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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17화 (1,374/2,000)

1617화. 결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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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염 불새가 선령력이 끊긴 유린골화를 말끔히 집어삼키고 화염 소인으로 변해 중수진륜에 앉아 두 다리를 흔들거리고 있었다.

화염 소인은 한립을 보고 은색 불새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웃음 지으며 소매 속으로 은색 불새를 거둬들인 한립은 거대 괴뢰 주변을 바라보았다.

성괴문과 십방루 간의 전투는 아주 치열해서 성괴문 괴뢰 병사 대부분이 공격을 당해 파괴당했고 십방루 인원도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 와중에 십방루 대승기 수사 몇이 은근슬쩍 전장을 벗어나 거대 괴뢰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몰래 거대 괴뢰를 망가트려서 본섬을 보호하는 다색 진법에 틈을 만들 계획이었다. 그들이 얼마 가까이 가지 못했을 때 거대 괴뢰가 고개를 돌렸다.

휘이이잉!

손에 들고 있던 거대 은색 칼날에서 주술문자가 빛을 발하자 하얀 돌풍들이 날아올라 접근하는 적들을 집어삼켰다.

돌풍 속에는 바람의 칼날이 가득해서 대승기 수사들은 육체가 갈기갈기 찢겨 원영만 달아날 수 있었다.

그는 별문제가 없는 것을 보고 중수진륜을 등 뒤로 소환한 채 인구에게로 이동했다.

인구는 홀로 고된 싸움을 하고 있었다. 풍만한 부인은 무슨 사술을 부린 것인지 진선 후기 홍의 여인으로 변해 사용하는 술법과 신통도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예사롭지 않은 붉은 지우산 속에서 새빨간 실들이 나풀나풀 내려와 잘못하다 그것에 걸리기라도 하면 선령력 흐름이 방해를 받았다.

구성금검(九星金劍)이 내뿜는 찬란한 별빛이 인구를 잘 보호해서 가끔 실에 걸려도 무사할 수 있었고, 금색 거울에서 방출하는 붉은 줄무늬 호랑이가 상처투성인 몸으로 그를 한시도 떠나지 않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마른 노인을 잘 막아주고 있어 다행이었다.

노인은 아까 불러낸 거대 구렁이가 인구의 거대 호랑이에게 찢겨나가 무척 속이 쓰렸다. 그래서 인구를 죽여 빼앗은 보물로 어떻게든 손실을 만회할 계획이었다.

“쳐라!”

다른 한편에선 홍의 여인이 옥처럼 반짝이는 핏빛 비파를 불러내 현을 튕겼다.

디리링.

그 소리를 들은 인구는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비파소리가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은구슬이 옥쟁반 위를 굴러가듯 무척 듣기 좋아서였다.

동시에 인구 머리 위의 지우산이 핏빛을 머금고 배로 커졌고 드리우던 실들이 가느다란 뱀처럼 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마른 노인도 삼색(三色) 고리에서 수없이 많은 고리 환영을 불러내 거대 호랑이를 붙들어 두고는 자신은 귀신같이 인구 아래쪽으로 이동해서 소매 속에서 기다란 검빛을 뿜었다.

흠칫 놀란 인구가 금색 거울로 검빛을 막긴 했지만 구멍이 뚫려 붉은 실 몇 가닥이 어깨와 등을 찔러왔다.

붉은 실은 몸속을 파고들자 싹을 피우듯 몇 갈래로 갈라져서 혈관과 살 속으로 더 깊이 퍼지려 했다.

“안 돼!”

어깨와 팔뚝에 감각이 저릿해지면서 선령력 흐름이 느려지자 인구는 혼비백산했다.

바로 그때 시야 끝에서 금색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이에 그는 목숨을 부지할 때 쓰려 했던 비밀 부적을 발동하려다 우뚝 멈추었다.

쉬익!

검은 고리가 그의 가슴 앞을 스치듯 날아들어 어두운 녹색 비수를 쳐내고 푸른 장검을 든 한립이 나타나 붉은 실들을 끊어버렸다.

인구는 체내의 실들이 말라비틀어진 덩굴처럼 힘이 빠지는 것을 감지했다.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말로는 감사를 다 표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신세는 꼭 갚지요!”

인구는 한립을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함께 저 둘부터 신속히 제거하시지요.”

“좋습니다.”

인구는 마비가 풀린 어깨를 돌려보고는 가면 아래 얼굴을 굳히고 답했다. 마른 노인과 홍의 여인도 모여 놀란 눈길을 주고받았다.

비교적 약해 보이던 소머리 가면 사내가 순식간에 그들의 일행을 참살하고 그들과 싸우려 합류할 줄은 몰랐다.

“더는 못해 먹겠습니다. 노부는 먼저 가봐야겠어요.”

마른 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도 듣지 않고 둔광을 일으켜 날아갔다.

“저, 교활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홍의 여인은 조그맣게 욕설을 내뱉었다.

