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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47화 (1,404/2,000)

1647화. 촉룡도를 떠나다

*

먹구름이 몰려든 하늘에 천둥소리가 울려댔다. 엄청난 뇌진들이 그 안에서 집결하고 있었다.

해 도인의 뇌전빛이 광활한 뇌전 진법을 만들어내고 수많은 주술문자가 표표히 흩날렸다.

그가 번쩍 눈을 뜨고 하늘 높이 법결을 쏘아 보냈다.

쿠르릉!

먹구름 속에 집결한 뇌전들이 송두리째 떨어져 해도인 주변의 뇌전진법의 동력이 되었다.

‘하아…….’

그것을 지켜보는 한립의 속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화려한 복장 청년과 겨룰 때도 꽤 소란을 일으켰는데 해 도인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난리를 피우면 수만 리 밖 백옥봉에 있는 금선들의 눈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저 그쪽이 아직도 난리통이라 이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기만을 바랄 따름이었다. 해 도인의 기합소리와 함께 뇌전진법이 눈에 보이는 속도로 수축해서 휘황찬란한 뇌전 구슬이 되었다.

“가라!”

해 도인의 명에 뇌전 구슬은 노란 안개 금제가 움푹 들어간 곳으로 떨어졌다.

쿠콰쾅!

엄청난 충격에 대지가 갈라지고 산사태가 일어났다. 노란 안개 금제도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뇌전 구슬에서 뇌전들이 빠져나와 안개 금제를 타고 퍼지면서 힘 대결을 하고 있었다.

“한 수사, 도와주셔야겠습니다.

해 도인의 외침에 한립이 번득 날아가 청죽봉운검으로 거검을 응결했다. 검신에 금빛 뇌전이 치직거리는 거검이 무서운 기세로 움푹 들어간 곳을 노렸다.

쿵!

해 도인의 뇌전 구슬에 한립의 거검 일격이 더해져 노란 안개가 틈을 메꾸는 속도가 느려졌다.

“터져라!”

뇌전 구슬의 남은 역량이 터져 금제에 구멍을 뚫었다. 공격이 끝나자 해 도인은 무척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시죠!”

법결을 날려 두병들을 호리병박으로 회수한 한립은 푸른빛으로 해 도인을 감아 구멍을 통과했다. 그들이 나오자마자 구멍이 빠르게 복구되고 있었다.

파란 하늘로 빠져나온 한립은 한숨을 내쉬면서 해 도인을 돌아보았다.

“괜찮으십니까?”

“금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해 한 수사께서 힘을 보태 주셔서 겨우 파훼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선궁이라도 이런 규모의 금제를 설치하는 것은 쉽지 않을 테니, 다른 초대형 금제는 없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속히 이동하며 이야기 나누시지요.”

한립은 힐끗 노란 안개 금제를 보다가 수결을 맺어 뇌전 진법을 이용해 사라졌다.

* * *

1시진 후.

적하봉 상공에 창백한 얼굴의 한립이 전송되었다. 선원석을 아낌없이 써가며 연속으로 뇌전 전송진을 펼치느라 선령력이 거의 바닥을 보였다.

천둥소리에 모여든 시종들이 그를 향해 예를 올렸다. 다들 설법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비워 적하봉을 지키고 있는 것은 3명밖에 되지 않았다.

“인사는 되었고, 잠시 후에 해야 할 말이 있으니 이곳에서 기다리거라.”

빠르게 동부로 들어간 한립은 홀로 약재밭으로 향했다. 중요한 물건은 항상 지니고 다녔지만 영약들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다.

촉룡도에 큰일이 벌어졌으니 이것들을 챙겨 떠나야 했다.

영초들이 푸른빛에 싸여 날아오를 때마다 한립은 적절한 용기를 들고 있다가 섬세하게 담아서 저물탁 속에 넣어 두었다.

쿠르릉.

곧 적하봉 곳곳에 설치된 진법들이 흩어지면서 진법 깃발과 원반들이 날아올라 동부로 사라졌다.

몽웅을 포함한 시종들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려 장로님께서 어째서…….”

각진 얼굴 청년이 작게 속삭였다.

“모르겠습니다. 아까도 멀리서 진동이 요란하게 울리고, 큰일이 벌어진 것 같기는 한데 말입니다.”

몽웅이 고개를 저었다.

팟.

