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684화 (1,441/2,000)
  • 1684화. 드러나는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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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상맹에 떠도는 소식은 세 분도 들으셨을 겁니다. 정말 이곳에 선부 입구가 없다고 해도 분명 관련이 있을 겁니다.”

    호언 도인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두 분이 어렵게 명한산하도를 구하시고, 선부로 진입할 수 있는 인원에 저희 진염종을 끼워주시다니 이게 본종에 대한 깊은 신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점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저 오랜 시간 흑풍해역을 구석구석 살폈지만 찾을 수 없던 입구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우연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욱양자가 미간을 좁히며 근심을 표했다.

    “오랫동안 수확이 없었기에 이번 소식의 진위를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운예가 입을 열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 송구하지만, 무상맹에 대놓고 정보가 공개된 것은 적의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괜히 홍월도에 갔다가 화를 자초하지 않겠습니까?”

    진운이 고개를 저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맞습니다. 북한선궁의 함정일 수 있으니까 신중해야 합니다.”

    중년 미부인도 거한의 말에 동조했다.

    “흠……. 명한선부는 겨우 만 년에 한 번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난번 발견된 또 다른 공간에는 전설로만 전해지던 태을경 돌파를 돕는다는 태을단(太乙丹)이 있을 확률이 높고요! 그렇지 않고서야 북한선궁을 포함한 세력들이 그 많은 인원을 동원해 선부로 들어가려 하겠습니까? 평생에 다시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앞두고 세 분은 물러설 마음이 드십니까?”

    듣고 있던 호언 도인이 미간을 좁히고 물었다.

    “물러서다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그저 계획을 잘 세워서 안전하게 가는 것이 좋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욱양자는 표정이 달라지며 한발 물러났지만 다른 두 사람의 눈빛에는 머뭇거리는 기색이 남아 있었다.

    한립이 그것을 보고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진염종 금선경 수사들은 선부의 보물을 눈독 들여 여기까지 와놓고도 아직까지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종주와 장로라는 자들이 날카로운 기세는커녕 굳은 의지마저 없으니 그간 진염종이 몸을 낮추고 드러내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되었다.

    “제 생각에, 세 분은 북한선궁이 야욕을 드러냈고 그들의 세력이 우리를 압도하니 마주치면 상대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촉룡도 변고 이후 선궁의 세력이 커졌다고는 하나 암암리에 그들을 적대시하는 움직임도 커졌습니다.

    창류궁과 복릉종 등 거대 세력이 촉룡도의 말로를 보고 선궁을 경계해온 것은 아시겠지요? 그런 와중에 북한선궁이 선부 입구를 봉인해 기연을 얻을 기회를 독차지하려는 수를 썼으니 모두 얼마나 분노해 치를 떨겠습니까. 그들도 지금 홍월도로 몰려오고 있을 거란 점을 생각해 주세요.”

    호언 도인이 가볍게 탄식하며 천천히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선부 입구가 홍월도에 있다는 게 사실이고 때가 되어 다른 세력들이 힘을 합쳐 대항한다면 선궁이라고 버티겠습니까? 이게 함정이라 쳐도 우리 모두를 영원히 가둘 수는 없을 텐데 무엇을 두려워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운예가 곁에서 보충했다.

    “두 분의 말이 일리가 있기는 합니다.”

    수염을 만지작거리던 욱양자도 마음이 동하고 있었고, 진운과 노란도 시선을 마주쳤다. 태을단을 빼고 생각해 봐도 각종 절세의 보물들이 가득한 곳이 선부였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세 분의 빠른 결정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부 안의 수많은 보물을 두고 그냥 돌아가셔서 다른 수사들이 그것을 차지하는 꼴을 보고 있으실 작정이 십니까?”

    호언 도인은 다시금 그들을 설득했고 욱양자의 눈에 욕심이 일었다.

    “보물이 좋다고 아무렇게나 나설 수는 없으니 대책을 세워 신중하게 움직여야 할 겁니다.”

    “그간 사숙의 빈틈없는 일처리로 보아 이번에도 생각해 두신 바가 있을 듯합니다.”

    한립이 진염종 무리를 보고 있다가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호언 도인은 말없이 손을 저어 주위의 금제를 거두고 소매를 펄럭였다.

    남색 빛이 앞뒤로 십(十) 자의 바람개비가 달린 독특하게 생긴 남색 마차로 변해 욱양자와 다른 진염종 수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어수차(御水車)는 오래전 명한선부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보물입니다. 은신에 아주 뛰어나서 이걸 타고 진입하며 훨씬 안전할 겁니다.”

