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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568화 (1,325/2,000)

1568화. 천검총(天劍塚)

*

쿠쿠쿵.

연무장이 세 개의 석검이 떨어지는 충격에 흔들렸고 기량은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무척 좋아하고 있었다.

한립의 지도대로 따라해 보았더니 석검 세 개를 들어 올린 데다 네 번째 석검도 미세하게 흔들어서 선발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 모습에 한립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량에게 몇 가지 요령을 알려준 것은 촉룡도 입문할 때 안내를 해준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

“3검.”

웅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결국에는 마지막 사람까지 시험을 전부 보았는데 기량 이후로는 세 번째 석검을 들어 올린 이가 없었다. 그제야 한립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검봉에 모여든 40명에 이르는 진선경 내문장로 중에서 석검을 3개 이상 들어 올린 이는 총 13명이었다.

그중 토착장로 쪽이 여섯이라 일곱이 선발된 산수 출신보다 한 명이 부족했지만 축봉이 최고의 경지인 4검의 검지를 보여주었고, 산수 측에서는 한립과 기량이 거의 4검의 경지에 가까워 양측이 막상막하의 성과를 보인 셈이었다.

허나 역대로 종문의 세력은 풍부한 수선자원과 지리적 이점을 지니고 있는 토착 장로 쪽이 우세한 경우가 많아 이번 결과로 몇몇 장로들은 불쾌함을 맞보았다.

웅산이 천천히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가서 장로들을 훑어보았다.

석검을 한두 개 밖에 들어 올리지 못한 수사들은 이미 포기를 했고 축봉은 당연히 선발될 것을 알아 무심했는데 3검 경지의 12명은 긴장된 눈빛으로 웅산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주시했다.

“축봉, 려비우, 기량…… 그리고 견기. 이렇게 열 분은 남고 나머지는 그만 돌아가 보셔도 되겠습니다.”

웅산은 차분하게 결과를 발표했다. 딱 산수장로 다섯에 토착장로 다섯이었다.

“선발을 축하드립니다, 려 형, 기 형! 두 분이 아니었으면 저들에게 꿀릴 뻔했어요!”

남 씨 성의 구불수염 거한이 걸어와서 공수를 했다. 어검술이 평이해서 겨우 석검 두 개를 들어 올려 탈락했으나 성격은 털털한지 조금도 불쾌한 티를 내지 않았다.

“허허, 이것 참 운이 좋았습니다.”

기량은 밝게 웃으며 답했다.

탈락한 다른 산수장로들도 한립 등 다섯 명의 장로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고 자리를 떠나 연무장 안에는 이제 웅산과 열 명의 장로들만 남았다.

콰릉!

웅산이 그들을 향해 막 입을 떼려는데, 멀리서 검은 둔광이 쩌렁쩌렁한 천둥소리를 내면서 등장했다.

무슨 새까만 벼락이 내려친 것처럼 둔광이 떨어진 자리가 쿵! 하게 울린 뒤 보라색 장포에 허리에 옥대를 두른 거한이 나타났다.

거한은 전신이 불에 그슬린 듯 새까맣고 키는 보통 사람의 두 배에 팔뚝은 남들 허리통만 했다. 흑철석처럼 단단해 보이는 근육질의 몸은 장포로 가린다고 가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 형, 이곳은 제 동부이지 선원전이 아닙니다! 이리 함부로 드나드시면 본좌의 체면이 어찌 되겠습니까!”

웅산이 당장 차갑게 일갈했다.

“으하하, 뭘 이런 걸로 화를 내십니까! 웅 형이 검수들을 모아 진법을 펼친다기에 급히 달려오느라 예를 다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자포 거한의 화통하게 웃는 소리가 거의 금강석을 뚫을 기세여서 한립 등 다른 수사들은 귀가 얼얼해졌다. 예의는 갖췄지만 자포 거한의 입에서 화통한 웃음소리가 나오자 무례하게 느껴졌다.

코웃음을 친 웅산은 더는 따지지 않기로 한 듯싶었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드리는 소립니다만, 검진을 펼친다는 소식을 어찌 제게는 전하지 않은 것입니까? 그것들을 빌려준 대신 수사가 본명법보를 제련하는 것을 참관한다는 당초의 약속을 어기기라도 할 셈이셨습니까?”

자포 거한이 갑자기 눈을 부라리고 따졌다.

“천검봉에서 바람에 풀잎 나부끼는 소리도 다 듣고 계신 분에게 굳이 따로 전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으하하, 웅 수사께서 농담 한번 재미있게 하십니다!”

