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7화. 일검으로 하늘을 찌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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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뿐사뿐 이동하던 육우청이 도관 중앙의 조사당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미간을 좁히고 내부의 위패들을 살피더니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쿠르릉!
바로 그때 허공에서 세찬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육우청은 깜짝 놀라 몸을 떨며 약간 맑아진 눈빛으로 서둘러 도관을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부신 푸른빛 기둥이 불바다 속에서 솟아올라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웅장한 검기가 푸른 빛기둥 속에서 발산되어 불바다가 요동치고 뇌전들이 영향을 받아 어지럽게 떨어졌다.
불바다 곁에서 한립의 눈이 밝아졌다.
쿠쿠쿵.
또 하나의 푸른 빛기둥이 불바다 속에서 솟아올라 무시무시한 검기 파동을 내뿜었다.
이어서 푸른 빛기둥들이 차례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몇 호흡 만에 72번의 빛기둥이 나타나 허공으로 모였다.
적홍색 화염 바다가 검기 파동에 촛불처럼 꺼지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백석 제단이 드러났다.
허공의 먹구름도 하늘을 뒤덮은 72줄기의 검기에 흩어져 종적을 감추었다.
파앗.
엄청난 검기가 돌풍을 이루어 사방으로 몰아치자 한립은 담담하게 수결을 맺어 별빛으로 진극막을 형성했다.
출렁출렁 다가온 기운의 파랑이 그를 덮치자 소란스러운 충돌음과 함께 진극막이 반짝거렸다.
그럼에도 한립은 꿈쩍하지 않고 백석 제단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콰콰쾅.
엄청난 돌풍에 산정상의 울창하던 숲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지면이 깎여 나가 평평하게 변했다.
주변의 금제를 웅산이 이미 파훼해 두었기에 도관 건물들도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이때 육우청이 날카롭게 기합을 넣고 푸른 깃털 부채를 불러내 거칠게 부쳤다.
휘이잉!
깃털 부채에서 빠져나간 푸른 기운이 바람기둥을 형성하고 도관을 둘러쌌다. 영역을 넓히면서 기세가 한풀 꺾였지만 푸른 바람기둥이 크게 진동했다.
얼굴이 창백해진 육우청은 혀끝을 깨물어 핏물을 깃털 부채에 흡수시켰다.
우웅!
더욱 밝은 빛을 머금은 푸른 부채의 깃털 하나하나가 공작의 날개처럼 펼쳐지면서 파공음을 남기고 날아가 바람기둥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바람기둥은 돌풍에 맞서 더욱 기세를 높였고 차차 돌풍이 잦아들었다. 거대한 봉우리 전체가 흔들려서 크고 작은 바위들이 비처럼 떨어졌다.
잠시 후 바람기둥이 사라지고 황폐화된 산에서 도관만이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남아 있었다.
육우청은 크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표정은 평온했다. 그녀는 단약을 꺼내 복용하고는 고개를 들어 불바다와 뇌전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백석 제단을 살폈다.
그 위에 수십 덩어리의 푸른빛들이 태양처럼 밝은 광채를 내뿜고 있어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쉬쉬쉬쉭.
그러나 한립은 기쁜 얼굴로 한걸음 다가섰는데 바로 그때 푸른 태양이 갈라지면서 날카로운 검기를 분출했다.
백석 제단부터 수많은 검기에 관통당해 붕괴 되고 8개의 황금용 기둥들도 무너져 내렸다.
한립은 표정이 돌변해 앞으로 향하려던 몸을 뒤로 빼면서 급히 팔을 내저었다.
파앗.
중수진륜이 나타나 그의 앞을 막고 두꺼운 검은 물의 장막을 형성했다.
그의 대처는 빨랐지만 검기에 비할 수는 없어서 얼마 물러나지 못했을 때 검기들이 중수진륜을 공격했다.
카카카캉!
미친 듯이 흔들린 고리에서 금속성의 타격음이 들려오면서 검은 물의 장막이 빠르게 얇아져 갔다.
한립이 급히 수결을 맺어 빠르게 거리를 벌리자 돌연 푸른 검기들이 흩어졌다.
그걸 보고 안심한 한립은 중수진륜을 거두었다.
멀리 푸른빛이 가신 허공에 72자루의 푸른 비검들이 둥글게 모여 고요하게 떠 있었다.
한립은 번득 그곳으로 이동했다.
이번 제련으로 청죽봉운검은 반투명하게 변해 흐릿하게 그 안에서 흐르는 푸른 기류가 보였다.
