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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93화 (1,450/2,000)
  • 1693화. 연합

    *

    “냉염 수사, 일부러 저런 말을 하는 것이니 넘어가면 안 됩니다. 우리가 금제를 부수는 동안 딴마음을 품고 접근하는 놈들이 있을까 봐 대비해둔 것뿐이에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예기치 않은 일은 언제든 생기니까 말입니다.”

    웅산은 당황하지 않고 한립의 말에 반박했다.

    그 말에 냉염노조의 표정이 약간 풀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다가서지는 않았다.

    “하하, 그렇습니까? 그럼 냉염 수사에게 언질이라도 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건……. 저도 혹시 몰라 대비한 것이라 굳이…….”

    한립의 유유자적한 한 마디에 일순 말문이 막힌 웅산은 어색하게 말끝을 흐렸다.

    그도 정말 냉염노조를 기습하려고 깃발을 숨겨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배신할 마음이 없어도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대비해 놓은 것이었는데 한립이 그걸 파고들자 해명하기가 곤란했다.

    “웅 수사의 탓이 아닙니다. 너무 쉽게 남을 믿은 제가 멍청한 것이지요.”

    다시 냉염노조의 얼굴이 삭막해지며 불쾌한 티를 냈고 웅산도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냉염 수사, 저희도 어떻게 보면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닙니까? 유한궁에 아무리 보물이 많아도 그에 따르는 위험도 상당할 테니 저와 손을 잡으시지요. 제 실력이야 이미 잘 알고 계시니 동행하면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은 말씀 안 드려도 되겠지요.”

    한립의 말에 냉염노조는 미간을 좁히고 쉽게 답하지 않았다.

    “수사가 예전에 대주천성원공을 내주신 것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인품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벗을 암습할 만큼 모진 성격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한립은 덧붙이면서 힐끗 웅산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걸 본 웅산이 싸늘한 눈빛으로 코웃음을 쳤다.

    “알겠습니다. 기왕 여기서 만났으니 동행합시다. 앞으로 부탁드립니다.”

    냉염노조가 잠시 고민하다 결정을 내리고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부탁이라니 과분한 말씀입니다. 그럼 일단 마지막 금제를 해결해 볼까요?”

    “두 분, 지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있자니 웅산이 난색을 보였다.

    “아, 웅 수사를 배척하려는 뜻은 전혀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사이에 엄청난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사가 저를 공격하신 것도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니 그냥 없던 일로 치겠습니다. 어차피 같은 목표를 갖고 있는데 힘을 합해서 금제를 파훼하는 것이 급하지 않겠습니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한 수사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힘을 합치는 것이 모두에게 이득일 테니까요. 그리고 냉염 수사, 앞서 제가 소인배처럼 군것에 대해서는 사과하겠습니다. 그 대신 보물을 찾으면 수사에게 먼저 선택할 기회를 드리지요.”

    웅산도 한립이 먼저 손을 내밀자 뿌리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이제 한 수사 일행이 합류했으니 우리가 보물을 손에 넣을 가능성도 커졌군요. 그런데 이분은 어찌 불러드리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미소를 지은 냉염노조의 시선이 육우청에게 향했다.

    “제가 수사분들보다 수행이 한참 부족한 것을 압니다. 저는 그저 한 형을 따라 견문이나 넓히고자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니 마음에 차지 않는 물건이 있으면 한두 개만 제게 남겨 주셔도 감사할 것입니다.”

    한립이 입을 떼기 전에 진선경 초기의 육우청이 손을 저으면서 공손히 답했다.

    그녀는 냉염노조와 한립의 대화를 잘 듣고 있다가 그에 대한 호칭을 적절하게 바꾸어 언급했다.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말에 냉염노조와 웅산의 눈빛이 풀어졌다.

    “다른 문제가 생기기 전에 움직이시지요. 두 분이 술법을 지속하시면 저도 돕겠습니다.”

    한립이 다른 말 없이 덧붙였다.

    “좋습니다.”

    웅산은 금색 장검과 거대 깃발을 넣어 버리고 앞으로 나서 수결을 맺었고, 냉염노조 역시 몸을 돌려 5가지 영보들을 이용한 술법을 펼쳤다.

    그러자 오색 빛기둥이 반짝이고 그걸 감지한 별빛 보호막에서 눈부신 별 도안들을 수도 없이 만들어냈다.

    쿠쿠쿠쿵!

    연달아 폭음이 터지고 안정을 찾았던 별빛 보호막이 흔들렸다.

