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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30화 (1,387/2,000)
  • 1630화. 새로운 방법

    *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 십여 년 뒤.

    밀실에 앉아 수련하던 한립은 동부를 울리는 폭음에 벌떡 일어나 약재밭으로 향했다.

    그는 희색을 드러내며 굵직해진 도병수로 가서 말라비틀어진 이파리 사이의 콩꼬투리들이 누렇게 익어 연달아 터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암황색 콩알이 펑펑 튀어 올라 바닥에 떨어졌다.

    날아드는 콩알을 쥔 한립은 표면에 보일 듯 말 듯 번개 문양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선령력을 주입했다.

    치지직!

    콩알의 번개 문양이 금빛을 머금더니 뇌전을 번득였다. 한립의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두병의 변이가 뇌전 속성으로의 변이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콰쾅!

    이때 다른 폭음과는 분명히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한립은 도병수 끝에 피어난 콩꼬투리가 팍 터져 누에콩 크기의 모두 두 알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잡아서 살펴보니, 생김새는 다른 콩알과 비슷했지만 뇌전 문양과 함유한 뇌전의 힘이 짙다는 점이 달랐다.

    그리고 다 자란 모병 두 알을 끝으로 콩 알갱이가 전부 떨어진 도병수는 빠르게 말라비틀어져 가루가 되었다.

    한립은 노란 호리병박을 불러내서 박 아래쪽을 탁! 쳤다.

    호리병박 입구에서 노란빛이 날아가 강력한 흡입력으로 바닥에 수북하게 떨어진 노란 콩알들을 전부 빨아들였다.

    도병을 담아 두는 호리병박도 호언 도인의 책자에서 제련법을 배워 특별히 제작한 용기였다. 저물대와 비슷하지만 영수대와 더 가까워서 두병이 안에서도 충분히 천지영기를 흡수할 수 있었다.

    게다가 두병을 영양이 충만하게 배양하고 싶으면 호리병박 안에 질 좋은 영약을 담아두면 좋다.

    이틀 후, 한립은 밀실에 반원 형태의 진법을 새겼다.

    네 귀퉁이마다 움푹 들어간 땅에 각종 재료와 영기가 왕성한 선령석이 담겨 있었고, 중앙에는 금색 제단 위에 수백 개의 도병 콩알들이 자리했다.

    명뢰쇄원진(銘雷鎖元陣)이라 불리는 진법은 호언 도인의 책자에 적힌 두병을 뇌전 속성으로 제련하는 진법이었다.

    진법 중앙의 금색 제단은 특별히 구뢰목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흙 속성이라 생각한 두병이 뇌전 속성으로 나와서 과감히 명뢰쇄원진을 택했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한립은 진법 앞에 앉아 단약까지 하나 입에 물었다. 호언 도인의 당부대로 진법의 선령력이 중간에 다해 두병 제련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게 대비한 것이다.

    눈을 감고 기운을 조절한 그가 진법을 발동했다. 양손으로 수결을 맺은 그의 손끝에서 금색 제단을 향해 금빛 뇌전이 날아가 꽂혔다.

    치지지직!

    금빛 뇌전이 둥그런 보호막을 형성하더니 구덩이의 극품영석들이 빛을 발해 정순한 영력을 진법으로 빠르게 불어넣었다.

    우우웅!

    진법과 제단이 떨리면서 그 위에 가득 쌓인 노란 콩알도 통통 튀었다. 무형의 거대 손에 콩알들이 들어 올려져 보호막 안으로 들어가고, 그 아래 두 알의 모두가 달처럼 떠올랐다.

    “속박하라!”

    금색 제단의 문양에서 종아리 굵기의 뇌전 기둥이 솟아올랐다.

    모두 두 알은 뇌전 기둥 속에서 수백 줄기의 뇌전을 뿜어서 기물을 치고 나머지 콩알 들을 가두었다.

    파치칙!

    모두 아래의 뇌전 기둥이 나무줄기, 서로 연결된 콩알들이 가지 그리고 가느랗게 뻗어 나간 뇌전 실들이 잎사귀가 되어 금색 나무가 자라난 듯 보였다.

    한립은 희색을 드러내며 수결을 변화했다.

    “뇌전 문양을 각인하라!”

    지면의 진법이 떨리더니 검은빛이 요수 문양을 이루었다.

    소의 몸에 용의 머리가 달린 요수는 배 부위에 새겨진 고풍스러운 무늬에서 강렬한 뇌전 파동을 발산했다.

    요수는 기이하게도 망치처럼 생긴 굵은 다리가 하나뿐이었고 꼬리는 마치 기다란 채찍 같았다.

    ‘뇌기(雷夔)’라 불리는 외발 짐승은 진선경의 유명한 영수로 태어날 때부터 구천뇌전을 부리고 긴 꼬리로 배를 두드려 날리는 뇌성에 사악한 음귀들을 물리치는 능력이 있었다.

