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567화 (1,324/2,000)
  • 1567화. 네 번째 석검

    *

    여덟 번째 장로가 비켜서고 호리호리한 신영이 걸어 나왔다. 백포 여인은 꽤 예쁘장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무척 냉담해 보였다.

    스스스슷…….

    여인은 조용히 주문을 외며 두 손으로 검결을 맺고 하얀 기운을 실처럼 뽑아 보름달 같은 하얀빛덩이를 응결했다. 하얀빛덩이는 세 개로 갈라져 동시에 석검 세 개로 쏘아져 들어갔다.

    지켜보던 이들은 흠칫 놀라 동시에 석검 세 개를 움직이려 한 여인의 시도가 성공할지 호기심 어린 눈초리를 보냈다.

    번개처럼 수결을 바꾸어가며 주문을 외는 백포 여인의 몸에서 강렬한 하얀빛이 방출되었다.

    웅! 웅! 웅!

    세 개의 석검 위로 하얀빛의 고리가 떠올라 검신을 감싸고 맹렬히 솟구쳤다. 석검들이 가볍게 몸을 떨며 동시에 떠오르려는 순간 표면의 문양에서 검은빛이 뻗어 나와 날카로운 칼처럼 하얀빛의 고리를 공격했다.

    그러나 미친 듯이 반짝이는 하얀빛의 고리는 잘 버텨냈고 세 석검은 서서히 날아올랐다. 숨죽이고 있던 장로들 무리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드디어 세 개의 석검을 움직인 사람이 나온 것이다!

    한립도 여인을 눈여겨보았다.

    그녀는 산수 출신이었지만 감탄하는 쪽은 비토착 장로들이었고, 토착 장로들은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남들이 보기에도 세 개가 한계였지만 백포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네 번째 석검을 조종해 보려 했다. 그 결과 네 번째 석검에서는 문양의 검은 빛이 하얀빛의 고리를 가볍게 찢어냈다.

    “석검 세 개.”

    웅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여인은 약간 안심을 하며 옆으로 물러났고, 그 후로는 좋은 선례가 남아서인지 열댓 명 중에 연달아 세 명이 석검 세 개를 움직이는데 성공했다.

    산수 출신 장로 한 명, 본종 토착 장로 두 명이었다.

    간단한 시험이라고 말하기에는 힘도 많이 들고, 두 파벌 간의 자존심 싸움처럼 변해갔지만 웅산이 버티고 있기에 쌍방 모두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웅산은 그걸 알면서도 어느 쪽이 이기든 하등 관심이 없었다. 여기까지 지켜본 기량은 갑자기 눈을 감고 무언가를 되뇌어 보다 눈을 떴다.

    여러 장로들의 도전을 지켜보고 한립이 전음으로 전해준 조언을 듣고 세 번째 석검을 움직일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석검 세 개로는 성공을 확신할 수 없으니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셔야 할 겁니다.”

    그런 기량을 본 한립이 의미심장하게 전음을 보냈다.

    “저라고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석검을 네 개나 부리는 것은 앞으로 천여 년은 더 수련을 해야 가능할 듯싶습니다.”

    기량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정말 네 번째 석검을 움직이지 못해도 다른 이들보다 낫다는 것만 증명하면 될 일입니다.”

    한립은 미세하게 입술을 달싹여 네 번째 석검을 움직일 수 있는 요령 몇 가지를 공유했다. 그들이 교류하는 동안 과반수의 장로들이 시험을 마쳤고, 석검을 세 개까지 조종한 이들의 수가 일곱으로 늘어갔다.

    그중 토착 장로의 수가 더 많아 토착 장로들은 그제야 속이 시원한 얼굴로 상대편을 멸시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자연히 산수 출신 장로들의 속은 불편해졌다.

    “웅 부도주님께서 제련한 역원석검들은 역시 현묘하군요. 제가 한번 부도주님께 가르침을 청해 보겠습니다.”

    축봉이 당당하게 나서서 웅산을 향해 공수를 해보였다.

    “사실 역원석검이 제가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법보는 아닙니다. 북한선역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천생검종(天生劍宗)이 문하의 검수들의 수행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했던 특수한 법보니까요. 검술이 최고봉에 이르러야 열 개의 석검을 동시에 부릴 수 있다지요! 수사의 수행도 나쁘지 않으니 네 개의 석검을 움직이는 경지에 도전해 보아도 될 겁니다.”

    웅산이 축봉을 대하는 태도는 확실히 달랐다.

