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8화. 보물찾기
*
파문의 범위에 들어선 금선 괴뢰의 팔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느려졌다.
파앗!
괴뢰 몸의 남색 별빛들이 더욱 밝아지며 주위의 하얀빛들이 미친 듯이 팔뚝으로 흘러 들어갔다.
진언보륜이 방출한 금색 파문이 놀랍게도 불안정해지면서 팔뚝이 빠르게 움직였다. 진언보륜의 힘을 백배는 감소시킨 움직임이었다.
이런 일은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다.
“해 수사, 아직도 준비가 안 되었습니까?”
여력을 다해 진언보륜을 조종하던 한립이 입을 열었다.
“이제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고 한립의 체내에서 금빛이 빠져나와 대량의 뇌전 폭발을 일으켰다.
콰르릉!
대전을 가득 채운 금색 뇌전 연못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모습에 냉염노조가 기함해 얼굴 근육을 꿈틀거렸다.
그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전력으로 푸른 종 보물을 발동해 보호막을 펼쳤다.
커다란 뇌전 연못에 거대 황금 게가 나타나서 게딱지가 천장의 자금색 보호막과 부딪쳐 치직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황금 게는 커다란 집게발을 번개처럼 움직여 금선 괴뢰의 허리춤을 잡았다.
콰직!
집게발이 꽉 다물어지면서 요란한 굉음과 함께 빛들이 번쩍였다.
궁전을 뒤덮고 있던 자금색 보호막이 찢겨 사라지고 궁전 벽과 천장을 따라서 긴 균열이 생겨났다.
차츰차츰 뇌전의 연못이 줄어들어 황금 게 몸속으로 흡수되고는 번득 각진 얼굴에 가는 눈썹을 지닌 황포 사내가 나타났다.
“한 수사, 이번 공격으로 이전에 주신 선원석을 거의 다 썼습니다.”
해 도인은 두 동강이 나서 바닥에 너부러져 있는 괴뢰를 보고 덤덤히 말했다.
“괜찮습니다, 나중에 보충해드리지요. 이번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한립이 진원보륜을 거두고 답했다.
“아닙니다. 저 금선 괴뢰는 상당히 비범하군요. 금제 때문에 가끔 지능이 억제되긴 해도 현선과 비슷한 신통을 사용하고 전투력이 강해서 우리 둘이 협공하지 않았으면 쉽게 처리하지 못했을 겁니다.”
해 도인의 말은 낭비하지 말고 괴뢰를 챙겨가라는 뜻이었다.
“잘 챙겨서 갖고 나가보겠습니다. 수리해서 다시 제련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치명적인 일격으로 괴뢰의 핵심까지 파괴해서 수행을 회복할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측 늑골부터 좌측 사타구니까지 잘려있어서 뱃속에 든 구릿빛 구슬이 깨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깝기는 했지만 금선급 괴뢰를 상대하면서 봐주면서 싸운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볼일이 없으면 저는 이만.”
해 도인은 궁전 문 가까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냉염노조를 힐끗 보고는 금빛으로 변해 한립의 소매 속으로 사라졌다.
금선 괴뢰 토막을 거둔 한립이 몸을 돌려 후전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본 냉염노조의 등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이제야 자신과 그의 실력 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간 얼마나 바보같이 군것인가!’
병풍 뒤에 숨겨진 문을 지나 한립은 후전으로 들어갔다.
창문도 없고 폐쇄적인 후전 안은 빛이 들지 않아 아주 어둑했는데 벽에 돌가루 같은 것들이 은은한 빛을 냈다.
후전 중앙 청동으로 만들어진 네모난 탁자 위에 복잡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양옆에 움푹 파인 곳이 보였다.
바로 대주천성원공이 적힌 석판들이 있었던 자리였다.
청동 탁자 뒤로 칠을 한 나무 상자 8개가 보였다. 전부 부적이 붙어 있고 누가 건드린 흔적이 없었다.
냉염노조는 두 번이나 이 안에 들어왔지만 워낙 경황이 없어 다른 물건까지 챙길 정신이 없었던 게 분명했다.
내부를 둘러본 한립은 상자 하나로 다가가 푸른빛을 머금은 손을 뻗었다. 예전의 색깔의 무늬를 잃은 부적이 파사삭 가루로 흩어졌다.
차분히 상자를 열어본 한립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차곡차곡 쌓여있는 남색 수정들이 백여 개는 되었는데 전부 정순한 성광지력을 함유한 천성석(天星石)이었다.
이렇게 충분한 천성석이 있다면 대주천성원공 후반부를 익히기가 더욱 수월할 것이다.
한립은 남은 나무 상자들을 다 열어서 전부 천성석인 것을 확인했다. 못해도 천 개는 넘는 수량이었다.