    뇌기 문양이 만들어지자 한립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야 말로 두병 제련의 관건이 되는 일이었다.

    그가 두 손을 교차해 새로운 수결을 맺자 주문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의 남색빛 눈에서는 수정실이 뻗어 나가 금색 뇌전 나무로 주입되었다.

    콩알마다 검은 뇌기 문양이 아주 느리게 새겨졌다. 다른 수사들이라면 의식 부담을 줄이기 위해 콩알들을 나눠서 새기겠지만 그에 따른 단점도 있었다.

    모두와 동시에 제련한 콩알에 비해 나머지는 모두와의 연계가 훨씬 약해 진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상관이 없지만 전투 중에 다른 진법이나 술법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었다.

    * * *

    시간이 흘러 꼬박 한 달이 지났다.

    의식을 온전히 문양 각인에만 집중한 한립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마지막 뇌기 문양 각인을 마친 그는 피곤한 와중에도 미소를 지었다.

    밀실의 진법이 어둑하게 변하면서 금빛 뇌전도 모두(母豆) 속으로 응결해 사라졌다.

    한립은 허리춤의 노란 호리병박을 풀어 콩알들을 전부 담고 모두 두 알만 남겨 두었다.

    이튿날.

    적하봉의 눈 덮인 골짜기에 푸른 둔광에 휩싸인 한립이 내려왔다.

    그는 비교적 드넓은 평지로 이동해 노란 호리병박을 들고 주문을 외우며 암황색 콩알들을 쏟아부었다.

    후두두둑.

    콩알들이 순식간에 도병 갑사(甲士)로 변해 예전의 황건 역사와 엇비슷한 모습을 드러냈다. 뇌전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수백 명의 도병들이 대열을 이루고 위용을 드러냈다.

    한립은 손가락을 튕겨 푸른 검기로 뇌갑 도병 중 한 명의 가슴을 찔렀다.

    쿵!

    뇌갑 도병은 충격에 날아가 바닥에 큰 구멍을 남기고 처박혔지만 곧 휙! 하고 튕겨 나왔다. 뚫린 갑옷 사이로 보이는 상처가 그리 깊지 않아 보였다.

    한립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평범한 대승기 수사라면 치명상을 입었을 공격을 뇌갑 도병은 대수롭지 않게 이겨냈다. 이어서 그는 뇌갑 도병들을 두 무리로 나누어 서로 싸우게 해보았다.

    콰르릉!

    골짜기 안이 시끌벅적해졌고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눈 덮인 골짜기 벽면이 무너졌다.

    자세히 살펴보니 도병의 전투 방식을 알 수 있었다.

    황건 역사와 마찬가지로 후퇴는 모르고 오로지 달려들어 상대를 격살할 줄만 알았다. 다른 점은, 뇌갑 도병의 회복력이 뛰어나 팔이 잘리고 가슴이 뚫리는 상처쯤은 금방 회복한다는 것이었다.

    한립은 도병들로 여러 가지 진법을 펼쳐보고는 몇 번 더 연습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도병들이 펼친 훌륭한 무위가 마음에 들었다.

    콩알들을 거두어서 동부로 돌아간 그는 금색 구슬을 꺼냈다.

    “해 수사…….”

    그의 부름에 구슬에 금이 가면서 손바닥 크기의 황금 게가 나타났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일전에 두병과 괴뢰를 융합하는 방법을 구했는데, 수사께 검토를 부탁드리려 합니다.”

    “두병과 선괴뢰를 융합하려 하십니까? 음, 그 방법은 핵심을 잃은 선괴뢰에게는 통하지 않을 겁니다.”

    한립의 설명에 해 도인은 크게 고개를 저었다.

    “하하, 서둘러 결론을 내지 마시고 이 모두를 한번 봐주시지요.”

    한립은 뇌기 문양과 뇌전 문양이 각인된 노란 콩알을 꺼내 황금 게 옆에 놓았다. 해 도인은 탄성을 내지르며 모두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작은 금빛 눈을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건, 흙 속성과 뇌전 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군요. 수사의 뜻은…….”

    “맞습니다. 수사가 괴뢰와 융합에 실패한 주요 원인은 속성이 맞지 않아서라 알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융합을 조정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지요.”

    “아주 새로운 방법이기는 합니다만……. 융합 진법도 살펴보아도 되겠습니까?”

    해 도인의 말에 한립은 옥간을 꺼내 주었다. 황금 게는 집게발로 옥간을 들고 신중하게 살폈다.

    “한 수사, 이전에 사용한 뇌진이 은근히 죽을 끓이는 용이라면 이 진법은 기름에 넣어 무엇이든 단번에 튀겨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일단 융합이 실패하면 귀한 모두가 망가지는 것은 물론 저와 선괴뢰도 손상을 입게 될 테고요. 그래도 시도해 보시겠습니까?”

