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569화 (1,326/2,000)
  • 1569화. 천봉취령검진(千鋒聚靈劍陣)

    *

    한립과 의식연계가 끊긴 청죽봉운검은 뇌전빛이 가라앉았지만 왜인지 여전히 묘에서 튀어나오고 싶어 난리였다.

    청죽봉운검 구역을 담당한 세 무리의 수사들이 표정이 달라지자 분분히 법결을 날려 금제를 강화했다.

    “엽풍 사형, 비검들이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요? 가끔씩 들썩이기는 했지만 오늘처럼 제압하기 어려운 날은 처음입니다.”

    자발(紫髮) 거한이 이상하다는 듯 옆 수사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옆에 서 있던 새까만 피부의 청년은 대답 없이 일어나 수결을 맺은 채 검은 돌조각을 높이 던졌다.

    호선을 그리며 묘로 떨어진 돌조각에서 새까만 별빛이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진검석(鎭劍石)이라는 돌로 비검의 영성을 잠시 동안 억누르는 용도의 돌이었다.

    진검석이 떨어진 묘가 밝은 빛을 머금자 요동치던 비검들도 잠잠해졌다.

    푸른 풀이 자라난 묘는 비검들의 영성이 유실되지 않게 보양을 해주면서 달아나지 못하게 구속을 겸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청죽봉운검들이 안정을 되찾자 엽풍은 제자리로 가서 정좌를 했고 거한은 어쩔 수 없이 묵묵히 말을 삼켜야 했다.

    몇 년 전부터 오만하던 엽풍은 성정이 크게 변해서 말수가 줄고 쭉쭉 늘어나던 수행도 정체되어 마사장로의 불만을 샀다.

    자발거한이 속으로 한탄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사형, 오늘로 천검총 근무도 마지막이네요! 이렇게 쉬우면서 위험하지도 않고 꼬박꼬박 공적점을 챙길 수 있는 임무는 거의 없는데 말이에요.”

    “헤헤, 자식이 평소에는 심심하다고 노래를 부르더니만…….”

    자발거한이 장난스럽게 사제를 타박했다.

    멀리서 한립은 주의 깊게 그쪽을 살피고 있었는데 엽풍이 비검을 제압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오랜 의문이 풀렸다.

    처음 종명산맥에 왔을 때 해 도인과 청죽봉운검의 기운이 동시에 차단되어서 둘이 함께 있으리라 여기다가 나중에 해 도인이 청죽봉운검을 지니지 않은 것에 걱정이 많았었다.

    해 도인을 지닌 엽풍이 이곳에서 임무를 서며 그와 의식연계를 하는 청죽봉운검을 제압하는 통에 생겨난 오해였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바로 임무를 설명하겠습니다.”

    웅산이 말문을 떼니 진선경 장로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모두 보고 계시는 거대진법은 천봉취령검진(千鋒聚靈劍陣)이라 합니다. 진법의 힘을 빌려서 검총의 검들에 남겨진 원주인들의 흔적을 말끔하게 지우고 정순한 검원(劍元)으로 만들어 본좌의 본명비검에 융합할 계획입니다.”

    낭랑한 웅산의 목소리에 마사장로를 포함한 장내의 모든 이들이 움찔했다. 한립도 남몰래 혀를 찼다.

    명검 천여 자루의 검원을 융합하면 만금(万金)의 기운이 모인 웅산의 본명비검은 영보급을 벗어난 후천선기의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제검대(祭劍臺)를 중심으로 총 열 구역으로 나뉜 것이 보이십니까? 한 분당 한 구역을 맡아 본좌가 비검의 낙인을 지우고 검원을 흡수하는 것을 보조해 주시면 됩니다.”

    웅산의 설명에 수사들이 초원 곳곳으로 흩어져 담당할 구역을 골랐다. 한립은 다른 이들을 따라 걸어가면서 웅산의 말 속에 숨겨진 정보를 골라냈다.

    천검총의 묘들은 아무렇게나 퍼져 있는 듯 보였으나 실제로는 세심하게 위치가 정해져 있었다.

    비슷한 재료로 만들어졌거나 기운이 잘 맞는 비검들은 한 구역에 두고 상반되는 기운을 지닌 검들은 반드시 갈라놓았다.

    각 구역에 하나씩 박아놓은 검은 돌기둥이 진법의 중추로 십여 개의 용 눈알만한 선원석이 꽂혀 있었다.

    진선경에 이른 장로들도 쉽게 엄두를 못 낼 씀씀이었다.

