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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92화 (1,449/2,000)
  • 1692화. 틀어지다

    *

    “이번에 선부로 들어온 이들도 이곳은 찾지 못했나 봅니다.”

    냉염노조가 요리조리 섬을 관찰하며 말했다.

    “이렇게 외진 곳에 있으니 찾기 쉽지 않을 겁니다. 당시 우리도 한수 떼에 쫓겨 억지로 이곳까지 오지 않았으면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보호막 속 궁전을 바라보는 웅산의 눈에도 열기가 가득했다.

    “웅산 수사의 표정을 보니 만반의 준비를 해 오신 듯합니다. 오랜 세월 놀고 있지만은 않으셨나 봅니다?”

    “냉염 수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대주천성원공을 벌써 대성하셨을 텐데 아까 한수와 싸울 때 끝까지 전력을 다하지 않으시더군요.”

    “허허!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 실력이 조금 늘었다고 어디 수사만 하겠습니까.”

    그들은 몇 마디 주고받다 말이 없어지더니 급격히 분위기가 삭막해지고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흠, 아직 한유궁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어차피 서로 원하는 것도 다르니까 여기서 이러지 마시죠.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기기 전에 우선 힘을 합쳐서 빠르게 금제를 파훼하는 게 좋겠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돌연 웃음을 흘리는 냉염노조를 보고 웅산도 씩 웃었다.

    파파팟.

    웅산이 저물대를 쳐서 금빛 검과 푸른 나무 자 그리고 남색 깃발을 불러냈다. 세 보물의 놀라운 영력 파동은 선기에 맞먹었다.

    파팟.

    냉염노조도 극품영보인 붉은색 발우와 노란 인장을 방출했다.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던 다섯 보물이 반짝 사라져서 종적을 감추고 허공이 웅웅 떨려왔다.

    오색 찬란한 광채가 펴져나가 수십 리를 감싸고 진법을 형성했다. 그 범위 내에서 주변 친지영기의 흐름이 얼어붙은 것처럼 멈춰 있었다.

    “무척 위력적으로 보이는데 어떤 신통인지 아세요?”

    육우청이 소리를 죽여 물었다.

    “다섯 가지 오행 속성을 지닌 영보를 이용해 펼치는 대오행섭령진광(大五行攝靈眞光)일세.”

    “네? 대오행섭령진광이요?”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오색 광채가 몰려들어 빛기둥을 이루고 섬을 가린 검은 보호막으로 쏘아져 나갔다.

    검은 보호막도 자극을 받은 듯 맹렬히 반짝였다.

    수많은 기다란 검은 광선이 뭉쳐 검은 용을 이루고 오색 광주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쿠쿠쿵.

    검은 용은 뜻밖에도 오색 빛기둥을 몸으로 감아 멈춰 세우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찍어댔다.

    실체화된 단단한 오색 빛기둥은 검은 용의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냉염노조와 웅산의 주문소리가 커졌다.

    쉬쉬쉭.

    빛기둥 속에서 각기 다른 색깔의 구슬 다섯 개가 빠져나왔다.

    반투명한 구슬들은 아름다운 빛깔을 뽐냈지만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다섯 구슬들이 뻗어나가 검은 용 위로 떨어졌다.

    쿠르르릉!

    구슬들의 폭발에 검은 용은 대량의 빛에 잠식되었고 곧 종잇장처럼 갈라져 부서졌다.

    육우청은 믿기지 않는 광경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고 한립은 평온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단번에 검은 용을 격파한 오색 빛구슬의 힘이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검은 광채 보호막은 심하게 왜곡되며 버티다가 쿵! 하고 찢어졌다.

    그러나 검은 광채가 흩어진 자리에 공간이 일렁이면서 새로운 푸른 보호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겉면에 있던 검은 보호막과 엇비슷한 수준의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냉염노조와 웅산은 놀란 기색도 없이 술법을 이어나갔다.

    콰르르릉!

    얼마 후 경천동지할 굉음과 함께 오색 구슬이 푸른 보호막을 터트렸다. 짙은 하얀빛이 그 자리에 몰려들어 새로운 금제를 형성하고 여파를 막았다.

    한립도 그것을 보고는 눈썹을 꿈틀했다.

    ‘유한궁을 둘러싼 금제가 생각보다 복잡하구나.’

    개수가 많은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위력도 상당해서 그가 직접 나서도 파훼하려면 바삐 움직여야 했다.

    다행인 것은 냉염노조와 웅산이 진작 그것을 알고 파훼법을 잘 준비해 왔다는 사실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2, 3시진이 흘렀다.

    섬 위에서는 아직도 영기의 빛이 번득거리고 굉음이 울렸다. 처음보다 더 굵어진 오색 빛기둥에서 수많은 오색 구슬이 날아올라 잿빛 금제를 난타하는 중이었다.

