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636화 (1,393/2,000)

1636화. 견문

*

“제가 보일 물건은 두 가지입니다.”

악 노인은 좌우에 큰 옥함과 작은 옥함을 불러냈다. 펄럭이는 그의 소매를 따라 큰 옥함이 활짝 열렸다.

큰 옥함에는 팔뚝 길이의 영초가 들어있었는데 어린 대나무처럼 생긴 줄기에는 이파리가 12개뿐이었고, 각각의 이파리가 색이 다 달랐다.

“천령죽엽초(天靈竹葉草)입니다. 만 년마다 이파리가 하나씩 자라나는 종이니 딱 보시면 12만 년 된 영초라는 것은 아실 겁니다. 영초가 어디에 쓰이는지도 다들 아실 거라 믿고 괜한 소리를 늘어놓지는 않지요.”

이어서 열린 작은 옥함에서는 고운 금색 모래가 눈을 찌를 듯한 빛을 방출했다.

“여기 든 것은 호양현금사(昊陽玄金沙)입니다. 금속 속성의 재료로 비검 제련에 최적이고 다른 선기를 제련할 때 섞어서 예리함과 견고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악 노인의 설명에 무대 아래에서 관심을 보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령죽엽초는 10만 년 이상 된 통맥초(通脉草)와 교환하고 싶고 함에 든 호양현금사는 흙 속성 법칙의 힘을 함유한 재료와 거래를 원합니다.”

악 노인은 잠시 뜸을 들이다 원하는 바를 밝혔다. 한립은 천령죽엽초를 유심히 보았다. 독 속성 법칙의 힘을 지닌 영초라서 이걸 섞어 만독을 해독한다는 영단을 제련할 수 있었다.

그의 약재밭에서 해독에 효과적인 영초들이 약간 있었지만 저런 천지영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아쉽게도 그는 통맥초가 없었고 상대는 분명 선원석으로 자신의 보물을 거래하고 싶어 하지 않는 듯했다.

호양현금사는 그다지 눈이 가지 않았다.

이때 마른 수사가 일어나 붉은빛으로 기다란 옥함을 무대로 올려보냈다.

“제 통맥초는 어떠십니까?”

악 노인이 옥함을 들어 살짝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고 탁! 닫았다.

“거래하지요!”

하얀빛 속의 천령죽엽초가 마른 수사에게로 날아갔다.

한립은 아까워하며 작게 탄식했다.

호양현금사는 거래를 원하는 사람이 없어서 악 노인은 작은 옥함을 다시 거두어 무대를 내려가야 했다.

파팟!

악 노인이 무대를 내려가자 곧바로 녹색 둔광이 번개처럼 무대로 떨어졌다. 바로 아까 악 노인을 알은체하던 부 씨 사내였다.

“하하, 저는 그리 가진 것이 많지 않아 선보일 물건이 하나뿐입니다. 칠령파장향(七靈破障香)! 진선경 수사가 선규를 뚫을 때 켜두면 1할이나 성공률이 올라간다는 그 향초입니다.”

부 씨 사내는 단도직입적으로 자단목 함을 열어서 암홍색 향을 선보였다. 불을 붙이지 않았는데도 기이한 향기가 퍼져나갔다. 그걸 본 진선경 수사들은 하나같이 눈빛이 뜨거워졌다.

경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물건을 누가 환영하지 않겠는가?

“저는 이것을 천망사향과(天芒麝香果)와 바꾸고자 합니다.”

무대 아래 반응에 만족한 부 씨 사내가 요구사항을 말했다. 한립은 그리 큰 관심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대량의 진귀한 단약으로 선규를 뚫어가고 있으니 칠령파장향이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없으면 절대 안 되는 물건은 아니었다.

칠령파장향은 귀하지만 천망사향과도 구하고 싶다고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서 부 씨 사내가 여러 번 물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선원석이나 다른 물건으로 교환이 가능한지 물었으나 부 씨 사내는 딱 잘라 거절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 뒤로도 한 명씩 무대에 올라 거래를 원하는 물건을 내놓았다.

운 좋은 이들은 원하는 것을 바꾸어갔다. 하지만 대부분 그냥 내려가야 했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경매회 자체가 규모가 크지 않았고 진선경 중기 이상의 수사들이 개인적으로 거래를 원할 만한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한립은 조용히 앉아 진귀한 물건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견문을 넓힐 기회로 삼았다.

교환회는 뒤로 갈수록 무대를 차지하려는 이들이 줄어서 이제는 한참 비어 있다가 누군가 띄엄띄엄 올라갔다.

‘흠?’

