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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21화 (1,378/2,000)

1621화. 검은 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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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에서 자신을 호시탐탐 노리는 중수진륜을 본 냉염은 표정을 가다듬고 입을 달싹였다.

“감히 그럴 리가요! 한 수사께서 수련한 소북두성원공은 제가 유적에서 얻은 연체 공법과 연관이 있습니다. 제가 수련하면서 얻은 깨달음을 정리해서 그 요약본을 종문의 후인이 수련할 수 있게 남겨둔 것이 소북두성원공니까요.”

“오, 그럼 연체 공법의 완전판은 무엇입니까?”

“대주천성원공(大周天星元功)이라 합니다. 필요하시다면 복제해 가셔도 됩니다.”

냉염노조는 청회색 석판을 꺼내 주저 없이 던져 주었다. 푸른빛을 흘려보내 석판을 감싼 한립은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까이 불러들였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석판에는 깨알같이 고대 문자가 적혀 있었다.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석판에 적힌 공법도 완전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건 저를 탓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 상고 유적에서 목숨을 잃을 뻔하며 겨우 대주천성원공 공법의 절반만 챙겨 나올 수 있었거든요. 나머지 절반은 제 손에 없습니다.”

한립은 서둘러 해명하는 냉염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옥간을 하나 꺼내 석판에 대고 주문을 외웠다.

석판의 공법을 복제한 한립은 중수진륜을 불러들이고 옥간을 냉염노조에게 던져 주었다.

냉염노조는 한립이 당연하다는 듯 청회색 석판을 저물탁에 집어넣는 것을 보고서도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섬에서 수사들을 죽일 만큼 죽이셨으니 수확도 상당하리라 생각합니다. 충고드리자면, 그만 이곳에서 떠나시지요. 성괴문이 패하더라도 마지막까지 맹렬하게 반항할 겁니다. 욕심 때문에 떠날 때를 놓치면 지금 얻은 것도 잃으실 수 있을 거예요.”

한립은 더는 전음을 보내지 않고 육성으로 말했다.

“충고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그러려던 참입니다.”

냉염은 솔직히 답했다. 금지 골짜기 일만 마무리 되면 정말 이곳을 뜨려고 했었다.

성괴문이 완전히 전복되면 십방루의 소집 임무가 완료되어 이곳에 모인 산수들은 다들 어떤 구속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럼 흩어져 돌아가는 길에 서로 살인과 강탈을 자행할 것이 뻔했다.

한립은 냉염노조를 주의 깊게 살폈다.

영환계에 있을 때도 눈치가 빠르고 처세에 능하다고 여겼는데 오늘 보니 더욱 심계가 깊고 북한선역 본토 선인들보다 언제 치고 빠져야 하는지 잘 아는 듯했다.

한립은 먼저 몸을 돌려 금지가 있는 산골짜기 안쪽으로 날아갔다. 냉염노조는 그가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손끝으로 옥간을 문질렀다.

“위험했어, 위험했어! 여기서 저 녀석을 만날 줄이야. 노부가 머리 회전이 빨라서 무사했지……. 이런 모양 빠지는 임무는 앞으로 피해야겠구나!”

냉염 노조는 아직도 가슴이 떨리는지 은색 배를 불러내 곧장 그곳을 떠났다.

산골짜기로 돌아간 한립은 공중의 빛기둥 여덟 줄기와 거대한 소용돌이가 여전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방 씨 성을 쓰는 성괴문 장로는 아직도 호숫가에 쓰러져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설사자 괴뢰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후우웅.

침음하던 한립이 고공에서 지면으로 내려가려 할때 하얀 소용돌이 속에서 강렬한 공간 파동이 감지되었다.

급히 고개를 든 한립은 누군가 소용돌이 속에서 추락하는 것을 발견했다.

푸른 장포가 뜯겨나가고 온몸에 뼈가 드러날 만큼 깊은 상처가 난 피투성이 노인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방 장로와 비슷한 꼴이 되어 있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수사, 도, 도와…….”

그는 한립을 보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한립은 그를 보고 있다가 시선이 소용돌이 속으로 이동했다.

그 안에서 검은 인영이 튀어나와 검은 장도를 들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동료까지 버리고 홀로 달아나는 것이냐? 무슨 노 장로의 복수를 하겠다며 달려들던 패기는 어딜 간 거지? 으하하!”

한립은 검은 인영이 손에 든 검은 장도를 알아보았다. 방반이 쓰던 것을 빼앗아 무상맹을 통해 팔아버린 검은 장도가 아닌가!

