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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87화 (1,444/2,000)

1687화. 들어오시지요

*

“호언 선배님, 저들은 복릉종 수사들입니까?”

한립은 또 호언 도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렇네, 외눈박이 사내가 복릉종 종주 제릉소라고 행동이 신중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사람들의 입에 잘 오르내리지 않는 데 반해 강시처럼 생긴 복릉종 대장로 봉천도는 북한선역에서 명성이 자자하지.

봉천도와 백리도주 그리고 북한선궁의 소진한이 금선 중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로 오랫동안 군림해 왔네. 어쩐 일인지 몇 만 년 전에 폐관에 들어가 나다니지 않더니 이곳에 나타날 줄은 나도 몰랐구만.”

자세하게 소개를 해주는 호언 도인의 목소리가 약간 가라앉았다. 한립은 왠지 모르게 익숙한 기운이라는 생각이 들어 봉천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전에 마주친 적이라도 있었나?’

이때 그의 시선을 느낀 듯 봉천도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얽힌 순간, 가슴이 철렁한 한립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상대의 시선에 속절없이 모든 것을 들킨 기분이었다.

서둘러 시선을 피한 그를 지긋이 살핀 봉천도의 눈에도 번득 이채가 스쳤지만 오래 응시하지 않고 검은 금제를 돌아보았다.

“낙 궁주, 저 안에 북한선궁 수사들이 있는 것입니까?”

“예, 저 안에 다 들어가 있더군요.”

눈이 가늘어진 봉천도의 질문에 낙청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빛의 장막을 살핀 봉천도의 손에서 쉭! 하고 빛의 화살이 날아갔다.

빛도 밝지 않고 별 것 아닌 것 같은 공격에 검은 장막이 맹렬히 흔들리면서 물결쳤다.

그러나 장막의 표면에 구궁 격자무늬가 떠올라 금제의 물결을 가라앉혔다.

“구환현장봉금법(九環玄藏封禁法). 확실히 소진한의 수법입니다.”

봉천도가 낙청해를 보았다.

“역시 한눈에 알아보셨군요!”

“강력한 금제라도 낙 궁주의 탁월한 솜씨에 창류궁의 다른 장로들의 실력이면 오래지 않아 파훼할 수 있었을 것인데 어째서 두고 보신 것입니까?”

“하하, 좋은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제가 어디 그럴 능력이 되나요. 어차피 다들 선부로 들어가기 위해 모였는데 합심해서 금제를 깨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치에 어긋나는 말씀은 아닙니다. 거 수사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낙청해와 대화를 나누던 봉천도가 거령에게 물었다. 은포 여인은 대답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다들 명석한 분들이니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서 북한선궁이 금제를 풀게 하고 다 같이 선부로 들어가십시다. 안에서 얼마나 많은 보물을 취할지는 각자의 능력껏 하는 것으로 하고요. 어떠십니까?

봉천도가 종유동굴 안 수사들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좋습니다!”

“그러시지요!”

이것만을 기다리고 있던 수사들은 분분히 찬성 의사를 밝혔다.

봉천도가 거침없이 펄쩍 뛰어올라 검은 금제 앞에 내려서자 복릉종 수사들이 재빨리 그 뒤를 쫓았고 다른 세력들도 우르르 몰려갔다.

호언 도인 일행도 빠지지 않았는데 한립은 일부러 눈에 띄지 않게 뒤쪽에 자리했다.

많은 수사들이 끌어올린 영기의 압력에 동굴 전체가 진동했고 금제도 영향을 받아 웅웅 떨렸다.

“소진한! 음모술수를 펼쳐서 입구를 막고 선부를 독점하려 했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어서 금제를 풀지 않으면 강제로 뚫고 들어가겠습니다.”

봉천도의 냉랭한 목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그러나 검은 금제 안에서는 어떤 반응도 없었다.

“북한선궁이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도 더는 봐줄 수 없습니다. 다 같이 금제를 쓸어버립시다!”

제릉소가 옆에서 일갈했다.

“옳은 말씀입니다!”

“쓸어버립시다!”

“좋습니다!”

고생스럽게 선부 입구를 찾아다닌 각 세력의 불만이 상당했고 그들이 다수였기에 다들 노기등등하게 동조했다.