    “웅 수사, 진작 원주인들의 흔적을 지워두었으면 일이 쉬웠을 것 같은데요?”

    “수사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원주인의 흔적을 지우면 영성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영성 유실이 급속도로 진행됩니다. 제련하기 직전에 흔적을 지워야 낭비가 없지요.”

    마사의 질문에 웅산은 그것도 모르냐는 듯 답했다.

    “으하하,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오늘 좋은 걸 배워갑니다.”

    마사는 기분 나빠하지 않고 웃음을 터트렸다. 웅산은 더는 쓸데없는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금빛 찬란한 비검을 불러냈다.

    팔 길이와 비슷한 장검은 금빛이 폭포처럼 흐르고 검환에 입을 쩍 벌린 사나운 고대 짐승이 조각되어 있어 천하를 오시하는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장로들은 검을 살피다 더는 눈부셔 못 보겠다는 듯 시선을 뗐다.

    “역시 웅 수사의 본명비검입니다. 오랜 세월 정련을 거듭해서 기운이 정순하기 짝이 없어요! 오늘 제련에 성공하고 수백 년만 수련을 하면 금선의 문턱을 넘는 것도 어렵지 않겠습니다.”

    마사도 눈을 반짝이면서 검을 칭찬했다.

    “마 수사의 덕담대로 되었으면 좋겠군요.”

    본명비검을 든 웅산은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초원 중앙의 제검대 위에 올랐다.

    정갈한 옥을 통으로 조각해 만든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방원형의 제단에는 수많은 영석들이 박혀 있었다.

    초원 전체를 아우르는 천봉취령검진과 연계된 제단이었다.

    “본좌는 오늘을 위해 수만 년 간 준비를 해왔습니다! 제련에 성공하면 다 같이 크게 축하할 일이지만, 경고하건데 누구든 훼방을 놓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웅산은 휙 하고 장로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모두 최선을 다해서 실수가 없도록 할 것입니다!”

    축봉이 냉큼 포권을 하고 대답했다. 다른 토착 장로들도 그를 따라 자신 있게 답했는데 한립과 산수 장로 몇 명은 그저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제자리로!”

    웅산의 외침에 열 명의 장로가 봐둔 자리로 날아올랐다.

    푸른빛을 일으킨 한립은 서북쪽으로 향하다가 중간에 우뚝 멈춰 섰고, 그 옆을 축봉이 스쳐지나가면서 멸시에 찬 코웃음을 남기고 청죽봉운검이 있는 구역의 돌기둥을 선점했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한립은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열 개의 구역은 모양도 들쑥날쑥하고 규모도 달라서 보유한 비검의 수가 차이가 났다. 청죽봉운검이 있는 구역은 오로지 72자루의 푸른 비검만이 정갈하게 꽂혀 있었다.

    천봉취령검진은 그런 구역들이 이파리처럼 제검대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형태였다.

    웅산은 모두가 한 구역씩을 차지한 것을 보고 바로 두 손을 모아 수결을 맺었다. 허공에 띄워놓은 금색 비검이 강렬한 금빛을 발산했다.

    그의 주문소리에 호응하듯 천검총의 금제들이 괴이한 역량을 일으켜 불경소리로 초원을 가득 채웠다.

    쿠쿵.

    동시에 금빛 기류가 흐른 제검대도 서서히 수직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문양들이 이리저리 지나가는 제단 중심에는 검날이 꽂힐만한 검은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웅산은 불쑥 손을 뻗어 금색 장검의 칼자루를 쥐고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며 비검을 백옥 제단의 구멍에 꽂아 넣었다.

    스릉!

    마찰음이 울리며 제단에서 휘황찬란한 하얀 빛기둥이 고공으로 솟아 올라갔다.

    동시에 한립 등 장로들이 대기 중인 검은 돌기둥의 선원석들도 폭발적으로 빛을 발해 충만한 영력을 방출했다.

    돌기둥의 문양들이 물이 스며드는 것처럼 빛이 채워지고, 중앙의 거대 빛기둥을 향해 검은 빛을 쏘아 보냈다.

    휘이이이.

    고공에 모여든 빛들이 섞여 회색 거대 소용돌이를 이루고 천검총 금제 위에 드리웠다. 제단 위의 웅산은 벌써부터 기대감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그의 나지막한 주문소리가 점점 커져서 이제는 천둥소리처럼 공간을 쩌렁쩌렁 울렸다!

    회색빛의 장막 위로 돌연 금색 실들이 응결했고, 이와 함께 천검총 금제도 벌떼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미친 듯이 진동하고 있었다.