“호오, 한 녀석이 더 있구나? 안 그래도 지루해지려던 참이니 같이 없애주마!”

상대도 한립의 존재를 인식하고 웃음기가 짙어졌다. 검은 피풍의 아래로 누런 얼굴과 금속성 이마 가리개가 눈에 들어왔다.

십방루 우두머리 셋 중 하나인 중란이었다. 중란은 손에 든 장도로 호선을 그렸다.

가벼운 일격에 장도 표면의 문양들이 검은빛을 머금고 수백 개의 강력한 도기가 날아가 한립과 청포 노인을 노렸다.

대부분이 한립을 향해서였고 청포 노인에게는 일부만이 날아갔다.

중상을 입은 노인은 혼비백산해서 중란이 웃음을 터트리는 동안 얼마 남지 않은 선령력을 끌어내 은색 구슬 두 개를 터트렸다.

은빛이 반짝이자 은갑 괴뢰 두 마리가 나타나 그의 앞을 막아섰고 노인의 몸에는 손상이 심한 푸른 나무 갑옷이 입혀졌다.

인상을 찡그린 한립은 푸른 장검을 불러내서 횡으로 베었다. 장검에서도 수백 개의 푸른 검빛들이 날아가서 검은 도기들을 베었다.

채채채채챙!

날카로운 칼날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고 푸른빛과 검은빛이 교전하다 빛 알갱이로 흩어졌다.

“수사, 조심하셔야 합니다. 저 검은 칼날은…….”

이때 청포 노인이 소리를 질렀고 그가 말을 마치기 전에 괴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흩어지던 검은 빛 알갱이들이 빠르게 뭉쳐서 도기로 변해 이전 궤적을 그대로 따라 두 사람을 향해 날아들었다.

청포 노인 앞을 막은 은갑 괴뢰들은 쇠막대 9개를 연결한 강편(鋼片) 채찍을 휘두르다 검은 도기에 맞아 산산조각이 났다.

보호막까지 밀려드는 검은 도기에 깨진 뒤, 청포 노인의 푸른 나무 갑옷까지 불안정하게 진동했다. 갑옷의 보호를 잃으면 노인은 죽은 목숨이었다.

위기의 순간 설사자 괴뢰가 갑자기 뛰어들어 청포 노인 앞을 막고 앞발을 휘둘렀다.

촤차차찻.

발톱 허상들은 검은 도기에 닿자마자 부서졌지만 적잖은 공격을 상쇄하고 나머지는 설사자 괴뢰가 몸으로 막아섰다.

진작 피투성이가 된 노인은 울컥 피를 토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한립은 그보다는 훨씬 차분했다.

그의 손목이 회전하자 장검에서 검빛이 쏘아져 나가 푸른 검기의 장막을 이루고 검은 도기를 막아냈다. 검은 도기는 부서지고 다시 뭉치기를 몇 번 반복하다 정말로 흩어져 사라졌다.

“크크크, 네 놈은 다른 녀석들이랑은 달리 실력이 좀 있구나! 좋다, 얼마나 버티나 보자!”

그걸 본 중란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괴소를 흘렸다. 눈빛이 서늘해진 그는 한 손으로 들고 있던 장도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전신에서 검은 빛을 발산했다.

검은 장도 표면에서 금색 실들이 날아올라 고풍스러운 주술문자를 이루고 무시무시한 파동을 형성했다.

느닷없이 광풍이 천지영기를 몰고 와 미친 듯이 검은 장도 속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천지영기를 흡수할수록 검은 장도의 금색 실들이 응결한 주술문자가 실체화 되어 도신이 불룩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걸 본 한립의 눈빛에 의혹이 스쳤다. 분명 똑같은 검은 장도인데 방반이 사용할 때와는 위력이 아예 달랐다.

‘설마 저자가 원주인이란 말인가?’

그때 중란이 기합 소리를 터트리고 두 어깨에 힘을 실어 장도로 아래쪽을 갈랐다.

쩡!

거대한 흑검색 도기가 천지영기를 머금고 빠져나왔다. 이에 한립은 재빨리 검결을 맺고 푸른 장검을 위쪽으로 찔렀다.

장검 검신이 부르르 떨리면서 푸른빛의 흐름이 실체를 지닌 것처럼 흘러나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늘어나다 순식간에 수십 개의 푸른 검빛으로 늘어났다.

검빛들은 중간에서 합쳐져 언덕 크기의 푸른 검 그림자로 변해 거대 도기를 공격했다.

쿠앙!

