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3화. 교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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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반 시진이 지나는 동안 두 명의 진선 수사가 더 도착했다.
“상학 수사, 시간도 거의 된 듯한데 어서 시작하시지요? 노부는 다른 중요한 볼일이 있어서 서둘러 가봐야 한단 말입니다.”
백포 노인이 번쩍 눈을 뜨고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에 상학 노인은 잠시 주저했다. 예정된 시각이 딱 된 것은 아니지만 모일 사람들은 거의 다 모인 것 같기는 했다.
“……대충 모인 듯하니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교환회는 총 19명의 수사께서 와주셨군요. 제가 본문을 대표해 감사를 올리겠습니다.”
상학 노인은 일어나서 둥그렇게 모인 수사들을 향해 포권을 했다.
“인사치레도 좋지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각진 얼굴에 큰 귀를 지닌 촉룡도 장로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허허허, 다들 마음이 퍽 급하신 듯합니다. 이번 교환회도 이전과 같이 각자 준비한 보물을 꺼내 간략히 소개하고 교환을 원하는 물건이나 가격을 제시하시면 됩니다. 누군가 조건에 응하면 거래가 성립되는 것이고요. 그 밖에, 천갈파는 장소만 제공할 뿐 일체의 참가비용은 받지 않기 때문에 거래상에 분란이 생겨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각자 알아서 해결을 보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상학 노인은 낭랑하게 교환회 거래 방식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상학 노인 옆의 대머리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저물대를 치자 남색 옥함이 나타났다. 뼈가 시린 냉기를 품은 남색 안개가 옥함을 휘감고 있었다.
대머리 사내는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의기양양해 일부러 천천히 옥함 뚜껑을 열어 주먹 크기의 수정돌을 선보였다.
화앗!
냉기를 품은 법칙의 힘이 수정돌에서 퍼져 대청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공기 중의 수분이 얼어붙어 얼음꽃이 피어났다.
“남문한정옥(藍紋寒晶玉)입니다. 만년 한정(寒晶) 속에서 생성되어 더할 나위 없이 단단하고 극강의 냉기를 품고 있어 관련 선기를 제련하는 데는 최상의 재료이지요.”
대머리 사내는 털썩 자리에 앉아 오만하게 설명했다. 대청에 주의 깊게 수정돌을 살피는 이들이 꽤 보였는데 한립은 금방 눈길을 돌렸다.
평범한 진선 수사에게 법칙의 힘을 지닌 재료는 무엇이든 진귀할 테지만 그는 이미 여러 개를 지니고 있었다.
“신 수사께서 귀한 물건을 보여주셨군요. 어떤 물건과 교환을 원하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상학 노인이 입을 열었다.
“동급의 금속 속성 재료나 금속 속성의 진선 요핵을 원합니다.”
대머리 수사가 답을 하면서 원탁에 앉은 수사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다들 말이 없거나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남문한정옥이 아무리 좋아도 동급의 재료나 요핵도 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머리 사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수사께서 원하시는 물건은 없습니다만, 선원석으로 거래할 생각이 있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동그란 모자를 쓴 노인이 물었다.
“선원석이라면 저도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다들 제가 원하는 재료가 없으시면 거래를 안 하면 그만입니다.”
대머리 사내는 냉정하게 옥함을 거두고 눈을 감아 버렸고, 동그란 모자를 쓴 노인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제가 갖고 온 물건은 진선 요수의 재료들입니다. 수행 증진에 도움이 되는 단약과 교환하기를 원하고요.”
대머리 사내 옆의 복면 여인이 일이나 원탁 위에 네다섯 개의 푸른 뼈를 올려놓았다. 요수 재료는 그리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 아니라서 관심을 가지는 이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진선급 요수의 뼈인지라 결국에는 촉룡도 장로 한 명이 단약 두 병을 주고 교환을 해갔다. 여인 다음 차례가 바로 촉천성이었다.
“크흠, 노부가 이번에 갖고 나온 것은 총 49개의 자모낙혼번(子母落魂幡)입니다. 깃발 각각이 영보급에, 어미 깃발인 모번(母幡) 3개는 극품영보라서 49개를 동시에 펼치면 선기의 위력을 낼 수 있지요. 마현금정(魔玄金精), 천수유정(天水柔晶) 한 개씩 거래하고 싶습니다.”