    “예, 그럼 보잘것없는 솜씨를 보이겠습니다.”

    축봉은 공손히 답했다. 천생검종이라는 말을 들은 한립은 이전의 읽은 경전의 내용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주 오래된 검수종문인 천생검종은 오직 검술로 수만 가지 술법을 파훼하고 공격이 곧 최상의 수비라는 신념을 지닌 종파였다.

    기이하게도 종문 전체를 통틀어 수사가 열 사람을 넘은 적이 없는 신비로운 곳이기도 했다.

    그래도 천생검종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요인은 당시 북한선역을 평정하다시피 해 오랫동안 불패의 전설을 남긴 종주 무생도인이었다.

    이런 천생검종은 백만 년 전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종적을 감추고 철저히 사라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축봉이 벌써 술법을 펼쳐 대량의 남색 기운을 일으키고 있었다.

    쉬쉬쉭!

    수많은 가느다란 남색 실들이 그의 몸에서 튀어나가 살벌한 살기로 첨검봉 주봉을 뒤덮었다. 연무장의 장로들은 천만 개의 작은 칼날로 난도질당한 것처럼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한립은 봄바람이라도 불어온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곁의 기량은 짜증스런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한립의 조언에 무념무상에 빠져 한창 깨달음을 얻으려는 찰나에 평정이 깨져버린 것이다. 기량은 재빨리 노기를 지우고는 명상을 이어갔다.

    검결을 맺은 축봉의 몸에서 날아간 수많은 남색 실들이 석검 세 자루를 감싸고 녹아들었다.

    쿠쿠쿵.

    석검들은 진동하며 서서히 떠올랐다.

    검신의 문양에서 폭발적으로 검은 빛이 흘러나와 남색 실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남색실은 단단하고 팽팽하게 버텼다.

    이에 축봉이 입을 달싹이자 또 한 뭉텅이의 남색 실들이 네 번째 석검으로 날아갔다.

    퍼퍼펑!

    네 번째 석검에서 검은빛이 검기로 변해 그 실들 중 절반을 끊어냈고 축봉의 안색은 확연히 안 좋아졌다.

    본명 원기에 의식의 힘을 혼합해 만들어낸 검실들이라 끊어지면서 혼백에 직접적인 타격이 온 것이다. 하지만 남은 남색 실들이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흐압!

    눈에 날카로운 예기를 품은 축봉의 기합소리와 함께 네 번째 석검이 땅에서 쑥 뽑혀 올라갔다.

    쿵!

    다음 순간 석검 표면에서 더 매섭게 검은 검기가 일어나 남은 남색 실들을 모조리 끊어버렸지만 축봉은 선혈을 한 모금 토하고도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잠시 동안이지만 네 번째 석검을 조종해냈기 때문이다.

    “역원석검은 개수가 늘수록 조종하기가 열 배는 어려워집니다. 수련시간이 길지 않은데 4검의 경지에 이르다니 훌륭합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부도주님!”

    “계속, 다음 분.”

    축봉은 물러나 단약을 하나 삼키고는 혈색이 돌아왔다. 주변의 토착 장로들이 몰려들어 그를 향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반대로 산수 출신 장로들 쪽은 한결 기세가 꺾인 분위기였다.

    남은 사람은 열 명이 되지 않았지만 신중하게 관찰을 하면서 전략을 세운 덕인지 세 사람이 더 3개의 검을 들었고, 그중 두 명이 산수 출신 장로였다.

    이제 3검 이상의 경지에 이른 장로는 쌍방이 다섯 명씩이었지만 축봉이 4검을 달성한 탓에 토착 장로 쪽이 기세등등했다.

    기량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이제 선발이 되려면 석검 세 개를 간신히 움직이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기 형, 제가 먼저 시도해 보겠습니다.”

    이때 한립이 전음으로 말을 걸어왔다.

    “려 형의 실력이면 이 정도 시험은 문제없을 겁니다. 네 번째 석검까지 조종을 해서 종문장로들에게 우리 산수 출신들의 실력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보지요.”

    기량의 응원에 한립이 입가를 살짝 끌어올렸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힘차게 석검을 향해 걸어 나갔다.

    지금까지 기다린 것은 석검을 충분히 들어 올리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석검을 움직이면 이목을 끌까 경계를 해서였다.

    특히 진선경 최고봉에 이른 웅산 앞에서 실력을 뽐내기보다는 신입 장로답게 적당한 선에서 시험을 치르고 싶었다.

