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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602화 (1,359/2,000)

1602화. 부산(浮山)의 이변

*

한립은 어른거리는 금빛을 보며 연신술을 발동해서 방대한 의식을 72자루의 비검에 불어넣어 전력으로 청죽봉운검을 조종했다.

웅!

그러자 비검들은 몸을 떨며 감쪽같이 금빛 뇌전들을 흡수했다. 불구덩이의 진법에서 쏘아져 나오던 금색 빛기둥이 소실되며 이제 불길 속에 뜬 비검들 밖에 남지 않았다.

원영의 불길마저 체내로 돌려놓은 한립은 화염의 온도가 내려가자 청죽봉운검의 색깔이 다시 비취색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별처럼 금빛이 콕콕 박힌 금신에는 뇌운(雷雲) 모양의 금색 문양들이 자연스럽게 새겨져 있어 이전보다 고풍스러운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손끝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그어 금색 핏물을 불러낸 한립은 72자루의 비검에 흡수시켰다.

* * *

반년 후에 부산 밖의 푸른 진법을 풀고 저택에서 나온 한립은 기분이 아주 유쾌했다.

새롭게 제련을 마친 청죽봉운검은 기운과 외양이 달라졌고, 남아 있던 검원 불순물도 제거해서 화근을 없앨 수 있었다.

게다가 정혈을 더 주입하자 비검들과 의식 감응이 더 긴밀해졌다. 이제 72자루 비검은 그냥 법보가 아니라 친족과 같은 끈끈한 관계가 형성된 보물이었다.

광장에는 호침 등이 진작부터 기다리고 서 있다가 비경의 여러 일에 대해 보고를 했다

한립은 그들에게 약간의 영석을 상으로 내리고 촉룡도 소식에 대해서도 지나가는 말로 물었지만, 이곳에 남은 그들이 바깥소식을 잘 알 리 없었다.

몇 년 후에야 우연히 무상맹을 통해 고걸이 무상맹 고위층에 의해 쫓겨난 사실을 전해들은 그는 안심하고 거처가 있는 부산을 봉쇄했다.

* * *

세월이 흘러 2백 년 후.

비경의 푸른 금제로 봉쇄된 부산 밖에서 7명의 촉룡도 수사가 초조한 얼굴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호 사형,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대협곡의 안개가 용솟음쳐도 이전에는 한 달 정도면 물러가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벌써 석 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안개가 퍼지게 두었다가는 큰일이 날지도 모르겠어요.”

동그란 얼굴의 청년이 호침이라는 새까만 청년에게 답을 구했다.

“려 장로님께서 폐관에 들어가시기 전에 아주 중요한 일로 폐관수련을 하는 것이니 웬만한 일로는 방해하지 말라 하셨네. 이럴 때 소식을 전했다가 장로님의 수련에 영향을 미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라는 것인가?”

“하지만 벌써 백 년째입니다. 언제 나오실지도 모르는데 대협곡의 이상이 영약 수확에 영향을 끼치기라도 하면 보고를 드리지 않은 벌이 내려질지도 모르지요.”

주위 수사들도 동그란 얼굴 청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호침은 두 번 세 번 다시 생각을 해보고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보고를 드리기는 어렵네. 대협곡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 해결을 하지. 모두 대협곡 안개에서 눈을 떼지 말고 백귀들이 대량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으면서 상황을 지켜보세. 그러다가 정 안 되겠으면 어쩔 수 없이 려 장로님께 말씀드리도록 하지.”

“그러는 수밖에 없겠군요.”

동그란 얼굴 청년이 안색이 확 달라져서 푸른 금제로 뒤덮인 부산 정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광풍과 함께 고공에 잿빛 구름이 밀려들어 하늘의 색깔이 바뀌고 있었다.

넓게 펼쳐진 구름 속에서 오색 빛이 반짝이는 것이 퍽 신비했다.

“려 장로님의 수련에 성과가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일까요?”

“그럴지도…….”

동그란 얼굴 청년과 새까만 청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름 속에서 오색 천지원기가 응집해 산봉우리로 떨어져 내렸다.

무형의 압력이 내려앉아 촉룡도 수사들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윙윙!

바로 이때 아래쪽 심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문제가 생긴 것 같네! 어서 가보세!”

새까만 청년을 선두로 동그란 얼굴 청년과 수사들은 둔광을 일으켜 대협곡 쪽으로 날아갔다.

수백 개의 부산 봉우리에서 이상을 감지한 촉룡도 수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거의 천여 명에 이르는 수사 대군이 형성되었다.