웅산의 담담한 대꾸에 자포 거한은 얼굴을 풀고 웃어넘겼다.

“선원전의 마사장로입니다. 자질이 뛰어난 자라 만 년 전에 부도주 경선에도 참가했는데 실패한 뒤로 최근까지 폐관을 하고 수련에 매진해 진선경 최고봉의 경지를 앞두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기량의 목소리가 한립의 귓가에 울렸다. 그들의 대화에 한립도 자포 거한의 신분은 짐작하고 있었다.

엽풍의 사존이라는 마사장로였다.

“이분들이 웅 형이 모집한 검수들입니까? 쩝,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데요?”

마사는 한립 등 열 명을 쭉 훑고 거침없이 말했다.

“그건 수사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그만하시지요, 출발!”

냉담히 말을 끊은 웅산은 선발된 수사들을 향해 말했다.

금빛으로 변한 웅산을 선두로 한립 등이 날아오르고, 웃음을 흘린 마사도 검은 뇌전빛을 번득이면서 그 뒤를 쫓아갔다.

* * *

웅산 일행이 떠나고 광장에서 하얀 장포를 입은 천검봉 시종들이 뛰어와서 힘을 모아 역원석검을 들어 옮기기 시작했다.

역원석검은 조종이 어려울 뿐 아니라 무겁기까지 해서 결단기 수행을 지닌 십여 명이 끙끙거리며 힘을 모아야 겨우 옮길 수 있었다.

그런데 네 번째 석검을 옮기려 할 때 누군가 헉! 하고 소리를 쳐서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왕 사형, 사람 놀라게 갑자기 왜 소리는 지르고 그러십니까?”

“어서 와서 여기를 좀 보게! 검 아래쪽을 보란 말일세……. 아래쪽에…….”

그 소리에 결단기 수사들이 고개를 숙여 네 번째 역원석검 아래쪽을 보고 표정이 이상해졌다. 바닥에 박혀 있던 네 번째 검 끝부분에 놀랍게도 작은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천남제일검수(天南第一劍修) 다녀감?”

필체의 끝부분이 아주 날카로워 검으로 새겨 놓은 글귀 같았다.

“이,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이전에는 분명 안 보이던 글귀인데…….”

“설마, 조금 전 시험을 치른 내문 장로들 중 누군가 남겨 놓은 것 아닙니까?”

“그럴 리가! 웅 부도주님께서 역원선검이 이렇다 할 공격력은 없어도 단단하기로는 선기보다 낫다고 말씀해 주셨던 것을 잊었더냐?”

“그럼 누구 짓이란 말입니까?”

“다들 내 말 잘 기억하고 오늘 일은 잊거라! 다들 아무것도 못 본 것이야. 이걸 웅 부도주님께서 알게 되시면 우리만 죽어나는 거라고!”

“아, 알겠습니다.”

“물론이죠!”

다들 의견 일치를 본 가운데 누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천남(天南)이 대체 어딜까요?”

“우리가 들어보지 못했다면 어디 구석에 처박힌 작은 지방이겠지!”

왁자지껄하게 떠들어 대던 결단기 시종들이 네 번째 역원석검을 힘겹게 들어 연무장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 * *

웅산은 멀리가지 않고 천검봉 뒷산의 금색 산의 벽 앞에 섰다. 그의 두 소맷자락이 펄럭이자 금빛 검기 네 줄기가 날아가 산의 벽 어딘가로 사라졌다.

처음에는 아무 변화도 없던 벽에 화려하게 주술문자들이 떠오른 뒤 투명해진 산 벽 자리에 검진의 일종으로 보이는 도안이 나타났다.

“으하하, 이곳이 유명한 웅 형의 천검총(天劍塚) 입구였습니까? 오늘 좋은 구경을 하고 가겠습니다.”

마사장로가 웃든 말든 웅산은 신중하게 주문을 외면서 금색 검기로 검진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천검총…….’

호기심 어린 눈으로 검은 통로를 보고 있던 한립은 기량과 축봉 등 다른 장로들이 들떠하는 것을 알아챘다.

“기 형, 왜 그러십니까?”

“아, 본종에서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천검총에 대해 모르실 수도 있겠군요. 웅산 부도주는 종문 내에서도 유명한 명검광이라 소장한 명검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가 없답니다.

그가 보검들을 모아놓는 곳인 천검총의 명성도 자연히 높지요! 장로들도 이곳에 직접 들어가 본 이가 거의 없는데 오늘 우리 모두를 데리고 천검총에 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한립의 전음에 기량도 전음으로 답했다.

“호오, 그렇군요.”

