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715화 (1,472/2,000)

1715화. 도움

*

산악거원으로 변신한 한립은 충만한 힘을 내뿜으면서 훨씬 빠른 속도로 영역 가장자리에 도착했고, 표정이 달라진 거령은 낮게 기합을 넣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재빨리 날아간 수정빛이 영역 가장자리에 흡수되어 번쩍거리는 사이 법칙의 힘이 흐르는 잿빛 구름이 되었다.

영역 전체가 철저하게 독립된 공간으로 변한 것이다.

쿵!

맨몸으로 잿빛 구름을 들이받은 한립은 벽에 부딪히듯 튕겨 나왔다. 얼굴을 굳힌 그가 즉시 푸른빛을 청죽봉운검이 변한 청룡의 몸에 흡수시켰다.

크아앙!

청룡은 푸른빛과 금빛 뇌전을 번들거리며 거검으로 돌아가 하늘을 가를 듯한 기세로 잿빛 구름을 갈랐다.

카카카캉!

공간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잿빛 구름에 파문이 생겼지만 갈라지지는 않았다.

“흐흐, 내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버려라!”

거령은 서늘한 웃음을 흘리며 수결을 맺었다.

영역 안의 잿빛 화염이 한립과 서금선을 향해 몰려들어 진한 불바다가 거의 검은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법칙의 힘을 품은 검은 화염이 한립을 습격했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법칙 외에도 뭔가 괴이한 법칙이 섞여 있는 공격이었다.

쿠쿵!

한립이 휘두른 시간법칙의 힘을 격파한 신비한 힘이 그의 머릿속과 전신으로 흘러들었다.

이에 한립의 금털이 광택을 잃고 어두워지더니 건장하던 체격도 약간 줄어들었다. 선령력 흐름이 10배는 느려진 듯 모든 것이 무기력하고 나른하게 느껴졌다.

그뿐 아니라 마음속에 여러 환영들이 심마처럼 파고들어 포악한 살의가 차올랐다.

깜짝 놀란 한립은 전력으로 공법을 운용해 시간법칙으로 영역법칙의 침입을 막고 포악해지는 의식을 안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몸은 무기력해지고 정신은 미쳐 날뛰는 기이한 현상은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그의 두 눈에 핏빛이 차올라 점점 진해졌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금동이 급히 무언가 하려고 금빛을 번득이는데 검은 화염들이 한 마리씩 흑룡으로 변해 딱정벌레를 물어뜯으려 뛰어들었다.

“원주인을 구하고 싶으냐? 내 영역 안에서 그게 네 마음대로 될까? 얌전히 내 처분을 기다리거라!”

은빛이 번득인 자리에 거령이 나타나 영충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서금선은 코웃음을 치며 검기처럼 날카로운 금빛을 꿀렁꿀렁 흘려보내 삽시간에 작은 금빛 구역을 이루고 달려드는 화염 흑룡들을 부서트렸다.

게다가 금색 구역은 빠르게 소용돌이로 변해 부서진 화염 흑룡 잔해를 먹어치우기까지 했다.

서금선은 그런 소용돌이를 품고 돌연 거령을 향해 달려들어 그 안에서 두 줄기의 수정빛을 뿜었다.

거령의 좌우에서 금빛 수정빛이 가볍게 검은 화염들을 가르고 멸했다.

“크큭, 네 주인을 구하러 가지 않고 나를 막기로 한 것이냐?”

이에 거령이 수결을 바꾸어 검은 화염들을 빛의 실로 뭉쳐 강렬한 법칙의 힘을 발산했다.

그녀의 손짓에 검은 실 두 가닥이 거대 수정빛으로 날아가 충돌했다.

펑! 펑!

둔중한 폭음과 함께 금색 수정빛과 검은 실이 동시에 흩어져 사라져갔다.

“저 정도 어려움도 이겨낼 수 없는 자라면 내 주인이 아니어도 그만이에요. 당신이 직접 손을 쓰지 못하게 막는 게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이고요. 그래도 여길 탈출하지 못하면 그것도 스스로의 운명이라고 생각해야겠죠.”

금동이 조근조근 답하며 앞발을 휘둘렀다. 그러자 수정빛 두 줄기가 거령을 갈랐다.

콰쾅! 쿠콰쾅!

서금선의 공격에 거령은 검은 화염을 조종했고 금빛과 검은빛이 요동치며 격전이 벌어졌다.

두 눈이 붉게 물들어가던 한립은 눈알이 완전히 암홍색으로 변하기 직전이었다.

웅.

이때, 가만히 떠 있던 청죽봉운검이 바르르 몸을 떨었다.

콰릉! 콰르르!

검신에서 굵은 금색 뇌전들이 차례로 떠올라 만황요수처럼 으르렁거렸다.