    한립은 그가 담당한 구역의 백여 자루 검들이 격렬하게 몸을 떨면서 열심히 묘의 속박을 벗어나려 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 떨림이 얼마나 빠르고 격렬한지 묘 위에 검의 형태가 잔영으로 남을 정도였다.

    청죽봉운검과 의식 연계로 한립은 검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의 본명비검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모든 검들은 공포에 휩싸여 이곳에서 달아나고 싶어 했다.

    ‘아!’

    인계에서 금뢰죽을 하나씩 길러내 그것을 재료로 72자루의 청죽봉운검을 제련하기까지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길고 긴 수도의 길에서 장천병 다음으로 그와 가장 오래 동고동락하며 죽음의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긴 것이 바로 청죽봉운검이 아니었던가!

    의식이 연계된 본명비검이 남의 손에 강제로 검원을 뽑힐 위기에 처하자 한립은 마음이 조급해지는 한편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비검을 챙겨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웅웅웅웅!

    진법 속의 청죽봉운검도 주인의 마음을 읽고 더욱 비장하게 진동했다. 주인이 그들을 구출하지 못하면 스스로 부서져 다른 비검 속에 녹아드는 것은 막겠다는 강한 뜻이었다.

    한립은 청죽봉운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바로 그때, 하늘 위에서 후웅! 하는 울림이 들려왔다. 회색빛의 장막 위로 요동치던 금색 실들이 뭉쳐 무수히 많은 금색 검 허상으로 변해 있었다.

    검 허상들은 형태가 각양각색이었다.

    길쭉한 검, 구부러진 검, 송곳 모양을 한 검 등은 크기도 다 달라서 어떤 것은 수놓는 바늘처럼 보이는 반면 어떤 것은 거대한 선박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립이 놀란 것은 가장 작은 검도 주술문자들이 빈틈없이 새겨져 있다는 점이었다.

    검 허상들의 출현에 천검총 금제의 기운이 수십 배로 강해져서 초원의 풀들이 삽시간에 가루가 되어 버렸다.

    내문장로 열 명은 그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각 구역을 지키는 세 무리씩의 수사들은 엄숙한 얼굴로 제자리를 지켰다.

    제자들의 수행에 함부로 자리를 옮겼다가 금제의 기운에 휘말리면 참혹한 결말을 맞게 되어 있었다.

    한립은 놀라면서도 내심 뭔가 익숙한 광경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초원 곳곳에 분산되어 검 허상들이 만들어낸 진법 도안을 올려다보던 장로들은 어느 순간 무형의 힘에 공격당한 것처럼 끙끙 앓는 소리를 냈고, 마사도 찌르는 듯한 두통에 어쩔 수없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한립 역시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강대한 의식으로 눈을 가늘게 뜬 채 살펴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미리 언질을 드린다는 것이 깜빡 했습니다. 천봉취령검진은 검기를 함유하고 있어 의식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니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웅산의 목소리가 모두의 머릿속에 울렸다.

    진법의 현묘함을 훔쳐보려던 장로들이 헛기침을 하면서 눈을 돌리는 사이 한립의 눈이 번득였다.

    광한계 선인의 저택에서 얻었던 만검도(万劍圖)의 검진과 기운이 눈앞에 펼쳐진 천봉취령검진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어떤 방면에서는 오히려 만검도의 검진이 천봉취령검진보다 현묘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쾌재를 부른 한립은 서둘러 고공의 검진 도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제검대 쪽에서 느닷없이 웅산의 괴성이 울렸다.

    퍼퍼퍼퍼펑…….

    폭죽소리가 연달아 터진 후, 동그랗게 솟은 묘들이 폭발하면서 천여 자루의 비검들이 통제를 벗어나 마구잡이로 날아올랐다.

    사방팔방으로 솟구친 비검들은 하나같이 금제를 뚫고 멀리 달아나고 싶어 했다. 검진을 지키던 30개 무리의 수사들이 신속히 술법을 펼쳐 지검들을 통제했다.

    화르륵!

    초원 동쪽에서는 화염에 둘러싸인 비검이 활활 타오르며 하늘 높이 솟아올라 공기 중에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 구역을 담당하는 수사들은 동시에 주문을 외워 세 대승기 수사의 주도 아래 거대 수룡을 불러내 불길을 잡았다.

    콰콰쾅!

    초원 남부에서는 황토색 거검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면서 다른 비검들과 달리 땅을 파고 지하로 뚫고 들어갔다.

    그곳을 수비하는 수사들도 준비하고 있던 술법을 펼쳐 바닥을 검푸른 색으로 물들여 딱딱하게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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