손을 저어 목함들을 전부 저물탁 안에 담은 그는 다른 보물이 없는지 살피고는 문을 통해 대전으로 걸어 나갔다.
막 병풍을 지나려던 그가 밤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별이 그려진 그림에서 기묘한 느낌을 받고 그것도 챙겼다.
그는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갈 때까지 냉염노조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궁전을 나서자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던 육우청이 달려왔다.
“류……. 한 오라버니, 이제야 나오셨네요.”
“무슨 일이지?”
“조금 전부터 광장 쪽이 소란스러워요.”
육우청이 손을 뻗어 그들이 지나온 백석 광장을 가리켰다. 때마침 쿠쾅! 하는 소리가 들리고 붉은 빛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혈한도 환영진을 벗어났나 보군. 우리도 어서 떠나세.”
“원래 있던 곳에서 너무 멀리까지 왔고, 제가 지닌 지도도 표시된 구역이 한정적인데 이제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걱정스러운 육우청의 물음에 한립이 펄쩍 뛰어올라 고공에서 궁전 뒤쪽을 응시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것, 이제는 상황에 맞춰 움직이는 수밖에 없네. 어차피 육 수사도 기연을 찾기 위해 비경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 뒷산에 아직 적잖은 궁전과 누각이 남아있으니 무엇이 있을지 살펴보세.”
“그건……. 네, 알겠어요.”
육우청이 약간 주저하다 답했다.
“한 수사, 저도 같이 좀 갈 수 있겠습니까?”
이때 궁전에서 나온 냉염노조가 불안해하며 물었다.
“안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따질 생각은 없으나 수사도 자중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앞으로는 각자 갈 길을 가시지요.”
한립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사이 광장은 더 시끄러워졌고 고공으로 솟아오른 빛기둥도 두 줄기로 늘었다.
“후반부 대주천성원공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영환계에서부터 알고 지낸 정을 생각해서 같이만 가게 해주시지요? 저 혼자 이곳에 남으면 비경을 벗어나는 것은 고사하고 혈한 무리에게 잡혀 죽을 겁니다.”
냉염도 안에서 일을 변명하지 않고 사정했다.
“……이곳에서 데리고는 나가 드리겠습니다. 그때부터는 정말 각자 움직여야 하고 앞으로 우리 사이에 어떤 은원도 없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냉염노조가 바로 허리를 숙여 예를 취했다.
몸을 틀어 그의 인사를 피한 한립은 육우청을 데리고 궁전 오른쪽의 산길로 걸어갔다. 그 모습에 냉염은 울적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고 그 뒤를 쫓았다.
길을 따라 크고 작은 궁전과 누각들이 꽤 많았다. 세 개의 궁전보다는 작아도 규모가 상당했다.
광한궁을 떠올린 한립은 뒷산에 약재밭이 있을지 몰라 그냥 지나치려다 의식으로 주변 궁전과 누각을 훑고 머뭇거렸다.
“건물 대부분 금제가 펼쳐져 있기는 한데 어떤 것은 아주 졸렬하고 어떤 것은 아주 정교해서 몇 군데 보물이 있는 곳이 눈에 띄네. 살펴보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면 아쉽겠어.”
“저……. 혈한이 쫓아오는데 괜찮을까요?”
“괜찮네. 파훼법을 찾았다고 해도 시간이 걸릴 테고, 눈앞에 세 개의 궁전을 앞에 두고 들어가 보지 않고는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야.”
“알겠어요. 들어가서 무엇이 있는지 수색해 봐요.”
건물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도 열기가 어렸다. 그녀가 공들여 선부 비경에 들어온 것도 기연이나 보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흩어져서 각자 능력껏 보물을 찾아 취하는 것으로 하세. 반 시진 후에 다시 이곳에서 모이되 변고가 생기면 그 전에 떠나도록 하지.”
“네!”
육우청이 힘차게 답하고 먼저 방향을 잡고 날아갔다.
냉염노조는 옆에 우두커니 서서 눈치를 보며 끼어들지 못했다.
이에 한립은 냉랭히 그를 보고는 말없이 육우청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사라지고 냉염노조는 한숨을 쉬었으나 옥간을 꺼내 만지작거리다 미소를 지었다.
한립이 구리 괴뢰와 싸우는 동안 후전에서 미리 복제해 놓은 후반부 공법이었다. 어찌 되었든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다행이었다.
* * *
3층 누각 앞 작은 청석 광장에 한립이 표표히 내려섰다.
처마에 달린 황금색 방울들은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녹이 슬거나 색이 바래지 않았다. 그는 관심이 생겨 바람을 날려보았다.
짤랑!
