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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85화 (1,442/2,000)

1685화. 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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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시진 뒤, 남색 마차가 지하 통로 속을 천천히 지나고 있었다.

얼음을 얼려 놓은 것마냥 옅은 남색으로 이루어진 암석통로는 흐릿하게 영기를 발산했다.

얼마나 깊이 내려온 것인지 빛이 거의 들지 않아 시야가 어두웠고, 암석이 발산하는 옅은 남색 빛만이 통로를 비추었다.

진지한 표정의 한립은 눈동자에서 동글동글한 파동을 일으키며 흔적을 찾고 있었다. 여기까지 이르자 처음 따라 들어온 남색 둔광 외에도 아주 많은 영력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다수의 수사가 이곳을 드나들었다는 뜻이었다.

그는 이런 사실들을 숨김없이 호언 도인 일행에게 설명해 주었고 그들은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많은 수사들이 굳이 이런 깊은 심해 골짜기를 드나들 일은 많지 않았다. 호언 도인은 조급해하지 않고 마차의 속도를 늦추어 느긋하게 전진했다.

그렇게 일정 거리를 더 이동하다 보니 전방에서 작게 쿵쿵거리는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싸움을 벌이는 듯한 소리였다. 다들 그것을 듣고 얼굴이 밝아졌다.

“여기가 맞나 봅니다!”

“정보가 틀리지 않았어요.”

“확실해지기 전까지 모두 경계심을 늦추지 마십시오. 누가 무슨 수작을 부려 놓았던 최대한 피해서 가야 합니다.”

마차 위 수사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호언 도인은 조용히 주문을 외워 이동 속도를 높였다.

쿠쿵! 쿠르릉!

어수차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소리는 커졌고 끝없이 물결이 치면서 통로도 흔들려 크고 작은 돌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통로 전방에 다채로운 빛깔의 빛들이 난무하면서 그 안에서 사람들의 기척과 고함 소리도 들려왔다.

동시에 여러 의식이 교차해 서로를 훑으면서 다른 수사들을 경계하는 것이 난장판이었다.

호언 도인 일행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시선을 교환하다 마차를 멈추지 않고 그대로 통로 끝으로 향했다.

천장에 남색 종유석이 주렁주렁 달린 거대한 지하 천연동굴이 그들을 맞이했다. 그 안에서 수십 명의 신영들이 보물을 사용하며 어딘가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검은빛의 장막으로 가려진 그곳에는 동굴이 하나 보였는데 그 깊은 곳에도 몇몇 수사들이 서 있었으나 또렷하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 동굴 입구를 가로막은 금제는 누가 펼쳐 놓은 것인지 굉장히 견고해서 여러 수사들이 공격을 퍼붓는데도 가끔 미미하게 흔들리기만 할 뿐 부서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북한선궁, 네놈들! 선부 입구를 막고 뭐하는 짓이냐!”

“명한선부에 들어갈 기회를 독식하겠다면 노부가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명한선부는 북한선역 전체의 보물창고입니다. 한 가문이나 세력에서 마음대로 독점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쉼 없이 공격을 이어가던 몇몇 수사들이 분개해 외쳤다.

한립과 일행들은 검은빛의 장막과 이런 모습을 보고 전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호언 도인이 명한산하도를 꺼내들자 남색 빛이 일어나 검은빛의 장막 방향을 가리키며 아주 작게 웅웅거렸다.

조금만 거리가 멀었어도 반응이 없었을 게 분명했다.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호언 도인이 명한산하도를 거두고 열기 어린 눈빛으로 검은 장막 뒤의 동굴을 바라보았고, 욱양자 등도 격동하는 표정이었다.

한립도 기뻤지만 다른 이들처럼 주체 못 할 정도는 아니어서 평온하게 종유석 천연동굴 안을 훑었다.

진선경 이상의 수사 3, 40명이 모여 있었고 그 중에는 한립도 수행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금선 급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복색으로 판단하건 데 그들은 총 세 무리로 나뉘었다.

가장 눈에 띄는 이들은 동굴 가장자리의 남색 장포를 걸친 12명의 수사들이었는데 인자하게 생긴 중년인을 중심으로 뭉쳐 있었다.

한립은 중년인이 촉룡도 설법대회에서 보았던 창류궁 궁주 낙청해임을 알아보았다. 그 옆에 서 있는 이들은 청수하게 생긴 청년을 제외하면 기억에 남아 있는 인물이 없었다.

창류궁 일행의 실력은 이곳에 모인 어느 무리보다 강해서 낙청해를 제외하고도 네 명이나 금선 수사가 더 있었다.

게다가 아무나 골라잡아도 욱양자와 비슷한 금선 중기의 수행이고 낙청해는 금선 후기의 존재라 한립 일행의 전력과는 확연한 차이가 났다.

나머지 수사들도 대부분이 진선경 후기였고 말이다.

