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8화. 일촉즉발
*
쿠아앙!
네 번째 하얀 빛기둥이 솟아오르며 굉음이 들려왔다. 비경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하늘과 땅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육우청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검을 제련하려고 만든 공간이니 분명 출구가 있을 걸세. 늦기 전에 흩어져서 찾도록 하지.”
한립이 한쪽을 골라 튀어 나가자 육우청이 얼른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얼마 날아가지 않아 멈춘 그녀는 의아한 눈빛으로 거산의 산허리 쪽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둔광을 크게 일으켜 그곳으로 날아갔고 한립은 산의 다른 면을 따라 정상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의식은 넓게 퍼트리고 두 눈에서는 강렬한 남색빛을 뿜어 이동하는 곳마다 수상한 점이 없는지 빠짐없이 확인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주문을 외자 진실안이 나타나 주변을 주의 깊게 수색했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산 중턱에 이르러 우뚝 멈춰 섰다.
더 올라가봤자 방금 돌풍으로 초목이 다 베어나가서 민둥산과 절벽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한동안 새로운 하얀 빛기둥이 나타나지 않았으나 이미 형성된 균열이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넓고 깊어지고 있었다.
그가 막 몸을 돌려 다른 방향을 살피려는데 머릿속에 육우청의 목소리가 울렸다.
“여기로 어서 와보세요!”
그는 휙 하고 아래로 방향을 틀어 빠르게 사라졌다.
“무엇을 발견한 것인가?”
한립이 다가가자 육우청이 두 눈에서 검은빛을 반짝이면서 산 중턱의 절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명청령안으로 살펴도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던 그는 진실안으로 절벽을 살펴보고서야 희색을 드러냈다.
쉭!
그가 손끝에서 푸른 비검을 날려 보내자 평범해 보이던 절벽에 하얀빛이 한줄기 떠올랐다가 은밀하게 사라졌다.
“금제가 있어! 육 수사의 영목이 과연 탁월하구만.”
“아니에요, 저도 우연히 발견한걸요. 걱정인 건 금제 뒤편에 뭐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금제를 열어보면 알게 되겠지.”
한립은 육우청의 걱정을 눈치챘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손을 저었다.
파앗.
푸른 거검이 떠올라 요란하게 빛났다.
한립의 손짓에 바람 소리와 천둥소리를 품은 굵직한 금색 뇌전이 절벽에 내리꽂혔다.
우웅!
위기를 느낀 듯 절벽에서 두꺼운 하얀 보호막이 형성되었다.
금빛 뇌전이 하얀 보호막을 때리고 사각! 하는 소리와 함께 현묘해 보이던 금제가 종이처럼 잘려나갔다.
하얀 보호막 잔해 사이로 작은 골짜기 입구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안쪽의 편액에 비선각(飛仙閣)이라는 세 글자가 적힌 웅장한 대전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반쯤 열린 대전의 문안에서 은은한 공간 파동이 실린 부드러운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공간 파동을 감지한 한립과 육우청은 쾌재를 부르면서 골짜기로 날아들어 대문을 지났다.
드넓은 대청 안에는 오로지 방원형의 무대만이 존재하고 그 위에 하얀 진법이 빛을 머금고 있었다.
바로 무대 위로 오른 한립은 진법이 전송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법 곳곳에 박혀 있는 선원석이 족히 2백 개는 넘어 보였는데 세월이 너무 오래 지나서인지 몇몇 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투명하게 빛을 잃어 있었다.
그 순간, 바깥에서 연달아 폭음이 들려왔다.
하늘과 땅을 빼곡하게 채운 비경은 네 개의 빛기둥이 사라지고 진정으로 사라질 조짐을 보였다.
비경을 가로지르는 공간균열 중 하나가 마침 거대한 산봉우리의 정상을 가르고 지나갔다.
쿠콰쾅!
산 전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골짜기로도 바위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서두르세!”
한립은 큰 소리로 말하고는 7개의 고리를 날려 보냈다.
연달아 연결되어 크기를 키운 7개의 고리가 눈부신 빛을 발산해 골짜기 위로 별빛 보호막을 펼쳐 바위들을 막아냈다.
그 사이 한립과 육우청은 열심히 빛을 잃은 선원석들을 빼내고 새것으로 갈아 끼우고 있었다. 새 선원석이 늘어갈수록 전송진의 하얀빛도 밝아졌다.
