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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97화 (1,454/2,000)
  • 1697화. 미끼

    *

    “한 수사, 대주천성원공 상반부 공법이 적힌 석판은 이 궁전의 후전(後殿)에서 찾은 겁니다. 나머지 공법이 적힌 석판도 이 안에 있고요.”

    “당시 그걸 놓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겠지요?”

    “그렇습니다. 이 안을 금선 초기의 실력을 지닌 구리 괴뢰가 지키고 있습니다.”

    냉염노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런데 한립은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은 얼굴이었다.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하지만, 금선괴뢰가 지키고 있다면 대주천성원공을 익히기 전 수사의 실력으로 상반부 공법을 가지고 나오는 것도 불가능했을 텐데요?”

    “흠, 죄송할 것 없습니다. 당시 제 실력으로야 금선괴뢰의 일격도 막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싸우는 대신 늘 지니고 다니던 괴뢰 몇 마리를 풀어 금선괴뢰의 주의를 돌리고 은신 보물로 기운을 감춘 다음 후전으로 가서 공법을 훔쳐냈거든요.”

    한립은 그제야 상대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해 도인처럼 지능이 높고 경험이 풍부한 경우가 아니면 보통 괴뢰들은 지능이 낮은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상반부 공법이 새겨진 석판을 건들자마자 금선 괴뢰가 알아차리고 돌아왔습니다. 딱 주먹 한 대를 맞고 나가떨어져 중상을 입고 말았는데 다행히 궁전 바깥까지 쫓아오지 않아 겨우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그럼 그때 괴뢰의 지능은 어떤 수준이었습니까?”

    “살상력은 크지만 지능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겨우 유인책에 당했을 리도 없고요.”

    “그렇다면 궁전 바깥으로 쫓아 나오지 않은 것은 예전 주인이 운신의 폭을 제한해 놓아서겠군요. 절대 궁전을 떠나는 일 없이 오로지 공법만을 보호하도록요. 생각보다 공법을 얻기가 어렵지 않겠습니다.”

    “이전에 제가 쓴 방법을 그대로 써서 나머지 공법도 가지고 나오자는 말씀입니까?”

    냉염노조가 망설이는 기색으로 물었다.

    “그러합니다. 냉염수사가 도움을 주신다면요.”

    “어떤 도움을 말씀하는 것인지 편하게 말해 주시지요.”

    한립은 냉염노조에게 자신이 생각한 방책을 들려주었다. 상대는 한참 듣다가 가능할 것 같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저기, 그 계획에 제 역할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 수행이 너무 떨어져서 도움이 되지 못할까 그러십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육우청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런 것은 아닐세. 우린 공법을 몰래 가지고 나오려는 것이지 강탈하려는 것이 아니니 사람이 많아서 무엇 하겠나. 게다가 저 안에 든 보물은 우리 두 사람에게 필요한 공법이라 자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않고 말이야. 그런데 어째서 스스로 위험에 뛰어들려 하는 것인가?”

    “듣고 보니 그러네요. 제가 따라가면 방해만 되겠어요.”

    육우청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립과 냉염노조는 각자 단약을 하나씩 복용하고 대전 쪽 계단으로 다가갔다.

    궁전을 봉쇄한 진법이 아직 실행 중이었으나 파훼가 어려운 고계 금제는 아니었다. 그는 뇌전을 머금은 한 손을 문 쪽으로 펼쳤다.

    펑!

    자금색 문 두 쪽이 안으로 열렸다.

    한립의 손바닥 모양대로 움푹 들어간 문은 주술문자들이 새까맣게 변해서 지워졌다.

    그러자 대전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던 구리 인간이 눈을 뜨고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침입자는 죽는다.”

    괴뢰는 팔짱을 끼고 있던 두 팔로 바닥을 쾅! 내리치며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쇄도했다.

    한립이 손가락을 튕겨 파랗고 노란 빛줄기들을 안으로 날렸다. 빛줄기들이 8마리의 거원 괴뢰로 변해서 구리 인간을 상대하지 않고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구릿빛 괴뢰가 그것을 보고 괴뢰 중 한 마리를 쫓아 방향을 틀었다.

    시선을 마주친 한립과 냉염노조가 그 틈에 번득 대전 안으로 스며들었다.

    한 명은 무상맹 가면으로, 다른 한 명은 암홍색 장포로 기운을 최대한 숨기고 후전 쪽의 거대한 병풍을 향해 이동했다.

    그런데 그들이 안으로 들어선 순간 안쪽에서 연달아 폭음이 들리고 한립이 방출한 거원 괴뢰 8마리가 터져 버렸다.

    두 사람 앞에 번득 구릿빛 괴뢰가 나타나 그들을 향해 양 주먹을 날렸다. 예기치 못한 일에도 한립은 당황하지 않고 두 팔을 들어 일격을 막았다.

    뻑!