한립은 창류궁 무리를 오래 주시하지 않고 시선을 다른 이들에게 돌렸다. 해골 문양이 수놓아진 검은 장포를 입은 마기가 음산하게 드리운 무리도 있었다.

그들 역시 총 십여 명으로 얼굴 피부가 심하게 울퉁불퉁한 곰보 노인, 작은 체구에 복면 여인 그리고 키 차이가 크게 나는 두 사내가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사납게 생긴 곰보 노인이 눈알을 굴릴 때마다 사람의 혼을 빨아들일 것 같은 기이한 광선이 흘러나왔고, 전신을 반짝이는 푸른빛의 장막으로 가리고 있는 복면 부인은 수행이 대단해 보였다.

나머지 두 사내 중 키가 큰 사내는 체구가 워낙 커서 철탑 같았고, 작은 쪽은 팔다리도 짧고 살집이 두툼했지만 쇠 구슬처럼 단단한 느낌이 들어 무시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형제인지 키 차이가 심한 대신 얼굴이 닮아 있어 작은 눈에 큰 입을 지녀 험악한 인상을 주었다.

그중 곰보 노인의 수행이 가장 높아 금선 중기 수사로 판단되었고 나머지는 금선 초기인 듯했다. 나머지 수사들은 전부 진선들이었다.

비슷비슷한 규모의 마지막 무리는 복색이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사내와 여인을 막론하고 전부 말을 탈 때 입는 갑옷같이 소매가 짧은 상의를 입고 머리에는 검은 두건을 두르고 있었다.

이종족 복색을 한 무리 중에도 금선이 4명으로 새까만 피부의 노인과 주름 가득한 얼굴에 혈색은 좋은 노파 그리고 누런 얼굴의 거한 두 명이 있었다.

황안(黃顔) 거한들은 허리통이 굵직한 몸에 표정은 딱딱해서 나무 인형이나 꼭두각시처럼 보였다.

네 사람은 괴이한 문양이 새겨진 금색 지팡이를 하나씩 쥐고 있었는데 놀라운 기운을 내뿜는 지팡이들은 서로 웅웅거리며 호응했다.

종유석 동굴에서 검은빛의 장막을 공격하는 무리는 이 이종족 무리와 검은 장포 무리가 다였고, 창류궁 수사들은 한쪽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들을 방관했다.

낙청해는 이따금 지하동굴 입구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기색이었다.

호언 도인 일행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고 수사, 우리도 움직여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잠시 더 숨어서 지켜보시겠습니까?”

망설이던 욱양자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함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나서는 것이 나을 겁니다. 괜히 숨어 있다가 들키면 해명하기도 어렵고 다른 수사들과 척을 지면 선부 내에서 편하게 활동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호언 도인이 대답하며 발끝에서 남색 빛을 반짝였다.

마차가 통로를 완전히 빠져나와 급속도로 줄어들어 그의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이에 은신 효과가 사라지고 다른 수사들에게 노출되었다.

“갑시다.”

호언 도인이 운예를 데리고 앞장서고 욱양자 무리가 그 뒤를 쫓았다. 종유석 동굴의 수사들은 물론 검은 빛의 장막 뒤에서도 시선이 느껴졌다.

낙청해는 그들의 면면을 확인하고 약간 실망한 기색으로 눈길을 거두었다!

두 무리가 잠시 공격을 멈추고 돌아보자 호언 도인 일행은 짐짓 놀란 기색을 하면서 거리를 두고 멈춰섰다.

“누구신가 했더니 진염종 욱양자 수사도 오셨군요! 그런데 이 두 분은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성함을 여쭈어도 될지요?”

곰보 노인이 욱양자를 알아보고 다가가 진염종 수사들과 인사를 주고받다 호언 도인과 운예를 훑었다.

한립은 겨우 진선이었으니 얼굴이 낯설든 말든 노인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복면 부인과 키 차이가 나는 사내 두 명 그리고 나머지 흑포 수사들도 노인을 따라 다가왔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진 수사! 여기 두 분은 진염종과 돈독한 관계의 벗으로 이번에 명한선부를 함께 탐색하기로 한 일행들입니다. ……이분은 상아대륙 귀읍종 종주 진비 수사십니다.”

욱양자가 공수를 하고 서로를 소개시켜 주었다.

‘귀읍종?’

한립이 눈썹을 끌어올렸다.

귀읍종은 고운대륙에서 진염종과 비등한 실력을 지닌 종문이나 귀도마공에 능해 걸핏하면 사람들의 혼백을 뽑아 제련했고 가끔 작은 문파를 도륙해서 촉룡도에서 인정하지 않던 세력이었다.

종문 자체가 험한 지역에 있고 암암리에 활동했기에 촉룡도를 정면으로 거스르지 않아 금선 도주들이 굳이 처리하지 않은 곳이었다.

“귀읍종 수사분들이셨군요. 저는 고염이라 하고 이쪽은 제 사매인 고예입니다. 대륙 바깥 해역에서 수련해온 산수들이고요.”

