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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76화 (1,433/2,000)
  • 1676화. 겹겹

    *

    반나절을 가도 검은 안개가 이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개가 짙어져서 영목 신통으로도 멀리까지 보기 어려웠고 설상가상으로 조용하던 검은 구역에 어린아이가 훌쩍이는 것 같은 기괴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소리는 커다란 귀곡성보다 위력이 강했다.

    ‘낙백량풍 내의 새로운 구역이라…….’

    한립은 속도를 더 늦추고 두 눈에서 남색 빛을 뿜어내 주변을 수색했다. 그렇게 얼마간 전진하던 그는 표정이 달라져 멈추었다.

    쿠르릉 하는 소리가 전방에서 들려오고 검은 안개가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냄비 안의 끓는 물처럼 들끓었다.

    한립이 뒤쪽이나 옆쪽으로 피해야할 지 고민하는 찰나 그의 상하좌우에서 검은 안개가 미친 듯이 몰려들어 거대하기 짝이 없는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한 소용돌이가 있었다. 강력한 흡입력이 발생해 그도 강제로 소용돌이 중심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표정이 굳은 한립은 전신에서 푸른빛을 방출해 좌우로 퍼트렸다.

    그러자 전방에 안개 속의 검은 그림자가 드러났는데 오돌토돌한 피부의 집채만 한 두꺼비 음수가 흉측한 모습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검은 두꺼비는 그가 달아나는 것을 막을 심산인지 큰 입을 쩍 벌려 칠흑같은 빛을 분출했다.

    검은 빛기둥이 음한한 파동을 방출해서 지나는 허공에 얼음 통로가 생겨났다.

    한립이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손을 펼쳤다.

    그러자 흐릿한 비검이 날아가 거목 크기의 푸른 거검으로 변해 표면에서 금색 뇌전들을 뿜었다.

    푸른 거검은 금색 뇌전 검의 모습으로 검은 빛기둥을 갈랐다.

    쿠콰쾅!

    빛기둥은 뇌전검의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갔고, 그 다음은 두꺼비 음수였다.

    서걱!

    금빛을 반짝인 두꺼비 음수의 몸이 둘로 갈라지면서 벽사신뢰가 타고 흘렀다. 두 동강난 육신이 펑! 하고 갈라져 검은 안개로 흩어졌다.

    한립이 음수를 상대하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동안 거대한 소용돌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져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쉬익.

    표정이 신중해진 한립이 수결을 맺어 비술을 이용해 빠져나가려는데 소용돌이 속에서 거대한 촉수가 뻗어 나와 불가사의한 속도로 그를 휘감았다.

    진극막을 펼친 그를 직접 건드리지는 못했으나 촉수는 튕겨 나가지 않았다.

    수결을 맺은 한립의 몸에서 청죽봉운검 두 자루가 날아올라 검은 촉수를 내리쳤다.

    카캉!

    검은 촉수는 생각보다 단단해서 청죽봉운검이 파고들다가 박혀 버렸다.

    한립이 놀라 무언가를 하려는데 검은 촉수가 무지막지한 힘으로 그를 휙! 잡아끌어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눈앞이 어지러워진 한립은 폭풍을 눈앞에 둔 것처럼 검은 기운들이 쾌속으로 선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바깥보다 무언가를 찢어발기려는 소용돌이의 거친 힘이 몇 배로 강해졌고 검은 촉수도 부단히 꿈틀거리면서 그를 조였다.

    한립은 소용돌이 속에서 오히려 더 평온해진 얼굴로 검은 촉수가 아닌 다른 곳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크하앙!

    바로 그때 소용돌이 깊은 곳에서 포효소리와 함께 무언가 쉭! 날아들었다.

    또 다른 촉수가 그를 휘감고 힘껏 압력을 가했다.

    한립은 진극막으로 촉수들을 막고는 소용돌이 안쪽을 바라보며 손에 검결을 맺었다.

    파치치칫!

    검은 촉수를 파고든 청죽봉운검들에서 금색 뇌전들이 일어나 검신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금색 뇌전 검이 회전하며 조각낸 촉수들이 퍼펑! 검은 안개로 흩어졌다.

    크호오……!

    고통에 찬 괴성이 소용돌이 깊은 곳에 울려 퍼졌다.

    한립은 남색 눈으로 그 안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으나 피하지 않았다. 허공에 충만한 소용돌이의 파괴적인 힘이 여전히 존재해서 함부로 이동하기 꺼려졌다.

    그러나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그는 두꺼비 음수를 참살한 뇌전 거검을 불러들여 옆에 두었다.

    총 세 자루의 금색 뇌전검이 그를 지키면서 선회했다.

    쏴아아.

    요동치는 소용돌이 속을 빠져나온 것은 작은 산만한 거대 문어 괴수였다. 새까만 몸에 항아리 크기의 두 눈만 붉게 물들어 원한에 사무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문어 괴수의 열댓 개에 달하는 다리 중 두 개가 잘려나갔다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방대한 괴수가 지닌 음한한 기운은 두꺼비 음수보다 열 배는 강해 진선경 후기 수사와 맞먹었다.