    이에 한립은 쭉 미끄러져 문짝에 등을 부딪쳤고, 옆의 냉염노조는 주먹 한 방에 벽까지 날아가 피를 울컥 토했다.

    그는 피를 닦을 겨를도 없이 한립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어째 상황이 이전과 완전히 다르단 말인가!

    그러나 한립은 그를 질책할 틈이 없었다.

    “가서 공법을 찾아오세요.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먼저 구릿빛 괴뢰에게 달려들었다.

    괴뢰들이 시간을 끌 동안 그와 냉염노조가 병풍 옆 후전으로 통하는 통로로 들어가 후반부 공법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냉염노조는 시간을 끌 실력이 안 되었으니 그가 금선 괴뢰를 막아야 했다. 냉염노조는 입에 남은 피를 퉷! 하고 뱉어내더니 더는 은신하지 않고 후전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는 어째서 멍청하던 금선괴뢰가 갑자기 저리 똑똑해진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립이 자신이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렸다고 오해라도 하면 공법을 얻어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었다.

    몇 번 만나면서 한립의 성정을 파악한 바로는 자신을 배신하거나 상해를 입힌 자에게까지 인정을 베푸는 성격은 아니었다.

    “감히!”

    구릿빛 괴뢰가 노호성을 내뱉더니 한립을 내버려 둔 채 그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겨우 병풍 앞에 이른 냉염 뒤로 바람 소리가 들리고 하얀빛을 품은 거대한 주먹이 심장 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말고 공법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다급히 몸을 돌려 공격을 막으려는데 한립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이잇!’

    그 말에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주먹이 날아오든 말든 병풍 뒤로 쏘아져 나갔다.

    주먹이 닿기 전 풍뢰시를 펄럭인 한립이 번개처럼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겹쳐진 두 손에서 푸른 손바닥 허상들이 거의 실체화되어 괴뢰의 주먹과 부딪쳤다.

    쿵!

    주먹과 손바닥들 사이에서 광풍이 불어 의복이 바람에 펄럭였지만 한립은 굳건히 버텼다. 괴력에 팔이 약간 꺾이고 발목까지 바닥을 파고 들어가 있었다.

    “죽고 싶으냐!”

    분노한 괴뢰가 다른 주먹에 하얀 별빛을 응결해서 그를 내리치려 했다.

    크앙!

    울컥 화가 치민 한립도 괴성을 내지르며 폭발적으로 몸집을 키워 황금색 털이 북슬북슬한 산악 거원으로 변신했다.

    두 팔을 번쩍 들어 괴뢰가 날린 주먹을 붙잡은 그는 상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거대한 두 주먹이 충돌하면서 요란한 하얀빛이 튀고 진동에 궁전이 흔들렸다.

    팔을 거둔 한립의 몸이 다시 바닥으로 약간 가라앉았다. 그러나 구리 괴뢰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산악거원이 괴뢰에게 밀린 것이다.

    힘을 주어 두 발을 바닥에서 뽑아낸 거원이 펄쩍 뛰어올라 괴뢰를 향해 주먹을 날렸고 괴뢰도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면서 주먹을 뻗었다.

    피부에 별빛이 반짝이는 남색 막을 응결한 한립은 기세가 대폭 늘어 있었다.

    구리 괴뢰도 남색빛을 반짝이더니 대주천성원공의 현규가 있을 법한 자리에 한립보다 더 많은 별빛을 반짝이면서 성광지력을 발산했다.

    주먹이 맞닿기 전에 승부가 정해진 것만 같았다.

    두 주먹 사이에서 별빛들이 합쳐져 마찰음을 낼 무렵 한립이 흐릿하게 사라져 거인의 등 뒤에서 주먹을 뻗었다.

    퍽!

    구리 괴뢰 등 뒤의 현규에서 대량의 별빛이 쏟아져 나와 한립 주먹의 성광지력과 충돌했다.

    마치 대량의 남색 불꽃이 피어난 것 같았다. 강력한 힘의 충돌에 구리 거인이 어쩔 수 없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한립을 향하던 주먹이 쾅! 바닥을 때리면서 궁전이 휘청거리고 벽이 갈라져 사방에서 먼지와 자재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걸 본 한립은 가슴이 철렁했다.

    주먹이 정면충돌하기 전, 역전진륜 신통을 이용해 피하지 않았으면 중상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 미심쩍은 것은 구리 괴뢰가 성광지력을 사용하고 몸에 지닌 현규의 수가 그보다 더 많다는 것이었다.

    설마 괴뢰가 대주천성원공을 익혔단 말인가!

    “한 수사, 찾았습니다. 어서 달아…….”

    후전 쪽에서 누군가 소리치고, 냉염노조가 병풍 뒤에서 청회색 색판을 들고 번뜩 튀어나왔다.

    고개를 끄덕인 한립은 그와 같이 몸을 돌려 입구로 쇄도했다.