인피(人皮) 문신 법보를 발동해 이번 전투에 소모한 힘이 매우 컸다. 이에 마른 노인과 연합해 적들을 죽이고 보물을 챙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 홀로 남아 싸울 만큼 그녀도 멍청하지는 않았다. 여인이 당장 손짓하자 붉은 지우산이 초고속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이제 와 그냥 가겠다고? 나를 무엇으로 보는 것이냐!”

속이 부글부글 끓은 인구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두 손가락 끝에 끼고 있던 금색 선부를 날렸다.

화륵!

불타오른 선부가 금색 화염으로 변해 인구를 감싼 순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의식을 퍼트린 한립은 인구가 놀랍게도 수천 리를 순간 이동해서 홍의 여인 앞을 가로막은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마른 노인이 달아난 방향을 보았다.

치지직!

얼굴에 장난스런 미소가 번진 그는 중수진륜을 체내로 회수한 뒤 은색 뇌전빛들을 불러일으켰다.

수만 리 밖, 달빛처럼 어스름한 빛에 휩싸여 뇌폭해양을 가로지르는 마른 노인은 평소처럼 투덜거리고 있었다.

“내 참 운도 없지, 하필 그런 놈들을 마주쳐서는! 거기서 더 버티고 있다가는 죽을 뻔했지! 분수에 넘치는 탐욕을 부리다가 목이 달아나는…….”

순간적으로 미간을 좁힌 노인은 신형을 멈추고 뒤쪽으로 한참 물러났다.

콰릉!

그가 향하던 전방에 뇌전들이 빼곡하게 나타나 원형 진법을 이루고 한립이 나타났다.

“거, 수사 이러지 맙시다. 내 멀리 떠나 절대 이 일에 다시 끼어들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되지 않습니까. 다들 무상맹 동도인데 서로 사정도 봐주고 하는 것이지요. 오늘은 그냥 가게 놔주시지요?”

노인은 먼저 굽히고 들어갔다.

“서로 원수를 진 것도 아니고 꼭 피를 보고자 쫓아온 것은 아닙니다. 허나 방금 내 일행을 죽이려 해놓고 말 몇 마디로 그냥 떠나겠다는 것입니까? 무례를 범했으면 대가는 치르고 가셔야지요?”

한립도 급히 공격하지 않고 씨익 웃음 지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하, 아마 수사께서는 3만 년 된 도령화(筡靈花)를 지니고 계실 겁니다.”

처음 십방루 진선 수사 셋을 마주쳤을 때 한립의 강대한 의식에 도령화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도령화의 꽃술인 도령화예가 도단 약방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에 절대 그냥 가게 둘 수 없었다.

마른 노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확실히 도령화를 그것도 살아있는 영초를 저물탁 내에 지니고 있었다.

영초를 얻은 지 얼마 안 되어 임무에 소집된 탓에 잠시 특수한 옥함에 담아서 지니고 있었다. 옥함에 겹겹이 봉인을 해놓았는데 그걸 알아차리다니, 의식의 힘이 금선급이라도 된단 말인가!

순간 긴장했던 노인은 그럴 리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전투 중에 상대가 내뿜던 기운은 분명 진선경 중기 정도였다. 아마 영초를 탐색하는데 특수한 능력을 지닌 법보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의식을 방출해 주변에 다른 수사가 따라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기운을 폭발적으로 일으켰다.

“도령화를 내놓으라니 노부를 호구로 아십니까?”

한립은 속으로 냉소했다.

십방루 진선 수사 중 가장 수행이 높은 것은 우람한 수사도, 비술을 사용한 풍만한 부인도 아니었고 바로 이 교활한 노인네였다.

자신이 싸움에 합류하고 달아난 것은 정말 죽을까 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해타산이 맞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한립이 도령화를 요구하자 마른 노인은 본 실력을 드러낸 것이다.

눈을 번득인 한립의 등 뒤로 검은 중수진륜이 떠올라 서서히 회전했다. 양손으로 수결을 맺자 중수진륜 표면의 도문이 빛을 머금고 검은 파문을 일으켜 허공을 찢을 기세로 퍼져나갔다.

그걸 본 마른 노인도 삼색 고리를 불러내서 고리 허상들을 중수진륜을 향해 날렸다.

그러나 중수진륜의 무게는 노인의 상상을 초월해서 어마어마한 힘이 검은 기류를 타고 삼색 고리 허상들을 박살 내고는 쩡! 하고 고리 본체까지 영향을 미쳤다.

쾅!

거센 충격에 삼색 고리가 갈라졌다. 반서를 입은 노인은 비틀거리면서 비정상적인 붉은 기가 올라온 얼굴로 손을 뻗었다.

살구빛의 거대 깃발이 그의 손에 들려 맹렬한 기운을 방출했다.

솨아아.

깃발에서 누런 모래 먼지가 쏟아져 나와 주위를 장악했다. 한립은 남색으로 반짝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도 모래 속에서 노인의 위치를 놓쳤다.

