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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05화 (1,462/2,000)

1705화. 검투

*

검룡의 모습을 한 비검들 틈에서 청죽봉운검을 강제로 빼내려던 한립은 갑자기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에 풍뢰시를 맹렬히 펄럭였다.

훅!

문짝 크기의 철검이 그의 의복을 스칠 듯 따라붙으면서 파공음을 냈다. 이에 한립이 급격히 떨어지며 넓적한 검신을 향해 단단히 쥔 주먹을 뻗었다.

퍼퍼퍼퍽!

커다란 푸른 주먹 허상이 철검을 마구 때려 단단한 철문 같던 검신을 낡은 고철로 만들었다.

검을 쥐고 있던 금빛 거인이 함께 바들바들 몸을 떨더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다음 검이 날아들었다.

한립이 주먹을 거둘 틈도 주지 않고 머리를 질끈 묶은 무사가 기다란 장검을 그에게 휘둘렀다.

무사 다음에는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여인, 금색 갑옷을 걸친 장한, 긴 수염 노인, 어린 소년들이 아주 첩첩산중처럼 쌓여 있었다.

팟.

한립은 무표정하게 허공을 박차고 등 뒤에서 금빛을 발했다.

금색 고리가 떠올라 유유히 회전하면서 금색 파문을 퍼트렸다. 진언보륜의 파문 범위에서 허상들과 비검의 속도가 느려져 거의 멈춰 섰다. 누가 보더라도 경악할 만한 장면이었다.

한립이 고공을 한가롭게 휙휙 뛰어넘어 금빛 허상들을 지나쳐갔다. 그를 겨누고 있던 비검들을 계단 삼아 톡톡 밟고 지난 한립은 고공의 제단으로 향했다.

웅산을 격퇴시키지 않고는 검진의 힘에 구속된 청죽봉운검을 되찾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정한 것이다.

제단 위 웅산이 그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 시간 법칙……. 진언화륜경을 저 정도 경지까지 익혔단 말인가!”

한립은 그의 말에는 개의치 않고 경로를 방해하는 비검들을 팍팍 쳐내면서 빠르게 제단과 가까워졌다.

웅산은 놀란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제단 중앙으로 걸어가 수결을 맺고 법결들을 던져 넣었다.

그 후, 그의 손바닥에서 용 눈알 크기의 금색 구슬 5개가 번득이고 제단의 뻥 뚫린 구역에서 적홍색 불길이 떨어졌다.

퍼펑!

한립은 불길 속에서 다섯 덩이의 금빛이 반짝이는 것을 감지했다.

주변의 불길이 그것을 중심으로 뭉쳐 사나운 용머리 5개를 이루고 있었다.

푸확!

용머리가 완성된 순간 콧구멍 속에서 두 줄기씩 기다란 화염이 넘실거리고 두 눈에서는 금빛이 번득였다.

크하하학!

불바다 속에서 화염으로 된 용 다섯 마리가 쑥 튀어나와 한립을 덮쳤다.

강렬한 열기에 주변 공기가 이글거렸지만 진언보륜이 방출한 금빛 파문 속에서 그것조차 느릿하게 변했다.

화룡들의 습격에 한립이 한 손을 맹렬히 휘저었다.

휘이잉.

빛이 번쩍하고, 중수진륜이 솟아올라 그의 앞을 막고 급속히 회전했다.

고리 위 물의 도문이 반짝이면서 검은 중수들이 흘러나와 고공에서 거대한 중수 소용돌이를 이루고 화룡 다섯 마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화룡들이 용암 같은 불길을 내뿜어 검은 연기가 치이익! 올라왔고 이어서 새빨간 돌덩이를 마구 분출했다.

쿠콰콰쾅.

연달아 충돌음이 들리고 고공이 붉은빛으로 번쩍였다.

비처럼 쏟아지는 새빨간 돌덩이들은 검은 중수의 소용돌이를 뚫지는 못했지만, 그 아래 중수진륜은 웅웅 떨리고 있었다.

높이 쳐든 한립의 두 팔도 부들부들 떨려서 꽤 힘을 쓰고 있는 듯했다.

“화룡주(火龍珠)라. 아주 아낌없이 쏟아붓는군.”

그는 두 손으로 빠르게 수결을 맺어 중수진륜을 밀쳤다.

우우우웅…….

검은 고리에서 검은 물결이 콸콸 쏟아져 나와 붉은 화룡들을 덮쳤다.

검은빛과 붉은빛, 물과 불이 섞여 격렬하게 충돌하는 가운데 하얀 수증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흑수만천(黑水滿天)!”

한립의 외침에 제단 위 상공에서 콰르릉! 뇌성이 들려왔다.

콰하아아!

하얀 뇌전이 떨어져 장막을 찢고 검은 구멍을 만들어 작은 해역만큼의 중수를 폭포처럼 쏟아부었다.

고개를 쳐든 웅산은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진선이 이런 것을 할 수 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 눈빛이었다. 그가 공격을 막으려 해도 이미 늦은 후였다.

웅산은 이를 악물고 두 손을 춤추듯 휘둘러 법결들을 미친 듯이 만검철권으로 때려 넣었다.