촉천성은 손을 저어 손바닥 크기의 새까만 깃발 49개를 불러냈다. 그중 세 개는 다른 것들보다 크기가 훨씬 컸다.
수결을 맺은 촉천성 앞에서 깃발들이 폭발적으로 먹처럼 짙은 안개를 내뿜어서 대청 안은 귀곡성과 짐승의 울부짖음이 가득한 어둠의 세계가 되었다.
지켜보던 이들이 신기함에 탄성을 내뱉었다.
자모낙혼번이 지금까지 나온 물건 중에서는 가장 귀한 것이라 한립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교환할 마음은 없었다.
그와 달리 다른 이들은 경쟁에 불이 붙어서 최후에는 외부 수사가 마현금정과 두 개의 극품영석 그리고 다른 진귀한 보물 몇 가지를 더해 자모낙혼번을 거래해갔다.
촉천성을 시작으로 수사들은 비범한 보물들을 내놓았고 진선급 수사들이 모인 교환회도 점점 열기가 뜨거워졌다.
그중 가장 귀한 것은 또 다른 진선 중기 수사인 백포 노인이 가져온 보라색 꽃 3송이였다.
자예만타화(紫蘂曼陀花)라는 이름의 꽃은 진선도 죽일 수 있는 치명적인 독을 품은 동시에 독 속성 선기를 제련하는데 좋은 재료였다.
백포 노인은 적관화학(赤冠火鶴)이라 불리는 진선 요수의 요핵과 거래하고 싶어 했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교환회 분위기가 고조되어갔다.
기량은 한립보다 앞서 차례가 돌아가 운 좋게 두 개의 영보를 십만 년 된 영초로 교환하는 데 성공했다.
팟.
한참 후에야 순번이 된 한립은 원탁을 스치듯 손을 저어 두 가지 물건을 꺼내놓았다.
검은 구슬은 중란의 검은 두루미 요핵이었고, 사람 머리통만 한 붉은 수정돌은 마른 노인이 지니고 있던 불 속성 법칙을 가진 재료였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붉은 수정돌은 비운화정(緋雲火晶)이란 재료였는데 불 속성 법칙의 힘을 지녔음에도 대량의 불 속성 영력을 함유하지 못해 법보나 선기 제련보다는 불의 영력을 다스리는 용도로 쓰였다.
불의 영력은 일반적으로 사나운 성질을 지녔다. 그런 불의 영력을 비운화정에 통과시키면 주인이 부리기 쉽게 유순해지는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비운화정은 섬세한 조종이 필수인 연단 또는 연기 화로의 최상의 재료로 손꼽혔고, 화로를 제련할 때 약간만 첨가해도 위력을 크게 상승시킬 수 있었다.
한립이 꺼내놓은 비운화정의 크기라면 가히 절정의 품질을 가진 화로를 만들 수 있어 연단이나 법기 제련에 능한 종파라면 어떻게 해서든 손에 넣을 재료였다.
검은 요핵도 진귀한 물건이지만 비운화정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것만 봐도 얼마나 값비싼 재료인지 알 수 있었다.
한립이 물건을 꺼내자마자 상학 노인은 붉은 수정돌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호흡이 가빠졌고, 흥분한 듯 광대가 붉게 달아올랐다.
비운화정을 알아보지 못한 이들도 상학 노인의 표정 변화를 보고 전음을 주고받으면서 붉은 수정돌의 정체를 알아내려 했다.
“진선경 요수의 요핵과 비운화정입니다. 요핵은 오만 년 이상의 만륜과, 혈정우 이 두 가지 재료로 교환해 가실 수 있고, 비운화정은 부생과, 천조삼, 노응초(露凝草)…… 천한교(天寒膠) 등 9가지 영약과 거래하겠습니다. 구체적인 거래 조건은 따로 논의해야겠지만요.”
한립은 유유히 원하는 바를 늘어놓아 대청 수사들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수사, 만륜과는 있는데 혈정우는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물건으로 대신해서 교환해도 되겠습니까?”
