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5화. 두병(豆兵) 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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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언 노인은 술병을 들어 입구에 코를 박고 비법을 꼼꼼히 살폈다.
“역시 만년 나한엽(羅漢葉)이 들어갈 줄 알았어……. 엇, 여기다 교암화(皎巖花)를 첨가한다고?”
정신이 팔려 중얼거리는 그를 두고 한립은 책상 위 자신의 술잔으로 손을 뻗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호언 노인에게 찰싹 손등을 얻어맞았다.
“어딜 노부의 술에 손을 대려고.”
말을 하면서 노인은 잽싸게 술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고 찬사를 늘어놓았다.
“선배님, 이제 도병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녀석이 이렇게 좋은 술을 구해올 줄은 몰랐구나. 말해 보거라, 그래 궁금한 것이 대체 무엇이냐?”
노인은 호연주와 그 비법을 잘 넣어두고 정색하고 물었다.
“도병은 꼭두각시 같으면서도 또 완전히 다릅니다.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도병이 대체 무언인지는 똑 부러지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지. 그 뿌리가 다양하니까 말이야! 스스로 노예가 된 수사, 강력한 요수, 특별 제작된 괴뢰, 계약을 맺은 천마, 변이 악귀, 스스로 영성을 갖게 된 기령(器靈), 심지어 영역에서 탄생하는 영족(靈族)도 도병의 범위에 든다.”
“노란 콩알이 황건(黃巾) 역사(力士)로 변화한 도병은 그중 어느 부류입니까?”
“아, 그건 간단히 콩 병사라고 ‘두병(豆兵)’이라 불린다. 꼭두각시 중에서 심어서 기르는 류의 도병으로 자연적으로 심어서 나중에는 인공적으로 제련을 거쳐야 완성이 되지. 콩을 재배한 기간과 표면에 각인된 진법의 위력에 따라 완성되는 도병의 위력도 달라진다.”
“그렇군요. 도병은 전장에서 부릴 수 있는 것 외에 다른 용도도 있는지요?”
“도병은 그 종류에 따라 다양한 특수 능력을 지니고 백이면 백 주인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정 수량을 확보하면 각종 진법을 형성해서 선인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기도 하지.”
“그렇게 좋다면 다들 원해 마지않을 텐데 이전에 거의 부리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허허, 도병이 뭐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 같으냐? 평범한 선인들은 원해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도병을 배양하는 데는 막대한 자원과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두병처럼 하품(下品) 도병도 촉룡도 전체를 통틀어 지닌 이가 몇 되지 않을 테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도병은 어떻게 제련하면 되는…….”
“좋다, 귀한 술을 가져다준 성의를 봐서 도병을 심는 법을 알려주지. 절대 함부로 떠들고 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아, 이 금사옥잔은 마음에 드니까 내가 잘 쓰마.”
호언 노인은 엄숙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대답도 듣지 않고 약삭빠르게 잔을 챙겨 넣었다. 그 대신 책상 위에 얇은 누런 종이 책자가 올라왔다.
한립은 황당했지만 원래 그런 성격이라는 것을 알아서 얇은 책을 들어 넘겨보고 조심스럽게 품에 넣었다.
누런 책자에는 두병을 심는 법에 대한 설명과 호언 장로가 독자적으로 연구하고 알아낸 깨달음이 적혀 있었다.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한립은 진심을 담아서 예를 올렸다.
“됐다, 됐어. 각자 챙길 것을 챙긴 것이니 예의 차릴 것 없다! 노부가 아주 바빠져서 네 녀석과 놀아줄 시간이 없으니 볼일 끝났으면 물러가 보거라.”
호언 장로는 훠이훠이 손을 저었다. 이에 한립은 태현전을 나와 거처가 있는 적하봉으로 돌아갔다.
동부로 들어가 향한 곳은 작은 약재 밭이었다. 다채로운 영약들이 자라고 있는 약재밭을 거원 꼭두각시가 밭두렁 옆에 서서 지키고 있었다.
서남쪽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은 한립은 두 손으로 흙을 파내고 호두알 크기의 노란 콩을 심었다. 노란 콩알은 영환계 경원관에서 황건 거인에게 구한 모두(母豆)였다.
호언 장로가 내준 책자에 따르면 두병을 심고 싹이 날 때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고 적혀 있었다.
