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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11화 (1,468/2,000)
  • 1711화. 바람이 불고 구름이 이는

    *

    붉은 황원에서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쿠콰쾅! 쿠쿵!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리고 욱양자를 우두머리로 한 진염종 여덟 명의 수사들은 전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려있었다.

    그들 머리 위의 깃발은 황금색으로 물들어있었고 금색 불새 대신 수백 장 규모의 금빛 불바다가 그들 앞을 지켰다.

    “내가 너희들을 얕봤네. 하긴 명한선부에 들어오기 전에 어느 정도 준비는 했겠지. 어디 이걸 써볼까?”

    거령이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손에 든 청록색 호리병을 던졌다. 그녀의 입에서 깨끗한 은빛이 흘러나와 호리병으로 흡수되었다.

    웅!

    호리병이 몸을 떨자 휘황찬란한 녹색빛을 내뿜으면서 거목 크기로 자라나 표면의 빼곡한 문양들을 드러냈다.

    그리고 올챙이 같은 은색 문양들이 떠올라서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 만큼 강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강력한 법칙 파동이 일대를 뒤덮었다.

    “선천선기!”

    그 모습에 욱양자 무리는 대경실색했다. 그들은 세 영수들의 협공을 여러 차례 받아내느라 남은 기력도 방도도 없었다.

    그러나 거령은 은빛 몇 덩이를 입에서 더 뿜어 거대 호리병 박으로 흘려보냈고 녹색 빛이 더욱 짙어져서 실체를 이뤄 수축했다 늘어났다 했다.

    훅!

    호리병 입구에서 빛이 번득이고 녹색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빛줄기 속에 든 비취색 고리에서 형언할 수 없는 법칙 파동이 감지되었다.

    쿠쿠쿠…….

    허공이 무너질 듯 엄청난 폭음을 내고 주변 수만 리의 천지영기가 미친 듯이 몰려들어 오색찬란한 빛알갱이들이 응집했다.

    비취색 고리는 그것을 흡수해 크기가 더 커지고 함유한 법칙의 힘도 늘어났다.

    녹색 빛줄기는 금색 불바다를 아무렇지 않게 뚫고 욱양자 일행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먼저 8개의 불 깃발들이 녹색빛에 휘말려 작아지더니 금색 불길이 꺼져버렸다.

    진염종 수사들은 깃발과 의식연계가 끊기자 안색이 파랗게 질려갔다.

    거령이 흡족한 얼굴로 법결을 던져 넣었다.

    8개의 작은 깃발을 품은 녹색 빛줄기가 호리병 안으로 돌아갔고 금빛 불바다를 잃은 욱양자 무리는 세 영수의 공격에 파묻혔다.

    푸푸푹!

    무수히 많은 푸른 실들이 진염종 수사들을 묶었다. 발버둥치는 그들 위로 두 줄기의 굵은 수정빛이 날아들어 교차했다.

    푸화악!

    엄청난 양의 피가 튀고 욱양자를 포함한 금선 수사들 그리고 다른 진염종 수사들의 몸이 두 조각으로 분리되었다.

    바로 그때, 극한의 기운을 머금은 하얀 안개가 몰려들어서 진염종 수사들의 몸 조각들을 꽁꽁 얼려 버렸다.

    거대한 빙산의 일부가 된 진선경 수사들은 숨이 끊어졌고, 금선들은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좋아, 좋아.”

    거령이 손뼉을 치며 기뻐하다 팍! 인상을 썼다.

    청록색 호리병은 위력이 큰 대신 아직 연화를 다 마치지 못해 선령력 소모가 극심했다.

    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심호흡을 하고는 호리병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빙산 속의 진염종 수사들을 차갑게 쳐다보았다.

    욱양자 등 세 명의 수사들은 몸에서 핏빛 화염을 방출해 빠르게 서로의 기운을 연결하고 폭발을 유도하고 있었다.

    쩌저적!

    거대 빙산이 갈라져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새하얀 구렁이가 열 받아 공격하려 했으나 늦고 말았다.

    틈 사이로 흐릿하게 원영 소인 세 명이 빠져나와 달아났다.

    푸푸푹!

    푸른 거대 애벌레가 쏘아 보낸 실들이 쾌속으로 날아갔으나 원영들을 붙들기엔 역부족이었다.

    “허튼짓들 하기는.”

    거령이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을 튕기자 은빛 뇌전 한 줄기가 흐릿하게 사라졌다.

    다음 순간 세 명의 원영 위로 구멍이 뚫리고 은색 작은 병이 나타나서 삽시간에 은빛으로 원영들을 가두었다.

    은빛에 갇힌 원영들은 엄청난 늪에 빠진 듯 움직이지 못했다. 이에 욱양자의 원영이 결연한 기색으로 입을 벌렸다.

    서걱!

    조그만 핏빛 도가 튀어나와 번개처럼 원영을 머리부터 갈랐다.

