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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13화 (1,370/2,000)

1613화. 3년

*

몇 달 뒤, 명한대륙 동남쪽 짙은 남색 해역.

초승달 형태의 선박이 향하는 곳에는 수평선과 하늘이 맞닿는 곳에 잿빛 그림자가 있었다. 다가갈수록 잿빛 그림자는 진면목을 드러냈다.

거대한 타원형 섬은 온통 바위투성이라서 나무는 몇 그루 되지 않았고, 먼 거리를 두고 돌로 된 건축물들이 가득했다.

일고여덟 개의 작은 섬들이 중앙의 거대섬을 둘러싸고 병사처럼 지키고 있었다. 섬 외곽에 도착한 초승달 선박 위에서 한립이 좌현에 서서 두 눈에 남색빛을 머금었다.

주변 섬들을 포함해 섬 전역을 거의 투명한 반구형 보호막이 뒤덮고 그 위로 파문이 일고 있었다.

진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보면 연안을 따라 바위들이 대충 쌓여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섬을 보호하는 거대한 진법 토대를 이루고 주변 섬들은 중요한 진법 주축이 되었다.

시선을 돌려 가장 가까이 있는 작은 섬을 보니 중앙의 원형 탑 주위로 널찍한 길들이 서로 교차하며 펼쳐져 한 폭의 진법 도안을 형성했다.

웅!

섬에서 격렬한 진동이 일고, 선박의 수사들이 경계심 어린 시선으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한립은 맑았던 바닷물이 갑자기 격해진 파도 때문에 혼탁해진 것을 발견했다.

작은 섬이 갈라지면서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쿠쿵.

그리고 섬 면적과 맞먹는 구역이 천천히 떠올라 옆으로 이동해 그 아래 공간을 노출했다. 섬 면적이 보는 것보다 넓어지고, 허공으로 떠오른 구역은 3층으로 나뉘기까지 했다.

회갈색의 칙칙한 마지막 층과 달리 아래 두 층은 녹음이 푸르고 경치가 아름다웠다.

숲이 곳곳에 있는 가운데 3층에서 1층으로 강이 폭포처럼 이어져서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선박에 탄 수사들도 그 광경을 보고서는 감탄하는 기색이 어렸다.

웅!

이때 섬 상공 보호막이 갈라지면서 딱 선박이 통과할만한 입구가 열렸다. 초승달 선박은 금제를 통과해서 섬 1층의 백석 광장으로 내려갔다.

수사들이 내리고 인삼이 손을 저어 선박을 회수했다.

광장에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남색 궁장 차림의 여인을 선두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체구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몸매를 지닌 남색 궁장 여인은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있는데도 얼굴선이 고와서 감춰진 얼굴을 상상하게 했다.

한립은 그녀를 아래위로 훑고는 상대가 진선경 후기에 이른지 오래된 수사임을 알아보았다. 그녀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진선경 초기 수사가 대부분이었다.

다들 겉보기에는 차분해도 눈빛에서 초조하거나 걱정스러운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쉬시면서 상세한 설명을 들으시지요.”

궁장여인은 배에서 내린 무상맹 수사들을 향해 인사를 했고, 인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궁장 여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광장 주변에 둥그렇거나 네모난 회백색 돌기둥들이 많았다.

각종 주술문자와 기이한 선들이 새겨진 돌기둥에도 복잡한 진법 문양이 가득했다.

숲속의 고풍스러운 건축물에서도 한립은 진법 파동을 감지했다. 괴뢰술에 정통한 이들은 대부분 진법에도 능했기에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도 하계에 있을 때는 괴뢰술에 대해 연구를 해왔었는데 북한선역에 이르러서는 공사가 다망해서 아직까지 제대로 발을 들이지 못했다.

마침 북한선역에서 명성이 자자한 성괴문에 왔으니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해 해 도인을 위해 적당한 육체를 만들어 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려면 성괴문을 도와 고난을 극복해야 할 텐데 침략할 적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무리는 광장을 따라 걷다가 예스러워 보이는 주홍색 대전 앞에 도착했다.

그동안 궁장여인은 몇 번이나 슬쩍 고개를 돌려 티 안 나게 토끼 가면을 쓴 백소원을 살폈다.