한립은 무대가 한동안 비어 있는 것을 보고서 몸을 일으키려다 검은빛이 무대에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강렬한 음살기를 발산하는 수사였다.

다시 자리에 앉은 한립은 이제야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온 상대가 내놓을 물건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검은 인영은 말없이 석함 두 개를 꺼내 쿵! 하고 무대에 내려놓았다.

동시에 열린 석함 안에는 각각 보랏빛의 반투명한 수정체와 시커먼 진흙 덩어리 같은 게 들어있었다.

보랏빛 수정은 주먹 크기에 울퉁불퉁한 표면에는 보라색 뇌전 문양이 교차했다. 뇌전 문양이 반짝반짝 뇌전빛을 내뿜어 작게 치직거리는 소리가 무대를 채웠다.

검은 진흙은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였으나 주위의 광선을 전부 집어삼켜 자세히 살필수록 신비로웠다.

“뇌백정(雷魄晶)은 뇌전 속성 선기와, 태일음니(太一陰泥) 덩어리는 10만 년 된 음용삼(陰龍蔘)과 교환하고자 합니다.”

검은 인영은 상당히 말을 아꼈다.

한립은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스스로 촉룡도에 와서 견문이 넓어졌다고 여겼는데 이제보다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말한 두 가지 이름 모두 생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 끝에 그는 두 가지 물건 중 보랏빛 수정체로 시선을 옮겼다.

검은 진흙은 모종의 음기(陰氣)를 지닌 듯해서 그에게는 별 필요가 없었는데 보랏빛 수정체는 뭔가 익숙했다. 함유한 뇌전의 힘이 보라색 진주가 품고 있는 뇌전과 흡사해 보였다.

‘저것도 뇌폭해양에서 가져온 물건일까…….’

수정이 함유한 뇌전의 힘은 보라색 진주 이상이었고 희미하게 혼백이 느껴지는 것이 약간의 영성을 지니게 된 영물인 듯했다.

그가 자세히 수정을 살필 때 머릿속에 전음이 울렸다.

“한 수사, 저 뇌혼정은 반드시 낙찰받아주셔야 합니다. 제게 큰 도움이 될 물건이에요.”

언제 깨어난 것인지 해 도인이 의식 연계로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금선괴뢰와 융합한 이후 해 도인은 깊은 잠에 빠져 있어서 한립이 연락을 취하려 해도 반응이 없었다.

“뇌백정이 대체 무슨 물건이기에 그러십니까?”

“뇌전의 힘을 농염하게 머금은 지역에서 탄생하는 특수한 뇌전 속성 수정입니다. 충만한 뇌전의 힘 외에도 특별한 혼백의 힘을 지니고 있어서 뇌전 신통을 수련하는 이에게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지니고 다니면 혼백을 보양하고 심마의 간섭을 피하는 데도 좋습니다. 줄곧 금선괴뢰와 철저히 융합하려 노력하고 있었는데 진전이 아주 더뎠습니다. 저게 있으면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알겠습니다.”

해 도인의 설명에 한립도 마음을 정했다.

그와 해 도인이 전음으로 대화하는 동안 다른 수사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무대의 두 물건의 정체를 알아내려 하고 있었다.

검은 인영은 꼼짝 않고 서서 재촉을 하거나 부연설명을 하지 않았다.

“두 재료에 관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는지요? 민망하지만 저는 뇌백정, 태일음니 두 가지 모두 처음 들어보는 재료라 그렇습니다.”

목이 잠긴 탁한 목소리가 나서서 질문했다.

“두 물건을 알아보는 분과만 거래하겠습니다.”

검은 인영은 담담히 한마디를 하고 입을 다물었다. 질문한 수사는 어이없다는 듯 냉소를 하는데 하얀빛이 번득 무대로 올랐다.

한립이었다.

“뇌백정을 거래하고자 합니다. 선원석 3백 개입니다.”

그는 바로 저물대를 던져주었다.

“잠깐! 제게 경뢰강(驚雷鋼)으로 제련한 뇌전 속성 선기가 있습니다. 이걸로 뇌백정을 거래합시다.”

또 다른 통통한 신영이 날아올라 자줏빛 삼지창을 꺼내 들었다.

멈칫한 검은 인영은 한립의 저물대와 자줏빛 삼지창을 보다가 말없이 저물대를 받아들고 뇌백정을 한립에게 넘겼다.

“뇌전 속성 선기가 필요하다지 않았습니까!”

안색이 달라진 통통한 수사가 따져 물었다.

“맞습니다. 그저 수사께서 한발 늦으셨군요.”

검은 인영은 태연히 답했다.

“그 말, 후회 마시지요!”