    괴수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모든 다리를 바람처럼 움직여 커다란 그물을 이루고 한립을 공격했다.

    그걸 본 한립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문어 음수는 수행은 강하지만 지능이 높지 않고 오직 살육에만 미쳐 있는 것 같았다.

    짐승 영물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비술을 한두 가지 알고 있어도 저렇게 정신이 온전치 못하면 소용없었다.

    괴수를 잡아다 이 검은 구역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한립은 수결을 맺어 뇌전 검 세 자루를 품(品) 자 형태로 날려보냈다.

    휘익!

    검의 표면에서 맹렬히 금색 뇌전이 일어나 그물을 이루고 문어가 다리로 만들어낸 검은 그물과 충돌했다.

    쉬쉬쉬쉬쉭.

    날카로운 파공음 속에서 검은 기운과 금빛이 난무했다.

    문어 다리의 검은 기운은 벽사신뢰에 닿자마자 흩어져서 뇌전이 다리를 타고 올라가 상처를 남길 수 있었다.

    검은 다리는 음기가 뭉쳐져 형성된 것이라 벽사신뢰의 제약을 받으면서도 그 굵기와 단단함이 상당해서 한 번에 터져나가지는 않았다.

    비명을 지른 문어 음수의 눈에 공포심이 떠올랐다.

    한립이 그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괴수는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그걸 그냥 놔둘 한립이 아니었다.

    그가 눈빛이 서늘해지며 검결을 맺자 세 거검이 휘릭 돌아 금빛 검 그림자들을 분출했다.

    서걱!

    벽사신뢰에 맞아 약해져 있던 문어 다리들은 검 그림자에 의해 싹둑싹둑 잘려나갔고 문어 괴수는 잘려나간 다리는 제쳐두고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입에서 새까만 액체를 뿜었다.

    액체가 빠르게 퍼져 검은 구름을 이루고 검 그림자들과 금색 거검 세 자루를 막아섰다. 문어 음수는 전신에서 검은빛을 크게 방출해 쾌속으로 멀어져 갔다.

    한립이 냉소하며 법결을 맺어 거검들을 가리켰다.

    우웅!

    금색 거검 세 자루가 하나로 융합되어 산만하게 변해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거검의 미세한 움직임에 강력한 힘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쿵!

    곧바로 주변의 검은 구름이 찢겨나갔고 거검의 금빛 뇌전이 번득였다.

    눈깜짝 할 사이에 사라진 금색 거검이 문어 음수 머리 위에서 나타나 믿기지 않는 속도로 괴수를 베었다.

    서걱!

    문어 음수는 제대로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거검에 잘려 둘로 분리되었다.

    한립은 거대 문어 잔해가 펑! 터져 검은빛으로 흩어지자 푸른 비검 세 자루를 회수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눈을 반짝인 그가 푸른빛을 날려 어둠 속에서 암녹색 구슬을 끌어왔다.

    주먹 크기의 구슬은 색깔이 나무 속성 영석과 비슷하면서도 음한한 원기 파동이 극에 달했다.

    “이건 요핵?”

    구슬을 살펴본 한립은 인계의 음명의 땅에서 구한 혼석(魂石)을 떠올렸다. 녹색 구슬이 발산하는 기운은 혼석과 유사하면서도 백배 천배는 강했다.

    그는 손바닥을 뒤집어 녹색 구슬을 거두고는 주위를 살폈다.

    낙백량풍 구역은 음명의 땅 폭풍산(暴風山)과 엇비슷했고 녹색 구슬은 혼석을 닮아 있었다.

    이 둘 사이에 정말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잠시 생각을 해보던 한립은 고개를 저었다.

    당장 급한 일은 낙백량풍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이 소용돌이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의 강인한 육신이 소용돌이의 힘에 큰 타격을 입지는 않겠지만 흡입력이 강해서 떠나려면 힘을 좀 써야 했다.

    작게 기합을 넣자 한립의 몸에 금색 뇌전빛이 가득 떠올랐다.

    금색 빛줄기로 변해 소용돌이 바깥을 향해 날아오른 그는 폭풍에 휘말린 듯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둔광을 밝힌 그는 강제로 소용돌이를 뚫고 쏘아져 나갔다.

    팟.

    잠시 후 거대 소용돌이 바깥의 검은 안개가 꿈틀거리다 한립을 뱉어냈다. 약간 창백한 얼굴의 한립은 쉬지 않고 한참을 더 날아가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거대 소용돌이의 힘이 예상보다 세서 적잖은 선령력을 허비하고서야 탈출할 수 있었다.

    그는 단약들을 몇 개 꺼내 입에 털어 넣고는 붉은빛을 거두어 진짜 모습으로 돌아갔다. 가면을 벗은 한립은 푸른빛을 진하게 일으켜 앞으로 나아갔다.

