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2화. 또 다른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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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님, 거령의 수행은 저희를 훨씬 뛰어넘습니다. 그녀가 우리 가문을 찾아와 같이 명한선부로 진입하자고 협조를 구하다니 진심일까요? 아무리 감추려 해도 눈빛에 악한 기운이 가득한 것이 믿을 만한 인물은 아닌 듯싶어 걱정입니다.”
길쭉한 얼굴형의 사내가 두 팔을 저어 섬에 하얀 결계를 발동하고 각진 얼굴 노인에게 다가와 말했다.
“……수행이 높다 한들 세력이 없지 않느냐. 흑풍해역에 보물을 취하러 달려든 세력들이 만만치 않으니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노인은 생각이 많은 얼굴로 이렇게 답했지만 길쭉한 얼굴 사내의 걱정스러운 표정은 가시지 않았다.
“걱정 말거라. 저 여인의 실력이 대단하다 해도, 너희 10명이 펼치는 설잠대진(雪蠶大陣)에 나까지 대적할 수는 없다. 우리를 이용할 생각이라도 일단 선부에 들어갈 수만 있으면 그녀가 무얼 하든, 또 우리가 무얼 하든 서로 알바가 아니다.”
“노조께 계획이 있으시다니 다행입니다.”
각진 얼굴 노인의 거만한 웃음을 보고서야 길쭉한 얼굴의 사내가 표정을 풀고 함께 웃었다.
이때, 해수면 위를 쾌속으로 날아가는 은포 여인의 어깨에는 하얀 곤충이 달라붙어 있었다. 하늘소처럼 생겼지만 백옥처럼 매끈한 곤충이 입을 열 때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선부에 들어갈 수만 있으면 그녀가 무얼하든, 또 우리가 무얼하든 서로 알바가 아니다.”
바로 각진 얼굴 노인의 목소리였다.
“버러지 같은 것들. 흥, 아직 쓸데가 있으니 두고 보겠다.”
냉소를 흘린 은포 여인은 하얀 하늘소를 넣어 두고 양손으로 과감히 수결을 맺었다.
스사사삿.
하얀 안개가 소매 속에서 날아올랐다.
빠르게 흩어진 안개의 정체는 쌀알 크기의 반투명한 하얀 곤충들이었다. 해저에서 결단기 악어 요수가 헤엄치다 하얀 곤충 한 마리와 맞닥뜨렸다.
작은 백충(白蟲)은 물방울처럼 악어의 몸속으로 녹아들었는데 요수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런 일이 인근 해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백충들은 각종 해저 요수의 몸에 기생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 * *
평온한 해수면 위, 십여 명의 수사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둥근 진법을 지키고 있었고, 대머리 금선 사내 3명이 그들 앞에 떠서 나머지 진선 수사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작은 남색 깃발을 띄우고 주술문자가 빼곡하게 적힌 보물에서 물의 법칙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
놀랍게도 전부 선기급에다 한 벌로 이루어진 보물이었다.
중얼중얼 들려오는 주문소리 속에 남색 깃발에서 빠져나온 빛이 모여 거대한 빛의 장막을 이루었다.
마치 거대 거울과도 같았다. 대머리 금선 사내 세명이 수결을 맺어 남색 빛기둥을 거울 속으로 쏘아 보냈다.
챙강!
거울 표면이 갈라지면서 수십 개의 작은 조각으로 변해 각기 다른 풍경을 보여 주었다.
바닷속 또는 하늘 위의 어떤 섬을 비추고 있었다.
* * *
흑풍해역에 잠입해있던 거대 세력들은 시간이 흘러도 선부의 입구를 찾을 수 없자 초조함을 드러냈다.
다들 미친 듯이 흑풍해역 각지를 뒤졌다.
처음에는 은밀히 움직이던 이들이 가면 갈수록 대놓고 입구를 찾아 돌아다녔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수많은 외부 수사들 때문에 현지 세력들은 전전긍긍했고 점점 더 봉쇄하는 섬이 많아졌다.
흑풍해역은 이제 장거리 이동을 하거나 이유 없이 돌아다니는 현지 수사들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워졌다.
* * *
반년 후.
