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615화 (1,372/2,000)
  • 1615화. 진격

    *

    그 시각, 먹구름 속 새까만 선박 위에는 세 사람이 나란히 있었다.

    한 명은 기다란 흉터가 왼쪽 이마에서부터 오른쪽 눈을 지나 검은 복면으로 가려진 뺨으로 이어졌고, 그 오른쪽에 선 젊은이는 복면만으로 얼굴을 가려 짙은 눈썹과 백옥 같은 피부를 드러냈다.

    전신에서 뿜어내는 웅대한 기운이 명명백백한 금선경 수사였다.

    그 옆의 누런 피부 거한은 거의 다른 사람 두 배는 되는 키에 이마에 금속광택이 흐르는 푸른 장신구를 달고 있었다.

    그는 진선경 최고봉의 수행을 지녔지만 금선들과 나란히 선 것을 보면 보통 신분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흐흐……. 육기 수사, 저희 십방루의 준비가 흡족하십니까?”

    흉터 사내가 곁의 검 찬 사내를 향해 물었다.

    “일대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 거액을 주고 십방루를 찾은 것입니다. 수사들이 모집된 것은 그리 놀랍지 않군요. 그런데 너무 잡다한 수행의 수사들이 모여든 것 아닙니까? 이런 오합지졸로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검을 찬 사내가 차분히 말했다.

    그들 셋을 제외하고 전함들에 탄 2, 3천 명의 수사들 중에 진선경 수사는 40명뿐이고 나머지는 대승기부터 합체, 연허기 수사까지 섞여 있었으니 잡다하다는 표현이 틀리지 않았다.

    “허허, 산야(山野)를 떠돌면서 어렵게 수행을 쌓은 산수들이야 말로 백전노장들입니다. 동급의 수행을 지녔다면 성괴문 안에서 괴뢰나 만지고 놀던 녀석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요.”

    “이런 한담이나 나누고 있을 때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혈한 도형, 저는 고운대륙에서 스승님이 분부하신 다른 임무도 수행해야 하니 신속하게 일을 마무리 지으시지요.”

    누런 얼굴의 거한이 불쑥 입을 열었다.

    “중란 수사, 뭐가 그리 급하신가. 조금 전 시험 삼아 공격해보았더니 저쪽에서 준비한 방어력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네. 미리 입수한 정보와 다를 바 없으니 계획대로 쓸어버리면 될 것이야. 성괴문 공침에 성공한후 전에 이야기한 사항만 잊지 말게.”

    흉터 사내가 허허 웃음을 지었다.

    “그건 안심하셔도 됩니다.”

    누런 거한의 대답을 들은 흉터 사내가 몸을 돌려 손을 들어 올렸다.

    “진법을 펼치고 진공한다.”

    “예!”

    뒤에 있던 몇 명이 대답하고 빠르게 흩어졌다. 구름 속에 떠 있던 수십 척의 전함들이 앞뒤 양옆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진을 쳤다.

    전함들은 빠르게 고리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둥! 둥!

    웅장한 종소리와 함께 전함에 설치된 검은 탑에서 금빛 빛기둥들이 치솟아 먹구름을 관통했다. 극심하게 출렁인 먹구름 속에서 산만한 원반 허상이 나타나서 괴이한 문양을 반짝였다.

    콰르릉! 콰쾅! 콰릉!

    연달아 천둥이 울려댔다.

    검은 운해 속의 원반 허상에서 맷돌 크기의 금빛 불구슬들이 성괴문 본섬과 여덟 섬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수백 수천 개의 금빛 화염 구슬은 유성우처럼 길게 꼬리를 남기면서 떨어져 하늘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불구슬들은 섬 만 장 위 허공에서 무형의 장벽에 부딪혀 쾅쾅! 폭발해 불똥을 튀겼다.

    연달아 이어지는 폭발에 거의 투명한 반구형의 보호막이 푸른빛을 반짝이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보호막은 불룩불룩 들어갔다가 원래대로 회복하며 적잖은 불덩이들을 튕겨냈다.

    성괴문 본섬 광장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수사들은 하나같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공격이 지속 되면 방어 진법이 얼마나 버티겠느냐?”

    운예는 백봉의와 나란히 서서 멀리 전함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수준으로만 공격이 유지되면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만…….”

    백봉의의 대답이 끝나기 전에 먹구름 속 원반 허상이 반짝이면서 공격이 멈추었다.

    ‘이렇게 빨리 공격을 멈춘다고?’

    의혹 가득한 본섬 수사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원반 허상은 더 크고 강력한 금색 화염을 뭉쳐서 떨구었다.

    콰앙! 콰아앙!

    방어 진법이 형성한 보호막이 크게 흔들려서 파문이 아니라 거의 파도가 치고 있었다. 보호막이 원형을 회복하기 전에 수백 개의 화염 구슬이 떨어져 진법이 파괴되기 직전이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구나. 보호막이 깨지면 백병전을 해야 할 텐데, 상대 쪽 금선이 두 명이니 그중 한 명은 내가 막더라도…….”

