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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34화 (1,391/2,000)

1634화. 지하 경매회

*

잘 걸어가던 한립은 두 골목쯤 지나서 몸을 돌렸다.

“저를 따라오시는 연유가 있으시겠지요?”

서늘한 눈빛이 닿은 곳에는 복스럽게 생긴 사내, 촉천성이 있었다.

“려비우 수사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천성봉(天聖峰) 촉천성이라 합니다. 아까 교환회에서 제가 분별없이 행동한 것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별일 아닙니다. 그보다 왜 저를 쫓아오신 것이지요?”

한립이 얼굴을 풀고 용건을 물었다.

“아량을 베풀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여쭐 것이 있어서입니다. 려 수사께서는 아까 교환회에서 언급한 재료들을 계속 찾아다닐 예정입니까?”

“저는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시지요.”

“하하,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사실은 제가 그 재료 중 하나의 행방을 아는데 아까는 보는 눈도 많고 해서 나서지를 못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어떤 재료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한립이 눈을 빛내며 묻는데 촉천성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망설였다.

“교환회에서 한 말은 아직 유효하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수사께서 그 중 어느 재료의 행방이라도 말씀해 주시면 비운화정 조각은 수사의 것입니다.”

“그게 아니고……. 제가 행방을 아는 재료가 비운화정과 거래 하고 싶으시다던 9가지 재료 중 하나가 아니고 혈정우라 그렇습니다.”

“혈정우요? 그것도 제가 원하던 재료는 맞습니다. 그 정보로 무엇을 거래하고 싶으신지 정확히 말씀해 주시지요.”

이렇게 말했지만 한립은 촉천성의 의도를 알고도 남을 것 같았다.

“혈정우가 다른 9가지 재료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이렇게 하시지요. 정보에다 선원석을 얹어 드릴 테니 비운화정 작은 덩이 하나만 주시는 것으로요. 어떠십니까?”

“그러실 것 없습니다. 혈정우도 제게 필요한 물건이니 그 행방만 알려주시면 선원석은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립은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지만, 속으로는 기쁨을 억누르고 있었다. 부족한 도단의 9가지 재료보다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혈정우였다.

그것만 있으면 당장 만륜단 연단을 시작할 수 있어서였다.

“수사께서 씀씀이가 참 넉넉하십니다. 바로 말씀드리자면, 현재 백옥성에는 수많은 진선 수사들이 모여 있지 않습니까? 아까 같은 교환회도 사실 꽤 많습니다. 제가 우연히 들은 정보에 의하면 3일 후에 비밀리에 열리는 고급 경매회에 혈정우가 나온다고 하더군요. 반드시 진선 중기 이상의 수행을 지닌 수사만 참가할 수 있는 비밀 경매회 말입니다.”

촉천성은 입술을 달싹여 전음을 보내왔다.

‘비밀 경매회!’

그 말에 한립이 눈을 번득였다.

진선 중기 이상의 수행을 지닌 자만 가능하다면 촉룡도 진선경 장로들도 대부분 자격 미달이란 소리였다.

“하하하, 제 환술을 쉽게 깨신 것을 보면 려 수사의 참가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촉천성은 원하던 것을 얻어서인지 원래의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돌아가 실없이 까불거렸다.

“좋습니다, 그 경매회는 반드시 참석하지요. 그때 혈정우가 경매에 오른다면 약조한 비운화정을 내어 드리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3일 후 정오에 이곳에서 다시 뵙는 것으로 하지요.”

희색을 드러낸 촉천성이 가고 한립은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나 금방 밤이 드리웠다.

백옥성은 곳곳에 달처럼 둥근 보석이 떠올라 빛을 비추었기에 오히려 밤의 장막을 배경으로 더욱 눈부시게 빛났다.

상점에서 걸어 나온 한립은 성안의 재료 상점을 전부 돌아보고도 필요한 물건을 구하지 못했다.

이제 기대해볼 곳은 사적인 교환회와 경매회 뿐이었다. 이리저리 골목을 돈 그는 한적한 객잔 거리로 들어섰다.

길 양옆에 들어선 건물들이 전부 객잔이라 돌아다니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온종일 쏘다녔으니 휴식을 취할 때였다. 그는 그리 크지 않은 객잔을 골라 들어가 조용한 방을 요구했고, 일꾼은 3층에 있는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분부하실 일이 있으시면 불러주십시오.”

일꾼은 싹싹하고 영리해 보였다. 방안을 둘러보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한립은 일꾼에게 영석 하나를 던져주고 손을 저었다.

일꾼이 기뻐하며 물러나는데 문이 닫히기 전에 발소리가 들려왔다.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그의 방을 지나가고 있었다.

‘저 여인은…….’

홍의 여인은 한립을 스치듯 보고 그대로 지나쳤는데 한립은 하늘거리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의아함을 느꼈다.

