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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71화 (1,428/2,000)
  • 1671화. 세력들

    *

    “이번에는 그것이 흑풍해역에 나타난다는 소식을 듣고 오신 듯한데, 소 궁주 같이 능력 있는 분은 이미 입구가 어디인지도 아시고 계시겠습니다.”

    낙청해는 손짓으로 남가몽을 물러나게 하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북한선궁을 너무 추켜세워주십니다. 저도 막 소식을 듣고 무턱대고 와본 것뿐입니다.”

    소진한이 코웃음을 치며 차분히 말했다.

    “그래요? 소 궁주께서 아직 찾지 못하셨으면 복릉종 인물들도 아직 찾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허허, 우리 창류궁은 두 가문을 따라 다니면서 적당히 편의를 챙겨도 되겠어요.”

    “그 말은, 복릉종에서도 진작 누군가 들어와 있단 뜻입니까?”

    “그야 저도 모르지요. 그냥 들려오는 소문이 그렇다는 겁니다. 아, 그렇지! 복릉종의 대장로가 출관했다는 소문도 있던데요?”

    소진한이 뚫어져라 주시하는 데도 낙청해는 느긋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아주 소식에 정통하십니다.”

    “허허허, 과찬이십니다. 소식에 정통하기로 북한선역에서 북한선궁을 따를 수야 있나요? ……예를 들어 백리염이 촉룡도에 숨어 있다는 것도 먼저 알아내셨으면서 말입니다.”

    낙청해가 웃음을 흘리며 소진한 뒤의 구양규산 등 세 사람을 쳐다보는데 눈빛에 담긴 뜻이 깊었다.

    움찔한 구양규산 등의 표정이 어색해졌고 소진한의 표정도 가라앉았다.

    “육 도주가 소 중주께 긴히 보고할 일이 있어 보이니 저희는 방해하지 않고 자리를 피해 드려야겠습니다.”

    낙청해는 힐긋 육균을 돌아보고 허허 웃음 지었다.

    “아, 아닙니다, 낙 궁주님. 흑풍해역에 오셨으면 두 분 다 저의 귀빈이신걸요…….”

    “낙 수사 가볼 데가 있으시면 그러시지요. 오래지 않아 어차피 또 볼 것 같으니 말입니다.”

    갑자기 자신을 두고 낙청해가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는지 육균이 멋쩍게 답하고 있는데 소진한이 냉랭히 말을 끊었다.

    이에 낙청해는 소진한을 향해 공수를 하고 창류궁 사람들을 데리고 전송탑을 나섰다.

    그들은 흑풍성에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성문 밖으로 나가 하늘 끝으로 멀어져 갔다.

    소진한은 그들이 날아간 방향을 지켜보았다.

    “궁주님, 낙청해가 파악한 정보가 상당한 듯합니다.”

    설앵이 다가와 속삭였다.

    “흥! 늙은 여우라고 명성이 자자한 자인데 암암리에 얼마나 많은 이목을 깔아두었을지 모를 일이지.”

    “명한선부(冥寒仙府) 입구의 위치를 저들이 찾아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확실하지 않네만 알아냈다 해도 상관없네. 낙청해가 교활하기는 해도 세력이 크지는 않으니까. 관건은 윤회전과 복릉종이야.”

    눈빛에 한기가 돈 소진한이 차분히 답했다.

    “윤회전은 선궁의 적이니 그렇다 치고 복릉종은……. 대장로 봉천도를 경계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북한선역 전체에서 우리가 신경을 쓸 인물은 단 둘뿐인데, 그 중 이제 백리염은 위협이 되지 않았고, 남은 건 봉천도 뿐일세.”

    소진한의 말에 설앵이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묵묵히 옆으로 물러났다. 그때 가만히 서 있던 소진한이 돌연 육균과 풍 수사에게 몸을 돌렸다.

    “너희 둘은 그간 수집한 정보를 자세히 이야기해보거라.”

    * * *

    흑풍해역 끄트머리 낙백량풍 안.

    잿빛 거대 선박이 거센 바람을 뚫고 번개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회색 뼈를 이용해 만들어진 선박은 낡아 보였고, 부분 부분 갈라져 구멍이 뚫리기도 했으나 표면 전체에 흐릿하게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바람 지대에서 선박은 격랑 속에 떠다니는 돛단배처럼 보였지만 흐릿한 문양에서 얇게 회색 광채가 흘러나와 바람을 막아내고 있었다.

    낙백량풍의 귀곡성은 회색 광채에 바깥으로 밀려나 뼈 선박 안으로 침투하지 못했다.