두병의 종류에 따라 혹은 같은 종류라도 개체에 따라 발아하는 시간이 달랐고 품질도 두병을 심은 땅과 나중에 뿌려주는 영액과 관계가 깊었다.
영액이야 장천병의 신비한 영액을 뿌려주면 더 좋은 선택이 없을 텐데 이전에 영약들을 기르느라 다 써버려서 다시 응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한립은 곁의 다른 영약들을 살펴보았다.
거원 괴뢰가 꼬박꼬박 영액을 부어주어서 몇 그루는 이미 5만 년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도 이 영약에 걸맞은 약방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약방을 구한다고 해도 진선경 수사가 수행에 증진을 볼만한 단약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단약 제련에 능숙한 그도 여러 번 실패를 맞보아야 할 테고 동급 진선들 중 보유한 영석이나 선원석이 많은 편인 그의 가산을 탕진할 날도 머지않았다.
중저계 법보와 재료들을 적당한 가격에 팔아 연단할 준비에 들어가야 했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지만.’
밀실로 들어간 한립은 방석에 주저앉아 저물탁에서 한 무더기의 물건들을 꺼내 놓았다. 현빙산맥에서 만났던 진선 노인의 저물탁이었다.
원영을 잡았으면 추혼술로 백소원을 납치해 가려고 한 이유를 알아냈을 텐데 약간 아쉽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립은 숙련된 손놀림으로 영석과 선원석 그리고 법보, 재료 등을 일일이 점검해서 분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는 세 가지 물건만 남았다.
무늬가 가득한 어두운 금속과 하얀 부적이 여러 장 붙은 옥함 두 개는 여러 물건 중에서 가장 궁금한 것들이었다.
먼저 커다란 금색 금속을 들어 올린 그는 놀랍게도 그것이 신원수 거처에서 본 금속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신원수와 정체 모를 진선 노인, 둘 다 이걸 가지고 있다면 뭔가 특별한 용도가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손바닥을 뒤집어 금속을 넣어두었다. 이전에는 크게 관심 두지 않았는데 시간을 두고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이어서 옥함 중 하나를 집어 표면에 붙은 부적에 푸른빛을 흘려보냈다. 하얀 부적들은 위협을 감지한 것처럼 눈부신 빛을 내뿜어 그를 막으려 했다.
그가 냉소하며 손가락을 튕기자 푸른 검기들이 날아가 검실로 변해 하얀 부적들을 갈랐다. 영성을 완전히 잃은 부적 조각들은 나풀나풀 떨어져 내렸다.
옥함 뚜껑을 열어보니 안에 손바닥만 한 영패가 보였다.
약간 기다란 영패는 아이가 옥석을 마음대로 갈아댄 것처럼 외형이 기이하고 세공도 되어 있지 않았다.
노인이 소중하게 봉인해 둔 것이면 이유가 있을 텐데 비술을 써서 안팎으로 조사를 해보아도 수확이 없었다. 그는 옥함을 집어넣고 다른 옥함의 봉인 부적을 제거했다.
그 안에는 누런 서책이 들어있었다. 무척 오래되어 보이는 서책은 책장이 모종의 요수 가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립은 서책을 대충 넘겨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제목이 적혀 있지 않은 책은 주로 연기술에 대해 다루고 있었는데 보물을 강화하고 제련하는 편법(便法)들이었다.
중요하게 할 일이 많아서 나중에 시간이 나면 자세하게 볼 요량으로 서책을 옥함에 담아 챙겨 두었다.
팟.
그는 물건의 분류를 마치고는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중수진륜을 불러냈다. 그리고 남색 빛을 머금은 눈으로 손짓해 진수대에서 중수 한 덩이를 불러내 그것을 검은 진륜에 가까이 다가가게 해보았다.
유유히 회전하는 중수진륜은 검은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중수 덩어리가 가까워지자 중수진륜의 물의 도문이 물빛을 터트리면서 은은하게 법칙의 힘을 내뿜었다.
낮에 진선 노인과 싸우며 발생했던 흡인력이 나타나 중수를 쉭! 하고 빨아들였다. 미세한 변화이기는 했지만 중수진륜은 조금 더 무거워졌다.
