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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99화 (1,456/2,000)
  • 1699화. 약재원

    *

    약속한 시간이 되자 한립은 해 도인과 도병을 회수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육우청과 냉염노조가 진작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육우청은 얼굴이 활짝 폈고 냉염노조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세 사람은 함께 날아올랐다가 얼마 뒤 평지에 내려서서 커다란 장원을 바라보았다.

    높다란 담이 내부를 가리고 있었는데 성광지력을 품은 남색 기류를 내뿜고 있어서 보기만 해도 보통 건물은 아닌 듯했다.

    한립이 담을 보고 놀란 기색을 보였다. 담을 이룬 수정돌들이 천정석이라는 진귀한 재료여서였다.

    영보를 제련하는 재료로 이렇게 커다란 담을 쌓다니 장원 주인의 부유함이 느껴져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담의 네 모서리에는 복잡한 진법이 새겨진 굵은 돌기둥이 있었다. 네 돌기둥에서 밝은 별빛이 솟아올라 장원 전체를 두르고 있었다.

    반짝이는 별빛 보호막 안으로 갖가지 영초들이 피어나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향기가 얼마나 코를 찌르는지 금제를 뚫고 나올 정도였다. 눈이 번쩍 뜨인 한립은 별빛 보호막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유한궁에 들어올 때 파훼한 금제와 비슷하면서도 더 현묘해서 고난이 예상되었다.

    “냉염 수사와 웅산 수사가 펼쳤던 대오행섭령진광 신통이 이런 별빛 금제에 통했던 것으로 압니다.”

    금제를 살피던 한립이 오랜만에 냉염노조에게 말을 붙였다. 그 소리에 냉염이 곤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오행섭령진광의 구결을 알지만 그걸 펼치려면 정순한 다섯 가지 속성을 지닌 영보가 필요합니다. 제게는 불 속성, 흙 속성의 영보밖에 없어서…….”

    “괜찮습니다. 제게 마침 나머지 금속 속성, 나무 속성, 물 속성 영보가 있으니까요. 그리 강력하지는 않아도 신통을 펼치기에 무리는 없을 겁니다.”

    한립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금색, 초록색, 남색의 보물을 불러냈다. 금색 고리, 초록색 나무 도끼 그리고 남색 영패였다.

    겸손한 말과는 달리 웅산이 내놓았던 보물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간 진선경 존재들을 여럿 죽여서 거둔 저물탁에서 모아둔 영보들이었다.

    “가산이 아주 풍부하십니다. 그렇다면 아무 문제 없겠지요. 대오행섭령진광 구결이 약간 난해하긴 한데, 한 수사의 총명함이면 금방 깨우칠 수 있을 겁니다.”

    냉염은 구결을 복사해 한립에게 건넸다. 옥간을 받아든 한립은 내용을 살피며 조금 난해해 했다.

    그는 빠르게 구결을 외우고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저희가 호법을 서요.”

    육우청이 그것을 보고 냉염노조에게 말했다.

    “그럽시다.”

    두 사람은 한립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물러나 주변을 살폈다.

    반 시진 뒤, 한립이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육우청과 냉염이 고개를 돌리자 그는 주술을 외워 세 가지 보물을 하나로 융합하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구결을 깨우치신 겁니까?”

    냉염노조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비슷한 오행술법을 익힌 적이 있어서 조금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립은 옛 생각에 웃음을 머금었다. 원자신광이 바로 그가 익혔던 오행술법이었다.

    서로 상극인 속성 다섯 가지를 결합해 위력을 발휘하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같았고 대오행섭령진광이 더 복잡하기는 해도 구결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 오래 걸리지 않아 익숙해졌다.

    “허허, 한 수사께서는 사람을 여러 번 놀라게 하십니다.”

    냉염은 이제 익숙해졌다는 듯 자신의 붉은 발우와 하얀 종을 방출해 술법을 펼쳤다.

    두 보물은 빛덩이로 변해서 한립의 세 가지 보물과 한 데 섞이기 시작했다.

    한립과 냉염노조의 술법에 다섯 개의 보물들이 오색 주술문자를 품은 눈부신 빛을 터트렸다.

    빠르게 융합해 거대한 오색 빛덩이를 이룬 보물들이 그 중간에서 선회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는 육우청은 현란한 빛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시에 한립과 냉염노조가 손을 내밀어 연달아 법결을 던져 넣었다.

    쉬익!

    오색 빛기둥이 빛덩이를 빠져나와 별빛 보호막을 강타했다. 처음에는 별빛 보호막이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한립과 냉염노조의 주술 소리가 빨라지고 대오행섭령진광 구결 소리가 커지자 오색 빛기둥이 짙어졌다.

    오색 빛기둥 속에서 오색 화살들이 빠져나와 별빛 보호막에 쏟아져 내렸다.