상대는 기운을 감추고 있었으나 강대한 의식으로 진선경 수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백옥성 안에 깔린 게 진선 수사였으니 그건 별 것 아니었으나 여인의 뒷모습이 어디선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 * *

3일 후 정오, 한립은 촉천성과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려 수사, 나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던 촉천성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그를 맞이했다. 한립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저를 따라 경매회 장소로 가시지요.”

촉천성이 앞으로 나서고, 두 사람은 말없이 거의 반 시진 가량을 걸어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상점 앞에 이르렀다.

인적이 드문 상점 앞에는 빼빼 마른 노인장이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고 장궤, 일어나 보세요! 손님이 왔으면 장사를 해야지요?”

촉천성은 한립을 향해 씩 웃어 보인 후 앞으로 나서 큰소리로 외쳤다. 마른 노인네는 졸린 눈을 뜨고 촉천성과 한립을 보며 하품을 했다.

“무엇을 사러 오셨습니까?”

“당연히 여기서 가장 좋은 물건을 사러 왔지요!”

넉살 좋게 말하는 촉천성의 손가락이 탁자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한립이 슬쩍 보니 촉천성은 손가락으로 이상한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마른 노인은 노란 눈을 번득이며 벌떡 일어나 안쪽으로 걸어갔고 촉천성과 한립도 놓치지 않고 그를 따라갔다.

툭툭!

잠시 후 후원의 낡은 방 안으로 들어간 마른 노인이 벽을 두 번 두드리자, 벽에서 푸른빛이 일며 지하로 통하는 검은 통로를 만들어냈다.

“아래로 가시면 경매장이 나올 겁니다.”

노인은 하얀 가면 두 개를 그들에게 나눠주었다. 남색 별과 하얀 달이 새겨진 가면은 신비롭게 빛의 물결이 일었다.

촉천성이 먼저 통로로 내려가고 한립도 뒤따라 통로로 들어갔다.

쿠릉!

그들 뒤로 통로가 사라지면서 사방이 온통 새까맣게 변했지만 한립과 촉천성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성월(星月) 가면을 쓴 촉천성은 남색과 하얀색이 어우러진 보호막이 생겨 그의 신분을 감춰주었다.

한립의 의식으로도 본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고 기운도 상당히 숨겨주는 현묘한 보호막이었다. 처음부터 함께 있지 않았으면 절대 눈앞의 사내가 촉천성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완벽하게 기운을 숨겨주는 무상맹 가면보다는 못하구나.’

한립도 가면을 쓰고 술법을 펼치려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움찔한 그는 선령력을 운용해 주입해 보았다.

하얀 가면은 깊은 호수라도 되는 듯 끊임없이 그의 선령력을 집어삼키더니 빛을 반짝였으나 촉천성이 일으킨 효과에는 한참 부족했다.

냉소를 흘린 한립이 거의 절반의 선령력을 불어넣고서야 웅! 하고 남백색 보호막이 펼쳐져 그를 가려주었다.

가면을 발동시킬 수 있느냐가 참가 자격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두 사람은 한참 만에 모퉁이를 지나 석실로 나왔다.

안쪽에는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하얀 문이 있었다.

“가시죠, 저 안입니다.”

촉천성은 익숙한 듯 주저 없이 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를 둘러싼 남백색 보호막과 빛의 문이 공명하더니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를 따라 문 안으로 발을 들이자 한립도 눈앞에 환해지더니 어느 대청 안으로 이동했다.

한발 앞서 들어온 촉천성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타원형의 대청은 굉장히 넓었고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천장에는 속세의 궁에서 쓰는 궁등(宮燈)이 달려 있고 벽에는 적잖은 보석이 박혀 빛났다.

그래도 지하의 분위기는 살려서 궁등과 보석의 빛이 적당히 아른거려 어두침침하기는 했다.

귀한 목재로 만들어진 커다란 의자 수십 개는 대부분 남백색 보호막을 두른 이들이 앉아 있었고 그 앞으로 지면보다 약간 튀어나온 무대가 네모나게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대 위에는 3개의 빈 의자가 놓여 있었다.

“조금 기다려야 할 듯합니다. 저쪽으로 가서 앉으시지요.”

촉천성이 낮게 속삭였다. 고개를 끄덕인 한립은 그와 나란히 앉아서 대청을 살펴보았다.

대청 벽에서 은은한 노란빛을 내는 금제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였지만 무척 두껍고 튼튼했다. 흙 속성 금제가 주변 땅과 일체가 되어 있어서 금제를 뚫고 드나들기 어려웠다.

한립은 자신이 전력으로 공격해도 금제를 한 번에 뚫고 나갈 수는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대청에 앉은 이들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아 분위기가 고요했다. 그 후 한 시진 동안 두 명의 수사가 더 들어와 조용히 빈자리에 앉았다.

