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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597화 (1,354/2,000)

1597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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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선원석 외에도 따로 단약을 복용해 가며 기운을 북돋았지만 삼원대직번을 발동하기 위해 소모되는 선령력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흥, 어디 얼마나 버티나 보자!”

금선 화신은 냉소하며 갑자기 수결을 바꾸어 아래의 나무 거인을 가리켰다.

우뚝 멈춰선 나무 거인은 땅속으로 두 발이 쑥 가라앉아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 나무로 돌아갔다.

녹색빛을 요란하게 반짝인 거목의 가지에서 이파리들이 부풀어 오르고 사이사이에 붉은 꽃봉오리가 맺혔다.

파앗!

동시에 꽃망울을 터트린 꽃들 속에서 연홍색 꽃가루가 날아올라 삼색 보호막을 뒤덮었다.

꽃가루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다가와 마치 아무것도 없다는 듯 보호막을 투과했다.

“뭐, 뭐야!”

보호막 안 세 사람의 안색이 확 달라진 순간, 한립은 의식을 방출했다. 머리가 무거워지고 술에 취한 듯 몽롱해진 그는 순간적으로 선령력 마저 운용을 멈추었다.

하지만 바로 방대한 의식을 이용해 정신을 차린 그가 소리를 높였다.

“정신 차리세요! 의식공격입니다.”

동시에 단전 안의 원영이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청량한 기운을 경맥으로 흘려보냈다.

“수전(水轉), 지감(地撼), 천진(天震)!”

그 소릴 들은 인구가 급히 주문을 외웠고, 한립과 인십칠도 보호막 속으로 침투한 붉은 안개를 무시하고 수결을 바꾸었다.

우웅!

삼색 보호막에서 두 번째 층에 위치하던 검은 빛이 표면으로 떠오르고 은빛이 그다음 그리고 금빛이 마지막이었다.

변화를 마친 보호막은 은은한 파랑을 일으켜 붉은 안개를 완전히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보호막 안은 벌써 붉은 안개로 자욱했지만!

한립은 천천히 연신결을 운용해 작은 백옥 종을 불러내 머리 위에 띄웠다. 그러자 머리가 맑아지면서 붉은 안개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게 되었다.

인구도 한립의 충고를 듣고 보호막을 변화시킨 동시에 자신의 뒤통수를 쳐서 하얀 자물쇠를 떠오르게 했다.

자물쇠에서 퍼져 나온 보광이 둘러싸자 그의 눈빛이 한결 맑아졌다. 인십칠은 아예 노란 비단이 몸 주위를 돌면서 붉은 안개를 밀어내고 있었다.

각자 붉은 안개 공격에 대항하고 있었으나 안 그래도 깃발을 발동하느라 선령력 소모가 적지 않았던 그들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갔다.

이대로는 그들도 오래 버틸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 모습에 금선 화신이 얼마나 놀라고 있는지 그들은 전혀 몰랐다.

금선은 저것들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는데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

“……원기를 크게 상하더라도 네놈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야 말겠다.”

형형하게 눈을 빛낸 금선 화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주문을 외면서 두 손으로 기괴한 수결을 맺었다.

화르륵!

갑자기 거목에 맺힌 꽃송이들이 푸른 화염에 휩싸여서는 불길이 거목 전체로 번졌다. 강렬한 법칙 파동을 내뿜는 푸른 화염이 거세질수록 금선 화신의 신형은 투명하게 변했다.

쿠쿠쿠!

불길에 휩싸인 거목이 그대로 한립 무리를 향해 쓰러지고 있었다. 무형의 압력이 공기를 짓눌러서 보호막 안의 세 사람은 숨이 콱콱 막힐 지경이었다.

“안 돼!”

인구가 급히 정혈을 뿜어 금색 깃발에 흡수시켰고, 한립과 인십칠도 즉시 정혈을 뱉은 후 남은 선령력을 모조리 삼원대직번에 불어넣었다.

각각의 깃발들이 금빛, 은빛, 검은빛의 벽으로 변해 앞을 막았다.

이어서 한립은 중수진륜을 불러내 급속도로 회전하게 했고, 인구와 인십칠도 보물들을 불러내 겹겹이 보호막을 쳤다.

쿠콰아앙!

그 순간 푸른 화염에 휩싸인 거목이 부딪쳐 왔다. 눈부신 푸른빛이 세 사람을 뒤덮고 폭발했다. 주변 허공은 웅웅 일그러져 찢겨나갔고 맹렬한 푸른 돌풍이 퍼져 나갔다.

쉬쉬쉭!

그 순간, 푸른빛 속에서 세 사람이 튀어나왔다.