    “나머지 한 명은 제가 막을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희 쪽 수사와 괴뢰의 수가 많으니까 진선경 수사들만 제거하면 사기를 높일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저들은 짐승 떼와 같다. 일단 밀린다고 생각되면 바로 흩어져 달아날 놈들이지. 처음부터 압도적인 기세로 밀어붙여야 승산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운예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인 백봉의가 진법 원반을 꺼내 법결을 던져 넣고 명을 내렸다. 고공에서 지켜보던 흉터 사내는 섬을 지키는 진법의 방어력에 조금 놀란 듯했다.

    “성괴문의 방어 진법이 예상보다 단단합니다. 육기 수사, 괜찮으시면 직접 나서주시지요.”

    검을 찬 사내는 대답 없이 흐릿하게 사라져 허리춤의 은색 장검을 칼집에서 뽑아 들고 가볍게 허공을 그었다.

    채앵!

    새하얀 검기가 먹구름에 거대한 구멍을 뚫고 날아올라 광풍을 일으켰다.

    구멍을 통해 밝은 햇살이 쏟아져 내려서 검선이 강림한 듯 모두의 시선이 검을 찬 사내에게 집중되었다.

    한립도 무사 괴뢰 근처에 떠서 고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검기는 높이 솟아올라 한참 동안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평범했지만 오래 비검술을 익힌 한립은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비검 주변의 검기가 응결해 거의 실체화되었기에 그 날카로움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게 떨어지면 천지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과연 먹구름에서 은빛이 번쩍이고 벼락이 내려치는 것처럼 굉음이 들려왔다.

    두 눈에 남색빛을 머금은 한립은 설산이 무너지는 것처럼 새하얀 거대 검빛이 내리꽂히는 것을 목격했다.

    새하얀 검기는 이미 불 구슬에 당해 손상을 입은 보호막을 가르고 떨어졌다.

    콰콰쾅!

    위태롭던 보호막이 쩡! 갈라져 빛으로 흩어진 뒤 새하얀 검빛은 본섬을 강타하려 했다.

    본섬에서 거대하기 짝이 없는 설련화 허상이 떠올라 검빛과 충돌해 폭음을 터트렸다.

    사나운 기파가 사방으로 퍼져 해일이 일고 산이 무너져 내렸다. 고공 먹구름 속 십방루 수사들은 방어 진법이 파괴된 것에 환호성을 질렀다.

    열기로 가득한 두 눈은 영석이 가득 쌓인 보물창고를 보는 것처럼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으하하, 성괴문 방어 진법이 무너졌다. 가라, 이곳에서 무엇을 얻어갈지는 각자의 역량에 달렸다.”

    간사한 웃음을 터트린 흉터 사내가 공격 명령을 내렸다.

    “우와아아아!”

    수사들은 광기 어린 함성을 터트리며 검은 선박에서 뛰어내려 먹이를 노리는 검은 까마귀 떼처럼 본섬으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수천 명의 수사가 섬에 가까워졌을 때, 외곽 섬에 배치된 거대 괴뢰 여덟 마리가 밝은 빛을 내뿜었다.

    굵은 빛기둥들이 괴뢰 머리 위의 원탑에서 솟구쳐 다채로운 빛깔의 보호막을 이루고 본섬을 뒤덮었다.

    거의 백여 명의 십방루 수사들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보호막에 부딪혔다. 서둘러 보호막이나 방어 법보를 불러낸 진선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재로 변해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갑작스레 출현한 두 번째 보호막에 기세등등하던 십방루 수사들도 조심스럽게 흩어지려 했다.

    바로 그 순간 백봉의의 명령이 떨어졌다.

    “공격!”

    섬에서 무수히 많은 인영이 날아올라 화려한 색채의 보호막을 따라 십방루 수사들을 노리고 쇄도했다.

    수백 척의 기관 선박도 검은 전함을 향해 쏘아져 나가고 본섬의 요충지는 수사들과 요수 괴뢰들이 단단히 지키고 서서 적의 침입을 경계했다.

    “먼저 가보마!”

    운예가 백봉의에게 한 마디를 남기고 날아올랐다.

    “바깥으로 나가지 말고 이곳을 잘 지켜야 한다.”

    복잡한 시선으로 백소원 등을 바라본 백봉의도 운예를 따라갔다. 고공의 육기 수사 아래쪽에서 거대한 설련화 허상이 나타나 빠르게 접근했다.

    그는 눈썹을 끌어올리며 무표정하게 은색 장검을 불러들여 단단히 쥐었다.

    “와라.”

    육기의 신영이 허공을 박차고 번득 사라졌다.

    채채채채채챙!

