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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80화 (1,437/2,000)

1680화. 준비

*

화르르.

중수진륜 주위의 불구슬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소용돌이를 형성해 진법 속의 불기둥 여덟 개 마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맹렬히 불길을 키웠다.

한립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동안 화염 소용돌이 안에서 여덟 개의 액체 덩어리가 중수진륜으로 스며들었다.

중수진륜의 빛이 더 밝아지고 그 안의 수많은 남색 주술문자들이 요동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색 빛과 주술문자가 아직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서 진륜 전체가 요동쳤다. 바로 그 순간, 지기화신이 눈을 번쩍 뜨고 진한 남색 기운이 흐르는 몸 위로 굵은 수정실을 불러냈다.

한립의 조종에 화신 머리 위의 남색 수정실이 중수진륜 속으로 날아들었다.

쿵!

맨눈으로 직시하기 힘들 정도로 밝은 남색 빛이 중수진륜에서 터져 나와 수 백 리 바다속을 밝혔다.

강렬한 물의 법칙이 눈에 보이는 파문을 만들고 있었다. 중수진륜 표면을 떠다니던 주술문자들도 안정을 되찾고 고리 안으로 가라앉았다.

이에 한립은 눈썹을 끌어올리며 수결을 맺은 양손으로 법결을 던져 넣었다.

웅웅!

중수진륜이 진동하자 해수면에 셀 수 없이 많은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쿠콰콰쾅!

부드럽게 흘러가던 바닷물이 날카로운 칼, 창, 화살이 되어서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고 있었다. 주변 수백 리의 바다생물들이 죽임을 당하고 해저도 깎여나갔다.

그 모습에 한립은 희색을 드러내고 입에서 분출하던 불길을 멈추고 수결을 풀었다. 지기화신도 남색 불길을 거두자 허공에는 반투명한 중수진륜만 둥실 떠있었다.

마지막으로 한립은 정혈을 한 모금 뱉어 중수진륜에 흡수시켰다.

스스슷.

반투명하던 중수진륜이 검은색으로 돌아가고 엄청 뜨겁던 온도도 낮아졌다.

고리에서 9개의 물빛이 뭉쳐 9개의 도문으로 변한 것을 보고 한립의 얼굴이 밝아졌다.

한 달 넘게 고생한 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그는 약간 피곤한 기색으로 단약을 복용하고는 휴식을 취했다. 그제야 숨을 돌린 한립은 눈을 뜨고 새로워진 중수진륜을 뿌듯하게 관찰했다.

제련은 성공할거라 생각했으나 이렇게 위력이 늘 줄은 몰랐다. 실험해 보지 않고도 이전보다 네다섯 배는 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 속성 법칙의 힘을 함유한 재료를 8개나 아낌없이 녹여 넣었고, 지기화신이 신앙의 힘으로 응집한 물 속성 법칙의 실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선이 만들어낸 물 속성 법칙의 실도 진정으로 물의 법칙을 깨우친 진선의 것보다는 못해도 얕잡아 볼 수 없었다.

중수진륜을 불러들여 잡은 한립은 다섯 손가락 안에 해양이 담긴 듯 엄청난 물의 힘이 느껴졌다.

고리를 날리고 법결을 던져 넣자 9개의 도문에 빛이 들어왔다.

한립은 눈을 감고 자세히 그 안의 변화를 살펴보며 물의 법칙을 깨우쳐보려 노력했다.

3대 지존법칙 중 하나인 시간법칙을 위주로 수련하더라도 가능하면 많은 법칙을 알아둘수록 이득이었다.

부지불식간에 물의 법칙의 힘이 퍼져서 인근 바닷물을 끌어들여 큰 파도가 일고 있었다.

이때 지기화신 허리춤의 천수대에서 새까만 2성 중수가 날아올라 제비처럼 중수진륜으로 내려앉았다.

중수진륜의 물빛이 흔들리고 미미하게 짙어졌다. 예전에 중수진륜이 1성 중수를 흡수했을 때와 비슷했다.

눈을 크게 뜬 한립은 막지 않고 지켜보았다.

회전하는 중수진륜 속으로 2성 중수들이 한 덩이씩 천수대에서 날아올라 융합되었다. 빠르게 천수대가 비었고 중수를 흡수한 진륜은 티 나게 무거워져 있었다.

한립은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중수진륜은 막 제련했을 때는 위력적이지 않았으나 대량의 1성 중수를 흡수하고는 그의 필살기 중 하나가 되었다.

한계에 이르러 더는 중수를 흡수하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2성 중수는 곧잘 융합을 하였다.

이런 생각이 들자 한립은 저절로 1성 중수를 보관해 둔 천수대로 시선이 갔다.

“아무래도 1성 중수를 한 번 더 정련해야겠어…….”