    뱃머리에는 깡마른 중년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두 볼이 움푹 들어가고 피부가 파랗다 못해 검푸르게 죽어 있어 얼핏 보면 강시처럼 보였다.

    특히 몸을 칭칭 감고 있는 검푸른 사슬에서 그가 움직일 때마다 촤르릉 하는 소리가 괴기스럽게 울렸다.

    전방을 응시하는 강시 사내의 눈동자에 희미하게 녹색 불길이 떠올랐다.

    갑판에는 회색 문양들이 선명하게 새겨져서 복잡한 진법을 이루었고 그 문양들이 진법을 타고 뻗어 나가 선박 곳곳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때 선박 안쪽에서 누군가 걸어와 강시 사내 옆에 섰다.

    회색 비단 장포를 걸친 수척하게 생긴 3, 40대 사내는 눈썹과 눈이 모두 얇고 가늘어서 음침하고 차가운 인상을 풍겼다.

    게다가 감고 있는 왼쪽 눈에 깊은 흉터 자국이 있어 큰 부상을 입은 적이 있는 듯했다.

    “사형, 견딜만 하십니까?”

    “괜찮다.”

    외눈박이 사내의 작은 물음에 강시 사내가 평온히 답했다.

    “사형의 벽사수(辟邪獸) 뼈로 제련한 선박 덕에 낙백량풍을 무사히 건너고 있습니다.”

    외눈박이 사내가 걱정스러운 기색을 풀며 웃음 지었다.

    “낙백량풍의 위력이 강하다 하나 건너려고 마음을 먹으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허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북한선역 전체에 세 사람을 넘지 않을 겁니다. 복릉종 종주인 저도 함부로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외눈박이 사내의 말에 강시 사내의 깡마른 얼굴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사제로서 최선을 다해 사형께서 보물을 얻을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마지막 한 걸음을 나아가셔서 태을옥선의 경지에 이르셔야지요!”

    “고맙다.”

    외눈박이 사내가 숙연하게 하는 말에 강시 사내도 작게 고개를 숙였다.

    “당연한 일인걸요!”

    “그래, 요즘 처리할 일이 너무 많아서 관심을 갖지 못했는데 방반과 중란을 죽인 흉수는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이냐?”

    강시 사내가 옛일을 떠올리곤 서늘한 기운을 번득였다.

    “신분은 밝혀냈습니다. 방 사질과 중 사질 모두 려비우라는 자에게 당했더군요! 산수였다가 수백 년 전인가 촉룡도에 들어갔는데 제가 나서기도 전에 촉룡도에서 백리염 사건이 벌어져서 그 후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선궁이 벌써 추살령을 내렸는데 제가 알기로 아직 잡지 못하고 있답니다.”

    외눈박이 사내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려비우…….”

    강시 사내가 인상을 찡그리며 흉수의 이름을 되뇌었다.

    “제가 이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인원을 파견할 테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녀석을 잡아다가 사형께서 벌하실 수 있게 하지요.”

    “방반과 중란에게 주었던 격원법력이 그놈의 수중에 있을지 모른다. 반드시 찾아내야 해.”

    “예!”

    외눈박이 사내가 짧고 굵게 답하고 강시 사내는 눈을 감았다.

    외눈박이 사내가 인사를 하고 선실로 걸어가자 그 안에 적잖은 인영들이 앉아 있었다.

    * * *

    흑풍해역의 또 다른 쪽.

    몰아치는 낙백량풍 속에서 거대한 금빛 덩어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휘황찬란한 금빛 안에는 어렴풋이 전신에 보랏빛 무늬가 있는 거대 딱정벌레가 보였다.

    거대한 모습 자체도 무시무시해 보였지만 금빛 덩어리 자체도 눈을 찌를 듯한 수정 실들이 음산한 빛을 반짝였다.

    금색 딱정벌레는 큰 입을 벌려 밀려드는 음산한 바람을 삼켜댔고 그 위에는 은색 장포를 걸친 여인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은색 관과 은색 귀고리를 한 20대 중후반 여인은 맨 발에 발목에는 은색 고리를 차고 있어 움직일 때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 눈에 보아도 딱 이족인의 복장이었다.

    여인의 용모는 아름다운 편이었지만 눈빛이 극히 차가워서 만년 빙하가 박혀 있는 듯했다.

    낙백량풍의 끔찍한 귀곡성도 개의치 않고 여인은 금색 곤충이 검은 바람을 삼키며 전진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심혈을 기울인 보람이 있구나!”

    즈즈즛!

    이때 금색 딱정벌레가 돌연 날카롭게 울며 몸을 틀어 앉아 있던 여인이 휘청거렸다.

    얼굴을 굳힌 은포 여인은 서둘러 주문을 외며 열 손가락을 튕겼다.