그걸 본 한립은 기분이 좋아졌다.
‘과연 중수진륜이 중수를 더 흡수할 수 있었어!’
그의 손짓에 중수가 용솟음쳐서 중수진륜 쪽으로 날아갔다. 물의 도문이 남색빛을 머금은 중수진륜은 소가 물을 마시듯 꿀꺽꿀꺽 중수를 잘도 빨아 들였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이때였다.
물의 도문이 미친 듯이 반짝이다가 갑자기 어둑해지면서 중수를 삼키지 않게 된 것이다.
그와의 의식연계가 거의 끊긴 중수진륜이 버티지 못하고 추락해 한립은 무의식중에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았다.
어깨가 빠질 것처럼 엄청난 무게였다. 대량의 중수를 흡수한 진륜의 무게는 이전과 사뭇 달랐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처음에는 다른 이들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서 제련한 중수진륜이 실전에 써보니 위력이 괜찮아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침음하던 한립은 남은 중수를 진수대로 돌려놓고 의식으로 진륜의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그런데 의식이 막 진륜에 진입한 순간, 무형의 잠재력이 내부에서 출렁출렁 나타나 그의 의식을 바깥으로 밀어냈다.
그는 거의 반나절 동안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중수진륜의 변화를 이해해 보려 했는데 모두 실패했다.
손에 들린 진륜을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너무 과도한 중수를 흡수해서 이렇게 된 것인가?
당초 중수진륜을 제련할 때 그냥 <진언화륜경>에 적힌 대로 따라만 하고, 보물의 본질과 원리에 대해서 확실히 연구해 두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워졌다.
그러나 진륜을 하나 더 만들 수도 없는 일이니 지금에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아직 일말의 의식연계가 남아 있었기에 그는 진륜을 단전이 있는 배 쪽으로 가까이 가져가 전력으로 연락을 취해보았다.
웅!
검은빛을 머금은 중수진륜은 그의 단전으로 들어가 평온하게 자리를 지켰다. 다행스런 일이었다.
단전에 넣어둘 수 있다면 완전히 통제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몸을 바로 세운 그는 공법을 운용해 단전의 선령력으로 중수진륜을 감싸고 원영이 불길을 내뿜었다. 물의 법칙의 힘을 반짝인 중수진륜이 서서히 회전을 시작했다.
얼굴에 희색이 스친 한립이 눈을 감고 운공에 집중했다.
금방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한립은 번쩍 눈을 뜨고 손을 저어 이전보다 활동적으로 변한 중수진륜을 불러냈다. 물의 도문도 색이 짙어져 있었고 진륜이 회전하면서 흘러나오는 괴력에 주변 공기가 웅웅 떨렸다.
그걸 확인한 한립은 마음을 푹 놓았다.
중수진륜의 무게는 확 늘었고 위력도 약간 늘어났다. 중수진륜을 손바닥 위로 끌어온 그는 마찰을 느꼈다.
촉룡도에서 진언화륜경을 수련해 위보륜을 제련한 이들은 많았으나 보물이 재료를 흡수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반길 만한 소식이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중수진륜은 사람이 과식하다가 목이 막혀 잠시 소화불량에 걸린 것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한립은 기대 반 걱정 반인 얼굴로 커다란 중수 한 덩이를 불러내서 보물에 가까이 접근하게 했다. 물의 도문이 남색으로 밝게 빛난 진륜은 재빨리 중수를 모조리 흡수했다.
짝짝!
한립은 힘차게 박수를 치고는 마음속의 무거운 돌을 내려놓은 것처럼 속이 편안해졌다.
중수진륜은 계속해서 중수를 흡수할 수 있었다.
이대로 몇 달 아니 몇 년이 흐르면 중수진륜의 위력이 두 배, 아니 열 배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의 손짓에 더 큰 덩어리의 중수가 날아올라 중수진륜으로 날아갔다.
물의 법칙을 반짝인 진륜은 중수를 계속해서 흡수하다가 절반가량 남기고 의식연계도 거의 잃고 떨어져 내렸다.
손을 뻗어 중수진륜을 받은 한립은 두 번의 실험으로 대충 보물이 한 번에 감당할 수 있는 중수의 양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단전 안에 넣어둔 중수진륜은 원영의 불길 속에서 잘 연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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