    며칠 간 검은 안개를 지나면서 다른 위험은 없었지만 수시로 처음 보았던 괴이한 거대 소용돌이를 마주쳤다.

    소용돌이의 크기는 다양해서 당초 마주쳤던 것보다 몇 배는 큰 소용돌이를 마주쳤을 때는 그 강력한 흡입력에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한립은 소용돌이를 피해 다니면서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음수들을 잡아 꽤 많은 녹색 구슬을 모았다.

    쿠르릉!

    열심히 날아가고 있는 한립 뒤편에서 검은 안개들이 격동했다. 멈칫한 그는 눈에 남색빛을 키우고 급히 우측으로 비켜섰다.

    그가 자리를 피하자마자 거대한 소용돌이 하나가 빠르게 그 자리를 스쳐 전방으로 사라졌다.

    한립은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소용돌이를 피하는 데도 익숙해져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앞쪽 안개가 괴이한 소리를 내면서 꿈틀거렸다.

    한립은 서늘한 표정으로 푸른 비검을 날려 검은 안개를 갈랐다.

    막 안개로 진입한 거검이 쾅! 하고 튕겨 나와 표면의 푸른빛이 흩날렸다. 거검 너머로 난폭한 힘을 감지한 한립이 한 발자국 물러나면서 소매를 펄럭였다.

    쉬쉬쉬쉬쉭.

    열댓 자루의 청죽봉운검들이 날아가 몸집을 키우고 마구 안개를 베었다.

    아직 상대를 보지 못했지만 이전에 보았던 음수들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쿠콰콰쾅!

    요동치는 안개 속에서 열댓 자루 푸른 거검들이 튕겨 나왔다. 게다가 전부 칼날에 두꺼운 검은 얼음이 맺혀서 발산하는 빛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걸 보고 안색이 달라진 한립이 손가락을 튕겼다.

    챙강!

    금색 뇌전을 품은 푸른 거검이 강하게 진동해 검은 얼음을 부수고 원래의 밝은 빛을 되찾았다.

    한립은 재차 공격을 감행하지 않고 허공에 멈춰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만연한 검은 안개 속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와 별안간 그와 멀지않은 곳까지 접근했다.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을 뿐만 아니라 움직임에 어떤 기척도 나지 않았다.

    검은 안개를 두른 거대 삼지창이 불쑥 튀어나와 한립의 머리를 찔러 들어갔다.

    태산 같은 위압감에 한립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건 음수가 아니란 말인가!’

    그가 신속히 수결을 맺자 주위에서 열댓 자루의 푸른 거검들이 쏘아져 나가 그의 머리 위를 막고 검의 그물을 쳤다.

    검신들마다 굵은 금빛 뇌전을 방출해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쿠앙!

    삼지창이 묵직하게 찔러 들어가 열댓 자루 거검들이 덜덜 떨며 검 그물이 흩어졌다.

    파치칙!

    벽사신뢰들이 검신에서 튀어 올라 삼지창을 두른 검은 안개들을 처리했으나 삼지창 본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립이 수결을 바꾸려는 사이, 삼지창이 웅! 울면서 먹처럼 새까만 화염을 창끝에서 분출해 검 그물을 둘러싸고 음한한 기운을 방출했다.

    푸른 거검들에 다시 검은 얼음이 맺혀 금색 뇌전마저 그 안에 갇혀 있었다.

    괴이한 일에 한립이 눈을 크게 떴다.

    삼지창이 휙 쳐내자 검 그물은 붕괴됐고 열댓 자루 푸른 거검들은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이제 삼지창은 한립의 지척에 있었다.

    화르륵!

    대량의 새까만 화염이 활활 타올라 커다란 검은 용머리를 이루고 한립을 한 입에 삼키려 들었다.

    모든 일이 전광석화처럼 벌어져 피하려 해도 피할 수가 없었다.

    위기의 순간, 가슴과 배에서 열여덟 개의 별빛을 일으킨 한립이 두 주먹을 그러쥐고 힘차게 날렸다.

    그의 체구보다 몇 배는 큰 별빛 주먹 허상이 솟아올라 삼지창과 충돌했다.

    쿠쿠쿠쿵.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졌다.

    별빛과 검은빛이 교전하면서 허공이 웅웅 떨리고 있었다.

    몸을 부르르 떤 한립은 백여 장을 물러나서야 몸을 가누고 화염이 형성한 용머리가 사라진 채 삼지창만 남아 있는 것을 주시했다.

    삼지창을 부리는 검은 그림자도 괴력의 영향을 받았는지 미세하게 휘청였다. 깊게 숨을 들이마셔 체내의 기혈을 가라앉힌 한립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아직도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몰랐지만 이전에 상대했던 어떤 금선경 수사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홀로 낙백량풍에 진입해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일이 있었으나 정말로 위기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이제 눈앞의 검은 그림자를 마주치고 보니 금선 수사들도 낙백량풍을 멀리 피해간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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