    자금색 문을 다시 열려고 손을 든 순간, 궁전 전체가 부르르 떨리면서 문짝의 주술문자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아앗!

    구불구불 퍼져나간 자금색 빛이 완전히 궁전 내부를 감쌌다.

    “안 돼!”

    당황한 냉염노조가 소리쳤다. 그러나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간 한립은 차분하게 손을 두 문에 대고 눌렀다.

    파칫!

    손바닥에서 은색 뇌전 구슬 5개가 나와 자금색 보호막을 때렸으나 고어로 적힌 주술문자들이 뱀처럼 뇌전빛을 쏘아 올려 뇌전 구슬들을 쳐냈다.

    자금색 뇌전빛이 은색 뇌전을 잡아먹고 한립의 손까지 따끔하게 만들었다.

    “공법을 훔쳐 가려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괴뢰가 언제 다시 몸을 일으켰는지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얀 안개에 휩싸인 그의 몸에 현규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괴뢰의 수행은 금선 초기 최고봉이라 불려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하, 한 수사 제가 속인 것이 절대 아닙니다. 분명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었다고요.”

    냉염이 한립의 눈치를 살피면서 서둘러 변명했다.

    “믿습니다.”

    “예?”

    간결한 한립의 답에 오히려 말문이 막히는 쪽은 냉염노조였다.

    “궁전 바깥의 금제는 허술한데 안쪽의 금제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강력합니다.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한립이 구리 괴뢰를 주시하면서 빠르게 말했다. 그 말에 입을 쩍 벌린 냉염도 상황을 깨닫고 소리쳤다.

    “궁전의 설계가 외부인의 진입을 막는 게 아니라 한번 들어온 이들은 나가지 못하게 되어있는 것이군요. 이곳의 구조가 중앙 궁전과 똑같은 것도 함정입니다. ……설마, 대주천성원공이 미끼였단 말입니까!”

    “아마 오랜 세월이 지나 진법에 문제가 생긴 것일 지도요. 지난번에 수사가 찾아왔을 때는 내부 금제가 발동되지 않고 괴뢰도 완전히 깨어나지 않아서 운 좋게 목숨을 건진 걸 겁니다.”

    한립의 말에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었는지 깨달은 냉염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엇, 괴뢰가 옵니다.”

    냉염노조의 외침이 끝나기 전에 한립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어찌 된 일인지 구리 괴뢰 머리 위에서 나타난 한립이 기괴한 검결을 맺고 푸른 장검을 떨어뜨렸다.

    파치치칙!

    금빛 뇌전을 머금은 장검이 구리 괴뢰 머리를 찔렀다.

    쿠앙!

    금색 소용돌이가 치고 바람이 휭휭 부는 가운데 사방으로 퍼진 여파를 궁전의 자금색 금제가 상쇄했다.

    “주, 죽은 건가…….”

    소용돌이 속을 주시하던 냉염노조는 괴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곧 금색 소용돌이 안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옥처럼 반투명한 굵은 팔이 쑥 튀어나와 뇌전을 휘감은 푸른 장검을 붙들고 뽑아내려 했다.

    쿠르릉!

    크하하악!

    하얀 안개와 남색 별빛들이 난무했다.

    금색 소용돌이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수많은 뇌전빛을 튕겼고 청죽봉운검도 충격을 받아 날아올랐다.

    천장의 자금색 금제에 부딪혀 돌아온 검을 한립이 척 받아들었다. 웅웅거리는 장검 때문에 그의 팔도 떨려왔다.

    호흡이 가빠진 한립의 얼굴도 창백해 보였다.

    대전 중앙의 구리 괴뢰는 청옥처럼 투명한 몸으로 곳곳에서 남색 별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뇌전의 힘이 실처럼 남아서 맴도는 데도 개의치 않고 한립을 향해 달려들었다. 괴뢰의 한 손이 칼날처럼 한립의 목을 노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와 궤적에 한립도 퍽! 하고 맞아 자금색 금제에 부딪혔고 진탕된 머리가 심하게 울렸다.

    “한 수사!”

    놀란 냉염노조가 움찔하다가 금선 괴뢰의 눈치를 보고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괴뢰가 쓰러진 한립을 쫓아가 끝장내지 않고 몸을 돌려 그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냉염노조는 온몸의 소름이 돋아 청회색 돌판이 달궈진 돌덩이라도 되는 것처럼 멀리 던져 버렸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우연인지 공법이 적힌 석판은 십여 장을 날아 한립 발치에 떨어졌다.

    한립은 의복이 군데군데 타들어 가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청회색 석판을 들고 씩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금선 괴뢰는 휙! 몸을 돌려 한립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조금 전처럼 하얀빛을 응결한 손날을 칼처럼 사용해서 그의 심장을 꿰뚫을 셈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립도 예상한 듯 등 뒤에 금색 고리가 떠올라 열댓 개의 고리가 빛을 발하고 파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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