한립이 곧장 전송진에 오르려다 걸음을 돌려 진법 한쪽을 살펴보았다. 다른 곳에 비해 이곳의 문양은 조금 흐릿했다.
간신히 미미한 양의 영력만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설마 전송진에 문제라도 있나요?”
그걸 본 육우청이 조급하게 물었다.
한립은 수결을 맺어 연달아 문양에 법결을 던져 넣어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만들고 몸을 돌렸다.
“오래된 탓에 전송진법 자체가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네.”
“정말요? 한 오라버니도 수리하지 못하시는 거예요?”
비경의 붕괴가 가속화되는 중이라 육우청은 깜짝 놀라 말했다.
“진법에 익숙지 않아 내 능력 밖이지만 걱정하지 말게. 한 번은 어떻게든 작동시킬 수 있을 테니까.”
그 말에 안도한 육우청은 서둘러 그를 따라 전송진으로 들어왔다. 한립은 빠르게 주문을 외기 시작했고 그의 손에서 법결이 날아갔다.
웅.
전송진에서 하얀빛이 흘러나와 대전을 가득 채웠다.
바로 이때 산 아래 입구가 있던 자리에 파문이 일고 한 명씩 수사들이 등장했다. 바로 혈한 무리였다.
“아둔한 것들이 겨우 입구를 찾는데 장장 사흘이나…….”
짜증스러운 얼굴로 수사들을 질책하던 그가 비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수사들도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바보처럼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서 돌아가라! 공간 전체가 무너진다!”
혈한은 고함을 치며 바로 몸을 돌렸으나 마지막 사람까지 안으로 들어오자 입구의 파동이 사라지고 안정된 공간만이 남았다.
돌아갈 길을 잃은 혈한의 전신에 식은땀이 쭉 흘러나왔다. 공간 붕괴의 여파에는 금선인 그도 무사할 수 없었다.
“대인, 저길 보십시오!”
그때 골염산인이 손을 뻗어 산 중턱에서 하얀빛이 반짝이는 것을 가리켰다.
“가자! 그놈들이 전송진을 이용해 이곳을 떠나려는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든 혈한이 검은빛으로 변해 골짜기 대전 쪽으로 몸을 날렸다. 다른 이들도 우르르 그 뒤를 쫓았다.
대전 안의 한립은 신중히 수결을 맺어가며 전송진 발동에 여념이 없었다. 진법 한 귀퉁이가 거의 없어져 가는 터라 서두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나 전송진이 격렬하게 웅웅거릴수록 불안하던 귀퉁이 문양이 어두워졌다.
곁눈질로 그곳을 주시하던 한립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혔다. 그와 진법을 번갈아 보는 육우청이 긴장해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설상가상으로 산 아래에서 여러 둔광들이 날아들자 육우청은 나지막이 비명을 내질렀다.
“큰일이에요! 혈한 무리가 쫓아왔어요!”
진법을 발동하는데 주의하느라 주변을 경계할 여력이 없던 한립은 급히 고개를 들어 혈한 무리의 검은빛이 벌써 대전 밖에 도착해 진법으로 날아오려는 것을 발견했다.
한립은 눈빛이 매서워지며 한 손으로 번개같이 다른 수결을 맺었다.
골짜기 상공을 가리고 있던 별빛 보호막이 사라지고 7개의 고리가 대전 문 앞에 나타나 혈한의 검은빛 속으로 파고들었다.
대전 문 앞에서 즉시 노기 가득한 혈한의 괴성이 들려왔다. 그의 사지와 가슴, 배 그리고 목에 고리가 하나씩 생겨 살을 파고들고 있었다.
“윽, 이딴 게 갑자기 어디서!”
혈한의 몸에서 검은빛이 꿀렁꿀렁 흘러나와 먹처럼 칠요성환을 물들였다. 별빛이 어두워지면서도 일곱 개의 고리는 필사적으로 혈한을 막고 있었다.
입에서 맹렬히 푸른빛을 진법으로 날린 한립은 다시 법결을 던져 넣었다.
후우웅!
전송진에서 방출된 하얀빛이 드디어 어느 임계점에 도달해 공간의 힘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한립과 육우청의 신형이 흐릿하게 사라진 순간이 전송진 구석 문양의 한계였다. 퍼석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구석 문양에 금이 가면서 전송진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대전 밖에서는 혈한이 검은빛을 마구 방출해 몸을 팽창시키고 있었다.
펑-!
마침내 자신을 막던 고리들을 부숴버린 그는 번득 대전 안으로 들어가 구석에 금이 간 전송진을 발견하고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 이럴 수가!”