이때 웅산의 술법이 막바지에 이르러 벽의 금빛이 강렬해지고 무수히 많은 주술문자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퍼퍼퍽!

둔중한 굉음과 함께 금빛 장막에 7개의 구멍이 둥그렇게 뚫렸다. 주문을 멈춘 웅산은 반달 모양의 금색 부적 7장을 던졌다.

웅!

금빛이 점점 옅어지다가 일각이 흘러서야 완전히 사라지고 검은 통로가 온전히 드러났다. 의식을 차단하는 고명한 금제가 펼쳐져 있는지 내부를 전혀 살필 수 없었다.

“들어갑시다!”

웅산이 앞장서고 마사장로와 나머지 선발 장로들이 그 뒤를 쫓아갔다. 그들이 전부 통로로 들어서자마자 벽에 금빛이 촤르륵 흘러 입구가 가려졌다.

기다란 검은 통로를 내려가다 보니 주술문자들이 새겨진 고풍스러운 거대한 푸른 석문이 길을 가로막았다.

웅산은 허리춤에서 영패를 꺼내 푸른 석문을 비추어 앞선 것보다 더 복잡한 도안을 불러냈다.

그의 소매 속에서 파공음과 함께 아홉 자루의 푸른 단검들이 날아가 석문의 아홉 군데를 찌르고 나서야 거대한 석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으로 갑작스레 터져 나온 빛에 마사장로까지 무의식중에 눈을 찌푸렸을 때 화려한 빛이 통로의 수사들을 휘감고 사라졌다.

번쩍 눈을 뜬 한립은 귓가에 바람소리 비슷한 파공음을 들었다. 살기등등한 검기가 사방천지에서 기습을 하는 것 같았다.

마음을 다스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푸른 초원에 만두처럼 둥글게 솟아 있는 천여 개의 묘마다 검이 한 자루씩 꽂혀 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수많은 묘 사이에 백 리 간격을 두고 설치된 거대한 검은 돌기둥 열 개가 천검총 초원을 열 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있었고, 각 구역을 대승기 수사 한 명과 합체기 수사 아홉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무리가 지키고 있었다.

천검총 초원을 지키는 수사들만 300명이라는 뜻이었다. 한립은 초원의 검들을 살피면서 깜짝깜짝 놀랐다.

버들잎처럼 가느다란 검부터 궁전 대문처럼 넓적한 검, 주위의 풀을 꽁꽁 얼리는 냉검에 검신에 불길이 이는 불검 등 없는 게 없었다.

그 수많은 검들이 웅웅 공명을 하면서 내뿜는 검기가 상공의 하얀 구름을 지속적으로 흩어놓아 커다란 구름이 보이지 않았다.

초원의 검이 너무 많아서 몇몇은 경비를 서는 수사들이 수결을 맺어 억눌러도 함부로 움직이거나 날아오르기도 했다.

수사들은 습관이 되었는지 당황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검들을 잡아다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복종하지 않는 검들은 어느 것 하나라도 바깥에 내놓으면 합체기 심지어 대승기 수사도 가산을 탕진하더라도 구입하고 싶을 만한 품질 좋은 명검이었고, 헤아릴 수 없는 세월동안 살아온 진선경 수사도 군침을 흘릴 만큼 뛰어난 보물도 있었다.

이런 장관에 아무리 평온한 심경을 지닌 수사라도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오늘 천검총에 들어온 이들은 전부 어검술에 능한 비검을 본명보물로 삼은 이들이었으니 감동이 남달랐다.

축봉이 어렵사리 검에서 시선을 떼고 웅산을 추켜세웠다.

“웅 부도주님의 천검총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그 명성을 들어왔지만 직접 보니 듣던 것보다 더 대단합니다!”

“뭐, 몇 만 년 동안 모았으니 당연히 이 정도는 되어야지요. 총 천팔십여 자루인데 모으는 동안 고생깨나 했습니다.”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은 저었지만 웅산의 얼굴에 자부심이 드러났다. 이 순간 한립은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천검총 초원서 북쪽에만 온 정신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곳의 72개 묘에 박힌 푸른 비검이 미세한 금빛 뇌전을 번득이면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있어서였다. 72개의 푸른 비검들은 그가 오랜 세월 찾아 헤맨 청죽봉운검이었다!

비검들도 한립의 존재를 감응하고 더욱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한립은 동공을 수축하고 신속히 머리를 굴렸다.

당장 비검들을 되찾고 싶었지만 웅산을 말로 설득해서 받아낸다거나 그 홀로 비검들을 강탈해 탈출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그는 충동을 억누르고 청죽봉운검과의 의식 연계를 과감히 단절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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