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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38화 (1,395/2,000)

1638화. 속속 도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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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인해에 가장 소란스러운 곳은 백옥봉 아래였다.

촉룡도 보통 제자들과 고운대륙 각지에서 몰려든 중소 세력의 수사들이 혼잡하게 몰려 있는 데다 인근에는 적잖은 노점들이 법보와 재료들을 깔아놓고 그 사이에서 장사까지 했다.

그 사이사이에 금갑 촉룡도 수사들이 서서 질서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한립이 백옥성에서 참가한 경매나 교환회와 달리 산 아래 노점들은 화신기 이하 수사들을 고객층으로 했다. 그가 인계에 있을 때 찾아갔던 태남소회(太南小會)와 비슷한 풍경이었다.

백옥봉 정상, 광장 중앙에 우뚝 솟은 강경대 위에는 무척 기다란 보라색 탁자가 놓여 있었다. 탁자는 세공이 멋스럽고 기품이 느껴졌다.

그 뒤로 사람 키만 한 청동 솥에서 수백 개의 자줏빛 향이 타 하늘하늘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고, 양옆으로는 거의 백여 개의 동그란 방석들이 놓여 있었다.

고공에서 수시로 둔광이 내려와 알아서 제단을 빙 돌아 설치된 돌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광장의 번잡함과 달리 강경대 계단 자리는 조용하고 여유가 있었다. 촉룡도 내외문 진선경 장로들과 각 도주들의 핵심 제자들만이 앉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다수가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설법을 기다리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고, 소수만이 아는 사람들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때 푸른 둔광이 서남쪽에서 떨어져 장로 복색의 키 큰 청년, 한립이 나타났다.

꼭대기에 가까운 자리가 찬 것을 보고 백여 계단을 내려가던 그를 누군가 손짓을 해 불러세웠다. 바로 기량이었다.

한립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기량의 옆에 비어 있는 방석에 앉았다.

“려 형, 이제야 오시면 어찌합니까! 위쪽에 좋은 자리는 다 찼습니다.”

기량은 웃으면서 말을 걸어왔다.

“괜찮습니다. 귀로 듣고 마음에 새기면 될 일인데 굳이 가까이에서 들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허허, 좋은 말씀입니다. 나중에 후기에 진입해 더 좋은 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되면 저를 잊지 마세요. 려 형의 수련 속도면 만 년도 안 돼 가능할 지도 모르지요.”

“농담도 잘하십니다. 이번 설법에서 큰 깨달음을 얻지 않는 한 어찌 겨우 만 년 내로 후기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한립은 쓴웃음을 지으며 겸손하게 답했다.

“요 며칠 보이지 않으시던데 어디서 귀한 보물이나 재료라도 구하신 것입니까?”

“그리 쉽게 구할 수 있다면 귀한 보물이라 불리지 않겠지요. 며칠간 급한 일이 있어 처리하다가 급히 오는 길입니다.”

“그러셨군요. 저는 이렇게 성대한 대회는 오랜만이라 샅샅이 돌아다녀 보았는데 생각보다 좋은 물건이 없었습니다…….”

기량은 가볍게 탄식했다.

후우웅!

한립과 기량이 한담을 주고받는데 고공에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상서로운 구름 속에서 보라색 뇌전이 백옥 제단 위로 떨어졌다.

빛이 가시고 나타난 이들 중 가장 앞에 선 자포(紫袍) 사내는 촉룡도 현임 주관 도주인 구양규산이었고, 그 뒤로 다양한 복색을 한 이들은 촉룡도 부도주들이었다.

부도주들은 기운을 거두고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구양규산이 향이 타고 있는 청동 솥 좌측 첫 번째 방석에 앉고 나서야 그들은 분분히 각자 방석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그들의 등장에 강경대 계단에 앉은 진선 장로들과 직전제자들도 자세를 바로 하고 똑바로 앉았다.

광장의 웅성거리는 소리도 점점 잦아들고, 산 아래 교환회도 급히 마무리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백옥 제단을 중심으로 반경 천 리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휘이이잉.

그때 금색 돌풍이 멀리서 불어와 제단 위로 8명이 도착했다.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상당히 특이했다.

은색 피부를 지닌 여인은 두 귀가 뾰족했고, 그녀와 나란히 선 장한은 뺨에 금색 잔털이 눈꺼풀에는 비늘이 자라나 있었다.

그들을 따르는 6명의 남녀도 독특한 외양을 지녀 인족은 아닌 듯했다. 은색 피부 여인과 금털 장한은 구양규산을 향해 눈인사를 하고 방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들을 따라온 이들도 그 뒤의 방석에 앉았다.