의복이 찢기고 온몸이 상처투성인 꼴로 그들은 만면에 희색이 가득했다. 고공의 금선 화신은 너무 투명하게 변해서 흩어지기 직전 같았다.

“오늘은 네놈들의 운이 좋았구나! 허나 기억해라, 나 북한선궁 고걸이 직접 너희 셋을 잡아다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란 것을!”

금선 화신은 서서히 흩어지면서도 섬뜩하게 냉소를 흘렸다.

팟!

화신이 사라진 자리에는 금색 부적만이 남아 재로 변했다.

“고걸……. 흠, 위기는 넘겼습니다만 북한선궁의 금선 장로를 건드렸으니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눈빛이 흔들린 인구가 중얼거렸다.

“휴, 화신도 상대하기가 이렇게 힘든데 본인을 만나면 그날이 제삿날이 되겠지요!”

생각만 해도 두려운지 인십칠도 한숨을 내쉬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후회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속히 이곳을 떠나시지요.”

침묵하고 있던 한립의 말에 인구와 인십칠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립이 단약을 꺼내 삼키자 차차 안색이 돌아왔다.

옆에 있는 중수진륜도 방금 전 공격으로 손상이 가서 빛이 어둑해져 있었다. 돌아가는 대로 제대로 손을 봐야 했다.

커다란 깃발들을 거둔 인구도 마지막 일격에 보물이 상하자 무척 속이 쓰려 했다.

물론 중상을 입고 원기를 크게 상한 데다 본명법보나 다름없는 인장마저 금선 화신의 법칙의 힘에 당한 인십칠의 피해가 가장 컸다.

세 사람은 다시 골짜기 안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골짜기는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골짜기를 둘러싼 산맥 대부분은 거의 평지가 되어 있었고 심심치 않게 거대한 구덩이가 뚫려서 심한 곳은 지하의 용암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후미진 곳에 있는 산맥이었지만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머지않아 주변 세력의 수사들이 나설 것이다. 이후 수십 년간 적잖은 수사들이 이 허허벌판의 설산에 찾아와 기연을 구하게 되겠지만 그건 나중 일이었다.

“일단 금제 진법의 주축을 이루던 두 보물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럼 저는 구뢰목들을 거둘 테니, 골짜기 안쪽은 인십칠 수사께서 맡아주시지요.”

인구와 한립의 말에 인십칠은 토를 달지 않았다. 그들은 의식으로 서로를 감응하면서 빠르게 움직였다.

골짜기 밖으로 나온 한립은 푸른빛을 뿌렸다.

쾅!

바닥에 구멍이 파이고 묻혀 있던 사람 키만 한 금색 나무토막이 드러났다. 뇌전문양의 나이테가 새겨진 목재는 광택이 흘렀고 강렬한 뇌전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금속광물처럼 보이는 목재가 바로 구뢰목이었다. 한립은 그것을 끌어다 자세히 살펴보았다.

경전에서 읽은 바로는 희귀한 뇌전 속성 재료로 단단하고 뇌전의 힘을 지녀서 영보를 제련하기에 좋은 재료라고 했다.

재배하기가 어려운 목재라서 거의 판매가 되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발견하니 반가웠다. 그는 차례로 푸른 빛을 뿜어 땅을 파내고 구뢰목 81개를 찾아냈다.

한립이 목재를 들고 골짜기로 돌아왔을 때 인구와 인십칠은 벌써 두 보물을 띄워놓고 서 있었다.

거검에 속하는 금색 고대 검은 넓적한 도신에 별 문양 7개가 각인되어 있었고 가장자리에 뚫린 문양이 있는 네모난 금색 고대 거울은 뒷면에 호랑이 도안이 새겨져 있었다.

두 보물이 바로 진안 역할을 하던 영보였다. 금속 속성 파동을 퍼트리는 두 보물은 선기는 아니어도 엇비슷한 급의 보물이 확실했다.

인십칠은 금색 화로와 백발노인의 물건이 든 저물탁을 갖고 있었다. 풍부한 수확물을 놓고 두 사람은 웬일인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왜들 그러십니까?”

“직접 보시지요.”

한립의 물음에 인십칠이 굳은 얼굴로 금색 화로를 가리켰다.

‘흐음?’

의식을 방출한 한립은 화로 속에 있는 따듯한 기류가 진법을 만들어 내부를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을 알고는 미간을 좁혔다.

의식의 힘을 더 세게 밀어붙인 그는 그 안에서 제련에 실패해서 절반 이상이 새까맣게 탄 보라색 단약을 발견했다.

‘이건 왠지…….’

펑!