연허기 최고봉인 일곱 사람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부분이 연허 초기 수사였다. 못해도 수백 년은 이곳에 주둔해온 수사들로 윙윙거리는 소리가 안개가 용솟음칠 징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십여 개의 산봉우리가 안개에 둘러싸여서 그곳에서 자라던 진귀한 영약들이 백귀들에게 전부 뜯어 먹힌 적도 있다고 했다.

천 리 정도 하강한 새까만 청년 무리는 먹구름처럼 짙게 뭉친 안개를 발견했다.

평소에는 안개의 범위에 있지 않은 산봉우리들이 대부분 안개에 잠식당했고, 그 안에서 대량의 그림자들이 으르렁거리면서 활동하는 중이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나 사제, 려 장로님께서 주신 전신부는 잘 지니고 있겠지? 산봉우리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가 버티지 못할 것 같을 때 부적을 발동해 연락을 취해주게.”

미간에 주름이 깊게 잡힌 호침이 빠르게 분부를 내렸다.

“알겠습니다.”

“려 장로님의 수련이 중요한 시점이니까 우리가 격퇴하기 전에는 절대 함부로 부적을 발동해선 안 되네.”

“꼭 그리하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사형.”

동그란 얼굴 청년 나당이 진지하게 답했다.

“수사들은 명을 들으라! 즉시 청광절공진(淸光絶空陣)을 펼친다.”

걱정스런 기색으로 몸을 돌린 호침이 우렁차게 명을 내렸다.

“예!”

수사들은 힘차게 대답하며 연허기 최고봉 수사들을 따라 수백 명씩 뭉쳐 안개 곳곳으로 흩어졌다.

수사들은 수없이 훈련한 대로 능숙하게 푸른 깃발을 꺼내 허공에 자리를 잡고 다 같이 주문을 외웠다.

우웅!

주술문자에서 푸른빛을 반짝인 깃발들이 안개 위쪽에 거대한 빛의 장막을 드리웠다. 대협곡 안의 안개들은 끓어 넘치기라도 하듯 미친 듯이 솟구쳐서 순식간에 푸른빛의 장막과 충돌했다.

철썩철썩…….

마치 광풍에 파도가 몰아치듯 밀려드는 안개에 빛의 장막이 휘청거렸다. 두 손으로 거대 깃발을 쥔 촉룡도 수사들은 온몸에서 밝은 빛을 발산하며 최선을 다해 진법을 유지했다.

수행이 약한 수사들은 벌써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때, 안개 속에서 사람 형상의 그림자들이 튀어 올라 푸른 장막에 쿵쿵쿵! 몸을 부딪쳤다. 장막 너머로 추악한 얼굴을 한 백귀들이 미친 듯이 부산을 향해 뛰어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머리가 터지고 몸이 부서져도 몸을 날리는 백귀들의 얼굴에는 광기가 어려 있었다.

“으……. 갑자기 왜 저런단 말인가.”

위에서 그걸 지켜보는 수사들의 안색이 어두워져 갔다.

후아앙!

그 와중에도 고공의 회색 구름은 울긋불긋하게 물들어서 한가운데 생겨난 구멍에서 눈부신 금빛을 방출해 부산 정상을 내리쬐고 있었다.

녹음이 푸르던 산봉우리가 금빛으로 물들어 요란하게 반짝거렸다.

밀실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던 한립은 금색 조각상처럼 변해있었고, 가슴과 배에는 11개의 금빛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그 옆으로 이제 막 주먹 크기의 금색 소용돌이가 발생해 점점 응축되는 중이었다.

콰릉!

고공에서 천둥소리가 울리고 하늘을 뒤덮은 울긋불긋한 구름이 요동쳤다. 안정적으로 방출되던 금색 빛기둥이 소용돌이치면서 회오리 기둥으로 변해갔다.

컥!

부산 전체에 폭발적으로 기이한 파동이 퍼져 나가 근방에서 지키고 서 있던 동그란 얼굴의 청년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울컥 피를 토해야 했다.

그러나 청년은 입가의 피를 닦으며 손에 부적을 꽉 쥐고 아래쪽 대협곡 심연과 산 정상을 번갈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동부 밀실 안.

불현듯 눈을 뜬 한립의 몸에서 금색 소용돌이가 엄청난 흡인력을 발휘해 농염한 천기원기를 빨아들였다.

휘이이잉.

강줄기라도 빨아들일 기세로 소용돌이가 응축되어 열두 번째 선규로 거듭났다. 산봉우리 바깥에서 산정상으로 흘러드는 금빛 강을 본 동그란 얼굴 청년은 말문이 막혔다.

“려 장로님…….”