한립은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앞선 두 사람은 금선 도주, 그 뒤를 따른 이들은 부도주쯤 되리라 짐작했다.

이종족 무리가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면사로 얼굴을 가린 동색의 치마를 입은 여인이 커다란 까마귀를 타고 날아들었다.

앞선 이들과 달리 홀로 온 여인은 구양규산과 인사를 나누고 머지않은 방석에 앉았다.

그 뒤로 등 뒤에 금빛 고리를 띄운 영준하게 생긴 금발 사내가 열대여섯 명의 부도주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반 시진 동안 도주, 부도주들이 속속들이 도착해서 제단 왼쪽 방석이 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

호언 도인과 운예가 아직 보이지 않아 그들을 위해 남겨둔 자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호언 도인은 새것으로 보이는 달빛의 도포를 걸치고 머리와 수염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설법대회를 진지하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소를 머금고 그와 나란히 나타난 운예는 얼굴은 매혹적이었지만 금선 도주와 부도주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구양규산은 둘이 같이 나타나자 눈썹을 끌어올리더니 직접 일어나 맞이했다.

“호언 수사, 운 수사! 두 분이 오셔서 드디어 다 모였습니다.”

“백리 도주가 도착하기 전이니 늦은 것은 아닙니다.”

호언 도인은 슬쩍 그런 구양규산을 보고 답했다.

“물론이지요. 시간이 다 되어가니 앉으시지요.”

구양규산이 운예를 보며 웃음 지었고 세 사람은 자리로 가서 앉았다. 한립은 멀리서나마 평소에 보기 힘든 금선들을 살폈다.

도주 12명 중 요족은 3명뿐이었고, 36명의 부도주 중 처음 두 이종족 도주들을 따라온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도 전부 인족이었다. 그들 중에서 그가 아는 이는 웅산을 포함해 몇 명밖에 되지 않았다.

촉룡도를 대표하는 핵심 전력이 결집해 있는 것이라 다들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음에도 백옥봉 정상에서는 숨 막히는 위압감이 전해졌다.

안 그래도 조용하던 수사들은 숙연한 얼굴로 함부로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았다.

일각 후, 하늘 끝에서 거대한 오색 낙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등에 솟은 두 개의 혹만 해도 작은 산 크기인 낙타 위에 다색(多色) 깃털 옷을 걸친 하얀 얼굴의 노인이 병을 하나 손에 쥐고 앉아 있었다.

“오색관(五色觀) 옥양자, 초대를 받아 참관하러 왔습니다.”

제단에 가까워지자 노인이 낭랑하게 외쳤다

“옥양자 수사, 이게 얼마 만입니까! 여전히 풍채가 좋으십니다. 그나저나 수사가 제련하는 오색단(五色丹)이 여유가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구양규산이 웃으면서 노인을 맞이했다.

“허허허, 구양 도형께서 원하신다면야 두세 병 나눠드릴 정도는 있습니다.”

옥양자가 백옥 제단 위에 발을 디뎠다.

“잘 되었습니다. 저도 복천후토(伏天厚土)를 약간 구해두었는데 관심이 있으신지요?”

“그게 정말입니까? 도형께서 얼마나 가지고 계시든 전부 거래할 의향이 있습니다.”

“서두르지 마시고, 대회가 끝나는 대로 제 동부에 잠시 들렸다 가시지요.”

“허허, 약속하신 겁니다.”

기분 좋게 구양규산과 이야기를 주고받은 옥양자가 청동 솥 우측 첫 번째 방석에 앉았다. 오색관은 촉룡도만은 못해도 북한선역에서 유명한 거대 종문이었다.

오래지 않아 고공에서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도안이 새겨진 커다란 벼루가 날아들었다.

“초대를 받아 찾아온 유수궁(臾須宮) 묵부자입니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벼루 위에서 들려왔다.

검은 벼루가 번득 사라진 자리에 키 작은 까만 피부의 노인이 풍성한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내려왔다.

“아, 묵부자께서 오셨…….”

구양규산이 까만 노인을 향해 예를 취하는데 상대는 살짝 공수하더니 몸을 돌렸다. 움찔한 구양규산은 표정 변화 없이 그냥 자리에 앉았다.

“주정뱅이 노인네가 만 년 동안이나 유수궁을 찾지 않고 별일입니다. 이 술친구를 까맣게 잊기라도 하셨나?”

묵부자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호언에게 걸어갔다.