끼익!

바로 그때 대청 측면에 있는 나무문이 열리고 키가 큰 인영 둘과 작은 인영 하나가 걸어 들어왔다.

그들도 남백색 보호막을 두르고 있어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키 큰 두 사람이 양옆에 앉고 가운데에 키 작은 이가 자리를 잡았다.

“오래 기다려 주셨습니다. 경매가 시작되기 전에 간단히 안내를 드리겠습니다.”

키 작은 인영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금강석이라도 뚫을 듯 크고 우렁차서 무대 아래 몇몇 수사들이 깜짝 놀라 몸을 바로 세웠다.

“경매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뉩니다. 전반부에는 저희 셋이 일반적인 경매를 진행하고 후반부에는 여러분 중에 귀한 물건을 지니신 분이 무대에 올라 거래하실 수 있습니다. 후반부의 개인 거래는 저희가 간섭하거나 비용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경매를 시작하지요!”

키 작은 인영은 짧은 안내를 마치고 경매 시작을 선포했다.

팟.

그의 말이 떨어지자 왼쪽의 키 큰 인영이 손을 저어 부적이 붙은 기다란 목함을 불러냈다. 키 작은 인영이 목함을 받들어 부적을 떼어내니, 짙푸른 색깔의 장검이 들어있었다.

소박하고 예스럽게 생긴 장검은 요연한 남색빛이 물처럼 도신을 따라 흘러 솨솨! 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남색빛 속에 떠오른 주술문자에서 강렬한 법칙의 힘이 전해졌다.

“선기!”

무대 아래서 놀란 탄성이 들려왔다.

한립도 첫 번째 경매품부터 꽤 품계가 높은 선기가 나오자 앞으로 나올 물품들이 무척 기대되었다.

“하하, 맞습니다. 오늘 첫 번째로 소개해 드릴 경매품은 열해참선검(裂海斬仙劍)입니다. 물 속성 법칙의 힘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웬만한 다른 선기와는 비교할 수…….”

키 작은 인영의 청산유수와 같은 설명이 이어졌다. 입담이 얼마나 좋은지 듣고 있자니 천하에 이렇게 귀한 선기급 장검은 구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열해참선검, 시작가 선원석 60개! 최소 선원석 2개씩 가격을 올릴 수 있습니다.”

“60개.”

“65개!”

“70개!”

그의 언변에 설득되었는지 수사들이 달려들어 열해참선검의 가격은 금방 높아졌다. 어느 정도 가격에서 경쟁 상대가 적어진 선기는 마지막에 160개를 부른 이에게 넘어갔다.

한립은 한 번도 가격을 부르지 않았다.

열해참선검이 물의 법칙을 풍부하게 함유한 것은 사실이나 미미하게 느껴지는 난잡한 느낌으로 제련 중에 실수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러니 선원석 160개는 조금 비싼 감이 있었다. 첫 번째 경매품이 고가에 낙찰되자 키 작은 인영이 신이나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 보물은 10만 년 된 탄혼화입니다. 이 영초의 가치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요? 신외화신을 제련하기에 최상의 보조 재료로…….”

옆의 키 큰 인영이 옥함을 꺼내 연한 금색 꽃을 내보였다. 그러자 무대 아래 수사들이 웅성거렸다. 탄혼화의 가치는 선기보다 못해도 그 희귀함은 그에 못지않았다.

“최저가 선원석 30개, 최소 선원석 1개씩 가격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한립은 키 작은 인영이 탄혼화의 칭찬을 늘어놓으며 가격을 선포하자 내심 놀랐다. 이곳에서 탄혼화를 그것도 10만 년 된 것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종자를 지닌 그는 당연히 나서지 않았으나 옆에 있던 촉천성은 가격 경쟁에 뛰어들었다.

몇 번이나 돌고 돌아 탄혼화 가격이 선원석 80개에 이르게 되자 촉천성은 씩씩거리며 포기했고, 결국 나중에 선원석 90개를 부른 이가 낙찰 받았다.

고운대륙에서 탄혼화가 고가에 거래되자 한립은 마음이 동했다. 장천병을 지닌 그는 언제든 종자를 빠르게 키워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기른 영초가 시간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렇게나 팔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경매는 계속 진행되어서 2, 30개의 물건이 무대를 거쳐 갔다.

하나같이 귀하고 보기 드문 물건들이라 선원석 50개 이하로 낙찰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혈정우는 나오지 않았고 한립이 미간을 좁히자 촉천성도 약간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촉 수사, 소식은 정확한 것이겠지요?”

한립은 전음을 보내 확인했다.

“확실합니다. 제가 경매회 배후 세력과 약간의 선이 닿아 있는데, 그들이 제게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촉천성이 서둘러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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