통통한 수사는 그럴 줄 몰랐다는 듯 검은 인영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자줏빛 삼지창을 챙겨 자리로 돌아갔다.

한립도 솔직히 탄복했다.

자신이 먼저 나섰다고 거래를 해주다니 수사가 저렇게 올곧은 성품을 지닌 경우는 인계와 영계 그리고 진선계를 통틀어서 정말 드물었다.

진선경 중기 고계 수사에게 선원석 3백 개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언제고 모을 수 있는 액수였으나 자신에게 딱 필요한 뇌전법칙을 함유한 선기는 언제 구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통통한 사내도 해 도인처럼 뇌백정의 가치를 알았지만 자신의 뇌전 속성 선기가 아까워 뒤늦게 나섰다가 거래할 기회를 잃고 만 것이다.

한립은 검은 인영에게 작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어서 뇌백정을 주십시오.”

자리에 앉자마자 해 도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한립은 시간을 끌지 않고 의식의 힘으로 저물 공간의 뇌백정을 해 도인에게 보내주었다.

해 도인의 몸에서 금빛 뇌전이 번뜩 뇌백정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한립은 촉천성 자리가 빈 것을 보고 눈썹을 끌어올렸다.

떠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무대 위의 검은 신영은 잠시 기다리다 아무도 나서지 않자 태일음니를 챙겨서 내려갔다. 그걸 본 한립이 자리에서 막 일어나 무대에 오르려는데 전음이 들려왔다.

“당신은 려 수사시겠지요?”

맑은 목소리와 함께 향기로운 바람이 일고 아담한 신영이 촉천성이 앉아 있던 의자에 앉았다. 아까 고가에 명한산하도를 낙찰 받은 여 수사였다.

“누구시지요?”

한립이 미간을 좁히고 걸음을 멈추었다.

“제가 잠시 시간을 뺏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여 수사는 질문에 대해 답하지 않고 작게 웃음 지었다. 왜 그러는가 싶어진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우연히 이곳에 앉아계시던 분과 비운화정을 거래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려 수사께서 화정을 얼마나 지니고 계신지 모르겠으나, 제가 급히 필요해 그러니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요? 만족하실만한 가격을 드리겠습니다. 아까 본 주먹 크기의 비운화정이면 선원석 100개를 드리고, 더 많다면 얼마든지 거래가 가능합니다.”

여인은 성심껏 부탁했다.

“제가 비운화정을 지닌 것과 려 씨 성을 쓴다는 것은 촉천성 수사에게 들은 것입니까?”

한립이 반문했다. 머뭇거리던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 있던 분에게 물어 들은 사실입니다.”

한립은 표정 변화 없이 머리를 굴렸다. 비운화정을 꽤 지니고 있었고 어차피 당장 필요도 없어 선원석으로 바꿔두어도 손해 볼 것은 없었다.

그저 나중에 필요할지 모르는데 지금 처분해 버리면 후회할까 고민이 되었다.

“한 수사, 그녀의 제안에 응하시지요.”

해 도인이 갑자기 나섰다.

“어째서 말입니까?”

“이유는 금선괴뢰와 철저히 융합한 이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일단 제안에 응하시지요.”

해 도인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침묵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요구였지만 한립은 여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수사께 팔겠습니다.”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가격 방면에서는 저보다 더 높게 쳐줄 사람을 구하기 어려우실 거예요.”

여 수사의 말투는 여전히 냉랭했지만 그 안에 살짝 기쁨이 어려 있었다. 한립은 긴말하지 않고 저물대를 꺼내 던졌다.

의식으로 내용물을 확인한 여 수사도 주저 없이 다른 저물대를 꺼내 건네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인은 포권을 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한립은 그 뒷모습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강대한 의식으로 보호막을 뚫고 어렴풋이 보이는 신영이 낯익었다.

‘그렇지, 옆방에 묵고 있는 홍의 복면 여인이었어!’

처음 보았을 때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제 다시 보니 그 직감이 더욱 강해졌다. 때마침 무대에서 어떤 수사가 내려오고 있어서 한립은 신형을 날려 무대로 올라갔다.

진귀한 재료와 도단에 필요한 영약들을 늘어놓고 거래를 원한다고 했는데 나서는 이가 없었다. 잠자코 기다리던 그는 결국 자기 물건만 챙겨 내려와야 했다.

반 시진이 지나 마지막 수사가 무대에서 내려오고 지하 경매도 막을 내렸다. 한립은 무대 뒤로 가서 선원석을 내고 혈정우 거래를 마쳤다.

꼼꼼하게 점검한 후 조심스럽게 혈정우를 옥함에 담아 여러 부적을 붙여 저물탁에 넣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