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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58화 (1,415/2,000)

1658화. 만남

*

“안녕하십니까, 수사.”

교삼이 먼저 공수를 하고 인사를 했다. 목소리를 들으니 교삼이 확실했는데 원래 저렇게 까지 예를 차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한립은 내색하지 않고 공수를 해보였다.

“제가 등록한 임무를 수락하셨더군요. 어떤 물건을 알아보시겠습니까?”

지금 그는 ‘교십오’가 아니라 ‘맥십일’로 무상맹 내에서 활동 중이었고 들키지 않기 위해 목소리까지 바꾸었다.

“물론입니다, 그러니 임무를 수락했지요! 그런데 저도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수사께서는 혹시 지금 흑풍해역에 계십니까?”

교삼이 눈을 번득이며 질문하자 경계심이 든 한립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원래 광석이라는 게 같은 종류라도 어느 지역에서 나는지에 따라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 돌멩이의 이름은 묵옥정(墨鈺晶)이 맞을 겁니다. 저도 아주 오래전에 흑풍해역에서 본 적이 있지요. 무척 단단해서 후천선기로 공격해도 깨지지 않고, 강력한 부식능력을 지녀서 음한한 속성의 선기를 제련하기에 최상의 재료이지요. 관련 속성의 공법을 익히는 수사를 만나면 가산을 탕진해서라도 묵옥정을 거래하고자 할 겁니다.”

교삼은 웃으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궁금증을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수는 바로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한립은 묵옥정의 엄청난 가치에 내심 흡족해졌다.

“보수는 급하지 않고, 저도 수사께 가르침을 구할 일이 있습니다.”

“오, 무슨 일이신지요?”

“그 묵옥정은 어디서 구하신 것입니까?”

“……그걸 왜 묻는 것인지 여쭈어야 할 듯싶군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묵옥정은 제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물건입니다. 아직 충분한 수량을 구하지 못해서 물건을 어디서 구하셨는지만 말씀해 주시면 이번 보수를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제가 따로 사례하지요.”

교삼은 다시 포권을 하면서 진지하게 부탁했다.

“사례는 거절하겠습니다. 물건을 어찌 구했는지 말씀을 드리면 제 사적인 정보가 노출될까 우려되어서요. 그냥 이번 임무의 보수를 드리겠습니다.”

한립이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상대의 간절함은 진짜였으나 무언가 중요한 사정을 숨기고 있는 듯한 직감이 들어서였다.

“잠깐! 제게는 정말 중요한 일이라 그럽니다. 저를 도와주시겠다면 정보의 대가로 선원석 3백 개를 드리지요.”

교삼의 말에 한립이 멈칫했다. 묵옥정이 아무리 귀해도 선원석 3백 개를 써서 겨우 관련 정보를 구하려 하다니 지나쳤다.

‘설마 다른 내막이 있는 것인가?’

“죄송합니다. 정말 알려드리기 곤란하니 더는 말씀 마시지요! 저는 다른 일이 있어 여기까지만 대화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한립은 곧장 수결을 맺어 대화를 중단하려 했다. 조용히 수련해 매진해야 할 때라서 선원석 3백 개에 복잡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수사, 잠시만 시간을 더 내주십시오! 무상맹을 통해 노응초도 찾고 계시던데, 제게 마침 한 뿌리가 있습니다. 이걸로 묵옥정의 정보를 교환하겠다면 응하시겠습니까?”

마음이 급해진 교삼이 눈을 부릅뜨고 빠르게 외쳤다.

“노응초를 지니고 계시다고요?”

한립의 눈빛이 달라졌다.

“예, 십만 년 된 영약이라 수사께서 어떤 용도로 쓰시든 적합할 겁니다.”

교삼도 그걸 알아차리고 안심했는지 미소를 지었다.

“음…….”

고개를 숙인 한립은 망설이듯 입을 다물었다.

“아아, 노응초가 진귀해도 절세의 보물은 아니라는 걸 잘 압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시지요, 제가 노응초에 선원석 2백 개까지 얹어드리겠습니다.”

고민 없이 가격을 올리는 교삼의 반응에 한립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뭐?’

