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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69화 (1,426/2,000)

1669화. 지방(地榜)

*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한립은 교삼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천천히 지방을 열람했다.

안 그래도 지방에 적힌 눈이 휘둥그레질 보물들을 보고 입맛을 다시던 참인데 공헌점까지 생겼으니 제대로 골라볼 생각이었다.

별안간 그의 눈이 번득였다.

비석에는 연신술 구결도 1성부터 7성까지 전부 올라와 있었다.

3성까지는 바깥으로 유출되어서인지 교환에 필요한 공헌점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4성 공법부터는 필요한 점수가 팍팍 늘어났다.

4성 구결은 2천 점, 5성 구결은 1만 점이 필요했다. 슬쩍 미간을 찌푸렸던 한립이 얼굴을 폈다.

아직 임무에 따른 보수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다른 보물들을 교환하는데 필요한 공헌점을 참고하면 1만 점은 무척 높은 점수가 분명했다.

하지만 북한선역에서 연신결 구결을 구할 곳이 많지 않을 테고 그가 인연이 닿을 수 있는 곳은 더 적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이미 4성 공법을 얻어서 당장 미쳐 날뛰지 않을 수 있었으니 앞으로 천천히 공헌점을 모으면 그만이었다.

고개를 젓고 계속해서 지방을 살피던 그가 어느 곳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금혼단(金魂丹) 약방! 해 도인이 이전에 말한 적 있는 단약이야.’

한립은 흥미롭게 금혼단 뒤에 적힌 설명을 익었다.

금혼단은 수행을 늘려주거나 부상을 치유해주는 효과는 없었고 오직 의식을 굳건하게 만들고 혼백을 재구성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단약이 진선경 후기 수사가 금선경 고비를 넘길 때 성공 확률을 높여 준다는 것이었다.

요 몇 년간 금선경 돌파를 대비해서 수많은 경전을 찾아보았다.

우선 선규 36개를 뚫고 천인 삼쇄를 넘겨 선령력이 탈바꿈하고, 다음으로 혼백도 보통 혼백에서 금선 혼백으로 바뀌어야 했다.

혼백의 변화가 선규를 뚫고 천인 삼쇄를 이겨내는 것보다는 쉽다지만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금혼단 약방의 가격은 딱 1백 점이었다.

“금혼단 약방에 관심이 있어 보이십니다.”

“어째서 이렇게 가치가 높은 단약의 약방을 교환하는데 필요한 공헌점이 1백 점밖에 안되는지 아시는 지요?”

교삼의 질문에 한립은 질문으로 답했다.

“금혼단이 금선경에 들어서는 데 도움이 된다지만 주재료가 온전한 금선의 원영입니다. 그렇게 귀한 재료를 어떻게 구하겠습니까? 제가 조언을 드리자면 윤회전에서 공헌점을 쌓기 쉽지 않으니 충동적으로 낭비하지 마시고 더 요긴한데 쓰시는 게 좋을 겁니다.”

교삼의 당부에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확실히 금혼단 제련에 필요한 금선 원영을 구하는 일은 일반적인 진선경 수사가 해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라면 상황이 달랐다. 빠르게 나머지 항목을 살핀 그가 결국에는 금혼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용오 수사…….”

교삼이 미간을 좁히며 참다못해 한 마디 하려했다.

“조언은 감사드리지만 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공헌점 1백 점으로 금혼단 약방을 교환하겠습니다.”

“무엇을 교환하시든 수사의 자유입니다. 다만 규정에 따라 지방에서 얻은 물건은 절대 외부로 유출하시면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 주십시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공법을 전수하시면 중벌을 받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금혼단이 적힌 부분을 누르자 비석 아래쪽의 공헌점 1백 점이 사라지고 화면 중앙에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잠시 후 소용돌이 중간에서 하얀 옥간이 떠올랐다.

옥간을 받아든 한립은 얼른 의식을 불어넣어 보고 내심 희색을 드러냈다.

금혼단 약방은 주재료인 금선 원영 외에는 그리 진귀한 재료가 필요하지 않아 금방 연단 준비를 마칠 수 있을 듯했다.

“용오 수사, 방금 윤회전에 가입하셔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시겠지만 급한 임무가 있어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괜찮습니다. 어떤 임무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사실 수사께는 위험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일일 겁니다. 연단 임무거든요.”

“연단 임무…….”

그 말에 한립도 긴장을 풀었다.

“이번 임무만 성공적으로 마쳐주시면 천년 내로 자유롭게 활동하실 수 있습니다. 보수도 50점이나 되고요.”