    호언 도인이 담담히 설명했다.

    모종의 특수 재료로 제작된 마차는 복잡한 문양들이 셀 수 없이 새겨져 있었고 짙은 물의 법칙 파동을 발산했다.

    중수진륜이 있어 물의 법칙에 익숙한 한립은 희미하게 이질적인 법칙의 힘을 느꼈다. 아마 은신 능력과 관련이 있는 법칙일 것이다.

    마차를 관찰하던 한립이 먼저 마차에 탔다.

    이에 욱양자가 결심이 섰는지 마차로 날아올랐고, 진운과 노란 그리고 여섯 명의 진선경 수사들도 종주를 따랐다.

    마지막으로 호언 도인이 미소를 지으며 운예와 함께 마차에 올라 법결을 던져 넣었다.

    곳곳에서 기이한 남색 빛이 떠올라 반짝이는 안개처럼 둘러싸자 마차의 신형은 물론 법칙 파동을 포함한 모든 기운이 철저히 가려졌다.

    호언 도인의 조종에 마차는 바닷속으로 내려갔다. 남색 빛이 물을 차단하는 동시에 마차를 숨겨서 바닷물과 하나가 된 것 같아보였다.

    “참으로 신묘한 비행 보물입니다. 명한선부에 보물이 쌓여 있다는 소리가 거짓은 아니었어요.”

    욱양자가 질주하는 마차 위에서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선부에 들어갈 수만 있으면 다들 이보다 더 좋은 보물을 찾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호언이 기분 좋게 웃음 지으며 수결을 바꾸었다.

    “허허, 어수차를 보고 있자니 이번 여정에 대한 기대가 커집니다.”

    “일이 잘 풀려 선부 입구가 정말 홍월도에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진운 장로도 눈을 반짝이면서 칭찬했다. 마차 앞뒤의 바람개비가 웅웅 돌기 시작하면서 속도가 더 빨라졌다.

    누군가 옆 있어도 유령이나 환영처럼 마차가 지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한립도 암암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를 제련한 솜씨가 뛰어난 것으로 보아 기술이 대단할 뿐 아니라 물의 법칙의 힘에 정통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발산하는 선령력 파동으로 보면 선원석 소모가 클 텐데, 호언 도인이 다른 금선들을 설득하기 위해 꽤 선원석을 쓰고 있는 듯했다.

    한립은 알아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 이에 다른 진염종 진선 수사들도 처음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흩어져 각자 할 일을 했다.

    해용도와 홍월도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호언 도인의 어수차로 이틀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바로 홍월도에 오르지 않고 수백 리 밖 해역에서 일단 멈추었다. 한립을 포함해 모든 수사들이 커다란 섬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작은 섬은 아니군요. 소문이 사실이라도 선부 입구를 찾는 일이 녹록치 않겠습니다.”

    호언 도인의 이마에 주름이 가있었다.

    명한산하도로 위치를 알아낼 수 없는 상황에서 의식으로 수색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만일 일일이 확인해야만 한다면 이 넓은 섬을 뒤지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욱양자 등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해안을 따라서 일단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 좋겠어요.”

    “그것도 좋겠지.”

    운예의 제안에 호언 도인이 마차를 홍월도 인근으로 이동시켰다.

    호언도인, 운예 그리고 진염종 금선들은 각자 은밀한 방법을 이용해 주변을 탐색했다.

    두 눈에 남색 빛을 밝게 일으킨 한립의 눈에서도 남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자네, 함부로 그런 짓을 했다가 누가 발견하면 어찌 책임지려고 그러는가?”

    그걸 본 욱양자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질책했다.

    “욱양자 선배님의 가르침이 옳습니다. 제 능력이 부족해 큰 도움은 되지 못하겠지요. 허나 영목신통으로 바깥을 살피는 것뿐이라 어떤 기운도 노출되지 않아 안전합니다.”

    한립은 웃으면서 해명했다.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천우의 영목신통이 꽤 쓸만해 보이니 돕게 놔두시지요.”

    호언 도인이 옆에서 그를 챙겨 주자 욱양자도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호언 도인은 한립을 향해 슬쩍 눈짓하고는 다시 마차를 조종하는데 집중했다.

    남색 마차가 빠르게 홍월도를 반 바퀴 도는 동안, 누구도 의심스러운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욱양자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진언과 노란도 약간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을 때 돌연 한립이 입을 열었다.