잠시 아무도 말이 없다가 진선경 중기 백포 노인이 검은 요핵을 보며 말했다.
“일단 지니고 계신 만륜과를 보고 이야기를 나눠야 할 듯합니다.”
한립의 말에 노인은 푸른 목함을 꺼내 들고 바로 건네지 않았다.
“당신의 요핵도 살펴보고 싶은데요.”
“물론 가능합니다.”
미소를 지은 한립은 푸른빛으로 요핵을 감싸 백포 노인 앞으로 날려 보냈다. 그걸 본 백포 노인도 목함을 던졌다.
한립이 가볍게 손짓해 목함에 붙은 부적을 떼어내자 주먹 크기의 은은한 금색 과실이 담겨 있는 것이 보였다.
한립은 과실을 들어 동글동글한 무늬와 왕성한 생기를 품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략 6, 7만 년 정도 자란 만륜과로 제련에 이용할 수 있었고 씨앗도 상하지 않아 따로 심을 수 있었다.
이에 백포 노인도 곧바로 다섯 개의 옥함을 불러냈다.
“혈정우는 없지만 이것들도 가치는 비슷할 겁니다.”
다섯 개의 옥함이 동시에 열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드러났다.
“정금사(精金絲), 호정옥(虎睛玉), 녹라과(綠蘿果)……. 다 훌륭한 물건들이지만 제가 필요한 것은 없군요. 그냥 선원석으로 셈해주시지요.”
한립은 내용물을 살피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두 사람의 거래가 막 끝났을 때 상학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려 수사, 천조삼이나 천한교 같은 재료는 너무 희귀해서 다들 지니지 않은 듯합니다. 비운화정을 선원석으로 거래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상학 노인의 질문에 한립은 또 다른 갈망 어린 시선을 느꼈다.
‘…….’
고개를 돌리자 촉천성이 환심을 사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비운화정은 오직 제가 방금 말한 재료들과만 거래할 것입니다.”
시선을 거둔 한립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상의의 여지가 전혀 없겠습니까?”
상학 노인은 안색이 변했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
“……이 비운화정 덩어리는 안 되지만, 제겐 자잘한 비운화정 조각들도 있습니다. 앞서 말한 재료의 행방에 대해 알려주시는 분께 조각을 하나씩 드리지요.”
한립이 말하면서 탁자를 쓸어 주먹 크기의 비운화정을 두 개 더 불러냈다. 상학 노인은 불타는 눈빛으로 비운화정을 쳐다보다가 낙담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촉천성도 눈을 내리깔고 자리에 앉는 것이 아는 정보가 없는 듯했다. 그걸 보고 한숨을 내쉰 한립은 원탁의 비운화정 세 개를 거둬들였다.
교환회는 계속 되었지만 비운화정 다음으로 돋보이는 물건이 나오지 않아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반 시진 후 교환회가 싱겁게 끝나고 한립은 기량과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상학 노인이 다가와서 비운화정 조각이라도 교환하길 원한다며 기이하고 진귀한 물건들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물건이 필요치 않은 한립은 다시 거래를 거절했고 상학 노인은 무척 실망했다.
그러나 전신용 법보인 전신진반(傳訊陣盤)을 건네고 혹시나 관련 소식을 알게 되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 말에 다시 힘을 낸 상학 노인은 꼭 최선을 다해 정보를 구해보겠다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위해 비운화정 한두 개는 남겨 달라며 부탁했다. 거의 절박하게까지 보이는 그의 부탁에 한립은 그러겠다고 답하고 천갈각을 나섰다.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다른 곳도 돌아보면서 이 기회에 이런저런 재료를 구하려 합니다. 이런 규모의 시장이 서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니니까요.”
기량의 질문에 한립이 길가를 바라보았다.
“저는 처리할 일이 있어 동행하지 못하겠군요. 려 형, 구경 잘하고 들어가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설법대회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한립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따라 앞쪽으로 걸어갔고, 기량은 왜인지 그 뒷모습을 보고는 작게 탄식하고 다른 골목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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