운 좋게 선인이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엄청난 천기 현상을 동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감탄을 터트릴 때 협곡 쪽에서 굉음과 참혹한 비명이 들려왔다. 청년이 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산봉우리들이 막아서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지! 안 좋게 흘러가고 있는 건가?’

부적을 쥔 손은 중압감에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청년은 결국 이를 악물고 부적에 법력을 주입했고 그의 손에서 푸른빛으로 변한 부적은 순식간에 한립 동부 방향으로 사라졌다.

동그란 얼굴 청년은 즉시 몸을 돌려 대협곡 쪽으로 하강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 대협곡 안은 이미 혼잡 그 자체였다.

촉룡도 수사들이 펼친 푸른 빛의 장막은 드문드문 깨져서 일부 구역만 간신히 버티고 있었고, 뚫린 곳으로 새어 나온 안개가 더 많은 산봉우리를 잡아먹고 있었다.

호침은 수사들을 이끌고 위쪽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나당, 려 장로님께 알린 것인가?”

“알렸습니다만, 한눈에 보기에도 수련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시점이라 언제 출관을 하실 수 있을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무거운 표정의 호침의 질문에 동그란 얼굴 청년이 빠르게 답했다.

“근 만 년 동안 대협곡이 이랬던 적은 없었네! 비경 안에 진선경 장로라고는 려 장로님뿐이신데, 빨리 나와 주시지 않으면 어찌 될지…….”

호침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크릉! 크르릉!

촉룡도 수사들은 이전과 달리 안개에 몸을 숨기지 않고 울부짖으면서 심연에서 튀어나오는 백귀들을 향해 분분히 법술 공격을 날려댔다.

대협곡이 다양한 색깔의 빛으로 뒤덮여 검기, 화염, 얼음창 등 온갖 종류의 공격들이 백귀들을 참살했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안개를 벗어난 백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피부가 검게 변해 호흡이 되지 않는지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심연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백귀들은 여전히 미치광이들처럼 끊임없이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뭐, 뭔가 이상합니다.”

“내 생각에는……. 백귀들도 뭔가를 피해 달아나고 있는 것 같은데…….”

동그란 얼굴 청년의 말에 호침이 두려운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키에엑!

그때 야수가 울부짖는 듯한 이질적인 소리가 아주 멀리서 전해왔다.

짙은 안개 속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시뻘건 입으로 백귀 십여 마리를 삼키고 사라진 후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두 개의 검은 그림자들이 백귀들을 물고 심연으로 돌아갔다.

그 속도가 너무 빠르고 안개가 짙어서 동그란 얼굴 청년은 괴물의 그림자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저게 대체 무엇입니까!”

겁에 질린 동그란 얼굴 청년의 외침에 호침이 자기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쩝니까? 이렇게 계속 물러나다가 올해 수확할 영약들을 전부 망치면 종문에서도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텐데요.”

“……그냥 달아날 수만은 없지! 우선은 백귀들은 놔두고 집중적으로 안개 속의 괴물을 상대한다. 수사들은 명을 들으라! 속히 모여 전투를 준비한다.”

호침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려 장로의 험담을 하면서 속으로는 이를 악물고 두려움을 숨겼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촉룡도 수사들이 명이 떨어지자 둔광으로 변해 모여들었다.

“만종검진(万宗劍陣)을 펼쳐라!”

호침의 호령에 비검술을 수련한 수사들이 일사불란하게 검결을 맺고 비검을 방출했다. 비검에 능하지 않은 수사들은 손바닥을 펼쳐 자신의 법력을 검진 속으로 주입해주었다.

만종검진은 촉룡도의 기본적인 검진으로 충분한 비검이 모이면 상호작용 속에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지검 천여 자루가 떠올라 영롱한 빛을 머금고 웅웅 울어댔다.

그 웅장한 광경에 호침도 혹시 검진으로 안개 속 괴물을 죽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쳐라!”

차르르르륵!

천여 자루의 검들이 봇물 터지듯 안개 속으로 쏟아져 들어가 안개 속에서 탈출하려던 수많은 백귀의 목숨을 앗아갔다.

크오오오!

하늘이 찢길 듯한 사나운 포효소리와 함께 짙은 안개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솟구쳐 비검들을 집어삼켰다.

채채챙챙챙.

무질서하게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검들이 통제를 잃고 안개 속에서 비틀거렸다. 심한 경우 비검이 부서져 법보를 조종하던 수사가 큰 충격을 받고 피를 토하는 일이 속출했다.

스으윽.

안개 속에서 커다란 검은 뱀 머리 9개가 쑥 튀어나와 어두운 금색의 뱀눈으로 스산하게 수사들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을 마주치자 호침과 수사들은 압도적인 기운에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전의를 상실했다. 지금 그들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우, 우린 다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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