어차피 우연히 얻은 돌멩이에 불과해서 알려줄 수 있는 정보도 한정적이었다.

진짜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 거절했지 교삼이 노응초를 제시한 순간 거래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잠깐 도단 제련법을 떠올리며 딴생각을 하는 동안 선원석 2백 개를 더 얹어 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하, 수사께서 이리 후하게 선심을 쓰시니 계속 거절하는 것도 도리가 아닐 듯합니다.”

“고맙습니다, 수사!”

한립의 대답에 교삼이 주저 없이 수결을 맺었다. 푸른 화면에 작은 주술문자의 소용돌이가 나타나 전송진법을 응결했다.

팟.

전송진을 통해 저물 반지가 전달되었다.

반지를 든 한립은 이상이 없는지 천천히 살펴본 후에야 안에 선원석들과 푸른 옥함이 든 것을 확인했다.

선원석은 정확히 200개였고 옥함에는 푸른 부적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옥함을 불러낸 한립이 가볍게 부적을 뜯어내 뚜껑을 열었다.

서늘한 기운과 맑은 향기를 머금은 푸른 영초가 옥색의 이파리와 우윳빛 뿌리까지 온전하게 담겨 있었다.

옥색 이파리 표면에 맺힌 하얀 점들이 마치 이슬이 맺힌 것 같다고 하여 노응초였다. 진한 영기를 머금은 하얀 안개가 퍼져 나와 공기 중에 물방울들이 맺히고 있었다.

상대가 말한 대로 십만 년이 된 노응초가 확실했고 뿌리까지 잘 보전되어 있어 더 배양할 수도 있었다.

“물건이 좋군요.”

“하하, 거래는 확실히 해야지요.”

한립의 말에 교삼이 웃음 지었다.

“묵옥정의 출처는 실은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흑풍해역 어딘가에서 우연히 주운 것이니까요.”

옥함을 닫아 챙긴 한립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구체적인 위치를 기억하십니까?”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홍월도라는 섬 주변이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홍월도!”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한립은 놀란 교삼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아닙니다, 저도 가본 적이 있는 섬이라서요. 홍월도 같이 척박한 섬 인근에 묵옥정 같은 신물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군요.”

“아, 그러셨군요. 하긴 저도 묵옥정을 얻은 뒤 인근을 수색해 보았지만 다른 묵옥정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수사께는 운이 따르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용건을 마친 두 사람은 두어 마디를 더 주고받고는 연락을 끊었다. 가면을 벗고 일어난 한립은 생각에 잠겼다.

교삼과의 대화를 통해 묵옥정에 무언가 숨겨진 비밀이 있으며 그것이 홍월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는 홍월도로 임무를 수행하러 갔을 때를 되뇌면서 무언가 실마리가 없는지 생각해보다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쿠쿵.

밀실 대문을 연 한립은 서둘러 약재밭으로 향했다. 노응초를 구했어도 수량이 충분하지 않았다.

도단 제련을 한 번에 성공할 자신이 없었으니 여러 번 연단을 할 분량을 확보해야 했다.

그는 약재밭 구석에 새로운 흙과 영액을 뿌려 새로운 구역을 개간하고는 금제를 치고 노응초를 꺼내 반나절에 걸쳐 심었다.

약재밭에 새로 자리잡은 영초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흐뭇한 미소를 거둘 수 없었다.

“이제 녹색 액체는 이곳에 집중적으로 뿌려주면 된다.”

한립은 거원 괴뢰를 불러다 분부를 내리고는 약재밭을 나섰다. 그런데 몇 걸음 내딛지 않아 얼굴에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노란 장포를 입은 해 도인이 그를 기다리고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해 수사! 언제 출관하신 겁니까?”

“며칠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밀실에서 수련하고 계시는 것 같아 방해하지 않았지요.”

“이번 수련으로 수확이 적지 않으셨나 봅니다.”

한립은 황포 사내를 위아래로 훑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새로운 비술이 몇 개 떠올라 익히느라 수백 년이 걸렸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모든 게 수사께서 제공해 주신 선원석 덕분입니다. 폐관 수련을 하느라 전부 써버렸지만요.”