    잿빛 구름이 뭉친 듯한 금제는 굉장히 단단한지 쏟아지는 공격에도 잘게 떨리기만 할뿐이었다. 냉염노조와 웅산도 이제 좀 지친 듯 했다.

    연달아 각기 다른 종류의 금제 10개를 파훼한 뒤였다.

    두 사람은 빠르게 수결을 바꾸었다.

    후우웅!

    오색 빛기둥이 더 진해지면서 한 번에 백여 개의 오색 빛구술을 방출해서 집채만 한 거대 빛구슬을 형성했다.

    더 이상 반투명하지 않았지만 기함할 만큼의 영력파동을 지닌 빛구슬이었다.

    쿠아아앙.

    오색 태양이 떨어진 듯 잿빛 보호막이 터져나갔다.

    냉염노조와 웅산이 그것을 보고 한숨을 돌렸고 멀리서 지켜보던 한립과 육우청도 희색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제 끝인가 싶었더니 별빛들이 몰려들어 규칙적으로 배열되는 것이 아닌가!

    검은 바다 위에 뜬 별들이 따로 없었다.

    “또! 대체 이 섬에 얼마나 많은 금제를 펼쳐 놓은 걸까요?”

    “걱정할 것 없네. 아마 이게 마지막일 것이야.”

    뾰로통하게 중얼거리는 육우청을 보던 한립은 눈에서 남색 빛을 일렁이면서 웃음 지었다.

    그런데 이때, 그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파아앗!

    눈부신 별빛이 나타나 그를 감쌌기 때문이다. 빛이 시작된 곳은 그의 허리춤에 달린 저물대였다.

    옆에 있던 육우청은 그야말로 대경실색해서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서야 놀라 소리치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웅웅웅웅!

    멀리 별빛 보호막이 맹렬하게 빛나면서 천천히 운행하던 별 문양들의 속도가 빨라졌다.

    마치 별빛 보호막과 한립의 별빛이 서로 호응하는 것 같았다. 냉염노조와 웅산도 깜짝 놀라 휙! 하고 먼 곳을 응시했다.

    한립의 손짓에 눈부신 별빛을 머금은 푸른 돌 조각이 날아올랐다.

    다른 게 아니라, 냉염노조에게 받은 대주천성원공 상반부 공법이 적힌 괴상한 돌조각이었다.

    지금 돌조각은 별빛 구름에 파묻혀서 부름을 받은 것처럼 별빛 보호막을 향해 날아가려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중요한 공법에 이상 현상을 일으킨 것을 보면 비범한 내력이 있는 물건이 분명했는데 손놓고 보내줄 수는 없었다.

    한립이 손을 뻗어 잡아채자 푸른 돌조각이 웅웅 진동하면서 빠져나가려고 요동쳤다.

    부들부들 떨리는 자신의 팔을 본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평범한 진선경 수사였다면 붙들고 있지 못할 정도로 거센 저항이었다.

    그의 집중력이 분산되어 은신술이 약해진 탓에 바깥으로 흐릿하게 모습이 노출되었다.

    “누구냐!”

    안 그래도 이상한 낌새에 이곳을 주시하던 냉염노조와 웅산이 수결을 풀어 오색 빛기둥 조종을 멈추고 소리쳤다.

    슬쩍 미간을 좁힌 한립은 아예 은신술을 거두고 모습을 드러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진염종 수사들과 선부로 들어오시지 않았습니까? 어째서 우리 뒤를 몰래 쫓은 것입니까.”

    그를 아래위로 훑은 웅산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돌판은……. 한 수사?”

    냉염노조가 한립이 붙들고 있는 푸른 돌조각을 알아보고 놀라 외쳤다.

    “냉염 수사,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한립이 그런 그를 향해 담담히 웃어 보였다.

    동시에 수결을 맺은 그의 손에서 푸른 주술문자들이 떠올라 돌조각을 신속하게 봉인했다. 떨림이 약해진 돌조각에 부적까지 여러 장 붙인 그는 재빨리 물건을 넣어두었다.

    “한 수사? 냉염 수사께서 아는 분입니까?”

    웅산이 의심스런 눈길을 보냈다.

    “오해는 마시지요! 몇 번 마주친 사이긴 하나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냉염노조가 약간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해명했다. 그 소리를 들은 육우청이 고운 미간을 찌푸리면서 한립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는 사이라고 해도 몰래 뒤를 밟는 것은 경우가 아니지요!”

    표정이 싸늘해진 웅산이 냉랭히 질책했다.

    “하하, 우연히 두 분이 어딘가로 향하시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그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한궁의 위치를 알고 계셨더군요. 궁전이 이리 크고 넓은데 저희 두 사람이 함께 한다고 신경 쓰지는 않으시겠지요?”

    한립은 낯짝 두꺼운 소리를 잘도 늘어놓으며 청연주를 줄여 소매 속에 넣고는 육우청을 데리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냉염노조는 한립의 말에 표정이 변해 자기도 모르게 웅산의 눈치를 살폈다. 한립의 실력이 어떤지는 성괴문에서 충분히 경험을 해보아서 적수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피치 못할 사정이 없으면 싸우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어디 유한궁의 보물을 탐낼 실력이 되는지 봅시다.”

