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6화. 일촉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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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방루 무리를 이끄는 세 명의 수사는 중앙의 체구가 우람한 장년 사내, 좌측의 키가 작고 바싹 마른 피풍의 사이로 드러난 뺨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 그리고 좌측의 몸의 굴곡이 분명한 호언 도인이 말하던 가슴 크고 엉덩이 빵빵한 여인이었다.
그중 주름 가득한 노인이 다가오는 한립과 인구를 보고 인상을 팍 쓰더니 퉷! 하고 침을 뱉었다.
“왜 그러십니까?”
우람한 장년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무상맹 동도를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푸른 가면 회원이라니 운도 없지…….”
마른 노인은 썩 내키지 않은 싸움을 앞두고 말을 흐렸다.
“무상맹에 대해서는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푸른 가면을 쓴 이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이들이 없다지요. 치열한 싸움이 되겠습니다.”
“두 분이 그리 말씀하시니 저는 너무 무서워졌습니다. 어찌 되었든 저는 혼자서는 저들 중 누구도 맡지 않겠어요!”
듣고 있던 풍만한 여인이 웃음을 흘리면서 엄살을 떨었다.
“소머리 가면을 쓴 자가 약해 보이니 제가 맡겠습니다. 사슴머리 가면을 두 분이 상대하시지요.”
그 말에 우람한 사내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좋습니다. 수사의 말대로 해봅시다.”
노인이 답하고 풍만한 부인도 눈꼬리를 접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쌍방의 거리가 천장 이내로 가까워졌을 때 진선경 미만의 수사들은 알아서 진선들과 거리를 두고 해역에 바짝 붙어 전투를 시작했다.
우람한 사내는 한립을 향해 날아갔고 마른 노인과 풍만한 부인이 번득 옆으로 이동해 좌우에서 인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코웃음을 친 인구는 한립과 거리를 벌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둘을 주시했다. 수백 장 밖에서 우람한 사내가 맹렬히 손을 털어 검은빛을 날렸다.
콰아아.
검은빛 속에서 거대 도끼가 나타나 한립의 머리를 내리찍으려 들었다. 칼날이 떨어지면서 일으킨 바람과 압력에 공간이 불안정해졌다.
한립은 상대가 처음부터 이렇게 강수를 둘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멈칫하고는 팔에 금빛 비늘을 일으켰다.
드드득!
금빛이 그의 팔 전체를 뒤덮고 팔목이 긴 장갑으로 변해 거대 도끼날과 충돌했다.
쿠왕!
강한 충격에 백여 장 아래로 추락한 한립은 허공을 박차며 멈추었고 빛을 잃고 어두워진 거대 도끼는 원래 크기로 변해 우람한 사내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도끼를 받은 우람한 사내는 쿵쿵쿵 뒷걸음치며 소리쳤다.
“현선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 말에 한립은 대꾸하지 않고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 주문을 외웠다. 검은빛과 함께 거무튀튀한 고리가 나타나 강렬한 물의 기운을 발산했다.
바로 중수진륜이었다.
“가라.”
그의 나지막한 외침에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쾌속으로 도는 중수진륜 표면에서 투각(透刻)으로 형성된 문양이 흐릿해졌다.
검은 고리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우람한 사내 앞에 이르렀다. 깜짝 놀란 사내는 손에 들고 있던 거대 도끼를 단단히 쥐고 그걸 방패 삼아 몸을 보호했다.
진귀한 광석으로 제련된 도끼는 복잡한 주술문자가 새겨진 흙 속성의 위력적인 보물이자 내구성도 상당한 방어용 보물이었다.
우람한 사내는 도끼라면 겨우 일격을 막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믿었다.
예상 밖의 장면이 펼쳐졌다.
중수진륜 표면의 물의 도문이 남색빛을 반짝이며 법칙의 힘을 내뿜어서 형언할 수 없는 힘으로 거대 도끼를 강타한 것이다.
퍼펑!
검은 도끼는 쾌속으로 쪼개져 파편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에 경악한 우람한 사내는 피풍의 안쪽에서 황토색 진법 허상을 불러내 진륜을 막았다.
이에 한립이 미간을 좁혔다.
의식연계를 통해 중수진륜이 기이한 힘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선령력만 엄청나게 소모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쿵!
우람한 사내는 피를 토하면서 날아갔지만 지니고 있던 선부(仙符) 덕에 대부분의 힘을 상쇄했다.
그때 다른 쪽에서 인구와 나머지 두 사람의 싸움도 무르익고 있었다.
풍만한 부인은 보라색 가시가 잔뜩 박힌 채찍을 쥐고 쉼 없이 팔을 저어 수많은 채찍 허상을 날렸고, 인구는 금색 거검을 휙휙! 휘둘러 금색 검빛들로 채찍 허상들을 깨트렸다.