“얼씨구? 이 술고래 노인네가 하는 말을 좀 보게! 늙은이가 걸핏하면 몇 만 년씩 폐관 수련을 해서 내가 몇 번이나 문전박대를 당한 줄 압니까? 어쨌든 잘 왔습니다. 그간 모아둔 좋은 술들이 꽤 되어서 수사의 묵운영주(墨雲靈酒)와 비견할 만한 것도 있을 겁니다.”

호언 도인은 눈을 치켜뜨며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그 말에 묵부자가 곧장 수염을 훅 불어 날리며 눈을 부릅떴다.

“세상천지에 노부가 친히 빚은 묵운영주에 비견될만한 술이 있단 소립니까? 주정뱅이 늙은이가 흰소리하는 듯합니다. 이제껏 술로 수사가 노부를 이긴 적이 있던가요?”

“커험! 흰소린지 아닌지는 이따가 직접 보면 알게 될 겁니다.”

호언 도인은 군기침을 하며 말을 하는 틈틈이 곁눈질로 운예를 살폈다.

“흐흐흐, 기대하고 있을 테니 실망이나 시키지 마시지요.”

웃음을 흘린 묵부자도 청동 솥 우측으로 가서 옥양자 옆에 앉았다. 이렇게 솥 우측에는 절반 밖에 자리가 차지 않았다.

약소 세력들은 제단 위에 앉을 자격이 되지 않아 광장이나 다른 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으하하하하!”

멀리 고공에서 밝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남색 둔광이 금빛 보호막을 지나 제단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창류궁(蒼流宮) 낙청해가 초대를 받아 참관하러 왔습니다.”

남색 거대 꽃이 활짝 피어나며 남색 장포를 걸친 십여 명의 인물들이 나타났다. 화려한 등장에 촉룡도 인물들도 눈을 크게 떴다.

창류궁은 촉룡도와 이름을 나란히 하는 북한선역 3대 세력 중 하나였고, 더욱이 낙청해는 그곳의 대궁주(大宮主)였다.

창류궁에 대한 정보를 되새긴 한립은 다른 이들처럼 고공의 인물을 자세히 살폈다.

남색 꽃 중앙에 놓인 용이 조각된 황금 의자에 마르고 눈처럼 새하얀 백발을 늘어트린 중년 사내가 앉아 있었다.

인자하게 생긴 얼굴에서 짙푸른 바다 빛의 눈동자가 눈에 띄었고, 몸에서 발산하는 끝 모를 기운이 아주 멀리서도 생생하게 느껴져서 수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낙청해 뒤에 선 십여 명의 사람들도 기운이 범상치 않고 표정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중 한 명은 이제 막 스무 살쯤 돼 보이는 사내로 생김새가 아주 준수하고 피부가 희고 고와 여인이라 착각할 만했다.

입고 있는 남색 장포도 옷깃과 소매에 남들과 다르게 물결 문양의 금색 수가 놓아져 있어 낙청해의 복색과 비슷했다.

“낙 대궁주께서 찾아주셨는데 미리 나가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실례를 이해해 주시지요.”

이번에는 구양규산이 앞으로 나서서 정식으로 예를 취했고 다른 도주, 부도주 들도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허, 백리 도주께서 오랜만에 출관하셨으니, 오쇠(五衰)의 겁에 대해 어떤 참신한 견해를 들려주실지 기대가 큽니다. 설법하실 때마다 선역 전체 성대한 잔치가 벌어지는데 어찌 참관할 기회를 놓치겠습니까.”

낙청해는 낭랑하게 말했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강경대에 앉지 않고 남색 거대 꽃을 같은 높이에 띄워 공간을 두고 지켜보았다.

창류궁 손님들과 인사를 마치자마자 다른 방향에서 날개 달린 은빛 기린 여덟 마리가 끄는 어가(御駕)가 하늘을 내달려 도착했다.

그 위에는 총 8명의 수사가 타고 있었다.

“북한선궁에서 참관을 하러 왔습니다.”

어가에서 아름다운 부인이 신분을 밝혔다.

“설앵 부궁주께서 직접 와주시다니, 귀한 손님을 맞습니다.”

구양규산이 일어나 환영했다.

창류궁이 도착했을 때보다는 훨씬 담담했다. 나머지 금선 도주 중 호언 도인도 반기지 않는 기색을 드러내다 아예 눈길을 거두었다.

선궁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고 낙청해와도 인사를 나눈 후 역시 강경대와 같은 위치에 거리를 두고 자리했다.

이 두 거대한 세력이 도착하자 더는 외부 종문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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