    잘려나간 원영 반쪽이 즉시 불타오르며 더 작은 화염 소인으로 변해 양손으로 주변의 은색 광채를 뜯어내 틈을 만들어냈다.

    팟.

    욱양자의 나머지 원영 절반이 그 틈으로 번개처럼 빠져나와 핏빛 도를 흡수했다. 절반 짜리 원영은 속도가 몇 배로 빨라져 하늘을 갈랐다.

    “흠…….”

    거령이 흠칫 놀라 손을 쓰려 했지만 막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러자 은색 병이 나머지 두 원영을 흡수하고 있었다.

    쿠콰쾅!

    하얀 빙산을 쪼갠 새하얀 구렁이가 안에 들어있던 진염종 수사들의 저물법기를 부지런히 모아다가 거령에게 가져다주었다.

    “오늘 꽤 잘했다.”

    여인은 저물법기를 거두고 거대 구렁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칭찬했다. 잠시 후 구렁이는 몸을 틀어 그녀의 허리춤의 작은 주머니로 들어가고, 푸른 애벌레도 돌아와서 또 다른 주머니로 들어갔다.

    “계속 쫓을 건가요?”

    금색 딱정벌레가 입을 벌려서 놀랍게도 사람을 말을 했다. 목소리가 맑고 앳되었다.

    “너희 셋 중에 네가 가장 빠르지 않더냐. 그런데 원영들이 도망칠 동안 넌 뭘 했지?”

    거령이 서늘하게 물었다.

    “겨우 금선 원영 셋이라 당신의 실력이면 금방 회수할거라 생각했는데요.”

    금빛 딱정벌레는 잠시 멈칫하다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흥, 잠재력을 보고 심혈을 기울여서 키워주었건만 주제를 모르는 것!”

    거령의 질책에 금색 딱정벌레는 알겠다고 웅웅 답했는데 무척 성의가 없어 보였다. 분명 눈빛이 매서워졌는데 거령은 의외로 금빛 딱정벌레 영충에게 관대한지 화를 억눌렀다.

    “계속 쫓아라.”

    여인의 명에 영충은 금빛으로 변해 더없이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 위에 주저앉은 거령은 수결을 맺어 호리병에서 붉은 깃발 8개를 불러냈다.

    “낡은 호리병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녀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새로 얻은 보물을 살피는데 금색 딱정벌레가 웅웅 중얼거렸다.

    “평범한 보물하고 선기가 비교가 되는 줄 아느냐! 현천의 물건이 자연적으로 자라나 무상의 신통을 함유하고 선천선기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 것 같으냐. 게다가 이 호리병이 함유한 법칙은 일계의 가장 근간이 되는 비밀을 품고 있고 말이야! 언젠가 그 중 어느 신통이라도 깨우치게 되면 엄청난 힘을 손에 넣게 되겠지.”

    거령의 말투는 냉랭했으나 숨은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헤헤, 그래요? 대단하네요.”

    금빛 딱정벌레가 눈을 데구루루 굴리다 답했다.

    “어찌 되었든 이번엔 현천의 보물도 있겠다. 태을단은 내 것이다. 내가 태을경에 이르러 이 보물의 현묘한 신통들을 익히면 이후 대라의 경지에 이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겠지. 너도 착실히 나를 따라 다니면 이후 섭섭지 않게 대우해줄 것이야.”

    “아 그럼, 미리 감사 인사드립니다.”

    거령은 여전히 건성건성 대답하는 영충의 태도에 얼굴이 구겨졌다.

    “은혜도 모르는 것!”

    여인은 더는 금빛 딱정벌레와 말을 섞지 않고 계속해서 호리병을 관찰했다.

    벽옥을 세공해 만든 것처럼 반짝이는 호리병박의 입구에 색깔이 약간 연한 부분이 있어 아직 덜 자란 것 같기도 하고 오점 같기도 했다.

    “너무 일찍 꺾어 왔어. 수만 년만 더 기다렸으면……. 돌아가 좋은 영토를 찾아 영액으로 백만 년 정도 보양하면 그럭저럭 괜찮아지겠지.”

    * * *

    굽이굽이 이어진 적홍색 산맥 위를 창류궁 수사들이 날아갔다. 그들은 둔광을 연결해서 거대한 남색용처럼 하늘을 누비고 있었다.

    아래쪽의 울창한 숲에서 수시로 강력한 영기 파동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영초나 영약이 있는 것이 분명했는데 낙청해는 오직 전방만을 주시했다.

    “궁주님, 이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요. 이곳에 영초가 많은 듯한데 모아가면 다 쓸데가 있지 않겠습니까.”

    다들 눈치를 보고 있자 백면서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 서두르는 데는 이유가 있으니 사제는 더는 말할 것 없네.”

    “예.”

    낙청해의 단호한 대답에 움찔한 백면서생도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

    * * *

    이때 북한선궁 일행은 짙은 남색 궁전 앞에 있었다.