교삼은 웃는 낯으로 설명하면서 옥간을 꺼내 주었다. 한립이 바로 옥간을 받아들지 않고 입을 열었다.

“……도단사가 드물기는 해도 윤회전 같은 곳에 없을 거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어째서 저 같은 신입에게 임무를 맡기시는 것입니까?”

“우리 쪽에도 확실히 도단사가 이미 한 분 계십니다. 다만 요 몇 년 사이 다른 중요한 일이 있으셔서 이번 일은 용오 수사밖에 부탁할 분이 없군요.”

교삼의 말을 들으며 한립의 머리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

“음, 이 일은 윤회전 임무임과 동시에 저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용오 수사께서 제발 도움을 주시기를 청하겠습니다.”

교삼이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열어 진심을 담아 부탁했다.

“제가 윤회전에 가입할 수 있었던 건 교삼 수사의 추천이 있어서겠지요. 수사께서 연관이 있으시다니 그냥 두고 볼 수 없겠군요. 이번 임무를 수락하겠습니다.”

한립은 빙긋 웃으며 수락했다.

“고맙습니다. 이번에 받은 도움은 기억해두겠습니다.”

“그리 예의 차리실 것은 없습니다. 한배를 타게 되었으니 서로 도우며 살면 좋겠지요.”

공수하는 교삼을 향해 한립이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속내는 교삼에게 사소하지만 빚을 지워놓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기면서 옥간을 받아든 한립은 내용을 확인하고 미소 지었다. 옥간에 기록된 것은 도단 약방이었다.

그가 제련했던 것보다 간단해서 몇 가지 단계를 건너뛰고 보조재료 몇 가지를 다른 것으로 교체해서 조금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긴 했지만 주재료들을 보니 음기(陰氣) 속성의 도단이었다.

“어떻습니까? 제련이 가능하겠습니까?”

교삼은 한립이 옥간을 이마에서 떼자마자 서둘러 물었다.

“……흐음, 처음 보는 약방이기는 하지만 이전에 제련해 보았던 것보다 복잡하지는 않군요. 제 연단술이면 아마 제련을 해낼 수 있을 듯싶습니다.”

한립은 일부러 뜸을 들이다 답했다.

“좋아요, 좋습니다. 이걸 제련해 주시기만 한다면 용오 수사께 제가 큰 신세를 진 셈이 될 겁니다.”

교삼은 어찌나 기쁜지 연달아 좋아요를 반복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연단이 가능하다고 말씀은 드렸으나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말씀을 해보십시오.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과분한 요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낯선 약방을 이용해서 연단을 하려면 연단술에 조예가 깊어도 대량의 재료를 필요한다는 것은 아시겠지요?”

목소리가 가라앉은 교삼을 보고 한립이 운을 뗐다

“아, 재료에 대한 이야기라면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진작 그점을 고려해서 30회 분량의 재료를 준비해 두었으니 수사께서는 최선을 다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교삼이 얼굴을 풀며 저물 반지를 꺼내주었다.

“이미 준비를 잘 해두셨는데 괜한 말씀을 드렸군요.”

한립은 미소를 머금고 반지 안을 살피지도 않고 챙겨 넣었다.

의식을 방출하기 어려운 곳이라 꼼꼼하게 점검하기 어렵기도 했고 상대가 연단이 간절한 판에 무슨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재료를 구하기는 쉬워도 연단사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수사께서는 그저 어떻게 하면 10년 내로 제련에 성공할 수 있을까만 고심해 주시면 됩니다. 나머지 재료나 다른 문제는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10년……. 이런 말씀을 드려 송구하지만 10년은 너무 짧은 감이 있습니다. 저도 그 안에 성공할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고요.”

“안 되면 15년 내라도 성공만 해주십시오. 아주 중요한 일이니 최선을 다해주시면 성공 후에 윤회전에서 섭섭지 않은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수사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저도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일이 성사되고 말고는 하늘에 달렸다고, 이제 막 도단사가 된 제게 모든 기대를 걸지는 마시고 실패할 때를 대비하심이 옳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립의 말에 교삼이 말없이 한립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촉박해서 이곳에서 여유 부릴 틈도 없겠습니다.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한립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했다.

“어딜 가시려 그러십니까?”

“동부로 가려 합니다. 돌아가 약방을 연구해보고 달리 필요한 게 있으면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성가시게 그러실 것 없습니다. 이곳 연단실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잘 갖추어져 있으니 마음 푹 놓으시고 연단에만 집중하셔도 됩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제가 바로 가져다드릴 테고요.”