    칠요성환을 회수한 한립은 어떤 보물도 없이 대주천성원공을 전력으로 운용해 두 팔 가득 별빛을 머금었다.

    그의 팔이 흐릿해진 순간 별빛 주먹 허상 두 개가 미친 듯이 뻗어 나갔다.

    휘이잉!

    엄청난 권풍이 몰아치고 별빛 보호막 위로 무수히 많은 주먹 허상이 떨어졌다. 옆에서 육우청도 지켜보지만은 않고 푸른 깃털 부채를 불러내서 맹렬히 부쳤다.

    푸른 바람의 칼날들이 날아가 별빛 보호막을 때렸다.

    네 수사가 힘을 합쳐 맹공을 펼치자 그 위력은 놀라웠다. 현묘해 보이던 별빛 보호막이 빠르게 어둑해지면서 얇아졌다.

    그런데 그때 섬 상공의 하늘에서 쿠르릉!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하얀 안개가 자극받은 듯 회전하기 시작해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건 별빛 금제가 하늘의 성광지력을 끌어와 위력을 회복하려는 것입니다. 단번에 금제를 부수지 못하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말 겁니다.”

    “맞습니다. 한 번에 끝내봅시다.”

    웅산이 외치고 냉염노조가 답했다.

    두 사람은 수결을 빠르게 바꾸어 오색 빛기둥을 강화했다.

    오색 빛구슬이 잔뜩 몰려나와 이전에 보았던 거대 빛구슬을 형성하고 별빛 보호막으로 떨어졌다.

    미간을 좁히고 있던 한립도 입술을 달싹여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의 몸이 금빛으로 물들며 부풀어 올라 순식간에 금털이 난 북슬북슬한 산악거원으로 변했다.

    산악거원의 가슴과 배에 18개의 별빛이 밝게 빛나면서 몸의 금빛 기운이 서로를 비추었다.

    크앙!

    산악거원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몸을 틀면서 팔을 내질렀다.

    후웅.

    허공에 거대한 금색 주먹 허상이 나타나서 성광지력을 함유하고 별빛 보호막 쪽으로 날아갔다.

    이에 육우청도 푸른 깃털 날개에 기운을 잔뜩 불어넣어 풍룡(風龍)을 내뿜었다.

    콰콰쾅! 쿠콰콰쾅!

    엄청난 진동과 소리가 해역을 쩌렁쩌렁 울렸다. 심하게 출렁인 별빛 보호막에 균열이 일어나 퍼져나갔다.

    퍼펑!

    별빛 보호막이 터지면서 온 하늘에 별빛을 흩뿌렸다.

    하지만 별빛들은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빠르게 한곳으로 모여 소용돌이를 이루고 무시무시한 흡입력을 발생시켰다.

    그리고 그 순간, 수사들은 아무 대비도 하지 못한 채 휙!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립은 눈앞이 흐릿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시야가 회복된 그는 돌을 쌓아 만든 평평한 단 위에 서 있었고 냉염노조와 다른 이들도 주변에 있었다.

    그들의 위치는 힘을 합쳐서 금제를 파훼할 때와 비슷했다.

    예스러운 양식의 짙은 남색 돌바닥에는 아직 전송진 하나가 웅웅대면서 하얀빛을 머금고 있었다.

    어지러움이 가신 한립은 주위를 살폈다.

    그곳은 얼음과 눈이 가득하던 검은 해역이 아니라 쪽빛 하늘에 둥그런 해와 하얀 구름이 있는 공간이었다.

    상쾌한 바람에 구름이 표표히 움직였다.

    ‘이곳이 유한궁인가 보구나…….’

    전방으로 정상이 구름에 가려진 4, 5천 장쯤 되는 높은 산이 보였다. 은백색 산봉우리의 산세가 높고 무척 가파르게 보였다.

    구름으로 가려진 정상에는 빛이 반짝여서 그곳에 보라색 궁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곧게 정상까지 뻗은 계단이 산 아래부터 정상의 보라색 궁전까지 뻗어 있었다.

    은은한 빛을 발하던 은백색 계단은 하늘과 땅을 잇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풍경을 살피던 한립은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왜 그런지 잠시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전송진을 벗어나려 걸음을 뗐다. 그러자 강력한 힘이 전송진에서 뿜어져 나와 그를 구속했다.

    눈썹을 끌어올린 그는 몸을 두른 하얀빛을 내려다보면서 생각에 빠졌다.

