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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65화 (1,422/2,000)

1665화. 뜻밖의 소득

*

한립의 시야가 까맣게 변하면서 의식이 흐려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천천히 의식을 차린 한립은 눈을 떴다. 그러나 그 앞에는 수정 장벽만 있을 뿐 검은 소용돌이는 보이지 않았다. 장벽도 얼마 가지 못하고 흩어졌다.

“돌아왔군…….”

동부를 둘러보는 그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모르게 실망스럽기도 했다.

이번 장천병의 이상 현상으로 실질적인 수확을 얻지 못한 것에 실망스러웠지만 무사히 돌아온 것은 무척 기뻤다.

그는 아쉬운 마음을 떨치고 다시 눈을 감고 육신을 떠나 겪은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 일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수결을 맺어 등 뒤로 진언보륜을 띠운 그는 360개의 시간도문이 어둡게 변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진언보륜에 감겨 있던 금색 수정 실, 시간정사도 빛을 잃었다.

콰릉.

한립이 시간법칙의 실을 체내로 돌려 넣을 때 허공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해 도인이 나타났다.

“한 수사, 시간법칙을 깨우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2품 도단 덕에 겨우 성공하였습니다. 3대 지존법칙 중 하나인 시간법칙은 오묘하고 뜻이 깊어 제대로 장악하려면 이제 시작에 불과하고요. 그보다, 조금 전 발생한 일은 보셨습니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혹시 조금 전 수정벽을 불러낸 사이 잠시 넋을 잃고 있던 사이 무슨 문제라도…….”

해 도인이 덤덤히 물었다. 그 말에 한립은 턱을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긴 얼굴이 되었다.

그의 정신이 수정벽에 빨려 들어가 금원선역이라는 곳에서 다른 이의 몸을 빌려 돌아다녔던 시간은 이곳에서는 찰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금원선역은 정말 존재하는 곳일까? 철수문은?’

그가 깃들어 있다고 여겼던 능운자와 그의 제자인 이원구도 허상인지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들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고민하던 한립은 한참 만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괴이한 일은 시간이 지나봐야 진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시간법칙을 조금이라도 장악했으니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연신술을 해결하는 것과 금선경을 돌파하는 일이었다.

그는 무상맹 가면을 쓰고 그가 맡긴 임무를 살펴보았다. 연신술과 관련한 임무에는 아직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한숨을 내쉬기는 했지만 가면을 벗은 그의 얼굴은 웬일인지 평온했다.

어차피 연신술 후반부 공법을 알아내는 일은 인연이 따라줘야 했고, 당장 단시일 내로 그가 미쳐서 날뛸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금선의 경지까지 선규 하나를 남겨 두고 있기에 그 고비만 넘기면 선계에서 생존 능력도, 공법을 수색해 찾아낼 확률도 늘어난다.

그저 이쪽도 막다른 길이라는 게 문제였다. 시간법칙을 깨우치고 그 힘으로 선규를 뚫어 보려 했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침음하던 한립은 청회색 석판을 꺼내 들었다.

대주천성원공이 기록된 석판이었다. 그가 맹에 등록한 대주천성원공의 후속 공법을 찾는 임무도 아무도 수락하지 않았다.

잠시 석판을 내려다보던 그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

대주천성원공을 수련하면 마지막 선규를 뚫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게 아니더라도, 소북두성원공을 익혀서 그의 육신의 힘이 강화된 정도를 생각하면 대주천성원공도 그를 실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한립은 장천병을 거원 괴뢰에게 내주어 약재밭의 영초들을 돌보게 하고 자신은 동부를 나와 작은 섬 중앙의 산 위에 올랐다.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풍경들을 막힘없이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저었다.

서걱.

산 정상 절반이 평평하게 깎여나갔다. 그 위로 수북하게 재료들이 쌓이는데 전부 성신의 힘을 지닌 재료들이었다.

어느 도우의 흑의 뚱보 호위에게서 얻은 물건들로, 성신의 힘을 익힌 진선경 후기 수사답게 다양한 재료들을 지니고 있었다.

한립의 입에서 푸른 불길이 빠져나가 산 정상을 뒤덮었다. 그러자 산봉우리의 암석들이 붉게 달아올라 녹아내렸고, 그의 손짓에 재료들도 날아올라 불길 속에서 녹아 그 안에 섞여 들어갔다.

평범하던 산봉우리가 점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닷새 후.

산봉우리 전체가 탑의 형태로 변해 별빛을 요란하게 반짝거렸다.

석탑 위에는 주술문자들과 희미한 별 도안들이 새겨져서 복잡하기 그지없는 커다란 진법을 이루어 예전에 경원관에서 보았던 취성대와 비슷해 보였다.

