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571화 (1,328/2,000)
  • 1571화. 돌아온 검들

    *

    모두가 딴 곳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한립은 체내에서 들끓는 기운을 조용히 잠재우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웅 부도주의 본명비검은 위력이 대단해서 청죽봉운검이 방금 흡수한 검원으로 대부분을 막았음에도 완전히 충격을 없애는 것은 무리였다.

    “동북방향, 아직 쫓으면 충분히……!”

    머리끝까지 화가 난 웅산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본명비검을 망가트리고 그의 원기를 크게 상하게 만들어 요양하게 만든 원흉을 찾아내야 했다. 즉시 몸을 날리려던 웅산이 움찔 멈춰 섰다.

    “잠깐, 서북 방향……. 아니, 서남 방향?”

    “웅 수사, 왜 그러는 겁니까?”

    마사가 아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 다른 장로들을 대표해서 물었다.

    “제길! ……비검과의 마지막 연계마저 완전히 끊겼습니다.”

    힐끗 그를 본 웅산은 냉랭히 답했다.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천검총 초원은 넝마가 되어 있었고 온전한 비검은 3백여 자루 밖에 없었다.

    그가 소매를 펄럭이자 엄청난 무형의 힘이 날아가 난동을 부리던 3백여 자루 비검들이 거꾸로 처박혀 후두두둑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쾅!

    비검들은 칼자루도 남기지 않고 땅 속 깊이 파묻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웅산의 분노를 느낀 주변 수사들은 그의 지시 없이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어 전전긍긍하면서 한 마디도 못하고 있었다. 특히 청죽봉운검을 담당했던 축봉은 파랗게 질려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격노한 부도주 웅산이 이 사태의 책임을 물어 이 자리에서 그를 죽여도 나중에 종문에서 조사는 할지언정 큰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웅산은 천천히 모인 수사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열을 받아 머리가 터질 지경이라도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천봉취령검진이 스스로 역전해 그의 기혈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리 없으니 누군가 수작을 부린 것이 분명했고,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열 명의 장로들이었다.

    가장 혐의가 큰 축봉은 오히려 의심스럽지 않았다. 그가 볼 때 가장 걸리는 것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검진을 참관 한답시고 찾아온 마사였다.

    이런 복잡하고 거대한 검진은 그도 완전히 장악할 수 없는데 이 중에 그럴 능력과 수행이 되는 자는 마사가 유일했다.

    “웅 부도주, 지금 저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마지막에 도와달라고 수사가 청하기 전까지 저는 시종일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기운을 방출한 적도 없고요. 그리고 제가 무슨 짓을 벌였으면 그걸 수사가 몰랐겠습니까?”

    마사는 웅산의 호의적이지 않은 눈빛을 보고 소리쳤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화내실 것 없습니다.”

    웅산은 담담하게 말하고 시선을 거두었다. 의심스러운 건 의심스러운 것이고 증거도 없이 아무나 적으로 돌리 수는 없었다.

    그런 수완이 없었다면 부도주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웅 부도주께서는 처리할 일이 아주 많아 보이시니 더는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빌려간 물건들은 나중에 받으러 오던가 하지요. 갑니다!”

    마사가 간다고 하자 웅산은 허공에 법결을 몇 개 날려서 하얀 통로를 열어주었다. 그의 뒷모습을 끝가지 응시하던 웅산이 얼음장 같은 눈초리로 나머지 정로들을 훑어보았다.

    분위기가 살얼음판 같아서 아무도 허튼 소리를 하지 못했다. 한립은 다른 장로들처럼 약간 고개를 숙이고 웅산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축봉 장로, 제게 할 말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웅 부도주님, 그게……. 저, 저는 절대…….”

    축봉이 정신없이 할 말을 찾는 사이 웅산이 암암리에 의식으로 그를 샅샅이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누구든 훼방을 놓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경고 드렸습니다. 축봉 장로 때문에 시작된 문제이니 보상을 받지 않고는 그냥 넘어갈 수 없겠습니다.”

    “웅 부도주님 무, 무엇으로 보상을 해드리면 좋을지요?”

    고개를 조아린 축봉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물었다.

    “손실이 너무 커서 수사의 전 재산을 받아도 보상이 안 될 것 같지만 내가 그리 냉정하고 잔인한 성품은 아니지 않습니까? 공적점 6천 점에 선원석 3백 개로 보상을 하시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웅산은 거절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서늘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축봉은 그냥 바닥에 쓰러져 드러눕고 싶었다.