검의 별 문양 9개가 밝은 빛을 방출해 인구의 주위에 별빛 보호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때 인구 등 뒤에서 검은빛이 번뜩이며 마른 신영이 소리 없이 나타나 날카로운 은빛 손톱으로 별빛 보호막을 파고들었다.
찌직!
주술문자가 떠오르자 마른 노인의 손가락이 보호막에 구멍을 만들어냈다. 노인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입에서 녹색 바늘을 뿜어 복면을 뚫고 인구의 등을 노렸다.
겉으로는 여인에게 집중하는 척하면서 마른 노인에 대한 경계를 한순간도 풀지 않고 있던 인구였지만 기척 없이 다가온 공격에는 어쩔 수 없었다.
“크큭, 넌 죽은 목숨이다!”
그때 인구 등 뒤로 네모난 투각 문양이 있는 거울이 떠올랐다.
챙!
크하아앙!
비침(飛針) 법보가 거울에 튕겨 나가고 호랑이와 용의 울음소리를 섞어 놓은 듯한 포효소리가 거울 속에서 터져 나왔다.
“젠장!”
마른 노인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입을 벌려 바늘을 회수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네모난 거울에서 머리에 줄무늬가 있는 금색 호랑이가 튀어나와 시뻘건 입을 벌리고 노인을 물어뜯으려 했다.
쇄액!
노인의 팔목에서 빠져나간 녹색 밧줄이 거대 구렁이로 변해서 거대 호랑이를 휘감았다. 그렇게 시간을 벌어 겨우 풍만한 여인 곁으로 다가간 노인은 불평을 늘어놓았다.
“쳇,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소머리 가면 녀석을 고를 것을 그랬습니다.”
노인이 말이 끝나자마자 참혹한 비명이 들려오며 한립에게 차인 우람한 장년 사내가 힘없이 바다로 떨어졌다.
한립의 신영이 빛줄기로 변해 우람한 사내를 따라붙고 있었다.
“에잇,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괴물들 아닙니까.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가는 보수를 챙기기는커녕 명줄만 두고 가겠어요!”
투덜거리면서도 마른 노인의 표정이 한층 신중해졌다.
“호호, 확실히 봐주면서 상대할 이들은 아니네요. 저를 위해 잠시만 시간을 벌어주세요. 아무래도……. 옷을 좀 갈아입어야 할 듯합니다.”
풍만한 여인이 채찍을 거두고 눈웃음을 치면서 부탁했다.
‘힉!’
그걸 본 마른 노인은 매혹당하기는커녕 소름이 돋는다는 얼굴로 얼른 누런 거대 깃발을 불러내 인구를 향해 뛰어들었다.
눈빛이 서늘하게 변한 풍만한 여인은 어깨를 털었다.
입고 있던 의복이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면서 새하얀 피부가 드러났는데 홍의(紅衣) 여인이 비파를 들고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의복이 아니라 사람의 피부로 제련한 강력한 법보였다.
오랜 세월 자신의 피와 살로 배양해서 거의 한 몸이 되었기에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다.
여인이 괴상한 주술을 외자 어깨에서 홍의 여인 문신이 뿌옇게 변해 그녀의 팔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며 풍만한 여인은 검은 피풍의를 벗어던지고 놀랍게도 문신으로 새긴 홍의 여인으로 변했다.
흥미로운 점은 변신을 마친 그녀의 수행이 진선경 중기에서 후기로 높아졌다는 것이었다. 여인은 이전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혈홍색 지우산(紙雨傘)을 불러내 활짝 편 여인은 인구의 머리 위로 표표히 날아갔다.
“최대한 빨리 끝장내야겠어…….”
촤앗!
그 순간 아래쪽 해수면이 크게 출렁이며 누군가 솟구쳤다. 등 뒤에 서서히 회전하는 새까만 보륜을 띄우고 나타난 것은 한립이었다.
시간을 두고 파도 속에서 솟아오른 황금색 신영은 공격당해 바다에 빠졌던 우람한 사내였다.
금칠해놓은 듯 전신이 금색으로 변한 그는 바로 한립을 쫓지 않고 멀리서 키 큰 소머리가면 사내를 보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제길, 제길!’
그는 마른 노인보다 더 후회막심이었다.
진선경 후기 수행을 지녔다고 오만하게 소머리 사내를 홀로 상대하겠다고 했다가 아껴두었던 금부단(金腐丹)까지 삼키고도 상대에게 실컷 두들겨 맞다 겨우 빠져나온 길이었다.
거무튀튀한 고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물 속성 법보의 무게가 상상을 초월했다. 고리 안에 바다를 담아놓았다고 해도 믿을 만큼 무거웠다.