“선궁이 이리 무도하게 나온다면 그냥 금제를 뚫고 들어가는 것으로 끝낼 수 있겠습니까? 힘을 모아서 저들을 내쫓아 선부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귀읍종 곰보 노인 진비의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그 말에 갑자기 동굴 안이 잠잠해지고 각 세력의 최강자인 금선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평소 겉으로는 북한선역의 지존으로 북한선궁을 공경하는 척했으나 이해관계 때문에 대놓게 드러내지 않을 뿐 진정 그렇게 여기는 세력은 얼마 없었다.

이제 촉룡도 사건으로 야욕을 드러낸 선궁이 선부 유적마저 독차지하려 들어 모두의 이익을 침해하자 낙청해와 봉천도 같은 금선 최강자들도 진비의 제안에 솔깃한 것이 사실이었다.

북한선궁에서 얼마나 많은 인원을 끌고 왔을지 몰라도 그들 홀로 여기 모인 각 세력 전부를 압도할 수는 없었다.

낙청해와 봉천도 등이 복잡한 눈길로 무언가 상의를 하려는데 이변이 발생했다.

검은 장막에 구궁 격자무늬가 일어 순식간에 금제를 흩어버리고 거무튀튀한 굴을 드러냈다.

기세등등했던 이들이 어안이 벙벙해져서 눈치를 살피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자 동굴 안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멀리서나마 소진한을 본 적 있는 한립은 바로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차렸다. 이에 낙청해, 봉천도 등도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눈길을 주고받은 금선급 수사들이 뚜벅뚜벅 안으로 걸어들어가고 거령도 그들을 뒤따랐다.

나머지 진선경 수사들이야 묵묵히 무리의 우두머리를 쫓을 뿐이어서 한립도 호언 도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수사들은 빠르게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의 검은 금제와 남색 빛의 문을 가린 진법도 전부 철거가 되었는데 9개의 봉인 돌기둥들만 남아 있었다.

금제가 사라진 남색 빛의 문은 훨씬 강렬한 빛과 기이한 한기가 서린 공간의 힘을 발산했다. 기이한 한기와 공간의 힘이 어우러져 남색 빛 안에서 은은하게 폭음이 들려오기도 했다.

그 시각, 홍월도 상공은 천기영기가 요동쳐서 눈부신 빛덩이를 이루고 수시로 폭발했다 뭉쳤다 하면서 천둥소리를 터트렸다.

빛의 문 앞에 모여선 북한선궁 수사들 앞에는 소진한이 서서 마치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들어서는 수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게 구석에 선 한립은 북한선궁 수사들을 살폈다. 2, 30명은 되는 수사들 중에 금선 존재가 거의 절반이었다.

한립이 더 의외라 생각한 것은 구양규산 외 두 명의 촉룡도 금선 도주들도 그편에 서 있다는 점이었다.

나머지 수사들도 진선 후기의 수행을 지녀 수행으로는 빠지지 않았다. 이것만 보아도 북한선궁이 오랜 세월 선역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창류궁, 복릉종 그리도 나머지 수사들이 합심하면 북한선궁도 어려운 처지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한립은 문득 북한선궁 뒤쪽에 선 검은 장포를 입은 흑풍도 수사들 속에서 도주 육균과 육우청을 발견했다.

‘이런…….’

흠칫 놀란 그는 급히 체구가 큰 사내 뒤로 몸을 숨겼다. 무상맹 가면으로 변신해도 육우청의 특별한 눈은 피할 수 없었다.

“소 궁주와 다른 선궁 수사분들이 이곳에서 대사를 논의하고 계셨습니까. 저희가 말도 없이 들이 닥쳐서 방해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요.”

복릉종 종주 제릉소가 조롱인지 인사치레인지 웃으면서 말을 붙였다. 봉천도, 거령, 낙청해 등도 북한선궁의 전력을 파악하고 소진한을 쳐다보았다.

“허허, 봉 수사, 거 수사, 낙 궁주, 오랜 벗들이 전부 와주셨는데 직접 나가 마중을 하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소진한이 담담하게 답했다.

“마음에 없는 소리는 마시지요, 소 궁주. 우리가 앞에서 한 이야기는 다 들으셨겠지요?”

봉천도는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지 차갑게 물었다.

“저 소진한은 이제까지 저의 결정에 후회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쩌고 싶으시든 마음대로 하시지요.”

소진한이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북한선궁 수사들이 두려움 없이 저물법기로 손을 가져가 싸울 준비를 마쳤다.