뒤늦게 합류한 골염산인 등 수사들의 얼굴도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쿠쿠쿠쿵!
비경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공간이 큼지막한 조각으로 나뉘어 공간균열 속으로 뜯겨나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산봉우리도 우르르 무너져 대전이 있던 골짜기가 바위 속으로 사라졌다.
* * *
어두운 공간에 검은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크고 작은 검은 돌들이 깔린 사막은 암석 틈으로 드문드문 자란 풀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이었다.
콰쾅!
침침한 허공에 파문이 일더니 검은빛이 모여들어 구슬을 이루고 뇌전과 기이한 기운을 번득였다.
검은 구슬은 돌연 공간균열로 탈바꿈해 사내와 여인의 신형을 토해냈다.
새까만 피부의 중년 거한은 비틀거리면서 겨우 몸을 가눴지만 두 눈은 형형하게 빛났고, 여인은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둘 다 혈색이 좋지 않았는데 특히 여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입가에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막 전송진을 이용해 비경을 벗어난 한립과 육우청이었다.
한립과 육우청은 똑바로 몸을 세우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순간 전송진이 발동하기는 했는데 공간의 붕괴와 맞물리면서 두 사람을 공간 난류로 날려버려서 겨우겨우 빠져나오는 길이었다.
공간균열이 불규칙하게 깜빡거리다 봉합되어 사라졌다.
주위의 낯선 풍경에 한립은 곧바로 의식을 방출해 위험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청록색 단약을 삼켜 기운을 안정시켰다.
“여기가 어딜까요. 명한선부를 아예 빠져나온 건 아니겠죠?”
그녀가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전송진에 문제가 생기면 정해진 지점보다 까마득히 먼 곳으로 이동하는 일도 흔했고 두 사람은 공간 폭풍에 휘말렸다 빠져나오기까지 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아닐 걸세. 희박하기는 해도 아직 유한경 특유의 기운이 느껴져.”
“그럼 다행이네요.”
“전송진도 망가졌고 혈한 무리가 무사히 빠져나올 가능성은 많지 않으니 잠시 숨을 돌려도 될 것 같군.”
육우청의 부상이 심했고 그도 공간 난류를 벗어나느라 선령력이 바닥나 있었다. 황량해 보이기는 해도 위험한 곳만 아니면 쉬어가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좋아요!”
바라 마지않던 소리라 육우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사막에 여러 겹의 금제를 펼치고 각자 떨어져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한립은 선원석 두 개를 꺼내 천천히 선령력을 보충하기 시작했다.
반나절 후.
눈을 뜬 한립은 선령력을 완전히 회복해서 눈빛이 맑았다.
명한선부에 들어와 겪은 일들과 연이은 전투에 체내의 선령력이 얼마간 더 정순해져 있었다.
‘혹시…….’
한립은 다시 눈을 감고 마지막 선규를 감응해 보았지만 아직 뚫리려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육우청이 몇 겹의 푸른빛으로 전신을 감싸고 아직 운공하는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그는 시선을 거두고 청회색 석판을 꺼내 들었다. 이번에 얻은 <대주천성원공> 후반부 구결이었다.
영보를 찾고 전투를 하느라 바빠서 아직 제대로 살펴본 적이 없었다. 그의 눈에서 남색빛이 반짝이자 석판이 몇 배로 크게 보이면서 글자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들어왔다.
장장 한 시진 동안 명청령안을 펼친 한립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후반부 공법은 이미 달달 외워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고 전반부 공법과 마찬가지로 총 18개의 현규를 뚫을 수 있는 방법이 담겨 있었다.
이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후반부 공법을 익혀 새로운 현규 18개를 뚫으면 마지막 선규 하나도 무리 없이 뚫을 수 있을 것이다.
후반부 공법도 전반부와 똑같이 성광지력을 몸 안으로 이끌어 현규를 뚫도록 하고 있었다.
다른 점은 그 과정이 더 복잡하고 대량의 성광지력이 필요한 데다 단련된 신체에 대한 요구도 그 전보다 더 높다는 것이었다.
그는 당장 복잡한 일들을 미루고 폐관 수련할 장소를 찾고 싶었으나 명한선부는 수련하기에 적합한 곳도 아니었고 머물 수 있는 시간제한까지 있었다.
거기다 그는 호언 도인을 도와 무슨 보물을 찾아야만 진언보륜의 후속공법을 얻어 명한선부 일을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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