그때 푸른빛이 반짝이고 한립이 나타나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시간이 없어서 길게 말하지 않겠다. 종문에 북한선궁과 연관된 내란이 발생해 앞으로 촉룡도는 적지 않은 풍파를 겪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곳을 떠나려 한다. 그리고 너희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나와 같이 떠나는 것과 이곳에 남아 알아서 살아가는 것! 이렇게 알게 된 것도 인연이니 남는 이에게도 적당한 보상을 주고 갈 것이다.”

그 말에 시종들의 안색이 확 달라졌다. 너무 갑작스러워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고민할 시간을 넉넉히 줄 수 없다.”

한립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넉넉한 신영이 앞으로 나섰다. 동그란 얼굴의 뚱보 몽웅이었다.

“려 장로님, 저는 자질이 미천하여 장로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경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따르게 해주십시오.”

그는 공수를 하며 공손히 말했다.

이에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으로 옆으로 와서 서라고 했고, 이어서 각진 얼굴 청년도 따라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평소 말이 별로 없던 몽광이라는 이름의 시종이었다.

마지막 시종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충분히 그 의사를 알 수 있었다. 한립은 별말 없이 저물대 하나를 던져주었다.

“감사합니다, 려 장로님.”

저물대를 받은 마지막 시종이 황급히 예를 올렸다.

“가자.”

한립은 지체하지 않고 몽웅과 몽광을 푸른빛으로 휘감아 날아갔다.

* * *

고운대륙 서부 해역.

뇌폭해양과 비교적 인접한 곳이라 뇌전빛을 품은 먹구름이 있었다. 이곳의 바닷물은 혼탁해서 흙탕물처럼 보였고 그게 어둑한 하늘과 이어져 천지가 온통 깜깜했다.

휘이잉!

바닷바람도 귀곡성처럼 처량해서 명인무해(鳴咽霧海)라 불리는 이곳은 그리 명성이 좋지 않았다.

원래 바다 아래로 회암정(灰岩晶) 광맥이 흘렀는데 채굴을 마치자 바닷물도 흐려지고 대량의 안개도 용솟음쳐 이 꼴이 되었다.

인족 수사들에게는 바닷물과 안개가 큰 해를 입히지 않아도 요수들은 무척 싫어해 이곳을 떠나 황폐해졌다.

명인무해 깊은 곳에 검은 섬이 하나 있었다. 섬은 그리 크지 않았고 중앙에는 검은 기암괴석들이 가득한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었다.

콰르릉.

이날 이 검은 산속 숨겨진 동굴에 금색 뇌전빛이 새어 나오며 굉음이 울렸다. 다행히 동굴의 푸른 금제가 발동되어 산이 무너지는 것은 막았지만 섬 전체가 진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끼룩끼룩!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고 먼 곳에서 푸른 괴조(怪鳥)가 쾌속으로 검은 섬에 날아들었다. 커다란 머리에 목은 길어서 가슴에는 커다란 혹까지 달린 못생긴 새였다.

그 위에 선 백포 소녀는 청수한 얼굴의 몽천천이었고 푸른 괴조는 그녀가 부화시킨 염우였다. 몽천천은 산 동굴에서 새어 나오는 금빛을 보고 기뻐하고 있었다.

콰르릉!

금빛이 성대해지면서 검은 암석이 두부처럼 으깨져 거대한 뇌진의 모습이 드러났다. 푸른 금제를 뚫고 굵직한 금색 빛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올라 소용돌이쳤다.

금빛이 흩어진 자리에 한립과 몽웅, 몽광이 서 있었다. 몽천천이 반색하며 무어라 말하려는데 한립이 손을 저었다.

“지금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으니 일단 가자꾸나!”

푸른 날개가 달린 선박이 그들 앞에 떠올랐다.

선박의 날개는 영력으로 영결한 청연주(靑鳶舟)로 이전에 임무를 수행하다가 어느 진선에게 얻은 것으로 품계는 그리 높지 않아도 속도는 꽤 빨랐다.

한립이 먼저 오르고 몽웅과 몽광이 급히 뒤따르자 몽천천도 염우를 영수대 안으로 돌려보내고 선박 위로 날아들었다.

쿠르르릉!

한립의 손에서 푸른 검기가 쏘아져 나가 검은 섬을 아예 바다 아래로 가라앉혀 버렸다.

푸른 선박이 환영처럼 변해 하늘 끝으로 종적을 감춘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개의 둔광이 그 자리에 도착했다.