흑풍해역 변두리의 어느 해역에 천지영기가 요동치더니 먹구름이 몰려들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강렬한 법칙 파동이 먹구름에서 퍼져나가 주변 바다에 산처럼 커다란 파도를 일으켰다.
다행히 낙백량풍 인근 해역이라 그런 해역의 동요가 눈에 띄지 않았다.
하늘을 뒤덮었던 먹구름 소용돌이 속에서 쿠쿵! 하고 더없이 굵직한 검은 빛기둥을 떨구었다.
웅웅웅!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였던 해수면 위로 돌연 겹겹이 금제의 빛이 나타나 검은 빛기둥을 막으려 들었다.
그런 금제들을 삽시간에 꿰뚫은 그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굉음이 울리고 잿빛 산봉우리 허상이 나타나 검은 빛기둥을 막는 모습이 번득 나타났다 사라졌다.
바다가 뒤집힐 것 같은 진동과 충돌음이 가시고 해저에 남은 균열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먹구름이 가신 하늘에 다시 빛이 들고 있었다. 금제들이 흩어진 해수면 위로 한립이 나타났다. 안색이 약간 창백했지만 표정은 좋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고 푸른빛을 날려 섬 구석구석에 뿌려 둔 진법 깃발과 원반들을 회수했다.
그는 지체없이 열손가락에서 금색 뇌전을 튕겨 허공에 뇌진을 만들었다.
콰릉!
천둥소리와 함께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흑풍해역 어딘가, 어두운 공간에 큰 체구의 누군가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검은 안개에 둘러싸여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흉흉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곁에 둘러앉은 이들도 감히 그곳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검은 인영이 갑자기 몸을 움직이자 안개가 빨려 들어가 사라지면서 냉엄한 인상의 소진한이 일어나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소진한이 일어서자 다른 이들도 서둘러 일어섰다. 그들은 북한선궁의 금선 장로들이었고, 부궁주인 설앵도 그 자리에 있었다.
“궁주님, 왜 그러십니까?”
설앵이 다가가 공손히 물었으나 소진한은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하얀 옥 원반을 꺼내 들었다.
커다란 원반에는 기교는 없으나 예스러운 문양들이 가득했고 중간에는 네모난 옥조각들이 모여 있었다.
콩알만 한 작은 옥조각들은 옥함에 박혀 있지 않고 천천히 떠다녀서 퍽 신비해 보였다. 그중에서 가장자리에 있던 하얀 옥조각에 검은빛이 떠올라 반짝이다 빛이 가셨다.
“이건……. 누군가 또 도단을 제련해 냈단 말인가?
안색이 달라진 소진한이 중얼거렸다.
“도단이요. 흑풍해역 같이 외진 곳에 어찌 도단사가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창류궁이나 복릉종에서 데려온 자일까요? 그들이 여기서 도단을 제련하다니 무슨 이유일까요?”
설앵은 놀랐지만 소진한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질문을 쏟아냈다.
“알 수 없네. 선부 입구를 찾을 수 없자 무슨 비술을 쓰려는 것일 수도 있지.”
소진한의 말에 설앵도 고개를 끄덕였다.
백옥 원반을 들고 앞으로 나아간 소진한은 멀지 않은 곳에 우뚝 솟은 거대한 남색 빛의 문을 바라보았다.
거의 산만하다 할 문의 손잡이에는 고풍스러운 문양이 조각되어 화려한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빛의 문 중간에 찬란한 빛이 모여들어 희미하게 소용돌이를 이루고 수시로 바깥으로 맹렬히 빛을 내뿜었다.
그 주위로 9개의 거대한 백옥 기둥이 팔괘(八卦)와 팔문(八門)이 합쳐진 구궁 격자무늬를 이루고 건설되어 거대한 진법을 이루고 있었다.
복잡한 진법 문양이 가득한 백옥 기둥 아래마다 수사들이 한 명씩 앉아 주문을 외우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구양규산 등 촉룡도 금선 셋도 포함되어 있었다.
백옥 기둥과 진법에서 눈부신 하얀빛이 흘러나와 장막을 이루고 남색 빛의 문을 가두고 있었다.
남색 빛이 충돌해올 때마다 하얀빛의 장막이 흔들리고 백옥 기둥 아래 수사들도 몸을 떨었다.