대전 안으로 들어간 궁장 여인은 인삼과 함께 안쪽 상석 좌우에 앉았고 성괴문 장로들과 무상맹의 다른 수사들은 양측으로 나뉘어 자리를 잡았다.

문 앞에서 대기하던 시종들이 들어와 그들을 위해 차를 내주자 초록빛의 맑은 찻물에서 하얀 김이 올라와 대전을 편안한 차향으로 감쌌다.

찻잔 안에서 녹색 이파리 하나가 펴지면서 농염한 영기를 발산하는 것을 보자 한립은 시중드는 시종을 살폈다.

찻주전자를 든 손에 희미하게 금색 문양이 들어간 시종은 행동이 자연스럽고 용모와 기운도 저계 수사와 비슷하지만, 사람이 아니라 꼭두각시였다.

이것만으로도 성괴문이 괴뢰술에서 독보적인 경지에 이른 것을 알 수 있었다.

“먼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성괴문의 부문주로 이번 방어작전도 제가 맡고 있지요. 여러분께서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셔서 강적을 물리치게 된다면 후한 보수가 있을 것입니다.”

궁장여인이 말문을 뗐다.

“우리도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할 일은 하고 갈 걸세. 그보다 성괴문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적은 누구인지, 언제 얼마나 쳐들어올지가 궁금하군.”

인삼은 손을 저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저도 정말 언제 누가 침략할지 잘 알지 못합니다.”

궁장여인은 머뭇거리다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우리더러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싸우라는 말인지요!”

“아니, 언제 적이 들이닥칠지도 모르면 영원히 이곳에서 기다리기라도 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당장 무상맹 수사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적이 누군지도 모르고 성괴문을 지키는 임무를 수락한 것부터 고액의 보수 때문에 위험을 감수한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지만 일단 임무의 난도와 위험을 알게 되면 배상을 해서라도 빠져나갈 심산을 하고 이곳에 온 수사들이었다.

인구도 인삼의 반응을 살폈고, 겉으로는 무표정한 한립조차도 내심 어이가 없었다.

출발 전 성괴문의 내력과 세력을 조사한 결과 이번에 위협이 되는 적은 금선 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준비한 신통으로 달아날 자신이 있었기에 차분하게 상황을 주시했다.

“다들 소란을 피우지는 말게. 이왕 임무를 수락했으면 모두 한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일세. 그러니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할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당연히 그냥 돌아가고 싶다면 맹의 규정대로 약속된 보수의 3배에 상당하는 선령석을 배상하면 막지는 않겠네.”

인삼의 느긋한 말에 노기가 가득하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부문주, 우리가 보수를 받고 성괴문을 도우러 왔다지만 대세를 완전히 뒤엎을 정도의 전력은 아닐세. 적의 정체도 모르고 있다면 만반의 준비를 해두고 있는 것이겠지?”

인삼은 무상맹 수사들이 조용해지자 고개를 돌려 궁장 여인에게 물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본문도 얼마 전 믿을 만한 경로를 통해 누군가 성괴문을 노리고 전력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전부라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문주께서는 다른 대륙에 있어 제때 돌아오시기 어렵기에 막대한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여러분을 모신 것이고요.

임무에 명시했듯이 본문이 이번 난관을 벗어나게만 도와주시면 임무는 완수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기한은 3년으로 그동안 본문에서 수련하시다가 만일 적이 쳐들어오지 않으면 약속된 보수를 받아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궁장여인이 가볍게 탄식하며 사정을 설명했다. 인구와 다른 무상맹 수사들도 이해할 만한 조건이었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본종은 아무나 함부로 건들 수 없는 곳입니다. 어째서 공격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각종 거대 금제 진법과 수없이 많은 기관괴뢰들이 침입자들에게는 쓴맛을 보여줄 것입니다. 다만, 혹시 모를 위기에 대비해서 핵심제자 일부는 본종을 떠나있게 하였으니 이곳에 남아 성괴문과 존망(存亡)을 함께할 이들은 대략 3천여 명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궁장여인의 연이은 설명에 한립도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섬에 수사들이 얼마 없는 것을 이상하다 여겼는데 핵심제자들을 대피시킨 후였다.