부드러운 바람에 3층 누각 처마에 달린 총 24개의 방울이 맑게 울렸다. 그 아름다운 소리에서 한립은 이상한 점을 알아냈다.
점점 작아져야 할 소리가 오히려 커져서 나중에는 귀 옆에서 거대한 종을 때린 것처럼 머리를 파고들었다.
“24개의 첨각동령(檐角銅鈴)이라……. 이런 급의 의식계열 금제는 보기 드문 것인데.”
눈에서 남색빛을 일렁이고 눈빛이 맑아진 한립이 말했다. 연신술을 4성까지 익혀 강대한 의식을 지니고 있어서 금방 벗어난 것이지 다른 수사였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적과 싸울 때 이 정도 지장만 주어도 승부를 가를 수 있을 거야.”
그가 손을 뻗어 구슬 하나를 떼어내려 했다. 그런데 구슬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놀라 다시 누각을 살피고서야 한립은 24개의 구슬이 아니라 3층 누각 자체가 금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방울 소리는 금제 위력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고,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는 생각 끝에 해 도인을 불러냈다.
“이렇게 빨리 다시 불러내고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예,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한립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 답했다.
“말해 보시지요.”
“이 누각 자체가 상당한 금제 보물인 듯해 연화를 시키고 싶은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귀찮으시더라도 수사께서 저를 대신해 인근의 건물들을 수색해 주실 수 있겠는지요? 무엇을 찾아내시든 선원석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해 도인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고, 한립은 두병을 내주어 수색을 돕게 했다.
뇌전빛을 남기고 해 도인이 사라지자 한립은 연신술을 발동하고 두 손에 푸른빛을 응결해 누각의 문을 열었다.
* * *
일각이 지나자 3층 누각을 열고 한립이 희색 가득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바깥으로 나온 그는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갑자기 대량의 금빛을 방출한 누각이 슉! 줄어들더니 그의 저물탁 안으로 들어갔다.
“이거면 진선경 중기 수사 몇 명을 가두는 것도 어렵지 않겠어. 강력한 의식 공법을 익히지 않았다면 후기 수사도 가능할 것 같고. 진선 최고봉이나 금선 수사에게는 무리겠지만 다른 보물이랑 같이 사용하면 도움이 되겠지.”
그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광장의 세 궁전에서 쿠쾅! 하는 진동이 들려왔다.
혈한 무리가 궁전으로 쳐들어간 모양이었다.
“한 수사, 속히 와보셔야겠습니다.”
그때 해 도인이 의식연계로 그를 불렀다. 그는 몸을 돌려 들풀들이 핀 황량한 정원으로 이동했다.
정원 구석을 도병들이 뒤지는 중이었고, 활짝 열린 방문 안에서 해 도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정원을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가자 해 도인이 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눈에 찰만한 다른 보물은 찾지 못했지만 벽에 그려진 벽화들이 흥미롭더군요.”
그가 들어온 것을 안 해 도인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그림은 화려한 색채로 여러 가지가 그려져 있었다.
붕괴하는 산봉우리와 갈라진 땅, 지하에서 솟아오른 용암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길이 연결되어 그 안의 세상을 멸망시키고 있었다.
가만히 그림을 보고 있자니 마치 그 안의 형상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용암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고공에서는 불구슬이 떨어졌다.
먹구름이 요동치면서 뇌전을 뿜어내고 바람이 사방을 날카롭게 할퀴었다.
다양한 복색을 한 사람들이 그 속을 번득번득 날아다니면서 수결을 맺고 주술을 외거나 창이나 맨주먹 등으로 맞섰지만 감당이 되지 않았다.
별이 총총한 하늘에서 별빛이 마구 떨어지고 만검이 솟아올라 하늘과 땅을 뒤집어 놓았다.
수사들의 싸움 외에도 방대한 몸집의 짐승들이 입에서 불이나 뇌전을 뿜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고대 짐승들을 많이 알고 있는 한립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림이 담고 있는 것은 참혹한 선인의 전투였는데 그게 얼마나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지 보고만 있어도 마른 침이 삼켜졌다.
이상한 일은 또렷하게 그려진 인물들은 다 한 편으로 보였고 반대로 그들의 적은 잿빛 안개가 가려진 것처럼 흐릿하게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한 수사, 여기에 그려진 전투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아니요, 해 수사께서는 아시는 게 있습니까?”
“저도 없습니다. 그저 그림이 워낙 기괴해서 수사가 보셔야 할 것 같아 알린 것입니다.”
한립은 조금 실망했지만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그 후 그는 해 도인과 같이 돌아다니면서 건물들을 수색했다. 많은 보물이 있었지만 그가 건질만 한 것은 얼마 없었다.
물론 바깥에 내다 팔면 선원석을 꽤나 챙길 수 있는 보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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