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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09화 (1,466/2,000)

1709화. 끝없이 펼쳐진 모래 바다

*

한립은 청회색 석판을 거두고 허공을 응시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아직도 호언 도인과 운예가 어디에 있는지, 그들이 말한 보물은 또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명한선부 안의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복잡했고 면적은 광활해서 그가 마구 돌아다니면서 찾는다고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가 다시 눈을 감으려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썹을 끌어올렸다.

팟.

그의 손에는 은은한 금색 저물탁이 들려 있었다. 바로 웅산의 저물탁이었다.

아직 제대로 내용물을 확인해 보지 않았는데 상당한 수행의 검수에다 무생검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고 그보다 먼저 유한궁에 발을 들였으니 적잖은 물건이 들어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립은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의식 한 줄기를 저물탁 안으로 넣었다가 얼굴이 굳었다.

‘이게 무슨…….’

촉룡도 부도주이자 진선경 후기 검수의 저물탁 안이 텅 비어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건 아니었고, 저물 공간 구석에 재료 몇 개와 잡다한 물건들이 들어있기는 했으나 진귀한 보물은 아니었다.

유일하게 눈여겨 볼만한 것이 회복용 단약 몇 병과 경전 몇 권이 다라 정말 불쌍할 정도로 빈곤한 저물탁이었다.

심지어 선원석도 몇 개 없었으니 무얼 바라겠는가. 그러나 그는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웅산은 지난번에 검을 제련하기 위해 가산을 탕진했고 몇백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곳에서 두 번째로 제련을 시도했다.

가지고 있던 보물들이 남아나지 않을 만도 했다. 그는 약간 실망했지만 그런 기분을 털어버렸다.

유한궁에서 이것저것 챙겼으니 너무 탐욕을 부리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는 평정을 되찾고 저물탁 안의 물건을 꺼내 대충 분류해 거두었다.

그 앞에는 은색 옥함과 그 안에든 세 개의 옥간 밖에 없었다.

솔직히 웅산이 수련한 공법에 흥미가 가던 터라 그는 곧장 그중 하얀 옥간을 들어 의식을 불어넣었다.

그 안에 적힌 금속 속성 공법인 <대상양검결(袋殤陽劍訣)>은 금선 경지까지 수련할 수 있어 웅산의 주 수련 공법으로 추정되었다.

검을 수련해 도를 이룬다는 대상양검결은 오행법칙 중에서 금속 속성 법칙을 깨우쳐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한다고 적혀 있었다.

한립은 금속 속성 공법에 대해서는 깊이 발을 들인 적이 없어 그다지 유용하지는 않았고 공법 가장 마지막에 적힌 검도(劍道) 비술과 깨달음 정도가 그나마 연구해볼 가치가 있었다.

그는 공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고 의식을 회수해 연한 금색 옥간을 들어 올렸다.

여기 적힌 연체공법인 <나한금신결(羅漢金身訣)>은 웅산이 유한궁 밖 계단을 오르며 펼친 연체술이었다.

수련해서 나한금신(羅漢金身)으로 변신하면 위력이 상당했으나 금속 속성 법칙을 장악해야만 익힐 수 있었다.

여기까지 확인하고 흥미를 잃은 한립은 대략적인 내용을 살피고 마지막 옥간으로 넘어갔다.

마지막 옥간 안에 담긴 것은 단약 제련을 위한 약방문들이었다.

대부분 금속 속성 단약이고 도단은 아니었지만 지계 단약에 관한 내용이 많아서 진선경 수사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의식을 회수한 한립의 얼굴에 의문이 어렸다. 어느 옥간에도 천봉취령검진에 관해서는 적혀 있지 않았다.

설마 웅산이 내용을 파악하고 없애기라도 했단 말인가?

“음?”

한립은 옥간들을 함에 넣어두려다 갑자기 탄성을 흘렸다. 들고 있던 옥함을 이리저리 만져보다 달칵! 숨겨진 층을 분리해 낸 것이다.

옥간 바닥에는 회색 천 같은 게 곱게 접혀 있었다.

‘이게 뭐지?’

네모난 회색 천은 무척 지저분했는데 자세히 살피자 무늬 같은 게 언뜻언뜻 보였다.

그 무늬란 것이 이상해서 진법 문양이나 주술문자도 아니고 부적에 쓰이는 주술이나 그가 알고 있는 고어도 아니었다.

하지만 또 되는대로 그려놓은 무늬는 아닌 것 같았다.

