할 위력을 내고 있었다.

“여기가 정말 그 ‘명한선궁’이라고…….”

한립은 조각난 하늘과 갈라진 땅을 보며 웅얼거렸다.

지금 그는 무생검종의 금선 제자 ‘금해’의 원영으로 방금 종문에서 달아난 참이었다.

기억이 혼잡하게 뒤섞여 있고 대부분이 격렬한 전투 장면이라 최근에 발생한 일들만 떠오른 것 같아서 그걸로 무슨 상황인지 짐작만 해볼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 윤회전 세력이 며칠 전 대규모 병력으로 명한선궁을 침략해 살생을 벌였고, 선궁은 대비를 하고 있었지만 막지 못하고 선부 안까지 전장이 확장되었다.

무생검종은 선궁의 부속세력으로 선궁 세력을 따라 죽을힘을 다해 적을 막았다.

그런데 종문의 근간이 되는 검해대진(劍海大陣)을 이용해 치명타를 날리려던 그들은 진법이 발동하기 전 상대 쪽의 태을옥선이 대규모 영역을 펼쳐 종문 전체를 뒤덮은 것이다.

영역이 지닌 모종의 막대한 법칙의 힘이 놀랍게도 방대한 검해 속의 검기를 제압하고 결국에는 검진 자체를 무력화시켰다.

힘을 합쳐 태을옥선의 영역을 간신히 탈출한 무생검종 제자들은 선궁과 윤회전 수사들 간의 격전에 휘말려, 금해와 그의 사형제들은 목숨을 잃고 원영만 달아나거나 그마저도 해내지 못하고 육신과 원영이 소멸했다.

금해는 금선 최고봉 수사의 영역에 걸려들어 검의에 산산조각이 나기 직전에 비술로 본명비검을 자폭해서 원영만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원영도 중상을 입고 붕괴하기 직전이라 한립의 의식이 주입되어 중심을 잡지 않았다면 벌써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윤회전은 어째서 명한선궁을 공격한 거지? 명한선궁의 몰락이 이 전쟁 때문이란 말인가?’

한립의 마음에 차곡차곡 의문이 쌓여갔다. 망설이던 그는 고개를 돌려 좌측 전방을 살폈다.

흐릿하게 떠 있는 금색 고리는 진언보륜이었고 반투명한 시간도문 중 열댓 개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한립은 탄성을 터트렸다.

지난번에 이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는 적어도 30여 개의 시간도문이 힘을 잃었는데 겨우 열댓 개만 어두워진 것이 이상했다.

“설마…….”

눈썹을 끌어올린 한립은 찬찬히 살펴보고 미소를 지었다.

시간도문이 꺼지는 속도가 이전보다 세 배 정도 느렸는데, 혹시 시간법칙의 실이 세 가닥으로 늘어난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예상해서였다.

한립은 잠시 고민하다 더는 도망치지 않고 선궁 방향으로 속도를 높였다. 제한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첫째, 명한선궁이 어째서 변고를 당했는지 파악해야 했다. 그는 현재 명한선궁 유적에 있었으니 몰락의 원인을 알면 빠져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윤회전이 선궁을 공격한 이유를 알아야 했다. 윤회자가 된 그는 아무 것도 모르고 남의 화살받이나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거기다 저 형형색색의 영역들을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영계에서부터 영역이라는 것을 접해 왔으나 보화가 펼치던 현천영역은 법보의 힘을 빌려 펼치는 위영역에 불과했다.

선계로 와서 영역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보았지만 실제로 진정한 영역을 관찰하고 연구할 기회는 너무 적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고도를 낮추어 전장에 가까워졌다.

진언보륜의 시간도문이 절반으로 줄어든 때였다.

전방에 나타난 황토빛의 장벽은 진입하지 않았는데도 진한 흙 속성 기운이 느껴졌고 그 너머로 목재로 지은 건물들이 강력한 힘에 무너져 내린 것이 보였다.

저 멀리 몇몇 수사들이 다양한 색의 보호막을 펼치고 압력에 대항했지만 저공에 떠서 느릿하게 움직이는 게 고작이었다.

황토 장막의 끝에 맞닿아 있는 은색 영역은 그 안에서 새하얀 검기들이 종횡무진하며 모든 것을 산산조각내고 있었다.

그 뒤로도 끝도 없이 많은 영역이 다양한 위력을 발휘해 선부와 수사들을 파괴했다.

콰릉.