    앞의 말과 다르게 웅산이 요구한 것은 그의 전 재산을 통으로 가져다 바쳐도 감당할 수 없는 요구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받아들이지 않을 방법도 없었다.

    듣고 있던 다른 장로들은 속으로 웅산의 시커먼 속을 욕하면서 자신들이 아닌 축봉이 걸린 것을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고, 공적점 6천 점은 그렇다고 쳐도, 선원석 3백 개는 정말 없습니다. 극품영석으로 대신할 수는 없을까요?”

    축봉은 난색을 표하면서 사정을 해보았다.

    “상환 기한을 넉넉하게 주면 되겠지요. 10년 내로 모아서 가지고 오세요.”

    웅산의 눈길이 무척 싸늘했다.

    “아, 알겠습니다.”

    “모두 잘 들으세요. 여기서 나가면 절대 오늘 있었던 일을 언급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누구든 말을 옮기면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됐으니 전부 썩 물러나세요!”

    축봉이 울상을 짓든 말든 여전히 기분이 최악인 웅산은 빠르게 축객령을 내렸다. 그 말에 다들 고생스럽게 일하고도 공적점을 챙기지 못한 채 씩씩 거리며 떠날 수밖에 없었다.

    금지를 나선 한립은 기량과 임전각으로 날아가 씁쓸하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동부로 돌아갔다.

    적하봉 동부로 돌아온 한립은 몸을 샅샅이 뒤져 웅산이 혹시나 표식을 남겨 두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밀실로 돌아가 요양에 들어갔다.

    * * *

    며칠 뒤, 종명산맥 동북방향

    산맥에서 약간 떨어진 산봉우리 위에 새하얀 장삼을 휘날리는 청수한 노인이 서서 서남쪽 고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몰라도 기대감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멀리서 푸른빛이 번득이고 거검 하나가 쾌속으로 날아들었다.

    “역시!”

    청수한 노인이 흐뭇하게 웃음 짓다 진선경 초기의 수행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고운대륙 밖 해상(海上) 산수인 그는 종명산맥 인근을 지나다 선기(仙器)에 버금가는 강력한 기운을 지닌 비검이 날아드는 것을 감지했다.

    비검술에 정통한 진선경 수사인 노인은 주인 없는 보물을 발견하고 이게 웬 떡이냐 싶어 길을 막고 기다리고 있었다.

    거검으로 뭉쳐진 청죽봉운검은 한립의 조종을 받지 못해도 본능적으로 노인의 의도를 감지하고 츠츳 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신이 난 노인이 두 팔에 영기의 빛을 두르고 날아오른 순간 굉음이 울렸다.

    콰르릉!

    푸른 거검에 용인지 뱀인지 모를 수많은 금색 뇌전들이 꿈틀꿈틀 튀어나와 작은 산만한 금색 뇌전 구슬을 형성해 폭발했다.

    그러자 참혹한 비명 소리가 들리고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새까맣게 타버린 시신이 추락하다 검은 가루로 흩날렸다.

    푸른 거검은 속도도 줄이지 않고 72자루의 비검으로 흩어져 산골짜기 속으로 숨어들었다.

    * * *

    두 달 후, 종명산맥 동북 쪽 지대.

    눈으로 뒤덮인 상공에서 푸른 장포를 입은 청년이 서서히 골짜기로 하강하고 있었다. 키가 훤칠하고 눈은 별처럼 빛나는 청년은 의식연계를 따라 여기까지 쫓아온 한립이었다.

    웅산이 몰래 감시를 할까봐 동부로 돌아간 그는 한 달 넘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웅산은 의심 인물 중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영지에 제자를 파견해 감시했다.

    솔직히 다른 장로들과 마사장로도 자신의 영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알았지만 모른 척 하면서 넘어갔다.

    괜히 노발대발하거나 수상한 행동을 해서 의심을 받는 것보다 그게 나았기 때문이다. 웅산이 경계를 풀 때 쯤 그는 몰래 적하봉을 떠나 이곳으로 날아왔다.

    산골짜기 깊은 곳에는 짙푸른 호수가 있었고 겉보기에는 고요해 보이는 호수 물속에 물고기들 대신 검기들이 헤엄을 치면서 주변의 암석이나 나뭇가지를 베며 놀고 있었다.

    호수 속에 청죽봉운검이 있는 것을 아는 한립은 의식으로 비검들을 소환했다.