    “막대한 이득에는 위험이 따르는 법이지요. 해 수사가 선괴뢰와 융합에 성공하면 바로 금선급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텐데 시도해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저 해 수사께서 이런 도박을 할 의향이 있으신지요?”

    한립은 정색하고 물었다. 중란을 죽인 뒤 2백 년 넘게 무사태형하다고 완전히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금선급 선괴뢰의 힘을 얻을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해 도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융합에 성공하면 수사는 선괴뢰 및 모두와 일체가 되어 저와의 연계가 긴밀해 질테니까요. 그리고 더욱 제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을 테니 수사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영계에서 약조한 것만 잊지 않으셨다면, 시도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진법을 펼치도록 하지요.”

    * * *

    한 달 뒤, 한립의 동부에는 널찍한 밀실이 새로 생겼다.

    8개의 주술문양이 가득한 구뢰목이 꽂힌 바닥에는 복잡한 진법이 펼쳐져 있었다.

    진법이 교차하는 부분마다 무량사를 포함한 각종 재료들이 놓여 있고 외곽의 움푹 파인 땅에는 선원석이 놓여 있었다.

    진법 중앙에 앉은 각진 얼굴에 가는 눈썹을 지닌 황포 중년인은 성괴문에서 데려온 선괴뢰였다.

    진법 밖에 선 한립은 금색 구슬을 불러내 황금 게로 변하게 했다.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제 시작해도 되겠습니다.”

    한립의 말에 황금 게는 말없이 뇌전 구슬로 변해 황포 사내의 가슴에 떨어져 흡수되었다.

    한립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수결을 맺고 주술을 외자 웅! 하고 밀실 안 진법이 진동했다.

    갑자기 불어 닥친 노란 돌풍이 소용돌이치면서 진법 위의 갖가지 재료들을 휘감고 선괴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립은 모두 한 알을 꺼내 들었다.

    모두가 떨어진 진법 안의 선원석들이 선령력을 콸콸 진법으로 쏟아 부어 일전에 보았던 도병수 허상이 나타났다.

    도병수 허상은 노란 소용돌이처럼 황포 사내의 체내로 빨려 들어가 종적을 감추었다.

    치지지직.

    진법 사방의 구뢰목에서 금빛 뇌전이 뱀처럼 황포 사내를 덮쳤고, 선괴뢰의 가슴에서는 타닥거리는 자금색 뇌전이 방출되어 노란 장포를 펄럭였다.

    해 도인이 괴뢰와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음을 안 한립은 재빨리 수결의 형태를 바꾸었다.

    쿠릉!

    황포 사내 뒤로 거대한 황금 게 허상이 떠올라 8개의 가느다란 다리에서 보랏빛 뇌전을 번득였다.

    “가라.”

    기합을 넣은 한립은 진법에 선령력을 미친 듯이 불어넣었다.

    쿠르르.

    밀실 벽이 덜덜 떨리다 못해 휘청거리고 있었다.

    이럴 거라 예상하고 보호진법과 격리진법을 강화해서 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적하봉 전체가 흔들렸을 것이다.

    황금 게 허상과 도병수 허상이 천천히 수축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황포 사내의 가슴에 희미하게 작은 나무 허상과 황금 게를 볼 수 있었다.

    체내의 선령력 대부분을 흘려보낸 한립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합쳐져라!”

    형형하게 눈을 빛낸 그의 일갈에 바닥이 쩌적! 갈라지면서 체내의 선령력은 물론 바닥에 깔린 선원석의 선령력까지 모조리 흘러 들어갔다.

    콰릉!

    굵은 뇌전빛이 황포 사내 체내에서 발생해서 자금색 뇌전 기둥이 밀실 천장을 뚫고 적하봉 위로 솟구쳤다.

    그나마 뇌전의 힘이 얼마 지속되지 않고 사라진 것이 다행이었다.

    선령력이 바닥난 한립은 현선의 강인한 육체로 겨우 뇌전의 충격을 받아내고 벽에 부딪쳐 피를 토했다.

    몸을 바로 가눈 그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황포 사내를 힐끔 살핀 후 노란 단약을 삼키고 선원석을 쥔 채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일각이 지나 입가의 피를 훔친 그 앞에 황포 사내가 눈을 뜨고 은은한 금색 눈동자를 드러냈다.

    “해 수사, 세 삶을 얻은 것을 축하드립니다. 융합과정이 순조롭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군요.”

    축하의 말을 건네는 한립은 내심 심장이 철렁했다. 황포 사내가 금선경 초기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를 같이 융합해 자동으로 혼백 금제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한 수사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융합에는 성공했어도 도병까지 결합을 하느라 체내의 역량이 혼잡해서 한동안 폐관 수련을 해야 기운을 안정시킬 수 있을 듯합니다.”

    “안심하고 폐관 수련에 들어가시지요. 영석이든 다른 재료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오.”

    해 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자 한립은 자리에서 일어나 밀실을 나섰다. 해 도인과 선괴뢰 일을 해결하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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