해 도인의 그 말에 한립도 쓴웃음을 지었다.

선원석을 무려 천 개나 내주었는데 이렇게 빨리 다 써버리다니, 도우 등을 죽여서 대량의 선원석을 구하지 못했으면 감당하지 못했을 액수였다.

“선원석 천 개입니다. 이곳 흑풍해역에서는 선원석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앞으로는 아껴가며 사용해주셔야 합니다.”

한립이 저물법기를 건네며 당부했다. 그러나 해 도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필요한 선원석만 챙겨서 다시 밀실로 들어가 쿵! 하고 대문을 닫았다.

잠시 후 뇌전 파동이 밀실 주위에 금제를 형성했다.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은 한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신의 밀실로 들어갔다.

한립의 동부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어두침침한 지하 공간.

잿빛 장포를 입은 인영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삼(三) 자가 새겨진 적홍색 용머리 가면을 쓰고 있었다.

바로 한립과 거래를 마친 교삼이었다.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 벌떡 일어나 그가 있는 공간과 연결된 통로로 들어섰다. 빛이 들지 않은 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보니 눈앞이 확 밝아지면서 널찍한 공간이 드러났다.

그 공간의 끝에는 은빛 장막으로 가려진 석문이 보였다. 교삼은 양손으로 수결을 맺고 주문을 외워 석문을 연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문 너머의 둥근 밀실에는 돌로 만든 탁자와 의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고 검은 피풍의를 입은 노인이 핏빛을 따라 마시는 중이었다.

진한 핏빛과 어울리는 피비린내가 내부에 진동했다.

하얀 눈썹에 얼굴이 비둘기 상인 흑의 노인은 매부리코에 금빛 눈동자를 서늘하게 반짝였다. 백미(*白眉: 흰 눈썹) 노인이 든 찻잔을 본 교삼의 눈에 혐오감이 스쳤으나 빠르게 사라졌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교삼의 등장에 백미 노인이 찾잔을 내려놓고 물었다.

“홍월도 인근에서 찾았답니다.”

교삼이 그 옆에 앉아 답했다.

“홍월도요? 이미 수사가 한 번 수색했던 곳이 아닙니까?”

“무상맹 회원의 신분으로 행적을 감추기는 했지만 누군가 눈치채고 수를 써두었을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냉랭한 교삼의 말에 백미 노인이 말없이 손끝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노인이 말이 없자 교삼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흑풍도의 미혼진(迷魂陣)일까요?”

한참 만에 백미 노인이 물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흑풍도에서 손을 쓴 거라면 또 홍월도에서 일을 벌였을리 없지요.”

“그건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이 홍월도 방원 백만 리 정도를 샅샅이 수색한 다음에 원래 계획대로 진행해야겠어요.”

대화를 마친 백미 노인이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고 교삼은 그가 사라지기를 기다려 가면을 벗었다.

공간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이 뿌옇게 변해 붉은 치마를 입은 가냘픈 신영으로 변했다.

* * *

십여 년이 지나갔다.

한립은 약재밭에서 푸른빛으로 조심스럽게 노응초 한 뿌리를 뽑아 옥함으로 옮겨 담고 있었다.

세 번째로 길러낸 노응초였다.

옥함을 품어 넣은 그는 아예 동부를 빠져나가 작은 섬 위에 나타났다. 각양각색의 진법 원반과 깃발을 든 그의 입에서 주술소리가 퍼져나갔다.

쿠르릉!

동부를 중심으로 두꺼운 노란 보호막이 나타나 짙은 안개로 내부를 가렸고 섬 외곽으로는 남색 반구 형태의 보호막이 형성되었다.

크고 작은 주술문자가 반짝거리자 보호막의 표면이 물결치면서 섬과 함께 통째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제 하늘 위에서 보이는 것은 쪽빛 물결이 일렁이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뿐이었다.

몇 해동안 손을 본 강력한 보호막은 진선경 후기 수사라도 단시간 내로 파훼하기 어려웠고 가장 바깥의 현묘한 은닉 금제는 도우의 저물법기에서 찾은 경전에서 배운 것으로 금선 초기 수사의 의식에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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