한립은 혀를 차며 위험을 감수하고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고민하는데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천둥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음파가 직접적으로 그의 뇌리를 때려 의식을 쪼개려 들었다. 의식의 바다에 격랑이 친 한립은 원영을 가누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했다.

팟.

그 순간, 저절로 연신술이 발동해 검은빛이 그의 의식 세계를 두르고 보호했다.

바닥을 코앞에 두고 정신을 차린 한립은 원영을 통제해 급격히 고공으로 몸을 틀었다.

“…….”

조금 전 음파가 영역을 허물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영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안색이 달라진 한립은 뜻밖에도 아까 달아나던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조금 전 의식을 때린 힘은 익숙했다. 바로 연신술의 힘이 정신자를 백배 강화한 위력으로 그를 때린 것이었다.

여기에 남아 있다가 비슷한 공격을 다시 당하면 이 원영 속에 깃든 그의 혼백 역시 무사할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단숨에 십여만 리를 가로지른 한립은 어느 해역에 들어와 갑자기 속도를 늦추었다.

두리번거리는 그의 눈에 버들잎처럼 기다란 형태의 작은 섬과 그곳에 드문드문 박힌 회백색 바위가 들어왔다.

“여긴, 한정족이 있던 섬일 텐데? 설마 흑풍해역!”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흑풍해역까지 와있었다. 그때 가라앉아 있던 금해의 불완전한 기억 중 하나가 떠올랐다.

이번에는 전장과 상관없이 어떤 보물 지도에 관한 기억이었다.

선궁에 변고가 일어나기 전에 금해는 어떤 수사와 사문을 떠나 다른 선역으로 보물을 찾으러 가기로 약속해 두었는데, 떠나기 전에 전쟁이 터진 것이었다.

귀한 보물 지도를 구해놓고도 보물을 취하러 가지 못한 것이 여한이 되었는지 그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마음이 동한 한립은 원영이 소중하게 안고 있던 저물탁에 의식을 불어넣었다.

금해라는 수사는 원행을 떠날 생각이었기 때문인지 저물탁 속에 대량의 선원석, 법보들 그리고 단약과 고서까지 잔뜩 챙겨두고 있었다.

법보와 단약들은 모르겠고 고서들은 뭔지 알 것 같았다.

금해의 기억 속에 이 고서들은 목숨보다 중요한 것으로 무생검종에서 전해 내려오는 검술과 각종 검진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혼백이 깃든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면 다 집어치우고 무생검종이 전수하는 검술과 검진들을 연구해 보았을 것이다.

‘무생검종의 어검술을 천하의 검수 중 누가 거부하겠는가?’

한립은 금방 이상한 재질의 손수건을 찾아냈다.

청량한 감촉에 일곱 빛깔 광채가 반짝이는 손수건은 한눈에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도를 상세히 살피려는데 그 광채가 너무 반짝여서 도저히 무엇이 적혀 있는지 볼 길이 없었다.

머리를 굴린 한립은 진언보륜을 서서히 회전시켜 고리 가운데 진실안으로 금빛을 쏘아 보냈다.

진실안을 펼치자 시간도문이 소모되는 속도가 빨라졌고 이제 남은 도문은 십여 개가 다였다.

일곱 빛깔 광채가 반짝이는 간격이 길어지면서 중앙에서부터 먹물이 퍼지듯 무척 복잡한 지형도가 드러났다.

한립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도를 꼼꼼히 외워갔다.

풍덩!

그는 빛을 발하는 시간도문이 몇 개 남지 않았을 때 지도를 저물탁 속에 돌려놓고는 느닷없이 하얀 섬 인근 해역으로 뛰어들었다.

운석처럼 떨어진 그 때문에 바다위에 새하얀 물보라가 쳤다.

쏴아아.

심해로 가라앉는 그의 머리 위에서 진언보륜의 도문이 하나씩 꺼졌다.

다섯 개가 남았을 때, 원영 소인은 해수면 천 장 아래로.

네 개가 남았을 때, 수천 장 아래로.

세 개가 남았을 때, 만 장 아래로 내려갔다.

드디어 해저에 다다른 금색 소인은 손날을 칼처럼 그어 바닥의 바위를 뚫고 저물탁을 던져 넣었다.

다른 손이 바위굴 입구를 쾅! 쳐서 무너트린 순간, 마지막 도문이 빛을 잃었다.

“…….”

홀연히 허공에 나타난 소용돌이에 휘말린 그는 고통을 느끼면서 그의 육체로 돌아왔다.

한립은 눈앞이 맑아지기를 기다렸다가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기억에 가슴을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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