손바닥을 뒤집어 붉은 문양이 새겨진 뼛조각을 꺼낸 그는 이걸 쓸까 말까 망설였다.
위쪽의 한립은 고개를 들어 홍의 여인과 마른 노인이 인구를 밀어붙이는 것을 힐끔 보다가 우람한 사내를 살폈다.
머뭇거리는 기색이 사라진 사내는 두 손바닥으로 뼛조각을 쥐고 중얼중얼 주문을 외고 있었다. 그러자 손바닥 사이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올라 그윽한 푸른 불길로 피어났다.
유린골화(幽磷骨火)라 불리는 불길은 무척 특수한 조건에서만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천지영화로 구하기 어렵고 고계 요수의 뼈를 특수 제련해서 그 안에다가만 보관해야 했기에 한 번 사용하면 다시 담기 어려운 소모성 보물이었다.
그래서 우람한 사내가 신통을 쓰기 전에 고민한 것이다. 사내의 손바닥 사이에서 화염 연꽃이 피어나 눈 깜짝할 사이에 한립에게 다가갔다.
한립은 당연히 화염 연꽃이 더 접근하지 않도록 등 뒤의 중수진륜을 앞쪽으로 이동시켰다. 보륜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와 거대 방패처럼 화염을 막았다.
유린골화는 중수진륜과 충돌해 흩어지지 않고 보륜을 감싸고 활활 타올랐다.
치지직!
기괴한 힘이 중수진륜을 감싸고 중수를 부식하는 것을 보고 한립은 손을 펼쳐 은색 불길을 일으켰다.
은색 소인이 그를 향해 해맑게 웃고는 그의 팔 위를 펄쩍펄쩍 뛰어놀다 은색 화염으로 변해 중수진륜을 뒤덮은 푸른 화염으로 달려들었다.
은색 불길은 정염지화였다.
보륜 표면에서 은색과 푸른 불길이 교전하면서 서로 밀리지 않고 대치상태를 이루었다.
한립은 정염지화가 푸른 불길을 막는 동안 검결을 맺어 푸른 장검을 쥐고 중수진륜 뒤에서 튀어 나갔다.
그걸 발견한 우람한 사내는 수결을 변화하면서 또 다른 푸른 연꽃을 활짝 피워 기습을 막았다.
한립의 푸른 장검에서 검빛 허상이 연달아 빠져나가 푸른 검기의 연꽃을 형성하고 푸른 연꽃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매우 끈적끈적한 성질을 지녀 중수진륜도 순식간에 휘감고 부식시켰던 푸른 불길이 장검에는 전혀 묻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우람한 사내는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유린골화가 통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곧장 혀끝을 깨물어 핏물을 뿜고는 정혈을 푸른 연화 속으로 흡수시켰다.
회전속도가 빨라진 푸른 연꽃의 꽃잎들이 떨어져 나와 화염 칼날로 변해 허공을 휩쓸었다.
느긋하게 한 손으로 수결을 맺은 한립은 다른 손으로 검을 움직여 수백 수천 개의 푸른 검 그림자들을 우람한 사내에게 날렸다.
검 그림자들을 아무렇게나 날아가는 것 같았지만 신기하게도 정확히 푸른 화염 칼날과 부딪쳤다.
우람한 사내는 더는 상대와 시간을 끄는 것이 불리하다고 판단해 두 손으로 수결을 맺고 앞으로 손바닥을 펼쳤다.
화르르.
맹렬하게 커진 푸른 연꽃이 터져서 일대를 푸른 화염 바다로 물들였다.
콰릉!
검 그림자들이 화염 바다에 잠긴 사이 우람한 사내는 과감하게 금빛 부적을 불살라 금빛 뇌전으로 변해 사라졌다.
그런데 백 리 밖 허공에서 거대한 푸른 장검이 나타나 금빛 뇌전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버렸고, 우람한 사내와 엇비슷하게 생긴 보라색 원영 소인이 그 잔해에서 튀어나와 겁에 질린 얼굴로 달아나려 했다.
원영은 미리 펼쳐져 있던 은색 그물에 걸려서 치직! 하고 푸른 연기로 변해 소멸하고 말았다.
우람한 사내는 죽는 순간까지 소머리 가면을 쓴 사내가 어떻게 순식간에 백 리를 이동해 자신을 살해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것은 사내가 유린골화를 터트린 순간 한립이 역전진륜 신통을 펼쳐 자신의 시간의 흐름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푸른 장검을 회수한 그는 우람한 사내의 시체에서 저물탁과 저물 반지를 끌어와 내용물을 확인했다.
안에 물건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한립은 얼른 중수진륜 방향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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