방대한 영력 파동이 비검에서 흘러나와 인근의 천지영기를 진동하게 만들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희미하게 거대한 영력의 소용돌이가 형성되고 있었다.
한립이 다가온 것을 느꼈는지 72자루의 검들은 돌연 푸른빛으로 변해 그의 단전 속으로 날아들었다.
화들짝 놀란 그는 청죽봉운검들이 그 안에서 얌전히 떠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검들이 체내로 들어오자 변화가 더욱 확연하게 느껴졌다. 만검검원을 흡수한 청죽봉운검의 변화는 거의 수사의 환골탈태와도 같았다.
한 자루 한 자루가 그가 지닌 어떤 선기보다 더 많은 영력을 함유하고 있었다. 그가 힘들게 제련한 중수진륜보다도 더 많은 양이었다.
그저 청죽봉운검이 품은 힘은 수많은 검원을 흡수한 것이어서 혼잡하기는 했는데 천봉취령검진에서 검원을 흡수한 뒤에도 겪었던 현상이라 걱정되지는 않았다.
한립은 의식으로 단전 내에서 비검을 한 자루만 불러내 보았다.
팟!
눈앞에서 푸른빛이 연달아 반짝이고 나서야 비검이 떠올랐다. 뭔가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버벅거리는 느낌이라 저절로 눈꼬리가 올라갔다.
위력이 급증한 만큼 이후 손을 한 번 봐야 예전처럼 돌아갈 것 같았다.
검결을 맺은 그의 손짓에 비검 표면에 푸른빛이 두어 번 튀어 오르다 말았다.
이에 한립은 입에서 푸른빛을 내뿜어 비검에 불어넣어 보았다. 비검이 발산하는 빛이 더욱 밝아져서 웅웅 대다가 다시 멈추었다.
표정이 심각해진 한립은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선령력을 끌어 올렸다. 두 손바닥에서는 짙은 푸른빛이 머릿속에서는 강력한 의식이 비검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푸른 비검의 빛이 휘황찬란해지면서 움직임에 생동감이 더해졌다.
슉!
비검이 뱀처럼 구부러져 튀어 나갔다가 느닷없이 산만하게 커졌다. 검이 웅웅 우는 소리가 허공을 울렸고 음산한 검기가 빠져나와 인근 천지영기들을 불러 모았다.
후우웅!
푸른 거검은 점점 더 밝게 빛나다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청룡처럼 용울음 소리를 방출했다. 하늘을 가린 작은 구름 조각마저 깨끗하게 흩어져서 쪽빛 하늘만이 남았다.
한립은 종횡무진하는 거검을 보면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검의 위력이 그의 예상을 뛰어넘어서 한 자루의 위력이 예전에 거검술을 펼쳐 72자루를 합친 것과 비교해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눈을 번득인 그가 두 손으로 빠르게 수결을 바꾸었다.
콰르르.
푸른 거검에서 굵직한 금빛 뇌전들이 튀어나와 호랑이처럼 허공을 갈랐다.
난폭한 만황의 기운을 머금은 뇌전들을 불러낸 푸른 거검은 하늘과 땅을 멸할 듯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립도 잠시 멍해졌다.
금색 뇌전은 이전의 벽사신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위력이 대폭 증가해 있었고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는 뇌전 거검을 살펴보다 손가락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거검은 무형의 거대 손이 쥐고 휘두르는 것처럼 그가 가리킨 곳을 베었다.
쿠쿵!
금빛 뇌전을 휘감은 방대한 크기의 푸른 검기가 뻗어 나갔다.
폭이 몇 리에 달하는 규모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고 검기가 가르는 허공에서 날카로운 마찰음이 들려왔다.
검기가 지나는 곳마다 검은 흔적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허공이 일그러지면서 찢겨 순간적으로 생겨난 공간균열이 빠르게 사라진 것이다.
거대한 검기가 시야 밖으로 사라졌지만 날카로운 파공음은 계속해서 들려왔고 비경 자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한참 후에야 소리가 그치고 비경은 안정을 되찾았다.
우두커니 서서 검기의 위력을 검증하던 한립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일격을 날린 거검은 금빛 뇌전들이 흩어져서 마치 힘을 전부 잃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일격으로 현천참령검이 일으키던 현상을 어느 정도 따라갔으니 72자루를 동시에 펼치면 상상 이상의 효과를 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다만 한 자루를 조종하는데도 선령력과 의식을 상당히 소모해야 해서 지금의 수행으로는 무리였다.