그러자 깜빡거리던 철패의 금빛이 주술문자로 변해 제단 주변이 황금용 기둥으로 뻗어 나갔다.

화아앗!

금빛으로 물든 기둥의 황금용들이 붉은빛을 제단 중앙으로 쏘아 보내 용무늬로 가득한 새빨간 보호막을 만들었다.

그러나 중수들이 태산 같은 무게로 새빨간 보호막을 쾅쾅 쳐대고 있었다.

쿠콰콰쾅!

새빨간 보호막은 태풍 속의 외딴 섬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이런…….’

그 속에서 중수가 떨어지는 것을 올려다보고 있는 웅산은 그 위력을 실감하고 있었다.

벌써 새빨간 보호막이 움푹 들어가고 기둥의 황금용들이 불안정하게 빛을 깜빡거려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안색이 어두워진 웅산은 만검철권을 불러들여 손에 쥐고 다른 쪽 손끝을 그어 붉은 피가 흘러나오게 했다.

손을 붓 삼아 피를 먹 삼아 철패 위에 빠르게 낯선 주술문자가 그려졌다. 주술문자가 완성되고 철패의 무늬마저 핏빛으로 물들어 퍼져나갔다.

두 손으로 철패를 단단히 쥔 웅산은 결연한 기색으로 그것을 가슴에 대었다.

파앗!

핏빛과 검은빛이 일렁이면서 만검철권이 그의 몸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거대 진법의 주축인 만검철권이 제단을 벗어났기 때문에 검진 역시 운용을 멈추었다.

제단 아래 불바다가 사라지고 새빨갛게 물들었던 구름과 하늘을 뒤덮은 장막이 펑! 하고 흩어졌다.

그저 검진의 힘으로 솟아오른 모든 비검들만이 검룡의 형태에서 벗어나 여전히 하늘에 떠 있었다.

고공에서 쏟아져 내리던 검은 폭포는 한립이 ‘법언천지’ 신통으로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했기에 역시 사라져 하늘과 땅이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비검과 화룡의 방해 없이 한립은 그대로 날아올라 제단 위에 설 수 있었다.

웅산은 전신이 검은 비늘로 뒤덮여 주위에 핏빛을 두른 채 기운이 바뀌어 있었다.

넘실거리는 핏빛은 정순한 검기들이 응결해 실체화된 것으로 한립의 진언보륜이 방출한 금빛 파문조차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검수에게 진귀하기 짝이 없는 것을 이리도 쉽게 사용하시다니 아깝지도 않으십니까?”

한립은 고개를 내저으며 자신이 다 아깝다는 얼굴로 물었다.

“상관없습니다. 축적된 만고검기의 일부를 소모할 뿐인데 당신을 죽일 수만 있다면 그리 아깝지 않을 것 같군요.”

웅산은 차분해진 말투로 대답하면서 걸어가 제단 중앙의 금색 장검을 쥐었다. 검을 쥔 그의 몸에서 암홍색 빛이 확! 커져 본명비검까지 뒤덮었다.

웅산의 수행은 여전히 진선 후기에 머물렀으나 서 있기만 해도 한 자루 검처럼 예기가 느껴졌다.

그걸 보고 슬쩍 미간을 좁혔던 한립이 원래 표정으로 돌아갔다.

“쭉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당초 어떻게 천봉취령검진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까? 설마 당신도 무생검종의 방계 후손이란 말입니까?”

웅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백만 년 전에 종적을 감춘 무생검종의 방계 후손일 리가요.”

한립의 눈빛에도 의혹이 어렸다.

“그 말은 당신은 아니란 소리인데……. 어찌 되었든 괜찮습니다. 당신도 나와 싸울 자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웅산은 뭔가 유감스럽다는 기색을 하며 탄식하듯 말했다. 말을 마친 웅산이 발끝으로 지면을 찍고 장검으로 한립을 찔러 들어갔다.

눈을 반짝인 한립의 신형이 가볍게 날아올라 제단의 가장자리의 울타리를 박차면서 뒤쪽으로 물러났다.

쉬잉!

웅산의 장검 끝에서 핏빛 허상이 쾌속으로 자라나다가 한립 앞에서 진언보륜이 방출한 금색 파문에 기세가 누그러졌다.

한립은 한참을 더 물러나서야 신형을 멈추었다. 그는 차차 흐려지는 핏빛 검기를 보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가 조금만 늦게 피했으면 진언보륜으로도 속도를 늦추기 힘든 검기에 가슴이 뚫렸을 것이다.

‘시간도문들만 온전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가 훌쩍 뛰어내려 허공에 뜬 수많은 비검들 틈으로 날아들었다.

그런데 청죽봉운검 옆에 도달하기 전 등 뒤가 서늘해지면서 검기의 기습이 이어졌다.

재빨리 진언보륜을 역전한 한립은 왼쪽으로 검빛을 피했다.

슁!

핏빛 검기가 그가 있던 자리를 지나 밀집한 비검들을 갈랐다. 청량한 소리가 들리고 수십 자루의 비검이 핏빛 검기에 뚫려 조각나 있었다.