“흐흐흐, 노부의 삼일쇄관(三日鎖關) 맛을 봐라!”

등 뒤에서 들려온 노인의 목소리에 재빨리 몸을 돌린 한립은 원형의 하얀 빛덩이 3개가 삼각 구도를 이루고 뜨거운 열기를 방출하는 것을 보았다.

한립은 허공을 박차고 피하려 했으나 뜻밖에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종아리에 소리 없이 하얀 수정알갱이가 달라붙어 그를 붙들고 있어서였다.

수정알갱이는 어깨, 가슴, 팔로도 퍼져나가 그를 구속했다.

놀라긴 했지만 한립은 천천히 푸른 기운을 흘려보내 수정알갱이를 떼어내려고 했다. 그 순간 마른 노인이 손에 암녹색 비수를 들고 그의 미간을 노리고 달려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코웃음을 친 한립은 두 눈에서 금빛을 뿜어 강대한 의식의 힘으로 주변 백 리를 채웠다.

이미 지척에 이른 마른 노인은 한립의 눈동자 주변으로 조그만 주술문자들이 떠오른 것을 보고 불길하다는 생각에 순간 속도를 늦추었다.

“천지정명(天地淨明)!”

커다란 종을 친 듯 웅장한 소리가 한립의 입안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자 주변의 모든 것들이 선인의 명령을 알아들은 것처럼 누런 모래 먼지가 가라앉고, 고공의 먹구름이 걷혀 하늘이 깨끗하게 변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눈을 부른 뜬 마른 노인은 다급히 몸을 돌려 거리를 벌리려 했다.

“떨어져라, 천화(天火)여!”

또 다른 주술에 고공에서 하얀빛이 떨어져 은색 화염으로 변해 타올랐다.

“마, 말이 곧 술법이 된다고? ……이건 금선도 불가능한 일인데, 대체 당신 정체가 뭡니까! 말씀하신 도령화를 드릴 테니 이제 그만하십시오!”

겁에 질린 마른 노인이 물러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런, 그런 말을 할 때는 지난 듯싶습니다. 뇌락(雷落)!”

한립은 서늘하게 웃으며 계속해서 주술을 외쳤다. 더없이 높은 하늘 위에서 먹구름이 소용돌이처럼 뭉쳐 뇌전빛을 번득였다.

콰지직!

물항아리 굵기의 남색 뇌전이 수직으로 마른 노인에게 떨어졌다.

기겁한 노인은 미친 듯이 옆으로 피했지만, 고공에서 연달아 천둥소리가 울리며 굵직한 뇌전 기둥이 비처럼 쏟아졌다.

싸울 의지를 잃은 노인은 번득번득 이동해 뇌전 기둥을 피하면서 금색 부적을 꺼냈다.

이때 한립의 신형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다음 순간, 노인 뒤에서 금색 비늘에 뒤덮인 손이 칼날처럼 찔러 들어와 등을 꿰뚫었다.

한립의 눈동자에서 차차 금빛이 사라지자 남색 뇌전 기둥이 흩어지고 누런 모래바람이 가득한 풍경이 노출되었다.

“윽, 환술이었다니…….”

씁쓸하게 마지막 말을 남긴 노인은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퍽!

이어서 노인의 미간에서 금빛 파동이 전달되었다. 독하게도 달아날 기회가 없자 스스로 원영을 폭발시킨 것이다.

콰릉!

서늘하게 눈을 빛낸 한립은 노인의 등에 꽂힌 손에서 은빛을 번득였다. 은색 뇌전이 관통한 마른 노인의 시체와 조각난 원영은 힘없이 추락했다.

그제야 표정을 푼 한립은 가뿐 호흡으로 들썩이는 가슴을 안정시켰다. 간단히 마른 노인을 격살한 것처럼 보였지만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그를 구속한 수정알갱이는 단단하기 짝이 없어서 체내의 선령력을 이용해 벗어나려 했으면 적어도 다섯 호흡은 지체되었을 것이다.

그 시간이면 노인의 손에 수십 번도 더 당할 수 있었다.

무력한 상태로 노인이 비수에 미간을 찔렸으면 목숨을 잃지는 않아도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을 것이다.

위기의 순간 그는 ‘법언천지’ 신통을 펼쳐 노인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천화를 떨어트리는 순간 정염불새를 섞어 수정알갱이의 구속에서 벗어났다.

노인이 당황해 달아날 생각만 하고 있을 때 역전진륜 신통을 이용해 일격으로 숨통을 끊어 놓았다.

한립은 오늘 일을 교훈 삼아서 진선경 수사들을 상대할 때는 더욱 주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푸른빛을 날려 보내 노인의 시체가 바닷속에 빠지지 않게 붙들어 놓고 그는 단약을 복용했다.

진언보륜의 도문이 30개밖에 회복되지 않았는데 역전진륜 신통을 연달아 사용하느라 몸에 무리가 가고 선령력 소모도 막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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