    웅산은 한립을 바로 알아보았지만 초요전에서의 일이 떠올라 내심 냉소하며 시선을 돌렸다.

    한립은 짧게 숨을 내쉬고 중얼중얼 주문을 외면서 검결을 맺었다. 뿌옇게 푸른 검빛이 날아가 첫 번째 석검으로 스며들었다.

    산수 장로들은 한립의 평범한 수법에 벌써 실망한 기색을 보였고 축봉을 주축으로 한 토착 장로들은 우습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적잖은 이들이 관심을 껐을 때, 첫 번째 석검이 웅! 하고 천천히 떠올랐다. 검신의 검은 빛이 공격을 해도 푸른빛은 견고하게 버텨냈다.

    이때 한립이 두 번째 석검을 가리켰다. 푸른 검빛에 휩싸인 석검이 맑게 웅! 울고 서서히 떠올랐다.

    두 개의 석검이 떠오르자 멸시의 눈빛이 차차 가라앉았고, 그의 안색이 조금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그리 벅차보이지는 않았다.

    이에 기량은 잔잔한 미소를 띠고 한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한립이 충분히 세 번째 석검을 조종할 거라 믿었고 관건은 네 번째 석검을 들어 올려 토착장로들의 코를 납작하게 할 수 있느냐였다.

    기운을 조종하는 듯 호흡을 고른 한립은 세 번째 석검을 가리켰다.

    웅!

    조용히 검명이 울리고 세 번째 석검이 느릿하게 날아올랐다.

    “3검!”

    주위에서 탄성이 들리자 웅산도 약간의 흥미를 보였다.

    한립의 부족한 자질을 손수 측정했던 그는 상대가 상당한 실력을 지닌 검수라는 점이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석검의 검은 빛이 호응하듯 일어나 푸른빛을 공격하자 한립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그는 재빨리 수결을 맺어 연달아 푸른빛을 날린 끝에 세 번째 석검을 안정시키고는 훨씬 흐릿해진 푸른빛을 네 번째 석검으로 날리려 했다.

    “네 번째 석검에 도전하려 하다니!”

    웅산도 놀라고 구경하던 다른 장로들도 떠들썩해졌다. 한립을 얕보던 축봉이 눈썹을 씰룩였다.

    기량은 마치 자기가 네 번째 석검을 조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긴장된 표정으로 뚫어져라 석검을 응시하고 있었다.

    푸른빛을 머금은 네 번째 석검이 웅! 울었다.

    다들 숨죽인 가운데 석검이 들썩인 찰나, 요란한 검은 빛이 검신에서 튀어나와 푸른빛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쿠쿠쿠쿵!

    네 개의 석검이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한립은 낮게 신음을 흘리며 입가에 한줄기 핏물이 흘러내렸다.

    누군가는 신나하고 누군가는 실망한 가운데 기량이 작게 탄식했고 무표정하게 지켜보던 축봉은 남몰래 한숨을 돌렸다.

    웅산도 아쉬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사가 검술이 이렇게 출중한 줄은 몰랐습니다. 4검의 경지가 머지않았어요.”

    “과찬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부도주님.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산수 출신으로 그 정도 실력을 쌓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앞으로 더욱 박차를 가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한립의 겸손한 대꾸에 웅산이 이전과 달리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한립은 상대의 태도가 변하자 약간 의아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공손히 답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축봉의 눈매가 순간적으로 서늘해졌다.

    한립은 재빨리 물러나 가부좌를 튼 채 몽운귀 등에게 주려고 놔두었던 결단기 단약을 하나 입에 물고 운기조식을 했다.

    그 후로도 시험은 계속되었다.

    웅산은 끝까지 명료하게 누가 선발이 되었는지 밝히지 않았고 끝까지 지켜보아 섣불리 먼저 나선 장로들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이제 남은 이들은 스스로의 실력을 가늠하고 팔짱을 끼고 구경을 했다.

    “나머지 분들은 도전해 보지 않을 생각입니까? 그럼 시험은 여기까지…….”

    “웅 부도주님,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웅산이 얼굴을 굳히고 끝내려는데 기량이 얼른 앞으로 나섰다.

    은은한 푸른빛 속에서 기운을 다스리는 척하고 있던 한립은 역원석검을 이용한 천생검종의 시험이 무척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방금 조종해보니 무난히 다섯 개는 움직일 수 있고, 여섯 개도 도전해 볼 법했는데 남들 앞이라 시도해 보지 못한 것이 약간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뭐…….’

    문득 뭔가를 떠올린 그의 입가에 아무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

    1