    쿠쿠쿵!

    보호막의 별빛이 빠르게 어두워지면서 두꺼웠던 장막도 얇아졌다.

    한립은 의아했다.

    현묘해 보이던 금제가 겨우 두 번의 공격에 이렇게 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바쁘게 손을 움직였고 오색 빛기둥이 맹렬하게 빛나며 더 많은 화살을 내뿜었다.

    겨우 일각 만에 별빛 보호막이 아주 얇아져 있었다. 눈을 빛낸 한립은 수결을 바꾸었고 냉염도 옆에서 똑같이 행동했다.

    쇄액!

    오색 보호막의 화살들이 한 곳으로 뭉쳐 거대한 화살을 이루고 떨어졌다. 그러자 땅이 크게 진동하면서 별빛 보호막이 쪼개져 흩어졌다.

    금제가 사라지자 한립은 손을 저어 빛기둥에서 갈라져 나온 다섯 개의 보물 중 3개를 거두고 더욱 짙어진 약 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가 날아오르자 나머지 보물을 챙긴 냉염노조와 육우청이 급히 그 뒤를 따랐다.

    우웅!

    그들이 장막 안으로 들어가자 네 귀퉁이의 기둥에서 별빛 덩어리가 올라와 허공에서 뭉쳐졌다.

    순식간에 별빛 금제가 다시 복구된 것이다. 돌기둥의 진법이 반짝이면서 별빛을 모아 금제를 강화해나가고 있었다.

    고개를 든 한립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가늘게 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 앞에는 푸른 울타리로 나눠진 넓은 약재밭이 펼쳐져 있었는데 울타리마다 금제가 영초나 영화를 보호했다.

    한립은 곁에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밭부터 살폈다.

    은은한 붉은 금제로 둘러싸인 울타리 안에는 열댓 그루의 붉은 풀이 자라고 있었는데 동글동글한 수술과 손바닥 크기의 꽃잎들이 화염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광염초(狂炎草)…….”

    붉은 영초는 불 속성 영초로 고급 단약을 제련하는 데 쓰였다. 새빨간 파동이 넘실거리는 광염초들은 불 속성의 도단도 제련할 수 있을 듯 보였다.

    광염초가 유명한 이유는 십만 년 넘게 키우면 꽤 높은 확률로 불 속성 법칙의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법칙의 힘이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각 세력의 천단사들이라면 오매불망할 물건이었다.

    게다가 이곳의 광염초들은 적어도 3, 40만 년은 되어 보여서 10만 년 된 광염초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장천병으로 50만 년까지 키워서 내놓으면 더 고가에 팔아치울 수도 있었다.

    한립은 급히 영초를 채취하려 들지 않고 다른 울타리를 돌아다녔다. 오랜 세월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으니 더 귀한 재료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냉염노조와 육우청도 신이 나서 각자 약재밭을 탐색했다.

    한립의 걸음이 어두운 보라색 풀 앞에서 멈추었다. 겨우 손바닥만큼 자란 가느다란 풀줄기는 밀싹처럼 생겼고 맑은 향 속에 코를 찌르는 특이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극목초(極目草)라는 북한선역에서 아주 유명한 영초였다.

    한립의 눈빛이 번득였다.

    북한선역 북극, 야광도(夜光島)라는 곳에서 야광준(夜光隼)이라는 매를 닮은 요수가 서식했는데 기껏 해봐야 합체기 수준의 실력을 발휘하고 수가 많지 않아 주의를 기울이는 이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선 산수 한 명이 야광준 한 마리를 잡아서 자신의 영수로 삼게 되었고, 영수의 시력이 엄청나 수만 리 밖의 상황까지 본다는 것을 알아냈다.

    우연히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사들이 야광준을 잡으러 몰려들었지만 그들이 잡아온 영수는 시력이 그리 좋지 못했다.

    이에 진선 산수들이 놀라 원인을 조사했는데 처음 포획한 야광준 서식지 인근에서 자라는 특이한 영초를 발견해 주목했다.

    그 영초의 이름은 극목초였고, 요수가 그것을 자주 뜯어먹으면서 자라 차차 뛰어난 시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안 그래도 자생 조건이 까다롭고 성장 속도가 느린데 수사들이 마구 뜯어가는 통에 백만 년 전에 멸종이 된 영초였다.

    눈앞의 밀싹처럼 보이는 극목초도 적어도 2, 30만 년은 자란 것이라 가치가 대단했다.

    한립은 희색을 드러내며 빠르게 다른 밭도 살폈다.

    “봉문화(鳳紋花)!”

    “은월감라(銀月甘羅)!”

    “함광초(晗光草)!”

    빠르게 열댓 개 울타리를 확인한 한립은 바깥에서는 이미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진귀한 영초들을 여러 개 찾아내고 기분이 좋아졌다.