    이에 법결들이 날아가 금색 곤충의 체내로 흡수되었고 바르르 몸을 떤 곤충의 몸 안에서 은색 실들이 떠올라 굵은 사슬로 변했다.

    사슬이 조여오자 고통스럽게 울부짖던 금색 곤충은 곧 얌전해졌다. 그걸 본 은포 여인이 수결을 풀어 은색 사슬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상해. 분명 수신술(囚身術)을 걸어 놓았는데 무엇 때문에 안절부절못한 거지?”

    중얼거리던 여인은 곧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천천히 알아내면 되겠지.”

    수결을 맺은 여인의 몸에 은빛이 번지며 놀랍게도 천천히 금색 딱정벌레 안으로 스며들었다.

    금색 곤충은 거대한 몸뚱이를 부들부들 떨며 밝은 금색 환영으로 변해 훨씬 빨리 앞으로 나아갔다.

    * * *

    그 후로 5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윤회전 비경 안은 여전히 고요했고 산봉우리 안의 대청에서 흉터 사내와 교삼이 마주 앉아 있었다.

    흉터 사내의 표정은 어두웠고 교삼은 가면을 쓰고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그리 편안한 기분은 아니었다.

    “바깥 상황은 어떻습니까?”

    교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소진한이 몇 해 전 흑풍해역으로 들어왔고 창류궁과 복릉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종주급들이 무리를 이끌고 왔는데 특히 복릉종은 대장로 봉천도까지 나섰을 가능성이 크고요.”

    흉터 사내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

    “흥, 많이도 몰려들었군요.”

    “형세가 우리가 예상하던 것과 너무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만일에 대비해 상부에 보고하고 의견을 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냉소를 흘리는 교삼을 향해 흉터 사내가 제안했다.

    “그럴 것 없습니다. 북한선궁, 창류궁, 복릉종도 각자 딴마음을 품고 있어 오히려 우리에게 유리할 수도 있어요! 그들이 서로 다투는 동안 우리는 임무만 완수하면 됩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더없이 좋겠으나 그들이 암암리에 손을 잡고 우리를 대적한다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북한선궁이 백리염을 잡겠다는 핑계로 촉룡도를 손에 넣은 것을 창류궁과 복릉종에서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들이 합작할 가능성은 아주 적습니다. 그들이 손을 잡는다고 해도 우리에게 대응 방안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교삼 수사께 방책이 있다면 저야 안심입니다.”

    차분한 교삼의 말에 흉터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치 수사께서는 홍월도 조사가 잘 되어 가십니까?”

    “조사를 마쳤으니 대사를 그르칠 일은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제 쪽은 일단락을 맺었고 이제 허원단만 있으면 되겠군요. 15년 기한이 다 되어 가는데 용오 수사의 연단은 어찌 진행되고 있습니까?”

    흉터 사내가 화제를 돌리자 교삼은 입을 다물었다.

    “역시 쓸모없는 작자였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 일을 어쩐단 말입니까!”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이 다른 대안을 택해야겠습니다. 성공 확률은 극히 낮지만 말입니다.”

    “그러는 수밖에요. 기대를 걸고 있었건만 일을 망치다니 당장 용오의 윤회자의 자격을 박탈해야 합니다. 우리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으니 반드시…….”

    흉터 사내가 서늘하게 말을 하는데 그 말이 끝나기 전에 동부가 크게 흔들렸다. 그들이 앉은 대청 밖에도 우렁차게 쿠르릉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시선을 마주치며 바로 날아올라 동굴을 빠져나왔다.

    맑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어 출렁이고 검은 뇌전들이 마구 떨어져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았다.

    하늘 전체가 바글바글 끓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그 모습에 교삼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고, 놀란 흉터 사내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비경 내의 천지영기가 요동치다 먹구름에 빨려 들어가 검은 소용돌이를 이루고 한립이 위치한 동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경에 머물던 진선경 수사 몇 명도 이때 바깥으로 나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한립을 이곳으로 안내한 이십육 수사도 있었다.

    “어서 술법을 펼쳐야 합니다.”

    교삼이 이십육 등 다른 수사들을 향해 외치고 수결을 맺었다.

    “예!”

    수사들은 즉시 대답하고는 비경 곳곳으로 날아갔고, 교삼은 주술을 외면서 눈부신 금빛을 발산해 허공을 향해 거대한 빛기둥을 쏘아보냈다.

    웅웅!

    주술문자들이 현란하게 반짝이는 강력한 빛기둥의 힘에 인근 허공이 진동했다.

    흉터 사내도 그 파동에 밀려 몸을 떨고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멀찍이 날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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