한립은 즉시 천수대를 지기화신에게 내주었다.

선부 개방일이 얼마 남지 않아 조금이라도 더 많은 2성 중수를 마련해 중수진륜의 위력을 키우는 일이 시급했다.

지기화신은 건네받은 천수대에서 1성 중수 한 덩이를 불러냄과 동시에 머리 위로 신념의 힘이 뭉친 가느다란 남색 빛의 실을 띄웠다.

한립은 가냘픈 실을 보고 씁쓸해졌다.

천년 간 신앙의 힘을 차곡차곡 모아 응집한 법칙의 실을 중수진륜에 넣어 버려서 지기화신의 수행에 타격이 컸다.

법칙의 힘을 새로 모으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기 화신은 양손으로 수결을 맺고 흑해중수경 공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색 빛의 실에서 주술문자를 품은 빛줄기들이 뻗어 나가 화신이 들고 있는 1성 중수로 스며들었다.

1성 중수는 점점 농축되면서 서서히 2성 중수로 변해갔다. 그러나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 한립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중수 정련은 진행 속도가 느렸는데 화신의 물의 법칙이 크게 줄어 더 심해졌다.

‘이런 속도로는 3년 내내 정련을 해봤자 2성 중수를 얼마나 얻을 수 있을지…….’

그는 잠시 고민하다 장천병을 불러내 그 안에 든 녹색 액체 한 방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푸른 빛줄기를 병 안으로 흘려 넣었다.

쿠릉!

해역 위 상공이 갑작스레 어두워지면서 먹구름과 천지원기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 * *

며칠 뒤, 한립은 평온한 얼굴로 시간정립 알갱이를 들고 있었다. 그는 이제 진선경 후기에 이르러 시간정립을 응결하는 것도 더는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는 시간정립을 지기화신 머리 위의 수정실로 날려 보내 녹아들게 했다.

밝게 빛난 남색 수정실 표면에 금빛이 어렸고 곧이어 요란한 남색 광채가 흘러나와 1성 중수로 날아들었다.

1성 중수가 출렁이며 빠르게 응축되어 2성 중수가 되었다. 1성 중수 한 덩어리가 2성 중수로 변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지기화신은 완성된 2성 중수를 넣어두고 새로운 1성 중수 덩어리를 불러내서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걸 본 한립은 마음이 조금 놓였다.

시간정립이 2성 중수 제련에도 도움이 되어서 느린 응축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몸을 날려 해수면 위로 올라온 한립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오몽도 가까이의 암초에 내려섰다.

해저가 안전해도 햇살과 달빛이 들지 않아 녹색 액체를 모을 수 없었다. 그는 손을 저어 암초 주변에 금제 깃발들을 뿌렸다.

어차피 워낙 인적이 드문 외진 해역이라 금제를 과하게 치지 않아도 되었다.

한립은 진법 몇 개를 순식간에 펼친 다음 암초 위에 앉아 장천병을 내려놓았다.

파앗!

그의 손짓에 금혼단 재료들이 떠올랐다. 재료를 모은 지는 꽤 되었으나 그동안 계속 바빠서 연단할 여유가 없었다.

이제 해야할 일은 다했으니 금혼단을 제련해 언제고 필요할 때 쓸 생각이었다.

한동안 눈을 감고 몸과 마음을 정돈한 그는 은색 연단로를 불러내 훅! 하고 그 밑에 은색 화염을 붙였다. 화염은 은염 소인으로 변해 화로 아래로 쏙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

한립이 마지막으로 꺼낸 것은 금제로 겹겹이 속박해둔 금선 도우의 원영이었다.

그는 금제를 제거하고 원영을 화로 속에 집어넣고는 푸른 원영의 불길을 뿜어 은색 화염과 융합시켰다.

화르륵.

화로 안의 온도가 삽시간에 치솟았다.

뜨겁게 달구어진 금선 원영에서 희미하게 금빛이 유출되어 아래로 흘러내렸다. 작은 뱀처럼 넘실넘실 떨어지는 금빛을 본 한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원영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부단히 수결을 바꾸어 가며 화로의 두 불길을 조절했다.

* * *

시간이 흘러 보름이 지나갔다.

화로 속의 원영은 크기가 확 줄어서 주먹 크기의 구슬로 뭉쳐 금빛 파문을 일으켰고 그제야 또 다른 재료가 화로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 * *

다시 보름 뒤, 해역의 천기원기가 요동치면서 이상한 기상 현상을 일으켰다.

허공에 금빛이 송이송이 꽃처럼 뭉쳐 앞다투어 피어났고 천상의 노랫소리가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한립은 즐거운 눈빛으로 화로 위에 휘황찬란하게 떠있는 금색 단약을 바라보았다.

‘금혼단!’