    촤하핫!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72자루의 비검들이 날아올라 한립 주변을 맴돌았다. 한립은 비검들을 둘러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고 푸른빛을 반짝이는 비검들도 웅웅 즐겁게 울어댔다.

    “드디어 찾았어!”

    한립은 이룰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손을 들어 비검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익숙하면서도 조금 낯설어진 기운을 공유했다.

    검원을 흡수한 비검들은 기운이 크게 증폭되었지만 한립은 바로 위력을 확인하지 않고 오히려 비술을 펼쳐 청죽봉운검의 기운을 감추었다.

    이상이 없는지 일일이 검사한 뒤 체내에 차곡차곡 넣어두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오래 전 고마(古魔)가 비검 두 자루를 가져갔을 때도 다시 되찾고 더없이 기뻤는데 이번에는 무려 72자루를 통째로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그 기쁨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 * *

    오래지 않아 다른 수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적하봉으로 돌아온 한립은 몽운귀 등 시종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려 장로님을 뵙습니다!”

    장원의 의사대청에서 몽운귀, 손부정 등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그간 동부를 질서정연하게 관리하면서 수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구나. 운귀, 이 단약들을 가져가 모두와 나누거라.”

    한립은 몽운귀를 향해 세공이 정교한 저물탁을 날려 보냈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몽운귀와 시종들은 무척 좋아하면서 예를 올렸다.

    한립이 항상 그들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얼굴을 비출 때마다 수시로 귀한 단약을 나눠주어서 이미 존경을 넘어서 감격해 마지않고 있었다.

    특히 몽운귀는 그동안 원영을 응결하는데 성공해 이미 원영기 수사였다.

    “오늘부터 폐관수련에 들어가니 적하봉은 한동안 봉쇄한다! 모든 금제를 발동한 후에는 손님도 받아서는 안 될 것이야.”

    한립의 명에 몽운귀 등이 깜짝 놀라 얼른 답했다.

    “폐관하는 동안 손부정, 네가 몇 명을 추려서 동부를 돌본다.”

    “예, 맡겨만 주십시오!”

    손부정이 다부지게 답했다.

    “운귀, 너는 이중에 수행이 가장 높으니 따로 해줄 일이 있다. 바깥으로 나가 신기하거나 희귀한 영초의 종자 혹은 새싹을 구해오는데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경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예!”

    조금 놀란 몽운귀도 바로 대답했다.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호신용으로 쓸 법보 두 가지와 여비이다. 일을 잘 해내면 두 법보는 네 것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최선을 다해서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립이 준 저물법기를 살핀 몽운귀는 깜짝 놀라며 다짐했다. 다른 시종들이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

    저물법기 안의 법보가 굉장한 보물이 아니었으면 평소 차분한 몽운귀가 저렇게 격동할 리 없었다.

    손부정은 부러운 마음이 더 컸다.

    원래 그가 수행이 앞서나갔는데 어느새 몽운귀가 먼저 원영기에 이르러 좋은 보상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몽천천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립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특별히 새로 꺼내 입은 새하얀 치마를 입은 그녀는 누가 보아도 귀여웠다.

    “이제 가서 각자 할 일들 하거라.”

    “예!”

    한립은 모두의 인사를 받으면서 미소를 머금고 동부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자 몽천천은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다른 시종들을 따라 예를 올릴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그저 동부 문이 닫히는 것을 보았다.

    “너희는 나를 따라 오너라.”

    손부정이 몽운귀와 인사를 나누고 바삐 몇 명을 골라냈다. 낙담한 몽천천은 입술을 깨물고 굳게 닫힌 석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아, 왜 그래?”

    기분이 가라앉은 누이를 보고 몽운귀가 다가왔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고개를 푹 숙인 몽천천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한립이 시종일관 그녀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것이 서운해서였다.

    “휴……. 려 장로님은 우리와는 완전 다른 세상 분이시라고. 너도 알거 아니야.”

    몽운귀는 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들은 몽천천은 잘게 몸을 떨었다. 그런데 다시 고개를 든 그녀의 눈빛이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그 모습에 몽운귀는 고개를 저었다.

    외유내강인 누이가 무슨 마음을 먹었든 그가 되돌릴 방법은 없었고, 꼭 나쁜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라는 법은 없었다.

    미소를 지은 몽운귀는 복잡한 생각을 지우고 한립이 준 막중한 임무를 어떻게 수행할지 생각에 빠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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