“선부 강림일이 임박해서 충돌로 인한 여파도 점점 커지고 있네. 명령을 내려 매일 술법을 강화하고 어떤 실수도 없도록 주의하게.”
“충분히 준비해두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궁주님. 절대 어떤 실수도 없을 것입니다.”
소진한의 명에 설앵이 자신있게 답했다.
“그밖에, 구양규산 등 몇몇은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감시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일세.”
“하하, 저리 소심한 자들이 감히 꾀를 부리겠습니까. 여기까지 왔으니 그들도 다른 길이 없을 테고요.”
“바깥 상황은 어떤가?”
“창류궁, 복릉종 등은 머리 잃은 파리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궁주님의 엄한 감독으로 주도면밀하게 대비를 해놔 그들이 아무리 우리를 찾아다녀도 실마리를 얻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소진한의 물음에 설앵은 미소를 머금고 다른 세력들의 고생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윤회전 것들은 아직도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으나, 저희가 설치해놓은 가장 바깥쪽 금제를 발견하면 전력을 다해 파훼하려 들 겁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함정에 빠져 봉인되면 전부 몰살당하지 않더라도 피해는 입겠지요! 하하, 무사히 빠져나오더라도 명한선부 입구가 닫힌 후인 1년 반 뒤일 테고요.”
설앵의 말에 소진한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색 빛의 문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열기가 차올랐다.
웅!
바로 이때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하얀 장포를 입은 검미(劍眉: 눈썹 끝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살짝 들려 올라간 짙고 또렷한 눈썹) 사내의 몸에서 하얀빛이 떠올랐다. 흑풍해역에 미리 와있던 풍씨 성의 사내가 놀란 눈빛으로 하얀 진법 원반을 꺼내 들었다.
원반 위에는 빛이 모여들어 짧은 글귀를 만들었다.
“궁주님, 큰일입니다!”
검미 사내가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 * *
콰릉!
오몽도 인근 해역에 파동이 일고 금빛 뇌전이 모여들어 뇌진을 이루었다. 진법 가운데로 전송된 한립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의식을 방출했다.
그는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검은 단약이 든 옥함을 꺼내 들었다. 희미하게 법칙 파동을 발산하는 옥함 안에는 허원단이 들어있었다.
한 번 연단에 성공해 보았지만 이번도 몇 번 실패해서 남은 재료를 전부 써서 딱 한 알밖에는 얻지 못했다.
이번 제련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허원단이 도단과 비슷하지만 법칙을 깨우치기 위한 용도의 단약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뭐에 쓰는 것일까?’
옥함 속 단약을 살피던 한립은 그것을 거두고 전방을 바라보았다. 반년이 더 지났는데 호언 도인은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대충 셈해 보아도 선부 개방일이 코앞인데 정말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한립은 붉은 전신 원반을 꺼내 수결을 맺고 몇 군데를 짚었다.
밝은 빛이 원반 위로 떠올라 진법을 이루었고 그곳으로 한립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웅.
가볍게 진동한 진법원반은 미약하게 빛나다 말았다. 뜻밖에도 호언 도인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한립은 어두워진 얼굴로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무상맹 가면을 꺼내 썼다. 명한선부와 관련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이곳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상맹 소식란을 살피던 한립은 눈썹을 꿈틀했다. 온갖 이야기가 난무하는 통에 소식란은 난리였다.
몇 년 동안 중수진륜을 다시 제련하랴 허원단을 제련하랴 바빠서 명한선부 소식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3년 동안 선부 입구가 나타나지 않아 각 세력들이 대대적인 수색을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지금 무상맹이 시끌벅적한 것은 갑자기 들려온 한 가지 소식 때문이었다.
“선부 입구는 홍월도 아래에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되지 않은 정보였으나 무상맹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홍월도라…….”
교삼 등과 홍월도로 가서 홍월도 도주를 참살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래 명한선부의 입구가 있었다니?
눈을 반짝인 그는 검은 수정돌, 묵옥정을 꺼내 들었다.
저돈수는 이걸 홍월도 인근에서 찾아냈다고 했고 교삼은 이 돌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다양한 정보가 맞물리면서 확실히 모든 정황이 홍월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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