회색 천을 쓸어보니 매끈하고 청량한 감촉이라 어떤 재질로 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고, 한참을 살피다 명청령안과 진실안까지 펼쳐 보았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어떤 영력 파동도 느껴지지 않는 천은 현묘한 무늬를 제외하면 아주 평범해 보였다. 그러나 웅산이 평범한 천을 꽁꽁 감춰놓았을 리 없다는 것이 신경 쓰였다.

침음하던 한립은 자기도 모르게 들고 있던 천을 구겨보았다.

“엇!”

놀랍게도 두꺼운 철판도 부드럽게 뭉칠 수 있는 그의 악력에도 회색 천은 전혀 구겨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겨 손가락에 힘을 더 줘봤지만 팽팽하게 당겨진 천은 변화가 없었다.

한립은 전력을 다해 천을 당겨보다가 이번에는 손가락을 튕겨 불꽃도 날려보았다.

화륵!

불길이 뜨겁게 타오르는데도 회색 천은 변화가 없었다. 연이어 남색 물줄기로 휘감아도 보고, 다섯 줄기의 뇌전도 날려보았지만 천은 멀쩡했다.

반 시진 후, 한립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온갖 방법을 다 시도했지만 회색 천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웅산이 전 재산을 전부 탕진하면서도 팔지 않은 이유가 있겠지. 나중에 천천히 살펴봐야겠구나.”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천을 거두었을 때 육우청 주위의 푸른빛이 깜빡거리다 체내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눈을 뜬 그녀는 안색이 좀 나아져 있었다.

“한 오라버니,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한립에게 미안한 내색을 했다.

“괜찮네. 그보다 이곳이 어디쯤인지 알겠는가?”

한립은 누런 하늘과 검은 돌 천지인 땅을 둘러보고 물었다.

“유한경의 지형은 원래 다양하고 자연환경도 다 달라서 이런 사막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여기서 살펴봐서는 어디쯤인지 모르겠네요.”

“그럼 주위를 둘러보세. 인적이 드물어 보인다고 방심할 수는 없지.”

청연주를 불러낸 한립의 말에 육우청도 동의하고 선박에 올라탔다.

무작위로 방향을 정해 날아가기 시작한 한립은 이곳이 폭설이 내리던 빙원처럼 의식을 퍼트리는데 제약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강대한 그의 의식도 수백 리까지 밖에 퍼트릴 수 없어 너무 빠르게는 날아가지 않았다.

잠시 후 한립이 어딘가를 응시하면서 발끝으로 선박을 쳐 멈추었다.

“뭐가 있나요?”

“뭔가를 발견하기는 했는데 무척 귀한 것들은 아니긴 하네. 한 번 가보도록 하지.”

육우청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그는 선박의 방향을 좌측으로 살짝 틀어서 3백 리 넘게 날아가다 멈췄다.

그리고 선박에서 뛰어내려 대량의 흑자색 버섯들이 자라고 있는 땅으로 향했다. 사람 키만큼 자란 버섯들은 짙은 보라색 반점이 찍혀 있고 테두리는 붉어 아주 화려했다.

이런 버섯들이 사막 한가운데 자라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마운고(摩雲菇)네요!”

“이걸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인가?”

버섯들을 보고 좋아하는 육우청의 모습에 한립이 눈을 반짝였다.

극독을 함유한 마운고는 독약이나 독 관련 보물을 제련하기에 유용했지만 독성이 진선경 이상의 수사들에게는 통하지 않아 저리 반길 이유가 없었다.

“네!”

육우청은 신이 나는 얼굴로 청록색 옥간을 꺼내 푸른 빛을 던져넣었다.

파앗!

옥간에서 녹색 빛이 빠져나와 빛의 장벽을 이루었고 그 위에 열댓 가지 각기 다른 색깔로 구분되는 지도가 펼쳐졌다.

유심히 살피지 않아도 완전한 지도가 아니라 절반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흑풍도에서 얻었다는 유한경 지도로군.”

“맞아요. 저희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유한경은 각기 다른 기후와 자연환경을 지닌 백여 개의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 십여 구역이 담긴 지도예요.”

육우청의 설명에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빛의 장막을 훑었다.

지도는 아주 세밀하게 제작이 되어서 각 구역의 묘사가 사실적이었지만 그들이 지나친 폭설 빙원, 새까만 산맥 그리고 검은 해역 같은 곳은 담겨 있지 않았다.

