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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593화 (1,350/2,000)
  • 1593화. 진입 시도

    *

    “제 방법이 될지 안 될지는 한번 해보면 알 일입니다. 정 불안하시면 옆에서 지켜보시고, 목표를 처리한 다음에 제게 먼저 보물을 선택할 기회를 주셔도 됩니다.”

    “인십칠 수사께서 자신이 있으시다니 그렇게 하시지요. 다만 그 전에 공간 금제 진법을 설치해 골짜기 안에서 눈치채고 목표가 달아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인구가 한립이 대답하기 전에 인십칠의 제안을 수락했다. 세 사람은 세부적인 사항을 논의하고는 각자 두 산봉우리로 흩어져서 금제 진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반나절이 지나 하늘이 어둑해졌을 때 다시 골짜기 입구로 돌아왔고, 인구의 주문 소리와 함께 무형의 파동이 형성되어 주변 천 리를 감쌌다.

    “됐습니다. 공간 금제도 발동했겠다, 마음 놓고 시도해 보시지요.”

    인구의 말에 인십칠이 앞으로 나서서 손가락 사이에 금빛 찬란한 부적을 불러냈다. 그가 그것을 이마에 붙이자 밝은 빛을 머금은 부적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난해한 주문을 왼 인십칠의 몸에서 금색 뇌전들이 튀어나와 치직거렸다.

    쉭!

    신형이 흐릿해진 인십칠은 한 줄기 가느다란 뇌전 빛으로 변해 골짜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팟.

    금제를 뚫으면서 가벼운 파공음을 남긴 인십칠은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무래도 이 방법이 통하려나 봅니다.”

    인구의 눈빛에 기쁨이 어렸지만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고공만을 응시했다. 인구가 뒤늦게 이상을 감지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금빛 뇌전에 휘감긴 신영이 고공에서 수직으로 추락해 설원에 처박힌 후였다.

    콰앙!

    금빛 뇌전이 번득이는 설원에 새까맣게 탄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얼른 그곳으로 다가간 한립과 인구는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인십칠이 새까맣게 탄 우스운 모습으로 땅에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금제가……. 금봉수뢰진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저 금봉수뢰진만은 아니라고 해야 할까요.”

    바닥을 짚고 기어 올라온 인십칠은 품에서 단약을 꺼내 물고 중얼거렸다.

    “이제 이해가 갑니다.”

    한립이 뭔가를 깨닫고 입을 열었다.

    “교십오 수사, 금제의 정체를 알아내신 겁니까?”

    “설토가 진법과 충돌할 때 미세하게 공간 파동을 느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 진법은 일종의 특수한 융합진법인 것 같습니다.”

    눈을 반짝이는 인구의 물음에 한립이 솔직히 답했다. 번득 한립의 옆으로 이동한 인십칠은 어느새 타버린 옷을 갈아입고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는 이전처럼 비꼬는 기색 없이 입을 열었다.

    “저게 금봉수뢰진과 모종의 공간 진법을 융합한 진법일 거란 소립니까?”

    “예, 인십칠 수사는 조금 전 진입에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성공적으로 금봉수뢰진 내부로 들어갔지만, 곧바로 공간 금제에 의해 바깥으로 전송되어 버린 것이지요.”

    “……금봉수뢰진이 뇌전을 응축해서 방출하는 것도 그 공간 금제의 영향을 받아서겠습니다?”

    듣고 있던 인구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그럴 겁니다. 인십칠 수사가 신속하게 움직여서 다행이지, 공간 진법에 어우러진 뇌진의 공격을 받았다면 부상을 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힐끗 인십칠을 본 한립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아무래도 골짜기 내의 인물은 아주 중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나 봅니다. 어떤 방해도 없이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 이런 기괴한 금제 진법을 설치했을 겁니다. 이런 융합진법은 일단 설치하면 외부에서 쉽게 침입할 수 없듯이 안에서도 쉽게 빠져나올 수 없으니까요.”

    한립이 곰곰이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몰래 침입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산봉우리의 진법 주축을 파괴하고 강제로 뚫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침묵하던 인구의 눈빛이 단호해졌다.

    “잠시만요. 제게 아직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 있습니다.”

    “오, 어떤 방법입니까?”

    “제가 공교롭게도 뇌진술을 익혀 먼 거리를 순간 이동하기 위해 공간의 힘과 뇌전의 힘을 결합해 사용해 왔습니다. 진법이 융합한 두 힘과 속성이 같으니 파동을 맞출 수만 있다면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공 가능성을 얼마나 보십니까?”

    “뇌진술은 조정하기가 까다로워 5할 정도 봅니다.”

    인구의 물음에 한립이 성공 확률을 알려주었다.

    “겨우 절반이요? 그럼 나머지 절반의 확률로 우리가 저 뇌전 공격을 맞아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인십칠이 마땅치 않은 얼굴로 말했다. 이런저런 상황을 따져본 인구가 임무의 책임자로서 결정을 내렸다.