한립의 몸 곳곳에서도 벽사신뢰가 떠올라 그를 뇌전빛으로 둘러싸더니 순수한 영기로 찬 기운이 퍼져 그의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한립의 머릿속을 헤집던 광포한 생각들이 멈추면서 정신이 맑아지고 눈의 핏기도 가시기 시작했다.

팟.

번쩍 눈을 부릅뜬 그는 기합을 넣으면서 진언보륜을 불러내 회전시켰다.

회색 영역 안이라 그런지 진언보륜을 발동시키면 나타나던 금색 파문은 보이지 않았고 시간의 힘이 흘러나와 그의 전신을 감싸고 영역 법칙을 밀어냈다.

동시에 그는 전력으로 연신술을 운용했다.

청량한 기운이 머리에 퍼지면서 난폭한 의식도 제압하고 온몸의 무력한 느낌도 빠르게 사라졌다.

“어떻게 저런 일이…….”

멀리서 거령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손가락을 튕겼다.

쉭!

그녀 주변의 검은 화염 일부가 갈라져 기다란 검은 화살로 변해 날아갔다. 하지만 화살은 멀리 가지 못하고 옆에서 튀어나온 수정빛에 부딪쳐 펑! 폭발했다.

“아하하, 아직 나와도 승부가 나지 않았는데 상대를 바꾸려고 들면 되나요? 계속 놀아 봐요.”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린 금동이 거령의 앞을 막아섰다.

한립은 멀리서 다투고 있는 금동을 힐끗 보고는 다시 전방의 잿빛 구름을 쏘아 보았다.

그의 입에서 푸른 빛 세 줄기가 날아가 은색 방울, 송곳니 괴검 그리고 검은 깃발로 흘러 들어갔다.

우우웅!

몇 배로 커진 선기들은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가라!”

수결을 맺은 한립의 외침에 세 선기가 앞다투어 날아가 잿빛 구름에 몸을 던졌다.

쿠쿠쿠아앙!

잿빛 구름에 닿은 세 선기의 폭발로 은빛과 검은빛 두 덩이가 태양처럼 떠올라 구역 전체를 마구 흔들었다.

그러자 잿빛 구름이 급격히 얇아지고 주변의 검은 화염도 충격으로 뒤로 물러났다.

한립이 그걸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피 같은 선기를 세 개나 자폭시켰는데도 잿빛 구름은 많이 옅어졌을 뿐 완전히 깨지지 않았다.

“제길!”

멀리서 거령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금동이 달라붙어서 금색 구역을 점점 키우면서 회색 구역을 먹어치우는 통에 한립에게 직접 공격을 가할 새가 없었다.

팟.

한립은 손바닥을 뒤집어 도우에게서 얻은 검은 벼루 선기를 꺼내 들었다. 그의 손에서 날아오른 검은 벼루는 강렬한 법칙 파동이 섞인 새까만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품계나 위력이 앞서 자폭한 세 선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아직 벼루의 신통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지만 자폭을 이끌기에는 충분한 만큼 제련해두었다.

검은 벼루의 기운을 감지한 거령이 깜짝 놀라 입에서 은색 액체를 뿜어 검은 화염에 녹아들게 했다.

화르륵!

융성해진 검은 화염이 금동이 만들어낸 금색 영역을 막는 사이 그녀는 비취색 호리병을 불러내 형언할 수 없는 성대한 기운을 드러냈다.

엄청난 기운을 느낀 한립도 가슴이 철렁해 술법을 펼치는 손길을 더욱 빨리했다.

시시각각 날카로운 빛을 머금은 검은 벼루의 기운이 팔딱거리고 있었다.

쿠쿠쿠.

마지막으로 한립이 뱉은 정혈까지 흡수한 검은 벼루는 잿빛 구름을 향해 날아올랐다.

“어림없다!”

거령의 손짓에 비취색 호리병이 녹색 빛줄기를 내뿜어 더없이 빠른 속도로 검은 벼루를 향해 뻗어 나갔으나 약간 늦고 말았다.

쿠콰앙!

검은 벼루가 먼저 폭발해 주술문자가 가득한 거대한 검은 태양이 되어 무시무시한 기운을 터트렸다.

엄청난 기운에 잿빛 구름은 옅어지다 못해 금이 쩍쩍 갔다. 그러나 어찌나 견고한지 여전히 깨지지는 않았다.

미간을 좁힌 한립이 이번에는 청죽봉운검을 향해 정혈을 내뱉었다.

웅웅!

몸을 떨면서 크게 울어댄 거검이 잿빛 구름을 호되게 가르려 했다. 그때 거령이 즉시 수결을 변화했다.

비취색 호리병박에서 빠져나온 녹색빛이 방향을 틀어 청죽봉운검을 얽매고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조심해요, 보통 보물이 아니라 뭐든 빨아들이는 강력한 선기예요!”