“저희가 이전에 지나왔던 세 구역은 지도에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서 헤맬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지금은 어디 있는 것인가?”

“여기요! 이 검은 사막지대를 흑암과벽(黑巖戈壁)이라 부르는데 유한경 내의 비슷한 사막지대 서너 곳 중 대량의 마운고가 자생하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거든요.”

육우청은 검은색으로 표현된 구역을 가리켰다.

“현재 위치를 찾았으니 다행일세! 한 치 앞도 모르고 유한선궁 안을 돌아다니는 건 너무 위험 부담이 큰일이니까.”

“흑암과벽은 열댓 구역 중에서는 비교적 안전한 지대예요. 한수들이나 폭풍 한류 같은 것은 없다고 알고 있어요.”

“우리의 운이 그리 나쁘지 않은 모양이군.”

“아뇨, 우리가 운이 너무 좋은 거예요!”

한립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은 육우청이 어린아이처럼 웃음을 흘렸다.

“오, 그게 무슨 뜻이지?”

“여기 보이세요?”

그녀는 검은 사막지대 위쪽의 노란 구역을 가리켰다. 지도에서 가장 바깥 지대였다.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겠군.”

“무진사해(無盡沙海)라고 부르는 사막지대로 유한경 북극지역의 끝부분이에요.”

“그게 어쨌다는 것이지? 무진사해에 보물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보물이 있을지는 저도 몰라요. 하지만 한 오라버니도 아시다시피 명한선부 내에 유한경 말고 아직 다른 수사들이 수색못한 영역이 있다는 말이 돌잖아요? 바로 그 영역으로 통하는 통로가 무진사해에 있다고 들었어요!”

의아한 한립의 얼굴에 육우청이 거침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게 사실인가!”

“물론이죠. 솔직히 유한경 안은 그간 선부에 들어왔던 수사들이 대부분 수색을 마쳤잖아요. 저도 새로 발견되었다는 다른 구역을 한 번 살펴보는 것이 바람이었는데 전송진에 문제가 생겨서 무진사해 인근으로 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제 말대로 우리 운이 너무 좋은 것 맞죠?”

“확실히 나쁘지 않군. 시간을 끌어야 좋을 것 없으니 바로 움직이세.”

한립은 들뜬 육우청과 함께 서둘러 청연주로 돌아갔다.

다른 수사들이 수도 없이 뒤졌을 유한경 안에서도 이렇게 많은 보물을 구했는데 미지의 영역에서는 어떤 기연을 얻게 될지 모른다.

푸른 옥 조각을 거둔 육우청도 선박으로 돌아왔다.

* * *

사흘 뒤. 그들 앞에 광활하다 못해 무한해 보이는 노란 사막이 펼쳐졌다.

옅은 노란색의 자갈과 모래가 햇살에 투명하게 반짝여서 눈이 부셨고 열기를 품은 건조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막 전체가 모래가 가득 담긴 거대한 화로 안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인가 보군.”

“네, 무진사해예요!”

“겉보기에는 수월하기 돌아다닐 만한 곳이 아닌 듯한데 아는 바가 있는가?”

“역시 한 오라버니의 안목은 남다르네요. 일단 사막 자체가 화독(火毒)으로 가득 차 있어서 진입하는 순간 천천히 중독이 시작되어서 금선 수사도 위험할 수 있다고 해요.”

육우청이 미소를 머금은 아는 바를 이야기해주었다.

“일반적인 화독은 아니겠지?”

“평범한 해독용 단약으로는 해결을 할 수 없고 사막에서 수원을 찾아서 그곳의 특수한 물의 기운으로만 서서히 중화할 수 있어요. 제때 수령지(水靈地)를 찾지 못하면 금선 수사도 죽을 수 있고요.”

“그밖에는?”

“화독 말고는……. 사막에서 때때로 강력한 신기루 환영을 만날 수 있는데,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해서 그곳을 떠나지 못할 수도 있대요. 이 화독과 신기루 때문에 무진사해가 악명이 자자해져서 이전에 명한선부에 진입했던 이들은 잘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듣고 있자니 한번 들어가면 구사일생(九死一生) 하기도 어려운 위험한 지역일세. 그런데 다른 영역으로 향하는 통로가 바로 이 사막 어딘가에 있단 말이지…….”

“그것도 무진사해 깊은 곳에요. 하지만 저만 믿으세요! 제게 무진사해 지도도 한 부 있으니까 조심해서 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통로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한립의 중얼거림에 육우청은 또 다른 옥간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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