탑의 진법은 취성대에서 보았던 취성진법에 성신의 힘에 대해 얻은 깨달음을 더해 설계한 것이었다.

흑의 뚱보의 저물법기에는 쓸 만한 성신진법들이 들어 있었고 관련 공법과 비술도 있어 칠요성환을 제련하면서 틈틈이 연구를 해두었다.

탑 위의 진법 중앙에 칠요성광진(七曜星光陣) 한 벌을 섞어 두어서 별의 힘을 모아들이는 효과가 경원관 취성대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거기다 칠요성광진과 긴밀하게 연계된 칠요성환으로 진법을 발동하면 진법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었다.

한립이 완성된 탑 위에 내려서서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가부좌를 틀고 그 위에서 청회색 석판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밤이 되었다.

어두운 밤하늘에 수많은 별빛들이 반짝이는 가운데 한립이 눈을 뜨고 8개의 남색 수정돌을 불러냈다.

천성석(天星石)이라 불리는 돌은 완성석처럼 정순한 별빛의 힘을 품고 있어서 진법을 발동하기에 적격이었다.

흑의 뚱보의 저물대에서 구한 천성석들은 수량이 얼마 되지 않아 오래 버티지는 못 하겠지만, 미리 무상맹에 천성석을 구하는 임무도 등록을 해놓았으니 오래지 않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천성석 8개가 정확히 진법에 파인 구멍으로 들어가 남색 광채를 흘려보냈다. 남색 광채가 진법을 타고 탑 위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희미하던 별 문양이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냈고 밤하늘의 별들이 별빛을 비처럼 쏟아 부어 수많은 빛기둥이 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취성대가 불러낸 힘보다 10배는 더 강한 어마어마한 성광지력(星光之力)이 탑으로 몰려들자 한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설계한 진법의 효과가 나쁘지는 않구나.’

그럼에도 지금 그는 성광지력이 부족했다. 한립이 수결을 맺고 중얼중얼 주문을 외니 빛이 연달아 반짝이고 7개의 남색 고리가 떠올랐다.

칠요성환이었다.

웅웅웅웅!

고리가 나타나자 탑의 진법이 더욱 밝게 빛나면서 7개의 커다란 빛덩이를 내뿜더니 그 안의 무수히 많은 주술문자들이 눈부신 빛을 발산했다.

칠성성환이 탑의 일곱 빛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쿠르릉!

석탑 전체가 남색 빛으로 물들고 진법의 운용이 빨라지자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빛기둥의 밝기도 배가 되었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성광지력이 굉음을 퍼트렸다.

한립은 눈을 감고 천천히 대주천성원공을 운용해 보았다.

이 공법에도 7개의 현규를 뚫을 수 있는 방법이 담겨 있는데다 소북두성원공에 비해 복잡해서 쉽지 않았다.

쿠쿵.

이때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던 별빛 기둥들이 일곱 줄기로 뭉쳐서 그의 몸으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빛기둥의 굵기는 줄어들었지만 그 안에 밀집된 별빛의 힘만은 충만했다. 한립이 이전에 현규를 뚫었던 자리에 7개의 남색 빛이 떠올라 방대한 별빛 기둥을 꿀렁꿀렁 흡수하고 있었다.

인상을 찡그린 그는 고통스러워 보였다. 이미 뚫린 현규들이 다시 찢기는 고통은 강철 바늘로 몸을 헤집는 기분이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표정을 바로 했다.

그에게는 이런 고통이 익숙했다. 재빨리 수결을 바꾸자 그의 몸으로 더욱 밝고 얇아진 별빛 기둥이 쏟아져 들어왔다.

남색 기운이 안개처럼 떠올라 한립의 신형은 성광지력에 가려져 흐릿하게 보였다.

시간이 흘러 밤이 지나가고, 동쪽 하늘이 점점 밝아져 왔다. 하늘의 별들이 몸을 감추고 성광지력도 자취를 감추었다.

모습을 드러낸 한립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의복에는 피가 얼룩덜룩 스며들어 있었다. 무척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더 없이 밝았다.

7개의 남색 선규가 이전보다 확장되었고 남색빛이 반짝거리는 사이 피부의 진극막이 더욱 단단하게 변해 있었다.

이전에 익혔던 소북두성원공은 간소화된 공법이라서 진정한 대주천성원공을 익히기 시작하려니까 이미 뚫어둔 현규도 확장이 되고 육신의 힘도 강화된 듯했다.

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몸의 변화를 느끼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하룻밤 만에 그의 진극체가 진보했다. 현규 18개를 전부 수련하는데 성공하면 어떤 변화가 있을지 기대가 되는 아침이었다.