    오래지 않아 냉염노조, 웅산 그리고 육우청이 차례로 정신을 차렸다. 육우청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놀랐는지 조그맣게 탄성을 내뱉었다.

    냉염노조와 웅산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산 정상의 보라색 궁전을 보면서 눈을 빛냈다.

    “여기가 유한궁인가 봐요. 정말 장관이네요!”

    육우청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려다 몸이 굳은 것처럼 꼼짝할 수 없자 안색이 달라졌다.

    “전송진이 아직 발동 중이라 완전히 멈춰야만 나갈 수 있네.”

    냉염노조가 차분히 말해 주었다.

    그 말에 멈칫한 육우청이 그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한립은 그런 냉염노조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웅산과 이간질해가면서 냉염노조를 회유한 까닭은 상대가 이전에 이곳에 들어와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낯설고 위험한 환경에서 길잡이가 있고 없고는 매우 큰 차이가 났다.

    네 사람의 발밑에서 전송진이 웅웅거리는 간격이 길어지고 하얀빛도 줄어들었다.

    그동안 그들은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당연히 은백색 산봉우리 정상으로 시선이 가장 많이 갔다.

    냉염노조와 웅산의 눈빛은 점점 뜨거워졌지만 한립은 무표정했고 육우청은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잠시 후 전송진이 완전히 멈추었다.

    “갑시다.”

    압박감이 사라진 냉염노조와 웅산이 즉시 전송진을 벗어나 빠른 걸음으로 전방의 은백색 산의 계단 쪽으로 달려갔다.

    “걸어서 따라가세.”

    한립은 그들이 둔술을 쓰지 않는 것을 보고는 육우청과 함께 빠르게 걸어갔다.

    우우웅!

    두 사람이 전송진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뒤쪽에서 하얀빛이 터져 나왔다. 놀란 그들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빛이 반짝이고 여러 명이 나타났는데 해골 무늬 수가 놓아진 검은 장포 차림의 귀읍종 수사들이었다.

    “혈한!”

    냉염노조가 전송되어온 자를 보고 안색이 변해 중얼거렸다.

    그 말에 한립은 귀읍종 수사들의 우두머리인 곰보 노인을 훑고는 의아해졌다.

    곰보 노인의 이름을 분명 진비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혈한이라면 십방루 금선 장로 중 한 명으로, 그도 성괴문 임무 때 멀리서 본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전송의 여파로 멍하던 곰보 노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는 한립과 육우청를 스쳐 그 뒤의 웅산과 냉염노조를 바라보았다.

    곰보 노인과 시선을 마주친 웅산과 냉염노조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입꼬리가 들썩인 노인은 산 정상의 보라색 궁전으로 눈길을 돌리고 마구 웃어댔다.

    “으하하! 역시 여기였어!”

    “혈한 수사, 여긴 어쩐 일이 십니까?”

    냉염노조가 약간이지만 두려운 기색이 스치며 입을 열었다.

    “우리를 따돌렸다고 생각했겠지? 일부러 보내주고 그 뒤를 쫓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야.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유한궁의 위치를 알고 있을 줄이야! 우하하!”

    곰보 노인이 다시금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에 한립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들도 뒤따르고 있었는데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금선경 수행을 지닌 곰보 노인이 특수한 방법을 사용했다면 그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금선인 그들은 만만히 볼 존재들이 아니었다.

    냉염노조와 웅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오는 동안 두 무리나 그들을 쫓고 있었는데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선을 마주치고 곧장 몸을 돌려 계단으로 쇄도했다. 한립도 육우청에게 눈짓을 하고 그들을 뒤따랐다.

    “호, 본 좌 앞에서 달아나 보시겠다.”

    곰보 노인은 냉소하며 전혀 걱정 없다는 얼굴을 했다.

    진선 수사 네 명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비경 공간에 갇혀 있는데 어찌 금선의 추격을 피하겠는가.

    그들을 쫓으려던 노인의 안색이 순간 달라졌다. 금제의 강력한 구속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주변 공기가 묵직해진 곰보 노인은 금선임에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가 검은 기운을 방출해 저항해도 마찬가지였다.

    한립 일행은 그 틈에 쾌속으로 은백색 산봉우리 아래 계단 앞에 이르렀다.

    “서두릅시다.”

    냉염이 웅산과 같이 계단에 발을 올렸다. 그들은 잠시 휘청거렸지만 바로 몸을 가누고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던 한립도 곧 계단으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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