호언 도인이 웃으면서 대표로 인사했다. 운예는 슬쩍 고개를 숙이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하, 저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곰보 노인이 웃음을 흘렸다.

그쪽도 욱양자, 호언 무리와 친분을 쌓고 싶은지 오가는 말이 퍽 살가웠다. 그들이 서로 익숙해지는 동안 다른 수사들은 묵묵히 서서 쳐다만 보았다.

“저기가 혹시 선부의 입구입니까?”

욱양자가 검은 동굴을 보면서 눈을 번득였다.

“그렇습니다. 북한선궁 인물들이 저 안에 들어가서는 금제를 펼치고 입구를 봉쇄해 두었지만요. 선부의 보물을 독차지하겠다는 시꺼먼 속내를 드러낸 것 아니겠습니까? 누구는 북한선궁을 두려워할지 몰라도 저는 아닙니다. 진염종 분들도 오셨으니 우리 세 세력이 힘을 합쳐 금제를 부수고 북한선궁이 어찌 나오는지 봅시다.”

곰보 노인 진비가 검은빛의 장막 쪽을 노려보면서 냉소했다.

“세 세력이라면 저 이종족 수사들을 이르시는 것입니까?”

호언 도인이 듣고 있다가 짧은 소매 차림의 무리를 눈짓했다.

“맞습니다. 혹여나 불쾌하게 생각지는 마시고요. 북한선역 극서지역 변두리의 남려족(南黎族) 수사들인데 족인이 아닌 수사들과 교류를 꺼리는 편이라 적극적으로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지 무례를 범할 마음은 없을 겁니다.”

곰보 노인의 설명에 호언 도인이 개의치 않는다는 뜻으로 웃음 지었다. 본래 이종족 수사들은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경우가 많았다.

교활하고 자기 잇속을 챙기기 바쁜 일반적인 수사들과 달리 오히려 이종족 수사들은 풍속이 순박하고 내뱉은 말은 지키는 경우가 많아 안심이 되기도 했다.

“제가 먼저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북한선궁이 선부 입구를 봉인한 작태에 대해 저들도 상당히 불만스러워하더군요. 그래서 잠시 힘을 합치기로 하였습니다. 선궁에서 펼친 금제가 강하더라도 금선 열 명이 모여 동시에 한 곳을 공격하면 어찌 버티겠습니까?”

곰보 노인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 말을 들은 욱양자가 고민스러운 듯 미간을 좁히고 무의식중에 호언 도인을 바라보았다. 곰보 노인이 예리하게 그걸 알아차리고 티 안나게 호언 도인과 운예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창류궁 수사들도 있는데 진 종주께서는 그들과는 이야기를 나눠보시지 않으셨습니까?”

호언 도인이 창류궁 무리를 곁눈질하며 물었다.

“창류궁이요……. 저런 거대 문파가 우리 같은 작은 종문 나부랭이들을 상대나 해주던가요? 힘을 합치기는커녕 거들떠보지도 않던 데요.”

곰보 노인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에 호언 도인이 생각하다 슬쩍 소매를 펄럭였다. 부드러운 빛이 소매를 빠져나와 보호막을 만들어 소리를 차단했다.

“진 종주, 제가 봤을 때 우리끼리 금제를 깨는 것은 좋지 않을 듯싶습니다.”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호언 도인의 의견에 곰보 노인의 얼굴이 약간 냉담해졌다.

“저도 입구를 봉쇄한 북한선궁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우리가 힘을 합쳐 강제로 금제를 깨면 북한선궁과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여차저차 해서 그들을 막아낸다 해도 우리는 피해만 보고 이득은 다른 세력들이 취할 거란 소립니다.”

“그렇다면…….”

“제 생각에는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선부가 개방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어차피 북한선궁도 입구를 지키고만 있을 뿐 들어가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이미 홍월도 아래 선부 입구가 있다는 소식이 파다하게 퍼졌고 다른 세력들이 집결하면 선궁이라 한들 그들 모두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겁니다.”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는 곰보 노인을 보며 호언 도인이 불쾌한 기색 없이 설명했다.

“고 수사의 말씀에 저도 동의합니다. 창류궁이 나서지 않는 이유가 우리가 북한선궁과 대대적으로 싸우는 틈에 어부지리를 얻으려 하는 것일 수 있어요. 늙은 여우 같은 낙청해가 제일 잘하는 게 산 위에 앉아 다른 호랑이들이 다투는 것을 지켜보는 것 아닙니까.”

욱양자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허허, 잘 알아들었습니다. 고 수사의 묘책을 따르지요. 북한선궁이 하는 꼴이 너무 거슬려서 본때를 보여주고자 했는데 듣고 보니 장기전을 준비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눈빛이 밝아진 곰보 노인이 포권을 했다.

“묘책은요, 과분한 말씀입니다.”

호언 도인은 손을 저으며 겸손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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