부드럽게 팔목을 돌려 수결을 맺은 한립은 법결을 날려서 화로의 뚜껑을 열고 보라색 단약을 불러들였다.

그걸 본 인구가 가볍게 눈꼬리를 올렸다. 한립이 아무렇지 않게 화로의 금제 진법을 파훼하고 단약을 꺼낸 것이 걸리는 듯했다.

보라색 단약을 든 한립은 아직 타지 않은 부분에 남은 뇌전 모양의 문양과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법칙 파동을 확인했다.

“……도단을 제련하던 것이었군요.”

“그렇습니다, 도단이었어요!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제야 백발노인의 얼굴이 생각나더군요. 이름, 평요자. 북한선궁의 유명한 최상급 지단사입니다. 평소에 외부에 나서지 않아 그의 용모를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지요. 줄곧 천단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만약 성공했다면…….”

인구의 얼굴이 구겨졌고 한립도 마찬가지였다. 각 세력에 천단사가 어떤 의미인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북한선역에서 손꼽히는 대 종문이자 일대의 패자인 촉룡도에도 천단사는 없었으니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평요자가 인구의 추측대로 천단사였다면 북한선궁에서 상상할 수 없는 높은 지위에 있었을 것인데, 그들은 고작 무상맹의 임무를 위해 그를 암살했다.

고걸이 충분히 그들을 잡아 죽이겠다고 맹세할 만한 상황이었다. 도단을 보자마자 바늘방석을 깔고 앉은 것처럼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제 와 고민해 봤자 늦었습니다. 오랜 세월 수련해서 겨우 진선이 된 우리 중에 손에 무고한 피를 묻히지 않은 자가 있기나 하겠습니까?

속세에서도 한 명의 장수가 공명을 쌓기 위해서는 수많은 병사의 목숨을 대가로 한다는데, 대도를 쫓는 우리야 하늘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인구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의지를 다졌다.

“저도 인구 수사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대도가 무정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지요! 운 없는 자는 일찍 흙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법이에요. 넓고 넓은 이 북한선역에 어디 이 한 몸 숨을 곳 없겠습니까! 사정을 알았으니 물건을 나눠 가지고 일찍 헤어집시다.”

“그러시지요.”

고개를 끄덕인 인십칠이 보물로 시선을 돌렸고 한립도 동의했다. 인실칠이 저물탁을 털자 바닥에 한 무더기의 물건들이 쌓였다.

대부분이 영기가 충만하고 광채가 흐르는 귀한 영초와 재료였다. 한립의 시선이 영초 중 하나로 향했다.

옥색의 꽃은 줄기가 용처럼 구불구불하고 줄기를 타고 자라난 이파리는 작고 가늘어서 마치 비늘처럼 보였다.

‘규룡초!’

선약각에서 확인한 춘림단의 주재료 규룡초였다. 바닥에 놓인 규룡초는 열댓 그루는 되었고, 적어도 5만 년 이상 된 것들이었다.

한립은 다른 재료들은 겨우 절반쯤 알아보았지만 다들 규룡초 못지않은 극품 재료인 것이 분명했다. 재료 외에 법보도 예닐곱 개 되고 하얀 옥병 두 개, 보라색 옥함 그리고 선원석도 오륙십 개나 있었다.

진안으로 쓰인 것들보다는 훨씬 못해도 법보들은 품질이 괜찮은 영보급이었고, 옥병은 금제 때문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보라색 옥함도 구불구불한 은색 주술문자가 붙어 있어서 의식을 불어 넣을 수 없었다.

인십칠은 저물탁을 곁의 인구에게 건네면서 물건들을 점검했다. 그런데 인구가 멍한 얼굴로 법보를 보느라 저물탁도 건네받지 않자 인십칠이 헛기침을 해서 주의를 끌었다.

“아, 제가 잠시 정신이 딴 데 있었나 봅니다. 평요자가 이렇게 많은 보물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그제야 저물탁을 받아든 인구가 입을 열었다. 찰나였지만 인구의 묘한 표정을 본 한립은 법보들을 자세히 살폈지만 별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십(十) 자 문양이 새겨진 검은 영패가 약간 이상한 느낌을 줄 뿐이었다.

“엇, 저건 십방루의 영패가 아닙니까! 평요자가 십방루와도 무슨 관련이 있던 걸까요?”

인십칠이 검은 영패를 보고 무척 놀라했다.

‘십방루?’

순간 한립은 영패를 유심히 보았다.

“그가 십방루와 무슨 관계이든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요.”

인구는 담담히 말하고 검사를 마친 저물탁을 한립에게 전달했다. 의식으로 저물탁을 훑은 한립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바닥의 전리품들로 시선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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