    그 안에서 광채가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것이 적잖은 보물들이 있는 듯싶었다. 수사들의 눈에 탐욕이 어렸다.

    “들어들 가거라. 딱 1각을 줄 것이니 1각 후 바로 출발한다.”

    뒷짐을 쥔 소진한의 분부에 북한선궁 수사들이 힘차게 답하고 안으로 날아들었다.

    * * *

    잿빛 운해 속 회색 선박이 순풍을 타고 앞으로 날아갔다.

    구름 속에서 때때로 검은 뇌전이 번득 떨어졌지만 선박의 보호막이 그것을 차단하고 있었다.

    회색 도포를 입고 갑판에 나와 앉아 있는 이들은 복릉종 수사들이었다. 마르고 키가 큰 봉천도가 중앙에 앉고 나머지 수사들이 그를 둘러싸고 둥그런 진을 형성했다.

    그들의 몸에서 회색빛이 반짝이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비술을 펼치는 듯했다.

    “어째서 격원법련들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게지. 대체 어디로 달아난 것이야.”

    봉천도가 문득 눈을 뜨고 눈살을 찌푸렸다.

    * * *

    선부 모처의 허공에서 붉은 빛덩이가 만리 운해를 번개처럼 가로질렀다.

    그 안에는 검은 수염의 노인과 노란 치마를 입은 여인, 바로 호언 도인과 운예가 있었다.

    “…….”

    그들은 진지한 얼굴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수결을 맺고 법결을 날려 둔광을 재촉했다.

    * * *

    남려족 수사들은 늪지 위에서 황토색 괴조 떼에 둘러싸여 있었다.

    사람보다 네다섯 배는 큰 괴조들은 머리에 초록색 혹이 나고 부리와 발톱이 날카로워 성질이 사나워 보였다.

    수행은 그리 높지 않았으나 수백 마리에 달하는 괴조들이 쾌속으로 날아다녀 남려족 수사들의 걸음을 붙들고 있었다.

    * * *

    각각의 세력들이 명한선부에 들어온 지도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서 다들 선부 깊숙이 들어가 각자의 기연을 찾고 있었다.

    운이 좋은 이들은 많은 보물을 얻었고 운이 나쁜 이들은 대부분 다른 이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아주 오랫동안 고요하던 명한선부 곳곳에서 바람이 불고 구름이 일었다.

    무진사해를 가로지르는 청연주 위에서 한립이 남색빛이 어린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 옆에는 육우청이 지도가 적힌 옥간을 들고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지도에서 수령지를 찾아 화독을 해결한 것이 분명했다.

    수령지를 떠난 뒤에도 차츰차츰 중독이 됐지만 예상한 경로대로 갔다가 돌아오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무진사해 심처에 이른 그들은 통로가 있으리라 추정되는 곳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때 한립이 돌연 눈을 가늘게 뜨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 또 녹음이 보였다.

    “이게 83번째 신기루 환영이에요. 여기서부터 동북쪽으로 방향을 틀면 되겠어요.”

    육우청이 바로 그의 시선을 따라가 녹음을 확인하고 말했다.

    이에 한립은 진언보륜을 불러내서 수결을 맺고 고리 사이로 진실안을 불러냈다. 진실안의 눈동자에서 은은한 금빛이 나와 전방을 밝혔다.

    한립이 선박의 이동 방향을 약간 틀었는데도 오아시스는 여전히 앞에 있었다. 청연주가 굳이 피하지 않고 그 안으로 진입하자 주변 풍경이 확 달라졌다.

    울창한 밀림 가운데 호수가 있어 촉촉한 바람이 불어와 훨씬 청량하고 시원하게 느껴졌다.

    한립은 그러든 말든 무표정한 얼굴로 진실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육우청은 즉시 눈을 감고 앉아 의식을 보호하려 운공을 시작했다.

    파사삭.

    장장 일각이 지나 녹음이 푸르던 광경이 거품처럼 층층이 깨지고 다시 끝없는 모래사막으로 돌아갔다.

    한립의 시선도 청연주도 변하지 않고 시종일관 전방을 향하고 있었다.

    “신기루 환영이 이렇게 강력할 줄은 몰랐어요. 한 오라버니가 있어서 망정이지 제가 지도만 들고 찾아가려고 했으면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육우청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웃음 지었다. 그녀를 본 한립의 입가에도 잔잔히 미소가 어렸다.

    “통로가 멀지 않았는데 미리 알아본 정보에 따르면 금선경 요수가 지키고 있대요. 들어가기가 쉽지는 않을 거예요.”

    “어떤 요수인지는 모르는 것인가?”

    “실력이 강하고 오랜 세월 통로를 지키고 있다고만 들었어요.”

    “괜찮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움직이면 되겠지.”

    한립이 잠시 생각해보다 고개를 끄덕이자 육우청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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