“우리가 실행에 옮기지 못할 거라 여기는 겁니까?”

거령이 두 눈에서 차가운 은빛을 일렁이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전부 힘을 합치면 우리 북한선궁의 전력을 넘어섭니다. 물론 그 전에 전투를 벌이는 대가에 대해서 똑똑히 이해를 하셔야겠지만요. 이곳의 돌기둥들은 북한선궁의 독문 진법인 팔황류리진(八荒流离陣)을 이루고 있습니다. 제가 진법을 자폭하게 하면 선부로 통하는 입구를 망가트릴 순 없어도 인근 허공을 무너트리기에는 충분한 위력을 낼 겁니다. 그럼 다들 선부로 들어갈 기회를 놓치실 테고요.”

소진한의 말에 거령이 굳은 얼굴로 돌기둥들을 쳐다보았고, 봉천도 등의 안색도 달라졌다.

“그 말만 믿고 우리가 아무것도 못할 줄 아신다면 오산입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을 때 제릉소가 차갑게 외쳤다.

“믿기지 않으시면 한 번 모험을 해보시던가요.”

소진한은 양손을 펼치면서 자신 있게 답했다. 이에 각 세력의 우두머리들이 침음하면서 서로서로 전음을 주고받았다.

“봉 수사께서 북한선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진법 대사가 아니십니까. 저게 정말로 무슨 팔황류리진이라는 것입니까?”

낙청해가 전음으로 물었다.

“……돌기둥 9개에 새겨진 진법을 완전히 알아볼 수는 없으나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 위력적인 진법이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폭발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할 겁니다.”

돌기둥들을 관찰하고 있던 봉천도가 답을 했다.

“소진한, 저 교활한 자가 한 수를 남겨 두었군요. 정말 저자의 만행을 두고 보아야만 한단 말입니까?”

제릉소는 달갑지 않은지 전음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파훼하려면 긴 시간이 걸려 저들과 당장 대적할 수는 없겠습니다. 어차피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선부로 들어가는 것이니 저들을 한 번 봐준 셈 치지요. 어차피 우리를 들여보내 주었으니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봅시다.”

봉천도가 탄식하며 전음으로 결정을 전달했다. 낙청해, 제릉소, 거령 등도 침묵하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 궁주가 남겨놓은 한수는 잘 구경했습니다.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 짓지요.”

봉천도가 대표로 말하자 제릉소가 매섭게 소진한 등 관련 인사들을 노려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낙청해도 더는 아무 소리 하지 않았고 거령은 휙 하고 옆으로 물러났다.

다른 세력들이야 아무리 분통이 터져도 복릉종과 창류궁이라는 두 거대 세력이 두 손 두 발을 들었는데 바보같이 홀로 북한선궁과 맞설 수는 없었다.

심지어 가장 분개하던 진비와 이종족 무리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명한선부는 워낙 넓고 보물들이 흩어져 있어 발견된지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진기한 보물들이 끊임없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어차피 모두 여기 모인 것, 화목한 분위기로 가시지요.”

소진한이 그것을 보고 잔잔히 웃으며 말했다. 태연해 보이던 그도 내심 긴장을 풀고 있었다.

“이곳에서 오래 계셨으니 언제 선부가 강림할지 알아내셨습니까?”

봉천도가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길어야 며칠입니다. 다만…….”

“다만 어쨌다는 겁니까.”

“여러분이 마음을 놓지 못하실까봐 입구의 봉인을 철수하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명한의 기운이 폭발하기 전에 따로 봉인을 좀 해두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소진한이 말하는 동안에도 입구의 남색 빛에서 은근한 폭음이 들려오다 굵은 빛기둥 하나가 쏘아져 나와 위로 솟구쳤다.

콰치치칙.

동굴 전체의 온도가 급하강하면서 남색 얼음이 빠르게 동굴 벽을 타고 터져나갔다.

놀란 수사들이 급히 각종 보호막을 펼쳐 몸을 보호하면서 남색 빛의 문에서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동굴의 얼음들도 그들에 의해 순식간에 부서졌다.

빛기둥 속의 한기가 어찌나 강력한지 수행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진선경 수사들은 한기가 들어 가벼운 내상을 입었다.

각 세력의 금선 수사들이 서둘러 각종 비술을 펼치거나 보물을 불러내 수하들을 보호하면서 동굴 안이 혼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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