    “교십오 수사의 방법대로 해봅시다. 이마저 실패하면 힘을 합쳐 뇌진 공격을 막은 다음 강제로 뚫고 들어가야겠지요.”

    그의 말에 인십칠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를 얻은 한립은 골짜기 입구로 가서 눈을 감고 의식으로 진법의 영력 파동을 관찰했다.

    한참 후 눈을 뜨자 그의 몸에 파칫! 하고 은색 뇌전들이 실처럼 떠올랐다.

    콰릉!

    이어서 뇌전들이 허공에서 교차해 뇌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제게 가까이 붙으시지요.”

    한립의 말에 눈빛이 약간 흔들린 인구와 인십칠이 몇 걸음 다가갔고, 뇌진이 십분의 일로 수축해 그들을 감쌌다.

    “갑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세 사람을 품은 뇌진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거의 동시에 골짜기 입구의 빛의 장막에 손가락 굵기의 금빛 뇌전들이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파치칫!

    골짜기 안 고공에 나타난 은색 뇌전들이 세 사람을 검은 암벽으로 세게 토해냈다.

    급히 발끝으로 암벽을 박찬 한립은 방향을 틀어 지면으로 표표히 내려섰고 인구와 인십칠도 맹렬히 몸을 돌려서 아래로 내려왔다.

    “공간의 힘이 예상보다 거세서 하마터면 뇌진을 통제하지 못할뻔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어쨌든 아무 일 없이 들어왔지 않습니까!”

    한립이 길게 한숨을 내쉬자 인구가 손을 내저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돌멩이 천지인 골짜기 안에는 눈이 전혀 쌓여 있지 않았다.

    골짜기 중앙에 바위를 깎아 만든 검은 석전(石殿)을 제외하면 넓은 공간이 텅 비어있었다.

    뜻밖에도 골짜기 안은 종명산맥 대부분 지역과 비교해도 천지영기가 더 짙었고, 검은 석전 위로 안개가 풀풀 피어올라 오색구름을 형성했다.

    시선을 마주친 세 사람이 바람처럼 석전을 향해 쇄도했다.

    이때 불빛이 가득한 석전은 열기로 가득 차 온 창문에서 뿌연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석전 중앙에는 손잡이와 세 발 달린 금색 단약용 화로가 유유히 떠 있었는데, 그 아래 바닥에는 팔각형의 복잡한 진법 도안이 여덟 줄기의 화염을 화룡처럼 일으켜 화로를 달구는 중이었다.

    겉면에 각인된 고풍스러운 주술문양을 반짝이는 금색 연단로는 안에 담긴 영약의 향기와 영력이 전혀 빠져나가지 못하게 밀봉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자금색 도포를 입고 연꽃 화관을 쓴 백발노인이 수결을 맺은 채 여덟 줄기 화염의 화력을 조절하는데 온 정신이 팔려있었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뺨과 눈두덩이가 움푹 들어간 노인은 오직 연단로의 변화만을 주시하고서 광기 어린 시선을 보냈다.

    우웅!

    바로 그 순간, 안 그래도 반짝이던 연단로의 주술문양들이 눈부신 빛을 내뿜었고 금빛 화로가 오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극도로 흥분한 백발노인은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됐어, 된 거야! 이제 곧…….”

    그때 금제로 봉인된 석전의 석문을 뚫고 두 줄기 금빛이 들이닥쳤다.

    쩌정!

    묵직한 석문이 네 조각이 나서 안쪽으로 쓰러졌다.

    홱! 고개를 돌린 백발노인은 뻥 뚫린 입구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그중 한 명이 주술문자가 반짝이는 금색 장검을 쥐고 있었다.

    “뭣들 하는 놈들이냐!”

    노인의 호통에도 인구는 냉소를 날리며 금색 장검을 횡으로 베었다.

    챙!

    날렵한 검빛이 검을 빠져나가 백발노인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걸 본 노인은 피하기는커녕 꼿꼿이 서서 단약로 앞을 막아서서 손가락을 튕겼다.

    넓은 소맷자락이 부풀어 오르고 커다란 자금색 뇌전 뱀이 튀어 나가 검빛과 충돌했다.

    쿠릉!

    자금색 뇌전 뱀이 터져 천여 줄기의 뇌전으로 퍼질 때, 금색 검빛도 수많은 칼날 조각들로 붕괴해 사방팔방으로 튕겨 나갔다.

    퍼퍼퍼펑…….

    뇌전 줄기들과 검빛 조각들로 석전이 가루가 되어갔다. 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나타난 또 다른 검빛은 한립의 솜씨였다.

    은백색 비검을 든 그는 발끝으로 지면을 박차고 떠올라 백발노인을 쪼개려 했다.

    이 검은 이전에 무상맹 임무에서 얻은 성하강은(星河罡銀)을 주재료로 만든 법보로 위력은 청죽봉운검에 한참 못 미쳤지만 임시로 쓰기에 무난했다.