    날아들던 설련화 허상은 검빛과 부딪쳐 결렬하게 흔들렸다.

    “혈한 도형, 섬에서 뵙겠습니다!”

    전함에 서 있던 중란이라는 거한이 검은 장도를 불러내 들고 가장 가까운 섬의 거대 괴뢰 위로 훌쩍 뛰어내렸다.

    “하하, 금방 끝날 줄 알았다니까.”

    이에 흉터 사내는 웃음을 흘리며 소매 속에서 손바닥만 한 금색 고리를 날려 보내 언덕 크기의 거대 고리로 변화시켰다.

    허상 같기도 하고 진짜 같기도 한 금빛 줄기가 넘실거리는 고리에서 간담이 서늘해질 만한 강력한 법칙 파동이 전해졌다.

    고리 아래쪽 허공이 무형의 압력에 주변과 단절되면서 상응하는 다채로운 빛깔의 보호막이 움푹 들어갔다.

    “비켜!”

    흉터 사내의 일갈에 움푹 들어간 외곽선을 따라 보호막이 붕괴하려 했다.

    깡!

    그 순간 섬에서 남색 빛이 날아들어 금색 고리를 강타했다. 고리가 비틀거리며 노란빛이 흔들리자 가해지는 압력이 줄어들어 보호막이 다시 차올라 원형을 회복했다.

    흉터 사내는 아름다운 용모의 궁장 여인이 남색 선검을 들고 날아드는 것을 보았다. 그 옆에는 회백색 도포를 걸친 청년 도사가 함께였다.

    허리에 은색 호리병박을 달고 손에는 금색 불진을 든 잘생긴 청년은 고계 꼭두각시였다.

    “흐흐흐, 위선뢰라!”

    혀로 입술을 축인 흉터 사내는 금색 고리를 불러들여 손목에 차고 직접 몸을 날렸다. 동시에 십방루 수사들이 흩어져 다색(多色) 보호막이 아닌 섬 외곽으로 날아갔다.

    다색 보호막이 본섬 주위의 거대 괴뢰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을 부순 다음에 본섬을 공략할 작정이었다.

    이에 성괴문 수사들도 수십 개의 무리로 갈라져 십방루 수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주위에 둔광과 함성이 난무했다.

    십방루 수사들은 산수들답게 사용하는 수단도 천태만상이었다.

    서북 방향에는 누군가 영수대를 열어 기이하게 생긴 거대 요수 수십 마리를 불러내 성괴문 수사들이 조종하는 괴뢰 대군과 치열한 육박전을 벌였고, 동남 방향에서는 누군가 이백여 개의 새까만 깃발을 날려 뼈를 녹이는 검은 음풍(陰風)으로 수행이 낮은 성괴문 제자들을 백골로 만들었다.

    서남쪽에서는 누군가 백골 함을 열어 검은 무늬가 있는 금색 벌떼를 불러내기도 했다.

    성괴문 수사들은 그런 흉흉한 공격을 막으면서도 죽음을 불사하고 종문을 지키겠다는 의지와 대량의 괴뢰 대군의 보조로 아직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었다.

    사실 인원수로는 그들이 십방루를 초월하기도 했다.

    고공에서는 진열을 갖춘 검은 전함들이 표면의 금색 문양을 번득이면서 선박 아래 구멍에서 금색 장창을 쏟아냈고 진작 떠오른 성괴문 측 기관 선박 수백 척도 동시에 밝은 빛을 머금고 맷돌 크기의 붉은 화염 덩어리를 분사했다.

    쿠쾅쾅쾅!

    금색 장창과 붉은 화염 덩어리가 충돌해서 귀청을 때리는 폭음이 울려 퍼졌다. 위쪽에서는 금빛과 붉은 불똥이 사방으로 튀고 아래쪽에서 죽고 죽이는 아비규환이 펼쳐지고 있었다.

    전선에 참가하지 않은 십방루 수사들은 진선경 수사들의 명을 따라 거대 괴뢰 여덟 마리에게 접근해 진법을 와해하기 위한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섬 밖 서남쪽의 무사 괴뢰에는 원탑을 지키던 백여 명의 수사들이 긴장한 얼굴로 단단히 금창이나 부적을 쥐고 고공을 주시했다.

    바로 한립과 인구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었다.

    “옵니다! 인원은 대략 2백여 명에 진선경 수사가 셋이고, 나머지는 대승기 이하의 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진선 세 명은 저와 수사가 맡고, 나머지는 성괴문 제자들이 알아서 해결하게 하지요.”

    인구가 빛나는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고 한립도 간결히 답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말을 마친 두 사람은 폭발적으로 십방루 수사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어서 수사들의 주문 외우는 소리와 함께 무사 괴뢰 머리 위로 부적들이 날아올라 반짝이는 문양으로 변했다.

    성괴문 제자들도 그들을 따라 출격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