그 틈에 한립은 번득 이동해 드디어 72자루의 청죽봉운검 옆으로 이동했다.

‘……!’

손을 뻗어 그중 한 자루를 쥐고 힘껏 잡아당겼으나 놀랍게도 거대한 힘이 구속하고 있어 비검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놀라는 사이 등 뒤로 웅산이 쫓아와 장검을 휘둘렀다.

한립은 등 뒤의 변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단히 쥔 손을 통해 의식 한 줄기를 비검 속으로 주입했다.

우웅!

비검이 심하게 진동하며 한립과의 의식연계를 회복했고 보물은 어느 때보다 기뻐했다.

그 시각 핏빛 검기를 두른 장검이 그의 뒷목을 가르려고 날아들고 있었다.

한립 등 뒤의 진언보륜에서 남은 십여 개의 시간도문이 밝은 빛을 방출해 금색 파문을 더욱 진하게 만들었다.

만고검기를 두른 상대의 장검은 진언보륜의 감속효과를 상당히 상쇄했기에 여전히 쾌속으로 떨어졌다.

위기의 순간, 검은 고리가 번득 나타나 방패처럼 웅산의 검 끝을 막았다.

쩌정!

웅산의 장검은 중수진륜 바깥의 검은빛을 뚫고 고리에 닿았고 날카로운 암홍색 검기가 고리 표면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중수진륜과 의식이 연계된 한립이 화들짝 놀라 청죽봉운검 한 자루를 잡아 빼면서 두 눈에서 남색 빛을 번득였다.

머리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72줄기의 의식이 동시에 분리되어 나머지 비검들 속으로 침투했다.

이때 웅산이 중수진륜을 빙 돌아 한립의 우측에서 장검을 횡으로 베었다.

이번에는 피할 겨를이 없었기에 한립은 청죽봉운검을 들고 웅산을 향해 주동적으로 다가섰다.

까가가가캉!

날카로운 검날이 부딪치면서 웅산의 본명비검에서는 암홍색 검기가, 한립의 청죽봉운검에서는 금빛 뇌전이 폭발적으로 튀어나왔다.

암홍색 검기가 한립이 검을 든 쪽 소매를 스치면서 길게 갈랐다.

다행히 진극막을 두른 한립의 피부는 뚫리지 않았지만 검빛은 기이한 관통력을 지녀 그의 팔뚝을 따라 뼈를 갈라 심장이 철렁했다.

한립은 엄청난 고통을 참으며 다른 손으로 등 뒤에 있던 중수진륜을 응축해 웅산을 향해 돌진하게 했다.

회전하는 중수진륜과 장검이 부딪쳐 웅산은 몸을 부르르 떨며 뒤로 밀려났다.

채채채챙!

중수진륜에서는 귀를 찌를 듯한 마찰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립이 눈을 부릅뜨고 검결을 맺어 전방을 가리켰다.

“가라.”

검진 속의 나머지 청죽봉운검 71자루가 공명하면서 한립이 들고 있던 비검과 한데 뭉쳐 푸른빛을 이루고 웅산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하늘을 가르는 비검들이 뭉치면서 커다란 빛구슬을 이루고 있었다. 웅산에게 접근한 푸른 구슬에서 용울음 소리가 같은 진동이 울렸다.

쿠아앙!

구슬이 폭발하면서 검기의 청룡이 입을 쩍 벌리고 웅산을 삼켰다.

그걸 본 한립은 손짓해 중수진륜을 회수하고 진언보륜을 역전해 따라붙었다. 그의 속도는 청룡 검진보다도 훨씬 빨라서 용머리를 따라잡고 흠칫 놀랐다.

웅산은 청룡 검진의 입안에서 암홍색 광채를 두른 검은 갑옷으로 수백 줄기의 검기를 말고 태연자약하게 서 있었다.

한립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흐릿하게 변한 그가 잔영을 남기면서 청룡 머리로 접근해서 쾌속으로 회전 중인 중수진륜을 들고 웅산의 허리를 베어 들어갔다.

“흐압!”

폭발적으로 기합을 넣은 웅산의 검은 갑옷에서 암홍색 빛들이 차올라 순식간에 청룡의 검기로 이루어진 이빨들을 산산 조각냈고 장검을 쥔 그의 손은 중수진륜을 묵직하게 때렸다.

쩡!

청룡 검진이 붕괴해 비검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가고 웅산은 뒤로 물러나 고공에 유유히 멈춰 섰다.

“이래도 저와 검투를 계속하실 작정입니까?”

한립을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말을 마친 그의 손에서 장검이 날아오르고 두 손으로 기괴한 수결을 맺은 그가 묵묵히 주문을 외웠다.

입고 있던 검은 갑옷의 암홍색 무늬가 다시금 반짝이면서 앞가슴 쪽에 검(劍)을 뜻하는 고대 문자가 떠올랐고, 문자가 형성되자 웅산의 기세가 한층 섬뜩하게 바뀌었다.

순간적으로 긴장한 한립은 의식으로 급히 해 도인에게 연락을 취해 중요한 순간에 나서줘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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