    이곳에서 수행으로 따지면 그가 가장 약할 테니 너무 나설 생각은 없었다.

    인구와 인십칠을 금제 진법 안으로 무사히 데리고 들어온 공이 있어서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도 둘이 뭐라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은백색 비검에서 하얀 검 그림자들 수백 개가 폭포처럼 백발노인을 향해 쏟아졌다.

    “가라.”

    노인은 나지막하게 외치며 손톱 크기의 구슬을 들어 올려 빛을 발했다. 순식간에 백배로 커진 구슬은 요수 문양이 새겨진 금색 방패로 변해 노인의 머리를 가려주었다.

    동시에 또 다른 손에 나타난 자금색 뇌전 채찍이 맹렬히 좌측을 후려쳤다.

    피피피핏!

    요수 문양 방패에서 충돌음이 연달아 울렸다. 금빛이 깜빡거리고 검의 흔적들을 남기기는 했지만, 방패는 깨지지 않았다.

    뇌전 채찍이 갈긴 곳에서는 천둥소리와 함께 두 마리의 자금색 뇌전 뱀이 나타나 그쪽에서 접근하던 인구를 막았다.

    “흐흐, 죽어라!”

    이때 백발노인 머리 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쥐머리 가면을 쓴 인십칠이 귀신처럼 나타나 칠흑 같은 장창을 두 손에 쥐고 백발노인을 찔렀다.

    화륵!

    갑자기 오채색 단약로 아래에서 이글거리던 화염 속에서 화룡 한 마리가 튀어나와 인십칠을 노렸다.

    이에 엄청난 열기가 밀려들었다. 그걸 본 인십칠은 장창을 거두어 찌르기에서 베기로 창을 휘둘렀다. 휘둘러진 장창이 빼곡하게 장창 그림자들을 만들어내 화룡을 쳐냈다.

    쿵!

    창 그림자들과 화룡이 닿자 폭발이 일어나며 공중에 붉은색과 검은색을 동시에 지닌 밝은 태양이 떠올랐다.

    모든 일이 한 호흡 만에 벌어졌다.

    백발노인은 한립 일행의 공격을 전부 받아내면서 죽을 각오로 등 뒤의 화로를 지키고 있었다.

    수백 장 밖으로 물러난 인십칠은 가면 아래에서 입술을 끌어올렸다. 그는 검은 장창으로 아름다운 호선을 그리며 붕! 돌려 창끝을 바닥에 박아 넣었다.

    백발노인은 뇌전 채찍을 쥔 채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세 사람을 훑어보았다.

    한립의 공격으로 영성이 많이 상한 요수 문양 방패는 회수하고 소매 속에서 문자가 빽빽하게 적힌 금색 부적을 들고 있었다.

    두 눈을 가늘게 뜬 한립은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벌리다 들고 있던 은백색 장검을 날렸다. 수백 개의 은색 검 그림자들이 나타나서 빠른 속도로 백발노인을 향해 몰려들었다.

    검 그림자들은 미세한 검기의 우리로 변해서 백발노인을 가두었다. 그 상황에 노인도 잠시 중얼거림을 멈추고 손에 든 뇌전 채찍을 날렸다.

    크앙!

    눈부신 자금색 빛을 발산한 뇌전 채찍에서 용울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파치치치칙!

    채찍의 빛이 폭발적으로 불어나 뇌전 털을 휘날리는 산만한 뇌전용으로 변해 주변의 검기 우리를 깨끗하게 제거했다.

    그 후 뇌전 빛이 약간 줄어든 자금색 용은 한립을 향해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한립이 당황한 얼굴로 급히 물러나는데 산만한 금색 검기가 금속 속성의 법칙의 힘을 품고 끼어들었다.

    검기를 날린 것은 당연히 인구였다. 기회를 보아서 뒤쪽으로 빠진 한립은 그걸 보고 인구가 웅산이라고 확신했다.

    날카로운 검기가 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백발노인은 두 손을 열심히 움직여서 자금색 용이 한립을 포기하고 금색 검기를 물어뜯게 했다.

    징!

    자금색 용은 금색 검기에 잘려나가 촘촘한 보라색 뇌전 그물로 흩어졌다. 금색 검기는 뇌전용을 자른 뒤에도 흩어지지 않았지만 그물에 막혀 노인에게는 떨어져 내리지 못했다.

    백발노인이 뭔가를 하려는데, 등 뒤의 땅이 갈라지면서 검은 장창이 솟아올라 연단로를 공격했다.

    대애앵!

    강력한 충격에 연단로가 퍽하고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갔다. 어떤 재질로 만들어진 것인지 장창의 공격에도 흠집 하나 생기지 않은 화로는 오색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

    인십칠은 노인이 연단로를 크게 신경 쓰는 것을 알고 한립과 인구가 주의를 끄는 틈에 장창을 땅속에 숨겨 기습에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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