도기와 검 그림자의 충돌로 천지를 멸할 것 같은 거대한 떨림이 성괴문 본섬에 퍼져나갔고 광장에서 싸우던 수사들은 그 때문에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이어나갔다.

고공의 십방루 금선과 싸우던 운예 등도 진동을 감지했지만 워낙 아슬아슬하게 싸우는 중이라 주의력을 분산할 수 없었다.

“성괴문에도 아직 남겨둔 한 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만, 중란 그 미치광이를 막을 정도인지는 두고 봐야겠지요.”

흉터 사내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음을 흘렸다.

골짜기 호숫가에서 쓰러져 있던 청포 노인은 막대한 힘의 충돌에 붉은 피를 한 번 더 분출하고 완전히 기절하고 말았다. 의식을 잃으면서 그는 크게 후회했다.

한립이 저렇게 실력이 좋은 줄 알았으면 달아난 적을 추적하라고 따로 보낼 게 아니라 같이 금지로 들어갔어야 했다.

쾅!

굉음이 울리고 한립의 신영이 고공에서 추락해 운석처럼 호수로 떨어졌다. 암녹색 호수물이 파도처럼 일어나 비처럼 흩날렸고, 호수 밑바닥에는 커다란 구멍이가 파였다.

그러나 중란도 기파의 영향을 받아 하늘 높이 솟구치다 두 발로 허공을 박차고 골짜기 호수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그가 호수를 다시 장도로 가르려 할 때 호수 바닥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전해졌다.

촤앗!

이어서 검은 고리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솟아올라 암녹색 물줄기를 이끌고 중란을 향해 충돌해 왔다.

눈을 번득인 중란은 힘찬 기합 소리를 내지르면서 팔뚝의 근육이 불끈 일어날 만큼 세게 검은 장도로 중수진륜을 내리쳤다.

꽈앙!

두 팔이 저릿해진 중란은 형언할 수 없는 고리의 무게에 온몸을 뭔가로 사정없이 두들겨 맞은 것 마냥 굳어버렸다.

중수진륜에서는 방대한 물 속성 법칙의 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중란은 그것을 감지하고 박장대소했다.

“으하하하! ……그렇게 찾아다닐 때는 보이지 않더니 여기 있었던 것이냐, 한립! 아주 잘 되었구나, 너를 죽이러 굳이 고운대륙까지 가지 않아도 되겠어!”

말을 하면서 눈동자가 까맣게 물든 중란은 입에서 검은 실을 뿜어 장도에 스며들게 했다. 격렬하게 떨린 검은 장도가 몇 배로 커져 놀랍게도 중수진륜을 밀어냈다.

진작 물속에서 빠져나온 한립은 중수진륜을 불러 앞에 띄워두고 냉랭히 물었다.

“제 이름을 아시는군요. 방반과는 무슨 사이신지요?”

상대의 신분은 몰라도 검은 장도의 진정한 위력을 끌어낼 줄 알고 그의 본명을 안다면 십중팔구 방반과 상관있는 인물일 것이다.

선계로 온 뒤로 내내 가명을 사용해서 본명을 아는 이는 손에 꼽혔다.

“사제 녀석이 아무리 모자라도 진선경 후기의 수사에게 당했을 거라 여겼는데, 십방루를 통해 알아보니 겨우 진선경 초기의 현선이더구나. 오늘 직접 만나보니 제법 솜씨가 쓸 만해.”

중란도 바로 공격을 이어나가지 않고 멀리서 답했다.

“방반의 사형이셨군요. 그를 대신해 복수라도 하시려는 것입니까?”

“그까짓 머저리야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만, 너를 상대하기 위해 내 흑제도선인을 가져간 게 문제였지. 네 녀석이 머리를 굴려 나중에는 팔아치우기까지 했지만 말이야. 네 놈 생각엔 내가 어쩌고 싶을 것 같으냐?”

“그 장도는 확실히 훌륭한 보물입니다. 제 것이 아닌 보물을 갖고 있을 수 없어 무상맹을 통해 알맞은 주인을 찾아주려 했는데, 오늘 보니 제자리를 찾아 간 것 같군요.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한립은 뻔뻔하게 답했다.

“으하하, 그 말을 들으니 내가 네게 고맙다고 해야겠구나? 내 사제 녀석이 공을 들여 너를 죽이려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게다가 네가 지닌 격원법련을 스승님이 반드시 회수하라 하셔서 넌 오늘 내 손에 죽어야겠다. 그래,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아프지 않게 빠르게 죽여주마!”

두 눈이 까맣게 물든 중란의 몸에 검은 안개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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