금동의 목소리가 한립의 머릿속에 울렸고, 그의 안색이 확 달라졌다.

놀라운 기세를 품고 있던 푸른 거검이 녹색빛에 감겨 멈추더니 급속도로 빛을 잃어갔다. 청죽봉운검과 한립의 의식연계도 바로 끊겨나갔다.

거령의 손짓에 청죽봉운검을 휘감은 녹색빛이 한층 농염해졌다.

웅.

푸른 검이 빠르게 수축하며 끌려가고 있었다. 눈빛이 사나워진 한립은 끌려가는 거검을 쳐다보지도 않고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쿠릉!

그의 몸에서 또 다른 푸른 거검이 떠올라 굵직한 금빛을 방출하고 있었다. 이전 거검보다 전혀 위력이 떨어져 보이지 않았고 더 강한 힘이 느껴졌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거령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젠장!”

그녀는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비취색 호리병박은 한 번 사용하면 일정 시간 다시 녹색빛을 내뿜을 수 없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립은 다른 손에서 불러낸 고리를 빠르게 회전시켜 주변을 괴력으로 쿵쿵 울렸다. 바로 중수진륜이었다.

수결을 맺은 그의 양손에서 푸른빛 두 줄기가 날아가 각각 푸른 거검과 중수진륜 속으로 사라졌다.

두 보물은 동시에 잿빛 구름을 공격했고 동시에 한립의 몸속에서 금빛이 날아올라 황금 게로 변해 거대 집게발을 칼날처럼 움직였다.

쿠콰콰쾅…….

균열이 가기 시작한 옅은 잿빛 구름에 드디어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그리고 일격을 날린 해 도인은 지니고 있던 선원석을 모두 써버려 몸이 어두워져 번득 한립의 몸속으로 돌아갔다.

희색을 드러낸 한립은 역전진륜 신통을 발동해서 금빛으로 변해 푸른 거검과 중수진륜을 휘감고 몸을 날렸다.

쿠쾅!

둔광의 속도가 엄청났고 잿빛 구름에 뚫린 구멍이 아래쪽을 향해있어 자신도 모르게 금색 궁전 앞 지면에 떨어져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었다.

구덩이 바닥에서 굴러 몸을 일으킨 한립은 곧장 튀어 올라 멀리 달아나려 했다. 영역은 어떻게든 벗어났으나 선령력이 거의 바닥나서 이 상태로는 거령과 겨룰 수는 없었다.

화아아앗!

그런데 급작스레 금빛이 그를 감싸고 진언보륜이 제멋대로 떠올라 회전하면서 시간법칙의 실을 방출했다.

금색 궁전 대문이 눈부신 빛을 방출해 호응하면서 웅웅 울고불고 난리였다.

슉!

진언보륜에서 시간법칙의 실이 빠져나가 금색 대문으로 날아들었다.

후우웅.

금색 대문에서 동그란 도안이 떠올라 번쩍거리는 빛으로 한립을 감쌌다.

‘이게 무슨…….’

분명 그 빛은 한없이 부드럽고 따듯했지만 엄청난 힘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화들짝 놀란 그의 시야에 궁전 문 앞에 육우청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작은 태비에게 쫓겨 이곳을 떠났던 그녀가 언제 돌아왔는지 그를 향해 급히 무슨 말을 하려 입을 벌리고 있었다.

퍼퍼퍼펑!

그 순간, 허공의 회색 구역에서 연달아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한 줄기 금빛이 회색 구역의 구멍에서 빠져나와 상처투성이인 금동으로 변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은빛의 거령이 나타났다.

아래쪽 상황을 내려다보던 거령은 분노에 몸을 떨면서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잿빛 왕좌가 나타나 흐릿하게 위쪽의 회색 영역과 융합되었다.

쿠쿠쿠…….

영역은 허물어지듯이 급격히 줄어들어 짙어졌고, 엄청난 위압감이 퍼져 나와 허공이 덜덜 떨리고 돌풍이 사방팔방을 휩쓸었다.

그 안에서 거대하기 짝이 없는 잿빛 용머리 허상이 나타나 흉측한 얼굴로 눈을 떴다.

한립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을 때 잿빛 용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곧바로 잿빛 용머리의 입이 벌어지면서 회색, 검은색, 하얀색의 세 가지 광채가 번득였다.

각각의 빛깔이 법칙의 힘을 담고 합쳐져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크하앙!

하늘을 찢을 듯한 용울음 소리와 함께 삼색 빛기둥이 불가사의한 속도로 한립을 향해 다가왔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한립은 눈만 크게 뜬 채 삼색 빛기둥이 날아드는 것을 보면서 내심 쓴웃음만 흘려야 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