교삼은 손을 내저었다.

“그건 좀……. 저도 제 연단실이 따로 있고, 익숙한 곳에서 작업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대방이 떠나지 못하게 하자 한립이 눈을 가늘게 떴다.

“요즘 흑풍해역이 어디 안전한 곳이 있어야 말이지요. 도단이 완성되었을 때 단겁으로 불필요한 시선을 끌면 수사께서 무사히 빠져나오기 어렵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그럽니다.”

“그래도 그건…….”

“다른 문제가 없으시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제공해 드릴 테니 연단실로 가시지요!”

한립이 머뭇거리자 교삼이 냉랭히 말을 끊었다. 이에 한립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먼저 성큼성큼 걸어가는 교삼의 등을 바라보며 한립은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그들은 동굴을 나와 교삼이 불러낸 마차를 타고 구름이 절반을 뒤덮은 또 다른 산봉우리 중턱에 도착했다.

울창한 거목들이 자라난 숲 옆으로 폭포가 떨어지면서 물이 사방으로 튀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다.

그 맞은편 절벽에 뚫려 있는 동굴의 문에 푸른 광채가 흐르는 주술문자가 가득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교삼은 곧장 푸른 영패를 꺼내 석문을 열었다.

“용오 수사, 이곳에서 연단에 집중하시면 됩니다.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이 없도록 할 것이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부 안으로 걸음을 내딛으면서 눈썹을 꿈틀했다.

외부공간의 의식을 제한하는 금제가 차단되어서 자유롭게 의식을 방출할 수 있는 대신 딱 동부 안에서 만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동부에는 연단실, 밀실, 약재 밭 등이 잘 갖춰 있었고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동부 상태가 좋습니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제게 연락을 주십시오. 수사만 믿고 있겠습니다.”

말을 마친 교삼은 바로 몸을 돌려 동부를 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대문이 쿠릉! 하고 닫혀 버렸다.

‘하아…….’

굳게 닫힌 대문을 바라본 한립은 탄식했다. 이건 누가 보아도 연금을 당한 꼴이었다.

직접 돌아다니면서 동부 곳곳을 둘러본 한립은 수시로 각양각색의 진법 깃발과 원반을 날려서 형형색색의 보호막들을 펼쳤다.

반 시진 가량이 지나서야 밀실 중 하나로 들어간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푸른 가면을 벗은 그는 붉은 사자머리 가면을 쓰고 수결을 맺었다. 가면의 붉은 빛이 부드러운 파동을 이루어 몸으로 퍼져나갔다.

푸른 가면을 썼을 때 보다 더욱 정교한 금제가 그의 기운을 완벽하게 가려주는 것이 느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릿속에서 연신술이 발생시키는 특수한 의식 파동도 붉은 가면의 파동에 덮였다는 것이었다.

“교삼의 말대로 윤회전 쪽도 오랜 세월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구나.”

그의 마음이 약간 편해졌다.

선계로 온 뒤로 수행이 높은 존재가 가까이 있으면 연신술을 수련한 것을 들킬까 항상 조마조마했었다.

그나마 한 번도 순찰사자를 마주친 적이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이제 붉은 가면으로 감찰 비술을 수련한 순찰사자들의 이목도 속이게 되었으나 더 높은 수행을 지닌 감찰 선사까지 속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한립은 수결을 바꾸어 붉은 가면에서 화면을 불러냈다.

익숙하게 임무란을 건드려 금혼단에 필요한 다른 재료들을 구하는 임무를 등록한 그는 화면을 거두고 연신술 4성 공법이 기록된 옥간을 꺼내들었다.

연단 임무를 15년 내로 마쳐야 한다지만 당장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

15년이 다른 천단사에게는 빡빡한 시간이어서 교삼 앞에서 난감한 척했으나 솔직히 말해 그의 경지에서 별것도 아니었다.

수정 벽 사건 이후 진언보륜의 시간도문이 몇 개밖에 회복되지 않아 십여 개가 되살아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순조롭게 연단할 작정이었다.

이번 도단에 필요한 재료나 제련과정도 이전에 제련했던 도단보다 간단해서 진언보륜이라는 필살기와 충분한 재료를 갖고 있으면 언제든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지금 그에게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연신술 수련이었다.

그는 의식을 불어 넣어 연신술 4성 공법을 세세하게 훑고는 가부좌를 틀고 수련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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