    안색이 나빠진 웅산이 대뜸 외치고 부풀어 오른 소매 속에서 굵직한 검기를 쏘아 보냈다.

    나무에서 잔가지가 뻗어나가듯 굵은 검기에서 금빛들이 흘러나와 무서운 기세로 한립을 노렸다.

    처음에는 팔뚝 만하던 자잘한 검기들이 길쭉하게 자라나 한립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희미하게 금색 연꽃 형상을 이룬 검기들이 닿기 전에 한립과 육우청은 그 기세만으로도 살을 찌르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만 자루의 검에 난도질당해 피투성이가 되는 환각 때문이었다. 퍼뜩 정신을 차려 비술을 운영한 한립 옆에 육우청이 겁에 질린 얼굴로 눈이 풀려 서 있었다.

    그녀 앞을 막아선 한립이 가슴과 배에서 18개의 별빛을 일으킨 채 주먹을 뻗었다.

    쿠아앙!

    형언할 수 없는 괴력이 공간을 비틀며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자 하강하던 금색 검기의 연꽃이 몸을 떨면서 멈췄다가 다시 수많은 검빛으로 흩어졌다.

    자연히 날카로운 기세도 사라져 육우청은 급히 숨을 들이키며 정신을 차렸다. 위기를 넘긴 그녀가 자신의 앞을 막아선 한립의 등을 복잡한 눈길로 응시했다.

    한립의 주먹질 한 번에 무시무시한 권풍이 미세하게 주춤했다가 산을 무너트릴 기세로 웅산을 향해 날아갔다.

    “이건……. 대주천성원공!”

    주변 공기가 강철로 변한 듯 긴장감을 느낀 웅산의 표정이 수시로 달라지다 낮은 기합 소리와 함께 검결을 맺어 금색 장검을 불러냈다.

    장검을 든 그의 기운이 더욱 날카롭게 변했다.

    휘이잉!

    맹렬히 휘두른 장검에서 거대한 검기가 교차해 날아가 무형의 압력을 갈랐다.

    중얼중얼 주문을 외는 그의 손에서 수많은 주술문자를 머금은 장검이 쏘아져 나가 강렬한 금속 속성의 법칙 파동을 발산했다.

    산만한 금색 검기가 형성되어 권풍을 내리치면서 해역을 쩌렁쩌렁 울렸다. 검기와 권풍이 막상막하로 겨루어서 주변 허공이 웅웅 떨렸다.

    눈을 가늘게 뜬 웅산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

    그 순간, 한립 등 뒤의 허공에 파동이 일고 금색 거대 깃발이 떠올라 보일 듯 말듯한 주술문자를 어른거리면서 금속 속성의 법칙파동을 내뿜었다.

    촤촤촤촷!

    깃발에서 뿜어져 나온 광채가 무수히 많은 실로 변해서 한립의 등을 향해 쇄도했다.

    육우청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으나 금실이 워낙 빨라서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구멍이 뻥뻥 뚫릴 판이었다.

    이때 한립의 몸에서 별빛이 반짝였다. 7개의 별빛 고리가 떠올라 배열을 갖추고 두 사람의 등을 막아섰다.

    화려한 빛을 머금어 순식간에 두꺼운 빛의 벽을 만들어 낸 것은 칠요성환이었다.

    피피피피피피픽!

    그 위로 자잘한 충돌음이 터져 나왔으나 빛의 벽은 끊임없이 파이면서도 금실을 막아냈다.

    그러자 웅산의 눈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쿠아앙!

    대치 중이던 권풍과 검기의 대결이 이제야 결론이 났다. 웅산의 금색 거검이 휙휙 돌며 튕겨 돌아오고 하늘을 뒤덮었던 한립의 권풍도 흩어졌다.

    여전히 제자리에 선 한립은 태연해 보였으나 웅산은 두 걸음 밀려났다. 웅산은 머리 위를 배회하는 거검을 살필 겨를도 없이 한립 뒤의 칠요성환을 노려보았다.

    “당신…….”

    웅산은 칠요성환이 마치 그의 기습을 미리 알았던 것처럼 나타난 것이 우연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금제를 파훼할 때 몰래 금색 깃발을 방출해 허공에 숨겨 둔 것을 모를 줄 아셨습니까?”

    한립이 웃으면서 묻는 말에 웅산이 표정이 굳어 수결을 맺었다.

    팟.

    깃발이 모호하게 사라져 그의 등 뒤로 돌아왔다.

    “그저 수사가 깃발을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숨겨 놓은 것인지 아니면 이걸로 다른 누군가라도 기습하려 했던 것인지 모르겠군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한립은 대놓고 냉염노조에게 눈짓했다. 눈치를 보고 있던 냉염노조가 난색을 표하며 웅산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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