검은 관을 쓴 중년 도인은 네모난 얼굴에 피부가 새까맸고 회색 장포를 입은 노인은 기다랗고 가는 두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여깁니다. 아직 영기의 파동이 흩어지지 않았어요!”

흑관(黑冠) 도인이 흥분해 소리쳤다.

“만리통목술(万里通目術)로 보니 금색 빛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던데 보물이라도 나타난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회포 노인도 즐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요. 워낙 특이한 곳이라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듯싶습니다.”

흑관 도인은 노란 진법 원반을 꺼내 주변 몇 리에 기운을 퍼트렸다.

“만 수사, 뭐가 나옵니까?”

의식으로 수색을 해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회포 노인이 물었다. 흑관 도인은 말없이 노란 진법 원반에서 물결치는 파동만 내뿜다 중지했다.

“어떻습니까?”

“보물이 아니고 누가 강력한 신통을 펼친 흔적이었습니다.”

“확신하십니까?”

“진환반(珍環盤)을 9성까지 발동했는데 실수했을 거라 보십니까?”

끈질기게 묻는 회포 노인을 향해 흑관 도인이 눈을 부라렸다.

“에이, 좋다 말았습니다. 그나저나 상대의 수행은 어떻습니까?”

회포 노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남은 기운의 파동으로 보아 분명 합체기 이상입니다.”

“헉, 합체기요! 늦게 와서 다행이지 괜히 선배님을 건드렸다가 곤욕을 치를 뻔했습니다.”

“괜히 누가 오해하기 전에 자리를 뜨시지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두 둔광은 빠르게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 * *

한립은 그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동안 벌써 수십 만 리를 이동해 있었다. 그들은 해역을 빙 돌아 고운대륙 서부 해역과 인접한 거대성으로 이동했다.

천운국(天雲國)의 수도인 천운성(天雲城)은 영기가 짙은 영맥과 가깝고 규모도 커서 사람과 물자들이 모여드는 중심지였다.

뇌폭해양과도 그리 멀지 않아 적잖은 수사들이 들려 휴식을 취하고 부족한 재료나 물건을 보충해갔다.

무리를 이끌고 조용히 성안으로 들어간 한립은 외진 곳의 적당한 규모의 객잔을 골라 자리를 잡았다.

성에 상주하는 수사 중 가장 수행이 높은 자가 겨우 합체기였기에 아무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날 밤, 방 안의 객실.

한립이 상석에 앉고 몽웅, 몽광이 왼편에 몽천천이 오른쪽에 가지런히 서 있었다.

방음 금제를 펼친 한립은 촉룡도의 상황을 간략하게 전해주었다. 종문의 변고에 몽천천은 멍해졌고 몽웅과 몽광은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천천아, 너에게도 선택할 기회를 주겠다.”

이야기를 마친 한립이 몽천천을 향해 말했다. 그녀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오라비가 돌아오면 같이 상의하려거든 그리해도…….”

“아닙니다. 너무 놀라운 소식이라 당황한 것이지 고민할 일도 아닌걸요! 려 장로님, 오라버니께서 어떤 선택을 하시든 저는 장로님을 따르겠습니다.”

몽천천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단호히 답했다.

“이제 난 촉룡도 장로가 아니니 앞으로는 그리 부를 것 없다, 알아들 듣겠느냐?”

“예, 려 선배님!”

한립의 분부에 세 사람은 곧바로 호칭을 바꿔 불렀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립은 창문 밖으로 멀리 뇌폭해양 방향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려 선배님, 앞으로는 어찌하실 계획이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가 말이 없자 몽천천이 약간 긴장해서 물었다. 그러나 한립은 여전히 말없이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에 몽천천 등은 더는 그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서서 기다렸다.

“한동안 고운대륙을 떠나있을 계획이다.”

“려 장로님, 오라버니와 손 오라버니가 아직 도착하지 못했는데 며칠만 말미를 주시면 안 될지요. 충심이 가득한 이들이니 반드시 장로님을 따르려 할 것입니다.”

놀란 몽천천이 선배라 부르던 것도 잊고 급히 말했다.

“너희는 수행이 부족해 어차피 이번에는 나를 따라갈 수 없다. 이곳의 영맥이 나쁘지 않으니 천운성에서 수련하며 기다리고 있거라.”

한립은 담담히 분부를 내렸다.

“예.”

몽천천은 내키지 않았지만 한립의 결정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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