    “사숙님, 잠시 마차를 멈춰주십시오.”

    그 말에 호언 도인이 당장 마차를 멈추었고 남색 파동이 번지면서 마차가 다시 바닷물과 완전히 구분이 가지 않게 되었다.

    호언 도인이 마차의 은신 능력을 끌어올린 찰나 멀리 전방 왼쪽에서 둔광 하나가 날아들어 심해로 사라졌다.

    “천우 네 영목신통이 정말 도움이 되었구나!”

    마차 안에 몸을 숨긴 호언 도인이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우연히 발견한 것뿐인 것을요.”

    한립은 겸양을 떨었으나 눈꺼풀을 꿈틀한 욱양자의 표정이 순간 부자연스러웠다.

    이제 다들 둔광이 사라진 방향을 들뜬 눈으로 쫓고 있었다.

    “저 아래 혹시 입구가……. 천우야, 네가 다시 한 번 살펴보거라.”

    참다못해 운예가 재촉했다.

    한립은 두 눈에서 남색 빛을 번득이면서 전력으로 명청영목을 발동했다. 하지만 상대가 워낙 깊이 내려가 그의 명청영목으로도 쫓을 수가 없었기에 그는 호언과 운예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입니다. 내려가서 맞는지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호언 도인이 단호하게 판단을 내렸다. 이에 운예가 고개를 끄덕이고 한립도 반대하지 않았다.

    “욱양자 수사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호언 도인이 욱양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찬성입니다. 위험 속에 기회가 있다 했지요!”

    욱양자의 결정에 다른 장로들도 묵인했다.

    호언 도인은 빠르게 수결을 맺어 남색 마차의 방향을 미세하게 틀어 둔광이 사라진 방향으로 내려갔다.

    얼마나 수심이 깊은지 마차가 한참을 내려가도 그 끝에 다다를 수 없었다. 구불구불한 해저의 골짜기들이 깊이 파여 산맥이 연달아 있는 것처럼 복잡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었다.

    의아한 기색이 스친 호언 도인은 사방을 살피고 마차를 멈추었다. 그의 수행으로도 남색 둔광이 어디로 향한 것인지 찾을 수 없었다.

    침음하던 호언 도인이 운예와 눈을 마주쳤지만 서로 고개를 저었고 욱양자 일행을 돌아보아도 다들 눈길을 피했다.

    “사숙님, 저쪽 골짜기로 내려가시면 쫓을 수 있을 겁니다.”

    금선들이 답답해하고 있을 때 한립이 손을 뻗어 거대한 대협곡을 가리켰다.

    “뭐라? 도대체 눈동자가 남색으로 물드는 게 무슨 영목신통이기에 그렇게 깊이까지 볼 수 있는 것이냐!”

    호언 도인이 희색을 보이며 신기하다는 듯 물어왔다. 그는 곧장 마차를 조종해 한립이 가리킨 대협곡으로 향하고 있었다.

    “제 실력으로 어찌 그리 멀리 볼 수 있겠습니까. 그저 영력 파동을 감지하는데 쓸 만하여 간신히 흔적을 찾은 것에 불과합니다.”

    미소를 머금은 한립은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수행이 부쩍 늘면서 명청영안 신통도 강력해져서 파멸법목과 결합해 쓰지 않아도 미세한 영력 흔적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리 미약한 영력까지 찾아낼 수 있다니 그야말로 훌륭하구나.”

    운예도 찬사를 보냈고, 욱양자를 포함한 진염종 수사들도 그를 새로운 눈빛으로 보았다.

    한립이 그들을 향해 공손한 미소를 보이는 사이 마차는 이미 대협곡 깊은 곳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 안마저 지형이 복잡해서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 것처럼 무수히 많은 통로가 사방팔방으로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졌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만든 통로들은 아니었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 같았다. 기이한 풍경에 한립의 눈에 이채가 번득였다.

    지난번에 홍월도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는 섬 위에서만 돌아다녀 그 아래 이런 곳이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와 호언 도인은 더는 입을 뗄 경황이 없이 서로 각자의 신통을 펼쳐 묵묵히 수색하고 있었다.

    한립의 명청령안이 찾아낸 미세한 둔광의 흔적을 따라 날아간 마차는 이제 겨우 보통 사람 키에 절반밖에 되지 않는 아주 좁은 지형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다들 진선 이상이고 남색 마차도 자유롭게 크기 조절이 가능해 이런 사소한 문제는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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