    봉문화와 은월감라는 풍부한 영력을 함유하고 있어서 몸을 보하는 단약을 제련하는 데 좋았고, 저 정도로 자란 영초들이면 진선급이 아닌 금선용 단약을 만들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과연 약재밭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즐겁게 어떤 영초가 있는지 파악하던 한립은 폭음에 고개를 돌렸다. 냉염노조와 육우청이 벌써 원하는 울타리를 골라 금제를 파훼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금제가 꽤 견고한지 시간이 좀 걸리는 듯했다.

    그걸 본 한립은 소매를 털어 72자루의 청죽봉운검을 내뿜었다. 푸르스름한 검진을 맺어 약재밭 몇 개를 휘감은 그는 주문을 외며 검결을 맺었다.

    휘휘휘휙!

    수많은 검기들이 약재밭 금제들을 가르고 청죽봉운검의 매서운 위력에 금제들이 어두워졌다.

    몇 호흡 지나지 않아 울타리 몇 개가 개방되었다. 이어서 한립은 수백 개의 누런 콩알들을 뿌려 수백 명의 도병들을 불러냈다.

    한립은 수백 개의 하얀 옥함들을 꺼내 나눠주고 명령을 내렸다.

    “영초들을 잘 담아 보거라.”

    “예!”

    도병들은 분분히 옥함을 받아들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병!”

    약재밭 금제를 겨우 파훼하고 하나씩 영초를 담고 있던 냉염은 한립을 보고 헛바람을 들이켰다.

    ‘실력으로 내가 부족하다는 것은 진작 알았지만 도병술까지 익혔을 줄이야!’

    도병들을 시켜 영초를 모으게 한 한립은 푸른 검진으로 다른 약재밭을 공격했다.

    푸른 검기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려 빠르게 약재밭의 금제를 없앴다. 동시에 도병 일부가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와 열심히 영초를 담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금제들은 반짝반짝 빛나면서 천천히 다시 보호막을 응결해나갔다.

    바깥의 별빛 보호막처럼 스스로 복구가 가능한 약재밭의 금제를 보고 한립은 탄복했다.

    얼마나 오래전부터 존재했는지 모를 명한궁 금제들이 아직까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도 놀라운데 스스로 복구까지 하다니, 이런 금제들을 설치한 이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립은 점점 더 명한신군이라는 신비로운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

    세 사람은 전력을 다해 빠르게 영초들을 수확했다.

    검진으로 금제를 깨고 도병들을 이용해 영초를 채취하는 한립의 작업효율이 가장 높아서 그가 대부분의 영초를 손에 넣었다.

    그는 틈틈이 육우청이 금제를 깰 수 있도록 도와주어 냉염노조의 부러움을 받았다.

    약재밭은 바깥에서 보던 것보다 규모가 컸고 외부의 복구된 금제가 너무 휘황찬란하게 빛나서 안쪽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한립은 인근에 영초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붉은 금제로 둘러싸인 다른 울타리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냉염노조와 육우청도 각자 선택한 금제를 부수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웬일인지 청죽봉운검이 방출한 검기들이 붉은 보호막을 빠르게 깨지 못했다.

    미간을 좁힌 그가 검결을 바꾸었다.

    웅!

    푸른 검진이 수축하면서 빙글빙글 돌아 커다란 푸른 연꽃 형상을 이루고 꽃잎마다 금빛 뇌전을 번득였다.

    중얼중얼 들려오는 주문 소리에 맞춰 연꽃잎들이 붉은 보호막을 강타했다. 그러자 한동안 버티던 보호막이 펑! 하고 갈라져 사방으로 붉은빛을 뿌렸다.

    기쁜 마음에 울타리 안을 살피던 한립의 미소가 어쩐지 굳었다.

    그곳에는 황갈색의 굵직한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잘려나간 듯 뿌리와 밑동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잘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단면에서 누런 진액이 아직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른 울타리를 공략하고 있던 냉염노조와 육우청이 그걸 보고 다가왔다.

    “누군가 먼저 왔었나 봅니다. 나무의 상태로 보아 하루 전쯤이겠어요.”

    냉염노조가 자세히 단면을 살피고 말했다.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고 머리 위의 별빛 보호막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이 쉽게 별빛 보호막을 파훼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이미 한 번 부숴놓았기 때문이었다.

    “누굴까요? 설마 웅산 수사!”

    “그건 아닐 걸세. 웅산이 우리보다 먼저 유한궁에 들어왔어도 이곳의 금제를 깨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육우청의 중얼거림에 한립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그건 모르겠지만 다른 영초들은 눈에 차지 않은 것인지 시간이 없어서인지 그냥 두고 갔군. 별다른 전투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전자라고 생각한다면 금선 선배 중 한 분이겠지.”

    명한선부에 들어온 금선 수사가 한두 명이 아니라서 누구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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