한립은 들끓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비검들이 스스로 단전으로 돌아왔던 것을 기억하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내 생각이 맞을까?’
한립은 의식을 움직여 선령력을 일으켰다.
그 결과 동시에 푸른빛을 반짝인 비검들이 단전에 뿌리를 박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한립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지닌 선령력으로 비검들을 움직이려 했을 때, 개미 떼로 산을 옮기려고 낑낑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청죽봉운검과의 의식연계는 여전했으니 앞으로 수행이 늘어나면 비검을 조종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한립은 한 번에 많은 비검을 불러낼 생각은 버리고 의식으로 단 한 자루의 비검만 불러냈다.
푸른빛이 반짝이고 느긋하게 나타난 푸른 비검에 선령력과 의식이 흘러 들어갔다.
빛이 조금 강해진 청죽봉운검은 움찔움찔하다 멈추었는데 오히려 그가 기력이 빠진 듯 머리가 어지러워져 행동을 멈추었다.
비검을 손에 든 한립의 눈빛이 흔들렸다. 지금 그의 수행으로는 고작 한 자루를 제련한 게 한계였다.
그는 비검을 작게 줄여 회수해 아래로 내려갔다. 작은 체구의 누군가가 그곳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본명비검의 위력이 크게 느신 것을 축하드려요!”
기다리고 있던 육우청이 활짝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인연이 닿아 그리되었네. 여기 올라온 것을 보니 괴뢰들은 전부 해결했나 보군?”
한립이 빙긋 미소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이에 육우청도 눈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이한 기상 현상이 모두 가시고 비경은 평온한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아직 혈한 무리가 쫓아오지 않았어도 시간이 꽤 흘렀으니 서둘러 명한궁을 떠나는 것이 나을 것일세.”
한립이 주위를 둘러보며 하는 말에 육우청이 바로 답하지 않고 멈칫했다.
“이곳에서 아직 마치지 못한 일이 있는가?”
“아뇨, 한 오라버니 말대로 서둘러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 전에 잠시만요.”
육우청은 도관으로 날아가 조사당 앞에 착지해 푸른빛으로 내부의 위패들을 전부 끌어 담고 돌아왔다.
“이제 가요.”
육우청의 행동에 한립은 조금 놀랐지만 깊이 캐묻지 않고 산 아래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얀 제단과 검해가 사라져서인지 산허리를 감싼 검기들도 보이지 않았다.
콰아앙!
그런데 그들이 날아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경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이 무슨!”
안색이 달라진 한립이 멈춰서 굉음이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하얀 빛기둥이 나타나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고 그곳에서 퍼져 나오는 방대한 영력 파동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육우청도 빛기둥을 보고 당황한 얼굴이었다.
콰아앙!
또 다른 방향에서 굉음이 울리고 비경 전체가 흔들렸다. 그곳에서도 굵직한 하얀 빛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비경이 붕괴하려 하고 있네, 서두르지!”
번득 정신을 차린 한립이 둔광을 일으켜서 번개처럼 산 아래로 내려가자 육우청도 속도를 높였다.
날아가면서 한립은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생각했다.
하얀 제단의 붕괴가 비경의 붕괴를 이끈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날린 검기가 비경의 중요 기관을 망가트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립은 가능한 변수가 너무 많아 결론을 내릴 수 없음을 깨닫고 더 빨리 움직였다.
다행히 빠른 비행속도 덕분에 비경으로 진입했던 입구에 도달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때 비경의 또 다른 방향에서 세 번째 하얀 빛기둥이 솟아오르고 공간이 흔들렸다. 한립은 의식을 방출해 주변을 수색하고는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공간 어디에도 이전에 보았던 공간통로나 전송진법 같은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비경의 출입구가 고정되어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육우청도 상황을 알아차리고 난감한 얼굴을 했다.
“육 수사, 3일간 산 곳곳을 살피고 다닌 것을 보았네. 다른 출구나 이상한 느낌이 드는 곳은 없는가?”
“없었어요. 웅산이 비경을 샅샅이 훑고 다녔는지 건물마다 금제가 깨져 있는 것을 제외하면요.”
한립은 육우청이 고개를 젓자 허공을 살폈다. 그의 실력에도 여기서 공간통로를 만드는 것은 어려웠다.
선계의 공간은 영환계 같은 하계보다 훨씬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어렵게 공간을 뚫어도 바깥이 아니라 무궁무진하게 펼쳐진 허공으로 흘러 들어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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