금혼단은 필요한 재료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문제지 연단 과정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한립은 수준 높은 연단술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에 연단을 마칠 수 있었다.

약성이 풍부한 단약 주변으로 흐릿하게 소인 허상이 보여 마치 단약이 혼백을 지닌 것처럼 느껴졌고, 그 기이한 향기가 사람의 정신을 맑게 했다.

한립은 그 향기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 의식의 힘이 어렴풋이 어떤 고비를 돌파하는 것 같은 기현상을 경험했다.

“혼백의 변화를 돕는다는 영약답구나.”

한립은 감탄하며 옥함을 불러내 금혼단을 정성스럽게 부적 몇 장을 붙여서 저물탁에 넣어 두었다.

웅.

그가 장천병을 눈높이로 띄워 법결을 던져 넣자 암초 주변의 천지원기가 물 밀듯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또한 한립의 양 손바닥에서도 정순한 푸른 빛기둥이 뻗어 나가 병 속으로 흡수되었다.

며칠 후, 주변의 천지영기가 안정을 되찾았다.

이에 한립이 수결을 맺은 손으로 휘젓자 푸른 빛기둥이 방출을 멈추고 장천병이 서서히 떨어졌다. 그 안에는 녹색 액체가 뭉쳐져 생긴 시간정립 한 알이 들어있었다.

그는 작은 병을 거두고 단약 하나를 꺼내 삼킨 다음 푸른 빛에 감싼 수정 알갱이를 해저로 내려보냈다.

잠시 후 해저에서 푸른빛이 검은 보따리를 품고 올라왔다. 검은 천수대가 거대한 산봉우리라도 되는 듯 푸른빛은 느릿하게 날아왔다.

손을 뻗어 그것을 받은 한립도 어깨가 뻐근했다. 그 안에는 작은 연못 하나를 채울 법한 2성 중수가 가득 차 있었다.

희색을 드러낸 한립은 수결을 맺어 등 뒤로 중수진륜을 불러냈다.

우웅!

천수대에서 2성 중수 한 덩어리가 빠져나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한 고리 속으로 스며들었다.

중수진륜의 물의 도문 9개가 밝은 빛을 머금었다. 마치 도문들이 입을 벌려 2성 중수를 꿀꺽꿀꺽 삼키고 있는 듯했다.

오래지 않아 중수 한 덩이를 전부 흡수한 중수진륜의 물빛이 짙어졌다. 한립의 손짓에 또 다른 중수 덩어리가 떠올라 중수진륜으로 날아갔다.

꼬박 하루 동안 천수대에 가득 담긴 2성 중수를 전부 흡수한 중수진륜은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한 거대한 힘을 품고 미세하게 진동했다.

중수진륜의 위력이 한층 높아진 것이 분명했다.

1성 중수를 흡수할 때와 달리 중수진륜은 무지막지하게 무거워지지도 않았고, 그와의 의식연계도 단단했다.

물의 도문 9개에 시선을 빼앗긴 한립은 생각에 잠겼다.

중수진륜을 새로 제련하면서 물의 도문이 늘어 더 많은 중수를 수용할 수 있었다.

* * *

3년 후.

암초 위의 한립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 앞에 찬란한 남색 빛 속에 중수를 머금은 중수진륜이 떠있었다.

한립이 아무런 술법도 펼치지 않고 그저 중수진륜을 띄워놓았을 뿐인데도 선명한 중압감이 퍼져 허공이 웅웅 울리고 파문이 형성되었다.

마치 공간 자체가 중수진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듯했다. 한립의 손짓에 중수진륜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휘이잉.

진동이 심해지면서 엄청난 굉음과 광풍에 바닷물이 출렁거렸지만 암초 주변을 금제가 가리고 있어 바깥으로 멀리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중수진륜의 남색 빛이 번뜩 수축하면서 빠르게 고리 안쪽으로 사라졌다. 잠깐 사이 마지막 한 방울의 중수까지 전부 진륜 안으로 돌아갔다.

중수진륜은 트림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빛을 내뿜고 거둬드리길 반복했다. 그 모습에 한립은 중수진륜을 불러들였다.

회전을 완전히 멈춘 고리는 더이상 진동하지 않아 해역의 모든 것이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중수진륜의 겉모습은 이전과 비슷했으나 9개의 물의 도문이 이전보다 커져서 남색 빛이 맴도는 모습도 9개의 작은 소용돌이가 치는 것처럼 보였다.

강렬한 물의 법칙 파동이 도문에서 발산되었다. 이렇게 강력한 법칙의 힘은 그 양에서 만큼은 한립이 지닌 어떤 선기보다 많았다.

한립은 즐겁게 고리를 살폈다.

3년간 부단히 2성 중수를 삼킨 중수진륜은 비록 흡수 속도는 떨어졌지만 앞으로도 2성 중수만 더 있으면 계속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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