한립은 숨을 길게 내쉬어 감정의 기복을 가라앉히고는 단약을 삼키고 운공에 들어갔다. 부드러운 푸른빛이 그를 감싸고 구슬의 형태로 서서히 회전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 밤의 장막이 드리웠다.

한립은 평소의 안색을 회복하고 별이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웅웅!

탑의 진법이 가동되면서 빠르게 별빛을 끌어 모아 주었다. 한립은 별빛 속에서 공법을 운용하며 성광지력을 흡수했다.

1년 넘게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대주천성원공에 적힌 대로 7개의 현규를 다시 수련하는 시간이었다. 탑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의 몸이 남색 빛으로 반짝거렸다.

가슴과 배에 위치한 7개의 빛은 훨씬 밝은 빛을 품고 있었고 피부를 덮은 진극막도 훨씬 두껍고 단단해져서 보석처럼 광채를 뿜었다.

한립은 몸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눈에 들뜬 기색이 어렸다. 육신의 힘이 조금 강해졌다고 그가 이렇게 기뻐한 것은 아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현규가 확장되면서 놀랍게도 중첩되는 선규들이 동시에 커지고 단단해져서 한 번에 흡수할 수 있는 천지영력의 양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쾌재를 부를 만한 일이었다.

선규를 뚫은 다음 이차적으로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대주천성원공이 예상치 못한 기쁨을 안겨준 것이다.

한립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대주천성원공 수련은 이제 막 시작이었고 이미 뚫은 7개의 현규를 수련하는 거라 속도가 빨랐던 것이지 남은 11개의 현규를 뚫는 일도 그럴 거라 장담할 수는 없었다.

눈을 감은 그는 수결을 맺었다.

웅!

석탑의 진법이 발동되어 별빛이 쏟아져 내리고 성광지력이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 * *

다시 5년 후.

평온하던 섬 주변 바다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다음 순간 남색 인영이 섬 중앙에서 솟아올라 용처럼 하늘을 날아다녔다.

그 시원한 포효소리에 파도가 산처럼 높이 솟아오르고, 하얀 구름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잠시 후 포효소리가 그치고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한립이었다.

그의 몸을 남색빛이 수정막처럼 뒤덮고 있어서 진극체를 수련해 얻은 진극막과 비슷해 보였으나 이제는 진극 갑옷이라도 불러도 될 만큼 두꺼워져 있었다.

그 외에 한립의 앞가슴과 복부에 18개의 남색 빛이 휘황찬란하게 빛났다. 5년의 고된 수련 끝에 대주천성원공 전반부 공법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도 예상치 못한 빠른 성과였다.

적어도 수십 년을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비가 있을 거라 여길 때마다 물 흐르듯 수련이 진행되어서 현규를 하나씩 뚫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현규의 위치는 그가 뚫은 선규의 위치와 하나씩 중첩되었다.

되돌아 생각해 보니 선규를 뚫어 놓았기에 현규를 수련하기가 쉬웠던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한 부족할까 걱정하던 천성석은 오히려 남았고 현규와 중첩된 선규들도 크기가 커지고 단단해져 있었다.

낮게 기합을 넣은 한립은 해수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쿠앙!

거대한 권풍이 바다를 강타했다. 주먹 모양의 검은 동굴이 형성되며 주변의 바닷물을 밀어냈다. 권풍은 멈추지 않고 바다를 관통해 해저까지 때렸다.

쿠르릉.

해저의 지반이 갈라지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이 뚫리고 바닥에서 붉은 빛이 어른거렸다.

한립은 주먹을 펴서 손날로 허공을 갈라보았다.

쉐에엑!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지고 거대한 육로가 길게 생겨났다. 해저의 지반도 바람 때문에 깊이 파이면서 검은 구멍이 뚫렸다.

손을 거둔 한립은 만족스러웠다.

대주천성원공을 절반만 익혔는데 육신의 힘이 크게 늘어났다. 3할의 힘만으로 바다를 뒤집었으니 전력을 다하면 아예 해저를 뚫고 들어갔을 것이다.

그의 몸에서 남색 빛이 흩어지고 진극막도 사라졌다. 섬으로 돌아와 탑 위에 선 그는 푸른빛을 날려 탑 전체를 감싸 안았다.

쿠릉.

탑이 산봉우리와 분리되어 떠오르더니 작게 줄어들었다. 대주천성원공 수련을 마쳤지만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그는 소형 탑을 챙기고 동부의 침실로 들어갔다.

몇 년 동안 수련만 하느라 상당히 피로했다. 밤에는 대주천성원공을 익히고 낮에는 부상을 회복하면서 버텨왔지만 긴장감을 풀 수 없는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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