“그 3천여 명 중에 진선경 수사는 몇 명이나 되는 것입니까?”

인구가 물었다.

“30명은 됩니다. 이곳에 모인 장로들 외에 섬의 요충지를 담당하거나 비술과 괴뢰 제련을 맡은 장로들이 더 있습니다.”

성괴문이 거대 종문도 아니고 금선 경 문주와 30명의 진선경 장로가 포진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무상맹 수사까지 거의 50명의 진선경 수사들이 있다는 말이군. 이 전력에 섬의 방어 금제가 더해지면 다른 대형 종문이 침략한다고 해도 버텨볼 만은 하겠어.”

말없이 듣고 있던 인삼이 긍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녀의 말 몇 마디가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정심환(定心丸)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상맹 회원들은 무척 안심되었다.

“이제 임무의 기한은 3년으로 명확해졌네. 지금이라도 임무에서 빠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서게.”

인삼이 둘러보자 작게 웅성거리던 이들이 조용해졌다.

다들 영석이 급해 거액의 보상을 노리고 몰려온 자들이었는데 세 배나 물어주고 그냥 떠날 리 없었다.

“좋군. 준비가 다 되어 있다면, 우리는 뭘 하면 되지?”

인삼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궁장여인에게 물었다.

“내문 장로들은 주로 본섬 방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바깥의 여덟 섬을 지킬 인원이 부족하니 무상맹 수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궁장여인의 대답에 무상맹 쪽 수사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인원이 부족하다면 본섬에 역량을 집중하고 외곽 섬들은 내버려 두어도 될 것 같은데요? 풍파가 지나고 나서 다시 관리하면 되지 않습니까?”

인구가 대표로 의아함을 드러냈다.

전력이 집중된 본섬이 아니라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될만한 주변 섬에 무상맹 수사들을 배치하려는 것에 의심이 든 것이다.

“여덟 섬은 그 자체로 진법을 이루어 본섬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방어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곳만 뚫리지 않으면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여러분의 실력에 섬에 설치된 진법과 기관의 보조가 있으면 능히 강적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총 16명인데 어떻게 배치하겠는가?”

궁장여인이 해명하자 인삼이 구체적인 방안을 물었다.

“여덟 섬 중 한 곳만 진선경 장로 두 명이 머물고 있습니다. 나머지 일곱 곳에 도움이 필요한데 어떻게 배치하실 지는 인삼 수사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둘씩 한 조를 이루어 섬을 하나씩 맡지. 나와 인십일은 본섬에 머물겠네.”

“예!”

인삼의 분부에 수사들이 뜸 들이지 않고 답했다. 함께 대답한 한립은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삼이 백소원을 안전한 본섬에 남긴 것은 분명히 보살피기 위해서였다. 설마 백소원의 정체와 수행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인삼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하나 떠올랐다.

이때, 그의 머릿속에 익숙한 목소리, 웅산의 전음이 들려왔다.

“교십오 수사, 우리 둘이서 한 조를 이루는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물론 좋습니다.”

상대의 수행을 아는 한립은 한 조가 되자는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반각 만에 대전 안의 회원들은 두 명씩 짝을 이뤄 성괴문 장로를 따라 날아올랐다.

“교십오 수사, 우리도 출발합시다.”

인구가 먼저 걸어가면서 한립을 불렀고, 그들은 하얀 수염 노인의 안내를 받아 남서쪽으로 날아갔다.

* * *

잠시 후, 세 사람은 동그란 섬에 도착해 아래로 내려갔다.

둘레가 몇 백 리에 불과한 작은 섬에는 야트막한 산 몇 개와 작은 호수 외에는 별다를 것이 없이 꽤 황량했다.

산과 호수 주변에 드문드문 주홍색 건물들이 분포했고, 섬 중앙 구역은 울퉁불퉁하게 고랑이 파여서 하얀 원탑을 가운데 두고 연결되어 있었다.

흰 수염 노인은 한립과 인구를 데리고 원탑 앞으로 갔다.

탑 주변에는 백여 명의 수사들이 세 무리로 나뉘어서 순찰했고, 흰수염 노인을 보자 예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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